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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untact worship)는 성경적인가?
비대면 예배가 성경적인가? 예배란 어떤 것인가? 비대면 예배를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반응하실까? 최소한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교회의 본질은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하기 위해 세워진 곳으로 의당 이 비상 시국에 백성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지헤롭게 행동하여 하루속히 질병을 물리치고 나라도 교회도 안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방역에 최선을 다하여 헙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단기적인 안목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은 비대면 예배로 불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대면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융통성을 가져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해도 최선이 무엇인지는 고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의 혼란과 미혹의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의 언약인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산제사로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늘 당당하시던 주일 낮 예배에 1500여 명 이상에 예배드리는 교회를 섬기는 중형교회의 목사님의 말씀에, 지난 몇 주간 비대면 예배를 몇 드리고 난 후에 아무리 애를 써도 500여 명 이상의 성도가 교회에 대면예배에 나오지 않고 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삼분의 일의 성도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아 이제는 늘 1000명 미만이 예배를 드린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모임에서 여러 목사님들이 그나마 대다수의 교회들이 주일학교가 없는데 그 중에 몇몇 교회들은 장년보다도 어린학생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소망을 걸고 사역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부모가 교회에 나오시지 않아도 나왔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대부분 부모가 강제하여 교회를 나오지 못하여 반 이상이 나오지 못한다며 힘들어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코로나19가 끝나도 중대형교회의 삼분의 일 정도는 나오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의 주일학교나 중고등부는 반쪽이 될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장년은 물론이요, 초중고등부도 삼분의 일은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자신들이 드리는 영상예배를 함께 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삼분의 일이 나오지 않는데 실제로 영상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는 나오지 않는 성도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잃어버린 성도들이 집에서 비대면예배를 인터넷으로 자신의 교회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이나 학생들을 탓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보통의 성도들이나, 아동이나 청소년의 책임이 아닌 평소에 예배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하여 예배를 바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전적이 책임이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아는 말씀들이지만, 그래도 이 시국의 중요성을 감안해 우리 깊이 생각해 볼까요?
창세기 1장부터 3장의 창조와 기초적인 사건들이 기록된 이후 가장 처음 기록된 첫 번째의 첫째가 되는 교훈은 제사(예배)였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첫 페이지는 바로 가인과 아벨의 제사였습니다. 가인과 제물, 아벨과 제물로 드리는 예배, 즉 각자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룩한 삶과 하나님의 창조와 주권과 은총에 감사하는 제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셨는데 하나님의 명령대로 선하지 못한 가인의 삶(몸)과 그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셨고(요일3:12), 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며 선하게 살던 아벨의 삶(몸)과 그 제물은 기쁘게 열납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두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성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첫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여 다스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인데 가장 먼저 제사(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신 첫 번째의 목적이 바로 제사인 것이며 오늘 날로 말하면 예배자로 창조하시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제사(예배)를 받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 즉 예배는 받으시는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첫 페이지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그 명령을 기억하고 그 명령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예배는 받으시고, 반대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여 우리의 거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제사, 즉 예배는 창조와 구원의 목적이며 택자들인 성도들에게 주어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뜻이며, 언약인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분들이 교회란 부름 받은 자들의 공동체, 혹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의 공동체, 또 택한 자들의 공동체라는 “에클레시아”라는 주장을 내세워 예배는 어디에서든지 연합하여 드리면 된다고 주일예배를 야외예배나 사업장예배, 영상예배 등과 같은 비대면예배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물론 택함을 받아 부르심을 입은 공동체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아 광야인 교회로 인도함을 받은 공동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공동체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목적인 공동체의 본분이 무엇인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교회의 존재의 가치, 혹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지켜야만 하는 의무요, 본분은 바로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혹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이나, 제사나, 예배를 논하면 그것은 이미 효력이 없어진 제도나,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주장은 성경에 대해 조금만 바로 알거나 올바른 신학자들에게 그야말로 무지하다거나 그릇되었다고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그런 이유로 예배를 논하기 전에 언약에 대해 잠시 논하여 편견과 미혹에 대처해야 합니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예배(교회)에 대해, 교회(장소)에 대해 성경의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들은 전혀 기억하지 않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만 고집하며 폐하여진 제도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옛언약이 새언약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제사, 즉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인 언약이 없어졌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옛날 계약을 새로운 계약으로 변경했다고 계약 자체가 사라집니까? 어떤 계약이든 옛날 계약을 새로운 계약으로 바꿀 때는 더 완전하고 확실한 계약으로 바꿀 것입니다.
