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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오신 야훼, 그분을 메시아라고 하고 예슈아라고 한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남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영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되셨다. 그분을 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놀라운 축복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으면 미침의 증세가 일어난다. 그래서 감정도 미쳐 날뛰고, 생각도 자꾸 이상한 미친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냐면,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시듯이, 우리의 생명을 영과 혼이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으로 우리 혼을 붙들고 있어야한다. 그래야만 우리 입에서 생명나무가 나오고 살 수가 있게된다. 나도 살 수 있고, 같이 사는 사람도 살 수 있다. 그런데 나에게서 자꾸 미친 것이 나오면, 내 주변이 다 미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잠언의 마지막은 그녀의 손의 열매를 그에게 줄 것이라고 끝난다. 가만히 보면 당연한 소리같다. 그녀의 손의 열매는 그녀 것인데, 왜 주는가? 사실 잠언에서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그녀의 손의 열매로부터(from), 그녀를 위해 주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제 생명나무로부터이다. 그녀의 손이 생명나무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생명나무로부터 주어라고 한다
주님의 소망이 생명나무로부터 먹는 것이다. 이제는 생명나무로부터 주고 먹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것이 사실 잠언의 마지막이다. 이 생명나무는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는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게 되어있다
신부란 다른게 아니라, 남편을 얻는 것이다. 신부는 손으로 하는 일이 남편을 얻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남편으로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다. 그래서 손으로 맨날 남편을 얻기 위해서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남편으로부터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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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타보의 마지막 말씀이다.
신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키 타보는 너희들이 올 것이라는 말이다. 여러분들이 어떤 시간, 어떤 땅, 어떤 곳으로 가고 싶은가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한 시간 속으로 가고 싶지 않는가? 굉장히 힘들 때가, 하는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이다.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그런데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하신다
이것을 더 직접적으로 번역해보면, 너희가 형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를 가르치냐는 것이다. 레마안,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려면, 이 언약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라는 소리이다. 그럴 용의가 있는가?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우리는 사실 형통을 위해서 한다. 안 될 것을 위해서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 자체는 형통을 목적으로 한다. 형통함을 위해서 주님이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이 모든 언약의 말씀이다. 우리의 삶에 형통함이 오게되는 유일한 길이 이 언약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שָׁמַר 샤마르 : 지키라
그리고 행하라
עָשָׂה 아싸 : 행하다
우리가 사실 이것을 잘못 배워서 상당히 오해가 많은 것이다. 이번 주 토라포션에서 모든 토라의 말씀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약 용어로 모든 율법의 말씀이다. 키 타보의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그분의 모든 명령, 규례, 법도이다. 그분의 모든 계명을 샤마르, 지켜 행하라.
아마도 많은 신약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지켜 행할 자가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안 지켜도 된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해방이라고 배웠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이것을 이야기 하셨을까? 지키지도 못할 것을 왜 이야기 하셨을까? 지켜 행하지 못할 것을 주신 다음에, 지켜 행하라? 과연 하나님이 그런 분이실까? 아니실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은 여호와와 다른 말씀을 하신 것일까? 사도들도 그런가? 그렇지 않다
- 이 법은 변함이 없다.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우리는 잘못된 복음에 의해서 말씀이 문제니까, 율법은 폐기가 되었고, 단지 한두 개 정도로 남겨두셨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한 다음에, 우리는 예수님만 사랑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형통한데, 지켜 행할 수가 없다. 그러면 뭘 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이 잘못된 것일까?
- 사람을 바꾸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사람을, 지켜 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면 된다.
할 수 없으면, 하는 일마다 형통도 못 하고, 말썽을 일으키면, 얘를 과감히 죽이자. 얘를 죽이는 것이다. 얘를 죽여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새 사람이라고 한다. 새 사람을 만들면, 이 말씀을 다 지켜 행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훨씬 좋은 그림이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우리를 끊임없이 십자가에서 죽이시고, 새 사람을 만들어서, 이제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이 옛 사람이라고 하는 자는 애초에 하나님 말씀에 관심, 흥미도 없고, 지킬 마음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옛 사람이 죽고나면, 이 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그리워한다. 이 새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는 것 밖에 없다. 다시 옛 사람의 것을 행하라고 하면 새 사람에게는 고통이다. 그래서 이 새 사람은 토라의 사람이 된다
키 타보에서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한다. 키 타보에 와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된다. 키 타보에서 새 사람만이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다.
