우리가 박물관을 바꿨어요 _ 배성호 글/ 홍수진 그림
주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구미에 강의가 있어서 일찍 나서야 할 상황인데 아직 한 시간 남짓 시간이 있었다. 잠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배성호 선생님의 신간 <우리가 박물관을 바꿨어요>를 손에 잡았다.
배성호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 먹을 공간을 마련한 수업의 과정을 동화로 풀어낸 이야기라 쉽고 재미있게 읽혔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어린 시민’으로 대하는 저자의 삶의 태도에 깊이 매료되었다.
만화가 곁들인 동화책으로 엮은 책이라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교사들의 독서모임에 활용해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학교의 문화를 새롭게 바꾸어 가기 위해 교직원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모임의 첫 번째 책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초록물고기에서 <내가 바꾸는 세상>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펴냈는데 후속작으로 저자가 계획하고 있는 ‘안전지대로 동네를 바꾼 아이들(가제)’, ‘자전거 길을 만든 아이들(가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수업을 돌아보게 된다.
“불편해요!”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제목을 붙인 이젤페드를 칠판에 붙였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하면서 불편했던 것들을 떠올려보고 생각나는 대로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보라고 안내를 했었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포스트잇에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붙었다. 이 내용들을 비슷한 내용끼리 묶어보니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것들>
교실
- 네트 담을 통을 만들어줘요.
- 의자가 딱딱해서 불편해요.
- 바닥이 가시가 있어서 불편해요.
- 가시가 박히고 삐그덕거리고 부셔질 것 같아요.
- 반에 각각 눕는 침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우리 반에 운동기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의자의 바퀴가 없어서 밀 때 힘들어요.
- 바닥이 가시가 아니면 좋겠다.
- 바닥에 가시가 박힌다.
운동장
- 여름에 밖에서 놀려면 그늘이 없어서 불편함
- 쉬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 축구를 해서 공이 날아올까봐 무서워서 돌아다니는게 불편해요.
- 운동장에 인조잔디가 없어서 불편해요.
- 화장실이 더러워서 불편해요.
- 운동장에는 벤치가 없고 교실 안에는 휴게실이 없어요.
- 벤치가 너무 적다.
- 모래가 계속 신발 속에 들어간다.
- 운동장에 흙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 그늘이 너무 적다.
- 밖에 정자같은게 없다. 그늘에서 쉴 자리가 없다.
- 운동장이 모래다.
- 놀이터에 분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 인조잔디를 깔아주세요.
- 쉼터가 없어요.
- 옥상에 여름에는 물놀이는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 놀이터에 그늘이 있으면 좋겠다.
- 운동장에 앉을 곳이 없어서 불편하다.
복도, 계단
- 복도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불편해요.
- 복도에 계단이 없어서 불편해요.
- 계단에 의자가 없어서 불편해요.
- 복도에 쉴 곳이 없다.
- 계단과 복도 주변에 쓰레기가 많다.
- 계단 양쪽에 쓰레기통이 없어서 쓰레기를 1층에 버려야 해요.
- 실내화를 신지 않으니까 불편해요. 양말이 더러워져요. 그래서 빨래할 때 불편해요.
- 계단이 높다.
쉼터
- 반 곳곳에 침대를 놓아주세요.
- 수면실이 있으면 좋겠다.
- 학생 휴게실이 있으면 좋겠다.
- 숨을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 휴게실이 없다.
-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불편하다.
도서관
-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게 불편하다.
- 도서관 책상 때문에 불편하다.
- 도서관에서 책을 편하게 볼 수 있게 소파를 좀 넓게 해주세요.
교실배치
- 왜 3학년이 4층인가요? 5,6학년이 4층이어야 하는데...
- 3학년이 너무 위에 있다.
-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다.
- 3학년을 3층으로 해주세요.
먹는 물
- 2층에 내려가서 물을 먹어야 돼서 불편하다.
- 정수기 물이 시원하지 않아요.
화장실
- 학교 화장실이 너무 좁아서 손 씻기가 불편해요.
- 화장실이 컸으면 좋겠다.
- 화장실이 불편해요.
아이들이 느끼는 불편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고 이를 해결하기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같이 생각해 보자고 했다. 이젤패드를 하나 더 칠판에 붙이고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라는 제목을 붙였다.