새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언약도 더 완전한 것으로 주어졌습니다. 제 개인적인 주장은 절대 아닙니다. 성경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렘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 말씀은 31절부터 34절까지 다 살펴봐야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옛언약은 모세와 이스라엘들만을 호렙산으로 불러 두 돌판에 새겨 언약궤에 두셨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모든 열방에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법을 두셨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성령을 통해 그 법이 기록된 자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자신이 명하신 그 법이 그 마음에 있는 자들만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언약의 법들이 두 돌판과 문자로 새겨지고, 또 제사장들에게만 그 언약의 말씀들을 읽도록 정해진 법들로 인해 백성들이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다보니 부르심을 입어 광야교회로 세워진 공동체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마음에 더 잘키기도록 기록하신 것이 새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면 물론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옛언약이나 새언약이나 하나님이 지키라 명하신 법인 계명인데, 피주체자는 옛계명 때는 두 돌판의 법과 이스라엘 백성이었고, 현재는 각각 믿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법이 마음에 기록되어 더 완전하게 지켜도록 하신 것이 새언약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절대로 미혹되거나 편향되지 말고 명심할 것은 옛언약이나 새언약이나 대부분의 계명들을 같고, 일부 신약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바꾸신 몇 가지의 계명 외에 구체적으로 바꾸시거나 폐하셨다고 명백하게 언급하신 계명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여전히 유효하고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며, 지키지 않으면 저주 받고 멸망에 이르게 되는 준엄한 심판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변하여 된 주일예배나 십계명, 십일조 등을 폐하면 그것은 준엄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왜 그리도 많은 목사님들이 계명 즉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말씀하실까요?
이 점을 알아야 많은 분들이 율법이 폐하여 졌기 때문에 이전처럼 안식일 예배를 꼭 교회서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주일예배를 점점 야외, 사이버영상예배,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드리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등 무교회주의로 변질되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있기에 율법으로 대변되는 계명의 중요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명, 즉 율법에 대해 일일이 성경구절을 들어 증거하고 해석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에 결론만 몇 가지 말씀드리면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디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니 개인적으로 마음과 눈을 열어 각 구절들의 앞뒤의 말씀을 깊이 살펴보시고 꼭 진리에 바로 서시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가 구절들과 앞뒤의 한 문장에서의 말씀을 바로 해석한 결론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해석=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의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영생을 얻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율법은 여전히 성도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믿는 자가 지켜야 할 계명이며,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그러나 율법 안에 영생이 아닌 예수 안에 영생있으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롬7:12)
2. 히0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해석=레위지파만의 제사장이 되는 언약이 제사장 제도언약의 계명이 연약하므로 폐하시고, 원래 제사장 제도는 멜기세덱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참된 제사장이므로 주님의 친히 세우시는 자(오늘 날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요, 제사장이다.)
3. 히8:7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해석=두 돌판에 기록하여 주었던 이스라엘 백성과만의 언약인 옛언약이 가까이 하기엔 흠이 있어 잘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므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믿는 자들, 즉 그 마음과 생각에 내 법을 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새언약이 요구되었다는 것)
4. 히10: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해석= 율법의 제사제도를 폐심은 그 율법의 제사는 예수님의 그림자로 온전한 제사가 아니므로 완전한 제물이신 영원한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로 단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렸으므로 이후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의 예배가 세워졌다는 것)
5.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갈3:12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해석=율법을 지키는 자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이 있어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당연히 저주 아래에서 완전히 벗어나 율법을 온전히 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
6. 골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해석=이는 할례제도를 도말하신 것에 대한 말씀으로 의문에 증서인 율법의 전부를 도말하신 것이 아니라 난지 팔 일만에 행하는 손할례를 도말하시고 믿음으로 마음에 행하는 마음의 할례로 바꾸셨으며, 그처럼 안식일, 소제의 월삭, 음식법, 절기 등의 제도를 더 유익한 1)마음에 할례, 2)주일, 3)믿음으로 지키는 매월 첫날 월삭, 4)유월절을 부활절로 지키는 것과 같은 절기, 5)음식법 등을 더 유익한 제도 등을 십자가에 도말 즉 완전히 없애시고 더 유익한 제도로 세우셨으니 논쟁하지 말라는 것)
7. 엡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해석=할례제도의 의문에 계명인 할례율법을 폐하심을 선포하시는 말씀이다. 할례 받은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의문에 속한 계명을 폐하고 십자가와 온전히 연합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피로 가까워진 믿음으로 보혈의 공로를 덧입어 아버지께로 나오는 자는 무할례자라도 그가 바로 외인이 아닌 성도요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이다.)
