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비극.역사극. 원대잡극
발표시기 13세기 후반
줄거리
춘추(春秋) 시기 진(晉)나라, 양공(襄公)이 죽은 뒤 왕위에 오른 영공(靈公)은 조순(趙循)의 간언을 물리치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간언을 듣지 않자 조순은 떠나게 되고, 그의 형제 조천(趙穿)이 영공을 죽이고 성공(成公)을 왕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조순의 아들 조삭은 성공의 누이와 혼례를 치른다. 이 일로 대장군 도안고(屠岸賈)는 조순 가문에 원한을 가지게 된다. 성공이 죽은 뒤 경공이 왕위에 오르자 도안고는 조순이 영공 시해의 주범이라 하여 조순 가문 300여 명을 몰살한다. 그러나 임신 중이던 조삭의 아내는 성공의 누이였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한다. 그 대신 도안고는 조삭의 아내를 자기 집안에 감금했다가 출산하면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조삭 아내는 평소 문객이었던 정영의 도움을 받아 아들 조무를 도안고의 집에서 빼내는 데 성공한다. 아이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안 도안고는 3일 내 고아를 찾아내지 못하면 고아와 같은 또래인 모든 아이를 죽이겠다며 전국령을 내린다. 정영에게도 고아와 같은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정영은 공손저구와 의논한 뒤 자기 아들을 고아로 속여 공손 가문에 보낸다. 그러고는 도안고에게 공손 가문에서 고아를 숨기고 있다 신고한다. 결국 정영의 아들은 도안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정영은 고아를 아들처럼 기르게 된다.
목숨을 바친 정영과 공손저구의 도움으로 고아는 목숨을 건졌고, 도안고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체 고아를 수양아들로 삼기까지 한다. 정영의 도움이 없었다면 조씨 가문을 멸족시켜 주군의 원한을 풀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년이 흐른 뒤, 장성한 고아는 정영에게 모든 사실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복수를 다짐한다. 도공(悼公)이 즉위하지만 정권은 도안고가 쥐고 흔든다. 때가 되어 고아는 도안고를 죽이고 가문의 원한을 푼다. 그리고 조무라는 본래 이름도 되찾는다.
작품해설
원(元) 세종(世宗) 때의 잡극 작가 기군상이 쓴 작품 <조씨고아>는 <원복원조씨고아(寃復寃趙氏孤兒)> 혹은 <조씨고아대복수(趙氏孤兒大復讎)>라고도 한다. 이른 시기의 기록으로는 《좌전(左傳)》, 《국어(國語)》, 《사기(史記)》 등에 ‘조씨 고아의 복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사기》의 <조세가(趙世家)>에 따르면, 경공(景公) 3년(BC 597)에 조씨 가문이 멸족되는 재앙을 맞이하지만 조삭(趙朔)의 아들 조무(趙武)가 공손저구(公孫杵臼), 정영(程嬰), 한궐(韓厥) 등의 보호 아래 목숨을 부지하고 가문을 다시 세운다. 이 역사적 사건에 허구가 덧붙어 재탄생된 것이 바로 잡극 <조씨고아>다.
<조씨고아>는 <두아원(竇娥寃)>, <장생전(長生殿)>, <도화선(桃花扇)>과 더불어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송원희곡고(宋元戱曲考)》에서 왕국유(王國維)는 “비극성을 가장 잘 갖춘 작품으로 세계 어느 비극 대작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서구 비극들이 화해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경향과 달리 <조씨고아>는 비정한 복수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조씨고아>는 고전적 주제인 충성, 의리, 가족애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부당한 탄압과 폭정 그리고 불의에 저항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정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은 전통 중국의 사회심리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러한 사상은 반원복송(反元復宋), 즉 ‘원나라에 저항해 한족의 송나라를 되살리자’라는 당시의 민족적 감정이기도 했다.
원나라는 몽골족이 중국을 장악해 건설한 나라였다. 원 왕조는 대다수 중국인을 구성했던 한족(漢族)을 저열한 민족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한족이 세워놓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시문(詩文)보다 소설이나 잡극 같은 시민계급의 오락물 창작이 급성장하고 있었는데, 많은 문인이 이러한 장르를 통해 당시 억눌렸던 한족의 감정을 드러냈다. <조씨고아>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윤색해 원나라 폭정에 반대하고 쫓겨난 한족 왕조를 위해 복수하자는 사상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송원(宋元) 시기의 희문(戱文, 원 잡극 이전 희곡문학 장르) <조씨고아복원기(趙氏孤兒復寃記)>로 개편되었고, 다시 원 잡극 <조씨고아>, 명(明) 전기(傳奇) 극본 <팔의기(八義記)> 그리고 경극(京劇) <수고구고(搜孤救孤)>와 또 다른 경극 <조씨고아>로 발전했다. 경극 외에도 조극(潮劇), 진강(秦腔), 예극(豫劇), 월극(越劇) 등 수많은 지방희(地方戱)로 각색되기도 했다. 지방희란 중국 각 지방의 사투리와 음악적 특징을 바탕으로 저마다 달리 발전했던 전통 연희 양식이다. 따라서 내러티브는 동일하더라도 각 지역의 음악적 특성과 방언 때문에 지방마다 지방희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도 경극을 비롯하여 지방희로 공연되고 있으며, 소설과 연극 및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 많은 작품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다.
또한 이 이야기는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중국고아’라는 제목으로 이미 1733년 유럽에도 소개되었는데, 1755년에는 볼테르와 머피가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로 극본을 만들어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냈다. 이후 독일, 러시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극단 미추의 20주년 기념 공연 작품으로 <조씨고아>가 공연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씨고아 [趙氏孤兒, 赵氏孤儿]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중국문학, 2013. 11., 장용화, 박재우,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