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다가
버둥거렸다가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달걀귀신
문성해
우리 집 화장실에는 달걀귀신이 산다
변기 속에 들어 있다가
스르르 올라와서
아빠가 들어오면 신문을 읽어 주고
엄마가 들어오면 책을 읽어 주고
언니가 들어오면 걸그룹 노래를 들려준다
내가 들어가면 만화책도 읽어 준다
달걀귀신은 밤새 외로웠다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우리를 오래오래 붙잡아 둔다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나오지 않는다
아빠, 빨리 좀 나와
똥 쌀 것 같단 말야!
『달걀귀신』 보림 / 제5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수상작 / 202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