이상의 말씀들 외에도 몇 구절들이 더 있지만 위의 말씀의 범주에서 벗어난 말씀은 절대로 없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계명, 즉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선언한 말씀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그 어떤 성경학자도 십계명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명령인 계명, 즉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올바른 성경의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만약 하나님이 주시고 명하신 계명 전체가 폐하여졌다는 말씀이 한 구절이라도 있으면 좀 과격한 말씀이지만 제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드리고 내 생명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명확하고 확실한 것이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그 안에 예수님이 없는 자, 즉 자기 맘대로, 자기 편한대로 가짜로 믿는 자라고 합니다.
요일5:2-4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계명을 지키는 자만 하나님의 자녀요, 계명을 지키는 자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자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며, 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참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에 예배에 대한 바른 교훈을 보기 전에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수님과 많은 본을 보이신 사도 바울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기 전에 성도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셨을까요? 예수님 가르침입니다.
눅24:44-4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늘 가르치신 것이 다름 아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참고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율법으로 명명되는 계명을 말하며 하나님의 명령인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외친 것이 선지자의 글이며, 또 시편 119편으로 대표되는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란 시편의 핵심인 하나님의 언약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결론은 구약의 계명을 늘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행28:23-26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대부분의 주의 종들이 바울의 주장을 들어 율법의 무용론이나 폐지론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장본인인 바울이 순교하기 전의 마지막 소중한 시간을 어디에다 사용합니까? 바로 예수님처럼 똑같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과 예수의 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일과 선지자의 말과 모세의 율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은 의미의 말씀으로 계명인 율법을 가르쳤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즉 자신의 생명이 다할 것을 알고 있는 그 바울이 그 소중한 시간을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고 계명만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24,25,26절을 함께 논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까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하나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순수한 핵심을 말씀드려서 손에 쥐어 줘도 예나 지금이나 그 절대적 진리를 안 믿고 다른 주장을 하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일성수를 안 해도 된다고 하거나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하거나, 예배를 교회에 나가서 예배와 헌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거나, 여전히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며 주일로 논쟁하거나 더욱이 십계명은 버젓이 자신이 성경찬송가에 새겨가지고 다니면서도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부디 이번 기회에 마음을 열고 성경을 잘 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에 나아가 드리는 예배는 피조물인 모든 인간이 특별히 값없이 보혈의 공로를 입어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삶의 유일한 수단이며, 지키지 않으면 생명을 내어주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준엄한 율법인 계명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약성경 전체에 율법의 무용론이나 폐지론은 각각 특정한 제도들을 보완하거나 바꾸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명명되는 옛언약 원래의 의미는 대부분 여전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며, 일부 제도들은 더 온전하고 완전하여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는 제사가 예배의 제도로, 언약의 관계는 이스라엘만이 아닌 모든 이방인 열방의 믿는 자로, 레위 지파만의 제사장제도가 택하여 부르시어 기름을 부으신 자로, 선민 이스라엘 남자들만 난지 팔 일만에 행하는 손으로 행하는 할례가 모든 열방의 믿는 자들의 마음의 할례로, 예수님을 예표하는 어린양의 피로 구원함을 입은 유월절의 절기가 친히 어린양이 되어 드리신 완전한 대속과 구원을 이루신 부활절로 더 유익하게 온전하게 바꾸신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 대며예배를 논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구요?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인 참된 예배를 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시고 은혜주시는 예배인지를 논하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하라, 지키라, 하지 마라는 말씀들 중에 분명하게 폐하신 일이 없다면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그 명령의 계명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대변되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의 모세오경의 대부분의 말씀의 계명인 규례와 법도는 지금도 여전히 성도들이 지켜야 할 절대적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며, 비록 믿음으로 영생을 얻지만, 영생을 얻을 참된 믿음의 증거가 계명이므로 여전히 유효한 언약입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십 여 년 전에 함께 신학을 했던 목사님도 십일조의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것을 글로써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유달리도 교회의 무용론인 무교회주의가 깊숙이 파고들어 안타깝게도 저에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는 동역하시는 몇몇 목사님과 전도사님들까지도 자신이 무교회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자 했던 대면예배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명의 물이심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같은 분이심을 깨닫자 가장 먼저 무엇을 여쭙습니까? 제사, 즉 예배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잠시 봅니다.