בְּרִית 브리트 : 언약, 아들(בַר)을 완성(ת)하는 것
- 우리가 지켜 행하는 것은 내가 천국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오시는 분은 주님이다. 키 타보는 우리가 오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먼저 주님이 오셔야한다. 주님이 오시는 것은 남편이 오시는 것인데, 이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이유는 남편이 오시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언약의 말씀은 다 이 땅에 오시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땅에 모든 말씀들이 있다. 이 말씀들은 쉽게 이야기하면, 아내가 지켜 해야 할 일이다. 지켜 행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내가 지켜 행할 모든 말씀들은 누가 있어야만 지킬 수 있는가?
- 남편이 있어야만 지켜 행할 수 있다. 남편이 없으면 지켜 행할 수 없다. 아무리 배워도 지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토라는 계속 많은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이야기한다. 그런 동시에 남편이 올 것이다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남편을 영접해야 한다. 남편을 알아보라는 것이다. 토라는 계속해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베하야 키 타보, 남편이 오는 것이 예정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너희가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남편이 올 것이다. 이것이 레쉬트, 인간의 아주 근본된 생각, 사상, 인간의 머리이다. 이것을 맏물이라고 했다.
인간이 맏물, 첫 열매를 제사로 드리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의 근본된 생각은 남편이 온다라는 것이다. 내가 속히 오리니..!
그래서 모든 예언의 말씀들은 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많은 말씀들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고, 이것은 행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런 이야기 자체가 웃긴 이야기이다. 남편이 오면 우리 모두는 다 행할 수 있게된다. 남편이 오지 않으면 아무도 행할 수 없다. 여러분들은 그 남편을 받아들인 분이라고 믿는다.
키 타보에서 우리가 또 하나 배워야 할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가 있다. 키 타보는 전체가 다 우리를 약속의 땅에 집어넣는데, 이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회개의 삶이다. 키 타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특별한 시간 속, 영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을 회개의 삶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회개의 삶은 바로 의인의 삶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님은 이 땅에 의인으로 오신다. 그리고 또 우리를 하나님의 의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우리를 또한 의인되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다. 같은 의가 아니면 또한 우리는 결혼생활을 할 수 없다. 의가 같아야한다
청년들이 있지만, 결혼할 때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의가 같아야 한다. 그래서 청년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것이 Feeling이 아니라는 것이다. Feeling으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Feeling으로 결혼한다. 그래서 고생 무지하게 한다. 20-30년 계속 고생하다가, 어떡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가 같아지면 그때 다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대개 외모로 취하는 사람들은 의가 같지 않은 채로 Feeling으로 결혼했다가, 주님의 은혜로 의가 같아지니까 비로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 의인의 삶에 대해서 잘 배워야한다. 키 타보는 의인의 삶을 가르친다. 의인의 삶은 회개의 삶인데, 회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고통을 느낄까? 왜 어려움을 느끼고, 힘듦을 느끼고, 고통스럽다고 부르짖고, 힘들 때 막 그것을 표현할까?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 때 잘 표현을 안 하는 편이라는 사람 있는가? 아니면 표현을 안 하면 못 견딘다는 사람이 있는가?
- 보통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들은 도움을 바라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자랐거나, 도움을 청했다가 오히려 한 대 맞았던 경험이 있다거나 할 때이다. 어렸을 때 한 번 울었는데, 아빠가 오더니 이 자식이 그런거 가지고 우나?라고 때린 경우이다. 이런 경험이 있으면 고통스러운 일이 다가와도 표현을 안 한다.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표현을 잘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내 삶 속에 들어와서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고통은 기회이다. 그 기회가 와서 소리지르면 쫓아오는 것이다. 존재를 오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고통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연합을 위한 가장 탁월한 작품이다. 어린아이가 고통스러워하면, 모두가 달려간다. 어떤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면 그냥 Support가 간다. 그냥 지지가 간다. 그래서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Support와 지지가 갈 수 있는 가장 탁월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우주의 원리와 법칙이 고통을 느끼는 것에는 Support와 지지가 가도록 되어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때 이 법칙을 최우선으로 놓는다. 그래서 우리도 예를들면 앰뷸런스가 가면 피해줘야 한다. 왜냐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가고 있으니까 다 도와줘야한다.
1) 하나님 나라의 원리 중에서 이것을 의인의 고통이라고 한다. 의인이 고통을 느끼면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하늘의 모든 힘은 의인의 고통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역사해야한다. 하늘의 모든 힘을 가져올 수 있는, 하늘의 힘이 이 땅에서 역사하는 가장 큰 것이 의인의 고통이다.
2) 반대로 악인의 고통이 있다. 악인의 고통에는 하늘이 역사하지 않고, 지옥의 세력이 역사한다. 그래서 악인도 고통을 느낀다. 누구를 죽이고 싶어서 고통을 느낀다. 악인이 막 화를 내고, 고통을 느끼면 지옥의 세력이 역사한다.
