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륵사
신륵사는 1858년 헌종의 조모인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발원에 의하여 호조판서 김병기(金炳 冀)에게 명하여 절을 크게 중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영릉의 원찰로서 의미가 약해지면 서 다시 신륵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근.현대사에 있어 신륵사의 활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으나, 1925년 열반당 14칸을 새로 짓고, 1929년 강성인 姜性仁스님이 주지 재임시 김인 주 金仁柱가 화주化主로 명부전을 중건하였다.
성종 옆에 있는 석종비문은 목은 이색이 썼다. 역사가 깊고 규모도 웅장하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 일원은 1977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82번지 신륵사 031-885-2505
신륵사 산사체험
신륵사 사찰 체험 프로그램은 기본 사찰생활 체험과 정신수련, 불교문화 답사 등 세 가지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사찰 예절이나 새벽예불, 108배 참회기도, 발우공양과 도량 청소, 울력등을 통해 스님들의 생활은 어떠하며 그 속에 깃든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익히고 배우는 것이다.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282 031-885-2505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이곳 부근엔 신륵사 국민 관광지와 영 릉, 고달사지 등 문화 유적지가 많아 학생들의 문화유적 탐방지로 적합한 곳 이다. 여주군 북내면 오학리, 오금리, 현암리, 천송리, 지내리 여주군청 문화관광과 031-887-2281 여주민속도자기조합 031-885-3937
조선 제17대 효종(재위1649∼1659)과 왕비 인선왕후 장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효종릉 역시 푸른 소나무들이 능역 주변에 울창하여 그윽함을 풍기지만 세종릉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 사방이 조용하고 호젓하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19년(광해군 11) 5월 22일 태어나 1626년(인조 4)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 간이나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그 후 풀려 나와서 1646년(인조 23)소현 세자가 변사하자 뒤를 이어 왕세자에 책봉되고 1649년(인조 27) 5월 13일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효종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널리 보급하였다. 조선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59년 5월 4일 재위 10년만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031-885-3123
여주읍에서 신륵사로 가는 길에서 여주대교 조금 못미쳐 우측고대위에 푸른숲으로 둘러싸인 고풍의 한 누각이 보이는데 이것이 영월루이다. 영월루는 원래 여주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당시 신현태(申鉉泰)군수가 파손 될 운명에 처해있는 이 누각을 현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영월루 입구에는 비석거리가 있고 그 위쪽에는 1958년에 이건된 창리 삼층석탑(보물 제91호)과 하리 삼층석탑(보물 제92호) 이 있다.
상층의 누마루 사방에는 계자각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익공의 형태나 가구수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된다. 영월루는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입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낮은 기단과 길다란 몸체, 그리고 치켜 들려진 팔작지붕의 비례가 적절히 조화되어 있다.
여주군 여주읍 상리 136-2 문화재관리사업소 031-887-3565~7
영릉(세종대왕릉).녕릉
* 세종대왕의 생애와 영릉(英陵)
태종12년(1412년)에 충녕대군에 진봉되고 스물두살 되던 태종18년(1418년) 양녕대군이 폐세자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그 해 음력 8월10일 (양력 9월18일) 22세의 나이에 조선조 제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이 맏형인 양녕대군을 두고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여러 왕자중에서 가장 총민하고 현명하였기 때문이었으며, 대왕은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언어·문화·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 녕릉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이런 쌍릉 형식은 조선왕릉 중 최초의 형태이고, 경종의 무덤인 의릉 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왕조 왕의 무덤배치에 하나의 전환기가 된 형태로 무덤에는 병석을 세 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고, 돌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돌에 문자를 새겼다.즉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석을 세우지 않는 전통이 선 릉 때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지만, 녕릉에서 다시 사라졌다. 무덤 앞에는 상석·문인석·망주석 등의 석물이 있으며,무 덤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이 있다.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세종대왕 유적관리소 031-885-3123~4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 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 (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 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생가 앞에 위치한 명성황후 기념관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 을 정립하고자 건립되었으며,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 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 사상과 민족 자주정 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 져 있어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 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우측 산쪽 150m 지점에 그분의 묘가 있다.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031-887-3576
명성황후 기념관
조선 제 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개화기에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시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인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번지 명성황후 기념관 031-887-3576
여주 참숯마을
여주 참숯마을은 참숯과 황토가 뿜어내는 천연 원적외선으로 심신을 풀어주는 웰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달아오른 황토가 원적외선을 다량 방출하여 멸균효과를 해주는 10기의 숯가마 시설과 더불어 주변의 아늑한 경관에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여주군 강천면 이호리 65-6 여주 참숯마을 031-886-1119
해여림식물원
예로부터 기름진 쌀과 양질의 도자기 생산지로 그 위상을 떨쳐 왔던 경기도 여주는 볼거리, 먹거리 그득한 선택받은 땅이라 불리었다.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 곁에 위치한 고즈넉한 신륵사, 조선의 국모‘명성황후’의 생가, 조선시대 역사 상 가장 지혜롭고 후덕한 리더십을 갖춘 왕 중 한 분으로 칭송받는‘세종대왕’의 능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산 30-1 031-882-1700
고달사지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었으니 고달사라 불렀 다는 전설이다. 고달사터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대좌(보물 제 8호),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및 이수(보물 제6호),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원종대사 혜진탑(보물 제7호)이 있다.
창건 당시의 사찰은 실로 광대하여 지금의 상교리 일대가 전부 사역으로 추정되며 절 부근에 큰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 광활한 사역에는 유물만 남아 있다. 현재 절터는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가 조직적으로 진행중이다.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 여주군청 문화관광과 전화 031-887-2068~9 문화재관리사업소 031-887-3567
대성사
원적(圓寂)이란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꺼 버리고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지는 누구나 염원할 수 있는 궁극의 목표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주 땅 남한강변 이포에는 원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언제 어떤 이유로 붙여진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불교적인 색채가 묻어나온다.
여주군 금사면 외평리 66 031-882-98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