채 하루가 다 지나기도 전에 이젤패드에는 다시 포스트잇이 빽빽하게 붙었다. 그 내용들을 정리해 보니 아래와 같았다.
<불편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이 내놓은 생각들>
교실
- 교실에 쇼파가 있으면 좋겠다.
- 의자를 사면된다.
- 책상을 크게 해주세요.
- 반에 침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운동장
- 운동장에 정자가 있으면 좋겠다.
- 놀이터 모래를 잔디밭으로 변하게 하면 좋겠다.
- 인조잔디를 사서 심어요.
- 운동장에 흔들의자를 만들어 주세요.
- 운동장에 그늘이 많으면 햇빛을 받지 않아요.
- 운동장에 벤치를 많이 놓아주세요.
- 옥상에 풀장이 있으면 더위를 잘 이길 수 있을 거야.
- 축구공을 지원해 주세요.
복도, 계단
- 복도에 쇼파를 논다. 그리고 밖에 파라솔을 놓으면 좋겠다.
- 엘리베이터를 만든다.
- 복도에 흔들의자를 만들어 주세요.
- 서쪽 계단에 흔들의자를 만들어 주세요.
- 계단 양쪽에 쓰레기통을 설치해 주세요.
- 쇼파가 생기면 좋겠다.
- 복도에 쇼파를 놓아주세요.
쉼터
- 눕는 공간이 생기면 쉬는 시간에 가서 눕고 싶은 사람도 눕고 아픈 사람도 누울 수 있다.
- 학생만 쉴 수 있는 휴게소를 만들면 어떨까요?
- 수면실을 만들어 주세요.
- 침대를 놔주세요.
- 만약 자는 공간이 생기면 우리가 딱딱한 책상에 앉지 않아도 된다.
도서관
- 도서관에 매트를 놓아주세요.
- 도서관에 누워서 볼 수 있는 매트를 깔아주세요.
- 도서관에 공간이 있으면 작은 놀이터가 생기게 해주세요.
- 도서관 안쪽에 큰 쇼파를 설치해 주세요.
- 도서관에 침대를 놓아주세요.
- 도서관에서 매트를 깔아주면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다.
교실배치
- 우리 반이 3층에 있으면 좋겠다.
-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다.
먹는 물
- 2층 정수기 물이 시원했으면 좋겠어요.
화장실
- 화장실이 냄새가 나니까 화장실에 향수를 뿌리거나 향수를 넣어주세요.
- 화장실 청소를 깨끗이 해주세요.
기타
- 옥상에 풀장, 스케이트장을 설치해 주세요.
- 학교에 워터파크가 있으면 좋겠다.
- 학교에 놀이기구가 있으면 좋겠다.
- 옥상에 편의점이 있으면 좋겠다.
- 학교에 방방이 있으면 좋겠다.
포스트잇에 적힌 아이들의 생각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내 고민도 같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실현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많은 예산이 필요한 장기적인 과제도 있었다.
동료교사들과 의논하여 이를 수업과 연관 지어 해결해 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한꺼번에 다 이룰 수는 없더라도 이 중에 몇 가지만이라도 꼭 해결해 보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몇 가지 수업 아이디어가 만들어졌다. 그 중에 하나가 교실평상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분리형 침상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따로 떼어 놓으면 벤치와 좌탁으로 이용이 가능하고 이를 연결하면 평상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수업을 해보자고 이야기하니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도 나도 어떻게 하면 이 수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이 수업에 도움을 주겠다는 분이 연락을 해왔다. '펀쿨'이라는 벤처기업인데 야심찬 청년 몇몇이 뜻을 모아 교육 현장에 도움이 되는 사업들을 찾아내고 이를 사업화하여 적정한 투자자를 찾아 지원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목공교실을 열려면 재료비와 강사비가 많이 필요한데 이 비용을 후원해주겠다고 하니 큰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나면 이틀에 걸쳐 이 수업을 하게 된다. 아이들도 나도 잔뜩 기다리고 있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준비하는 데에도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준다.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스스로 해결해 가도록 돕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려줌으로써 내가 아이들과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는 수업에서 놓친 부분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학교라는 공간도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불합리하게 자리한 것들이 꽤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부분으로까지 생각이 이어진다. 나를 다시 ‘시민’으로 일깨우며 ‘어린 시민’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으며 같은 생각을 나누고 실천하는데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