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범죄예방과 사회안전이론 중 ‘깨진 유리창이론’이란게 있다.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3월에 공동 발표한 ‘깨진 유리창’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서폐기사태후 교단의 진통을 겪는 과정에 소태산대종사님의 성탑에 기도를 올리러 도반과 함께 방문한 적이있다. 늦은 시간에 총부 주차장에 도착하여 본 총부 정문 일대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웠다. 내 개인의 마음이 먼저 그렇게 을씨년스러워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굳게 닫혀진 총부 정문이 먼저 들어왔다. 총부 주차장을 지나 원불교신문사 건물을 지나갈 때 1층 건물 위쪽 외벽의 검은 곰팡이인지 때인지 모를 것이 쇠락한 느낌을 주었다. 1층 기념용품점을 지날 때 시야에 무언가 펄럭이는 것들이 시야에 들어 온다. 용품점 들어가는 현관 입구 위쪽의 페인트들이 덕지 덕지 벗겨지며 펄럭인 것이었다.
원불교를 알든 모르든 원불교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대표공간이 총부이고, 총부의 정문과 원불교신문사 건물은 총부의 이미지와 직결된다. 전국 곳곳의 24시간 편의점들을 살펴보라. 전국 어디서나 들어가는 입구부터 일관된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청결함과 편리함, 산뜻함이 그것이다. 주인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으로 배려하는 노력들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다. 만약 어느 지방 모 편의점의 입구가 문은 닫혀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건물외벽에 검은 때가 가득 묻어있고, 입구 현관 천장에 페인트가 벗겨저 너덜거린다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큰 돈을 벌지 못하며 고생하는 편의점주들일지라도 본사의 평가와 고객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록 돈이 더 들더라도 외벽을 도색하고, 천장을 새로 단장할 것이다. 페인트 칠이 벗겨진 식당은 음식도 맛이 없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교단에 크고 시급한 일들은 늘상 있다. 더 크고 중요한 일에 매몰되다보면 곳곳의 깨진 유리창이 나올 수 밖에 없고, 깨진 유리창들을 방치하다보면 더 많은 유리창들이 깨져 나갈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일화 중 깨진 유리창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차간의 화장실이야기에 나온다. 기차 화장실에 들어가신 지 한참이 지난 후 나오신 대종사님께서 하신 말씀 ‘기차칸의 화장실 변기가 너무 지저분하여 오물을 청소하다 늦었다. 그 지저분한 변기사용으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눈에 욕 먹을까봐...’
비단 이것뿐이랴. 지난 교단 진통의 와중에 한 교무님께서 총부 옆 건물에서 피습당한 일이 있었다. 공격자가 누구인지 총부에 근무하는 분들이나 출가교무님들은 상당수 알고 있다고 했다. 여러 사정으로 밖에 안퍼져 나갔으면 한다고 했다는데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깨진 유리창’이라 본다. 개개인의 사정이야 있을 수 있지만 원불교의 대표적인 공간에서 불시에 벌어진 사건은 총부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불안하게 할 것이다. 총부 근무자들이 이를 인지하고 있다면 반드시 대책을 마련하여 총부를 찾는 이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교단의 입장에서 크고 중요한 일들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크고 중요한 일들을 핑계로 원불교 총부의 ‘깨진 유리창’들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총부의 정문을 다시 열고, 원불교신문사 건물부터 다시 도색했으면 한다.
첫댓글 은혜롭습니다~^^*
원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일깨워 가는 노력을 하면 될 거 같습니다.
11월초에 시부님 종재를 잘 마치고 지난주 영모묘원에 모셔져 있는 아버님께 다녀 오면서 총부에 들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종사님 성탑에 기도라도 올리자며 남편을 이끌었습니다.
불과 1년전 가을에 방문했을때의 마음과는 다름을 알아차렸지만 애써서 총부에 대한 부정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며 정문을 나온 적이 있습니다.
계란이 바위을 치듯이 언젠가 서서히 개혁의 변화는 올것이라 믿습니다.
뚜벅뚜벅 공부도 개혁을 위한 길도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