요4:20-24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이 생명수이심을 듣고 하나님의 선지자이심을 알게 된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께 예배에 관해서 묻습니다. 이는 수가성 여인이 사마리아 산에서 예배했다는 말처럼 늘 예배하는 여인이었는데 바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배가 성도의 삶의 유일한 길이며, 행복의 유일한 통로라는 것을 이 수가성 여인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20절).
이에 예수님이 예배와 구원과 유대인이란 세 단어를 묶어서 말씀하시는데 이는 올바로 해석하면 죄사함과 저주에서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은 참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예배자로 바로 서야 함과 그 예배의 형식이 바로 첫제사, 첫예배인 가인과 아벨의 예배처럼 반드시 하나님이 뜻하신 곳에서 유대인처럼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드리는 예배가 생명수와 같은 은혜로 번성과 열매와 천국 소망을 이루는 은혜인 생명수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22절).
즉 하나님이 부르심을 입은 공동체는 반드시 예배를 통하여 삶의 은혜를 얻고, 참된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씀드리면 예배는 택함을 받은 성도의 가장 근본적인 믿음의 도리이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는 믿음도 가짜요, 복도 주시지 않고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배 안에 교회의 성도들의 복된 삶이 있고, 예배 안에 번영의 축복이 있고, 세상을 이길 힘이 있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2절에 앞서 21절에 사마리아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장소에서 너희가 예배드릴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장소에 대한 언급입니다.
모든 믿음의 열조들이 가는 곳마다 일정한 장소에서 단을 쌓아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고 또 출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곳에 명하신대로 성막을 지어 오직 그곳에서만 제사를 드렸고, 또 솔로몬 이후로는 예루살렘 성에서 예배를 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예배를 드릴 때는 아무 곳에서나 드리지 말고 반드시 각자의 공동체에게 택하여 주신 그 성전을 찾아 나아가 거기서 거룩한 삶과 정성껏 준비한 제물로 제사를 드린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같은 말씀입니다. 먼저 신령이란 성령의 이끄심과 뜨거운 내적인 믿음을 말하며 진정이란 하나님의 명령하신 계명 그대로, 즉 참된 진리의 가르침 그대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충만한 생명수, 즉 충만한 은혜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생명수 즉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잘 알고 또 말씀드리지만 많은 지면이 필요할 것이기에 그에 대한 고찰은 생략하겠습니다.
이제는 계명이며, 예배의 필수 요소이며 하나님의 명령인 참된 예배는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12장에는 제사, 즉 예배에 관한 아주 대표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뿐만 아니고 성경 전체에 수없이 중복된 말씀입니다.
신12:1 -(중략)-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신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12: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1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12:12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택하여 구속하신 백성들, 즉 구약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현재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먼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라고 명령하여(1절) 주신 말씀은 먼저 모든 제사와 제물은 반드시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서 드리고 또 그리로 가져가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제사, 즉 예배를 택하신 곳으로 나아가 드리라는 말씀은 성경에 여러 곳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곳이란 분명히 특정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논할 것은 성전입니다. 우리의 성전은 사마리아성도, 예루살렘성도 아닙니다. 바로 현재 우리에게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명이 선포되고, 주님이 명하신 성례를 행하며 만민이 기도하는 각각의 공동체들인 우리들의 교회(예배당, 혹은 성전)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배당이냐? 성전이냐? 논쟁을 하는데 예배당도 맞고 성전도 둘다 맞습니다.
하여튼 만약 우리가 성령의 감동이나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교회를 성도들과 세우고 그곳을 하나님의 이름과 눈과 귀와 마음이 있는 성전으로 믿고 그곳에서 산제사를 드리고, 생명수를 공급받고, 성례를 행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와 선교를 한다면 그곳이 바로 교회요, 예배당이며,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별된 장소이냐, 장사를 하거나 살림을 하거나 들이나 산처럼 보통의 장소냐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에 명하신 일이 무엇이며, 교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또 자신들이 본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곳입니까?