이 두 가지의 원리를 오늘 배워가시길 바란다. 그러면 의인의 고통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악인의 고통은 뭘까? 의인은 왜 고통을 느낄까? 무엇에 고통을 느낄까? 의인이 고통을 느끼는 것을 שָׁבַר 샤바르라고 한다.
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 주님은 이 땅에 의인으로 오셨다. 주님은 하나님의 의이시다. 주님이 이 땅에 온 것은, 보내심을 받은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기 위해서 오셨다.
שָׁבַר 샤바르 : 마음이 상했다, Broken heart
- 마음이 부서진 것이 제일 고통스럽다
부서진 마음은 조금만 건드려도 굉장히 아파한다. 조그만 일에도 오해를 심하게 한다. 마음이 부서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많이 부서져있지 않는가? 마음이 자꾸 상하지 않는가? 왜냐면 마음이 완전하지 않고 부서져 있으니까 자꾸 상하는 것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마음이 자꾸 상한다. 기본적으로 부서진 마음이기 때문에, 아프면 누군가가 감싸주길 바라고, 아프면 너무 힘들다. 막 상처받은 새처럼 고통스럽다. 이것을 Broken heart라고 한다
주님은 이 Broken heart를 고치기 위해서 왔다. 그러면 이 Broken heart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뭔가?
- Broken heart를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Broken heart를 보고 의인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의인은 마음이 상한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 하늘이 역사해서 그것을 고쳐준다. 그래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Broken heart를 보고 고통스러워 하신다.
우리 모두는 다 부서진 마음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상한 마음이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마음이 자꾸 상하지 않는가? 안 상하리라고 하면서 자꾸 상하지 않는가? 이제는 토라를 배웠으니까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자꾸 상하지 않는가? 우리는 자꾸 마음이 상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상한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근본적인 Nature이다. 원래 Broken heart이다. 원래 에하드에서 60만개로 부서졌기 때문에, 우리 자체는 Broken heart이다.
그래서 의인이란 존재는 이 Broken된 것을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Broken된 것을 고쳐주려면 유일한 길이 다시 에하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부서진 것을 다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고통이다.
이 전체를 다 하나되게해서 Broken heart를 내가 고치겠다.! 그래서 이 전체가 가진 고통, 고난을 짊어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가 고난을 받아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전체의 Broken heart에 대한 고난을 다 받으신다.
우리는 모두 다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하늘이 역사하지 않는 악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악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목적이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Broken heart와 하나되어서 에하드가 되어서 이것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나 하나만 고치고 싶어한다. 그러면 이것을 악인이라고 한다. 얘는 다른 Broken heart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나의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존재들은 다 항상 나를 아프게 한 것이다.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얘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이 나를 안 돕는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20-30-40-50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나 아프고 힘들다고 이야기 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하늘이 팍팍 역사하는가? 그런데도 또 나 아파요라고 하고 있다. 악인에게는 절대로 하늘이 역사 안 한다.
의인의 회개의 삶을 주님은 설명하기 위해서 98개의 저주를 키 타보에서 이야기하신다. 이 저주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누구에게 저주가 올까? 삶에서 자기를 위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저주 가운데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는 것, 고난받는 것을 아무도 피해갈 수가 없다. 인생은 고난이고 고통이다. 이게 나쁜게 아니다. 자기를 위해서 고통과 고난을 받는 것을 98개의 저주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의인의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을 축복이라고 한다. 여러분들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는가? 만약에 여러분들이 의인의 고통을 느낀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파워와 함께 사는 삶이 될 것이다.
신27: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모든 율법의 말씀은 다 아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분이 레쉬트, 모든 것의 으뜸이고, 근본이고, 우리 모두는 그분의 몸으로 하나되어서 그분과 함께 살아야한다. 이것이 레쉬트이고, 그 율법의 말씀을 실행한다고 한다
만약에 그것을 실행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실행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저주를 다 짊어지셨다고 한다. 율법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셨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그분이 다 짊어지셨으니까, 우리는 괜찮다고 하면서 또 내가 잘 살려고 한다. 율법의 저주를 다 짊어지셨다고 하는 것은 각 사람이 자기가 살려고 하는 모든 것을 짊어져서, 이제 각 사람이 자기가 살려고 안 해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모든 저주를 끝내시고, 더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심으로, 더이상 저주가 오지 않게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오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 믿으면 저주가 안 온다고, 혼자 난리를 피면서 사니까 저주가 더 심화되는 것이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 키 타보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
나쁜 짓을 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한다.
-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더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아내를 위해 산다는 것이다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직 제가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달려가는 것 뿐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도 완벽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어떡하면 상대방을 위해서 살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깊은 곳에는 그 원함이 있는 것이다. 이거 했으면, 이거 먹었으면 좋겠다. 깊은 곳에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을 원한다. 내 아내를 위해서 하는 것을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만 있다. 그래서 회개하고, 내 깊은 곳의 원함이 다른 존재를 위한 것이 되기를 기도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알아야한다. 98개의 모든 저주가 임한다. 98개의 모든 저주는 마지막 때에 임하는 저주라고 한다. 마지막 때는 98개의 모든 저주가 임한다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어떡하면 이 저주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심각하게 이것을 배워야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임해버리면 큰일나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원자폭탄 급이다. 이게 전체 지구를 덮게 되어있다. 이 가운데서 어떻게 벗어날 것이냐? 오직 딱 하나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주를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
갈1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옛날에 이 말씀을 보면서 좀 심하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천이 되면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너무 심한 소리 같지 않은가?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도 이것을 차마 못하겠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이 이야기를 그렇게 자신있게 할까? 키 타보이다. 이것은 그냥 우주의 원리이다. 심정상 좋게 이야기 해 줄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의 법칙이고 원리이다
만약에 이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의, 이 신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살면 저주가 온다는 것이다. 복음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바싸르라는 것은 자기 몸만을 위해 살면 저주가 오는 것이 원리이다. 98개의 모든 저주가 임할 것이고, 그것이 오는 동안에 1-2개 맞고 죽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대 환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 남편이 없는 것, 이 땅에 혼자 사는 것, 애굽으로 살려고 하는 것을 저주라고 한다
저주를 98개를 이야기하신 다음에 주님이 의미심장하게 이 이야기를 하신다. 신28장은 68절까지 있다. 다 저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마지막에 주님이 하시는 이야기이다.
신28:68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저주의 결론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그 길, 애굽으로 끌어 가신다. 애굽은 하에레쯔,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곳이다.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곳을 애굽이라고 한다. 그런데 배에 싣고 간다고 하신다.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여호와께서 너를 미쯔라임, 애굽으로 다시 돌려보내신다
배에 싣고 בָּאֳנִיֹּות 바아니요트 : 배 안에서, 나 안에서 from אָנִי 아니 : 나, me = 나(אָנִי)를 완성(ת)하는 것 안에서(ב)
-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되면, 그 안에서 여호와께서 애굽으로 돌려보내신다.
배라는 말은 나란 말이다. 절대로 이 배를 타시면 안 된다. 절대로 아니, 나 안에 있으면 안 된다. 배는 아니를 완성하려는 것, 나를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안에 있으면 주님이 애굽으로 돌려보내신다
שׁוּב 슈브 : 돌려보내다, 회개
회개에는 두 가지의 회개가 있다. 악인의 회개와 의인의 회개이다. 악인의 회개라는 것이 악인이 의인이 되는게 아니라, 악인도 끊임없이 나의 성공을 위해서 뉘우치면서 사는 것이다. 악인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공시키려고, 오늘 QT 안 했네라고 한다. 악인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기도 안 했네. 하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뉘우치면서 자기를 완성하기 위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성경공부, 구제할 수 있다. 악인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악인이 나를 완성하는 것 안에서 회개를 하면, 미쯔라임에 가 있다는 것이다. 애굽에 가 있다.
나 자신 안에 있으면 애굽으로 돌아간다. 모든 저주는 남편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 혼자 살려고 할 때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를 외쳐야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를 외쳐야한다. 내 삶의 목적은 그리스도에게 있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이 오시는 소리를 들어야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소리를 들어야한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위한 삶을 살게끔 부르심을 받는다. 그분이 오는 소리를 야훼의 소리라고 한다. 야훼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모든 저주가 온다
렘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 때가 이르리니, 우리가 키 타보에서 배우는 것이 때가 온다는 것이다. 때가 되면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킨다. 의로운 가지를 부활시킨다..! 이 의로운 가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된다.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다. 야훼 찌드케누,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다. 바로 이 공의이신 그분을 받아들이시기 바란다.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과 평강을 주실 것이다. 이분을 의인이라고 하고, 예슈아라고 하고, 이분은 모든 고통을 짊어지신 분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우리의 고통을 싸매시고 치유하실 분으로 오셨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면 우리 자체가 Broken heart이기에 그것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Broken heart이고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Broken heart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다 하나될 수 있는 길을 걸어간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서 의인으로 부름받았다. 의인은 바로 이 고통을 느끼는 자들이다. 아직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 내 부서진 것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하나되야한다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얼른 하나되어서 남편과 하나되는 것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것을 의인의 고통이라고 한다
어떤 랍비가 있었는데, 이 랍비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서 떠나서 길을 가게 되었다. 제자들이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사랑하는 스승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 이별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그 랍비의 가르침이 너무 그리우니까 너무 고통스러웠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럽다고 했더니, 그런데 이 랍비로부터 연락이 왔다. 의인의 고통은 오직 다음 세대를 위한 고통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이 다음 세대라는 것은 마지막 때인데, 마지막 때에는 모든 98개의 저주가 온 세상을 덮기 때문이다. 이 98개의 저주가 온 세상을 덮을 때, 각자 하나하나의 지체들이 자기, 돈, 세상을 사랑할 때 겪게 될 고통인 것이다. 이 마지막 때는 주님의 몸을 완성해야 할 때인데, 만약에 이들이 자기, 돈, 세상을 사랑하면 이들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의인의 모든 고통은 다음 세대를 위한 고통이라는 것이다.