1) 택함을 받아 부르심을 입은 믿음의 공동체,
2) 택하여 주신 장소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별된 건물(천막)과 필요한 기물들,
3) 하나님의 명령인 참된 계명이 선포(언약과 진리)되는 말씀이 있는 곳,
4) 온전히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절대명령인 땅끝까지 선교와 전도로 복음 증거하는 곳,
5) 예수님이 명하신 성례인 세례, 성찬, 안수식 등을 행하는 곳,
6) 여호와를 경배하고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는 곳,
7) 만민이 하나님의 눈과 귀와 마음이 있는 곳에서 부르짖어하는 기도,
8)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선과 구제를 행하는 곳,
그런 모든 기능들이 포함된 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교회란 예배당이냐, 성전이냐 하는 단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시고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그런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포함된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만약 그런 기능들이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수, 예배,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 또 신령과 진정 등의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참된 교회로서의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에클레시아 운운하면서 교회를 그저 세상 건물일 뿐이고, 교회에서 거룩하게 사용되는 성물을 그저 물건일 뿐이라고 교회를 경시하는 그런 주장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시 신명기 12장 13,1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참된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신12:13-14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 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삼가라! 무엇을 삼가야 합니까? 아무 곳에서나 번제 즉 제사인 예배는 아무 곳에서나 드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직, 오로지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신앙생활을 오직 그 택하신 그곳에서만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지파에게 택하여 주신 그 곳인 장소는 어디일까요? 그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한 지파의 장소는 오늘날 각각의 무리들에게 주신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곳에서나 주일예배를 드리도록 명하신 일도, 허락하신 일도 없습니다.
앞서 제가 옛언약, 새언약을 논했던 것은 바로 지금 이 신명기의 말씀이 지금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 혹은 자녀가 된 성도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라는 것을 논하고자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저는 이 위중한 시기에 정부의 방침이나 질본의 방역수칙을 지키지 말자는 애기가 아닙니다. 그와 전혀 상관이 없는 그저 어떤 예배가 참된 예배인지 최소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개척교회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명령, 교회의 본질은 알고 있어야 우리가 지금 얼마나 극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예배의 회복을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힘쓰며 기도해야 할지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어쩔 수없이 질병으로 인한 중대한 사유가 있고, 일시적인 상황이며, 국민의 안위를 우선으로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정명령에 의하여 부득이 비대면예배를 드릴지라도 대면예배는 우리가 어찌할 수없는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이고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우리의 생명이 걸린 일이어서 교회의 사활은 물론 우리 성도의 본분이며, 비대면예배는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며, 하나님 앞에 분명한 불충이며, 죄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물(제물, 헌물)에 대해 한 말씀만 더 드리고 글을 맺고자 합니다.
신12:26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예배는 물론이고, 우리가 드리는 번제물인 주일헌금, 화목제인 감사헌금, 명하신 십일조, 그 밖의 구제와 선교 등 각각의 헌금들도 교회에 나아가 드리는 것이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냥 영상예배로, 즉 비대면 방송예배를 드리면서 통장으로 헌금을 보내는 것도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회주의가 비진리이고 비성경적인 이단이며, 무교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도 않고,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것으로 우리가 각별히 삼가야 할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글을 올리는 것은 누구를 정죄하자는 것도, 선동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대형교회들도 하나같이 회복되지 않고 있고 특별히 주일학교, 중고등부는 거의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개척교회야 논할 필요도 없이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적인 어려움이 함께 하고 있고, 전도는커녕 기도회도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이번 광화문 사건으로 모든 더 악화되어 비대변예배의 주장은 안팎으로 더 거세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지금은 온 기독교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진보니 보수니 따질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보든지 보수이든지 각자의 성향을 존중하며 하나가 되어 생명을 걸고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라 걱정, 정치 걱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요, 교회의 본질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한국 기독교를 위해, 또 저와 같은 약한 개척교회들과 성도들을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오전대면예배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일대면예배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며 의무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대면예배를 속히 회복하지 못하면 나라와 기독교 위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목사님들 대면예배 회복을 위해 댓글로 응원과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예산밝은빛교회에서 작은 종 유 지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