의인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의인은 마지막 때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다. 이들은 전체가 하나되야한다는 것 속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천사를 움직이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주님께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들은 굉장한 미스테리중의 하나였다. 주님은 왜 고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주님은 의인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받았던 고난은 이 모든 Broken heart들이 받아야 할 고난을 짊어지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아도 되게끔 주님이 고난받으신 것이다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고난을 받으라? 번영 신학이나, 이런 것 속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누려야하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으면 누림이 있어야하지,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 사실 잘 다가오지 않는다. 예슈아 비전교회에 고난을 받기 위해서 다닌다면, 올 사람들이 여러분 빼놓고 없지 않겠는가?
고난이 오지 않으면 참 제자가 아니다. 고난이 와야만 참 제자이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쳤다. 반드시 우리에게 넘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난, 고통, 어려움이 우리에게 와야한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면 안 된다. 오늘날은 인생을 너무나 쉽게 살려고 한다. 마지막 때는 완전히 인스턴트이다. 인생을 편하고 쉽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쳐야 한다
인생은 쉽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살아야 한다. 단, 나를 만족시킬 어려움을 느끼느냐, 아니면 이 전체를 하나되게 하려는 이 고난을 받으려고 하는가? 더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이웃이 나라고 하면서, 나인 그 이웃과 하나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고통스러워하고 고난을 느끼는 것이다. 이 고난이 우리에게 넘쳐야한다고 믿는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왜 사도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괴롭을 받는가? 옛날에는 이게 정말 미스테리였다.
cf ) 단순하게 얘들이 말썽 피우는 것인 줄 알았다. 선교사 사역을 하다보면 Follower들이 있는데, 이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뭐 한 마디 하면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러면 제가 그런다. 그러면 니들이 리더해라. 그건 또 안 하겠다고 한다. 저는 그게 니들로 인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괴로움이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받는 괴로움, 너희를 위하여 이 고난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다 Broken heart, 부서진 자들이 다 하나되야 한다는 고통과 고난이다. 이것이 의인의 삶이다.
삶 속에서 내가 완성되지 못한 고난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곳이 애굽이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이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이 살아나야 한다는 고통을 짊어지시고 기뻐하시기 바란다. 이 고통이 나에게 오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란다. 내 LTG원이 살아나야 한다는 고통을 매일 느끼시기 바란다. 다된 밥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이 고통을 기꺼이 받으려고 할 때, 사도바울은 이렇게 멋진 말을 한다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것이 육체의 정욕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육체의 정욕은 나를 위함이 있으면 절대로 극복 못 한다. 내 육체에 너희를 위한 고난을 채우시기 바란다. 그것을 기뻐하시길 축복한다.
히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 이것은 우주의 원칙이다.
정말 미스테리이다.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 우리가 의인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주님도 그러하셨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하여이다. 이 고난은 단순한 내가 받는 고통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어렵게 사는 것을 고난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힘들게 산 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고난이 아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나를 위하지 않고, 다른 존재를 위해서 사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만약 나를 위한 고난을 가지고 산다면 육체의 정욕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우리는 종국에는 애굽에서 발견될 것이다.
우리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
* 기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당신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겠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나를 위한 삶 속에서 내가 느꼈던 고통, 상처, 아픔, 주님 이것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것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안 받고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을 위한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며 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며 살게 하소서. 고통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그것을 택하게 하소서.
이제 모든 저주는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모든 저주가 나타나는 때에, 우리는 한 줄기 빛을 발견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 우리의 남편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는 삶을 통하여서, 그분의 남은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하여서 우리가 이 모든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미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모든 저주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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