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온 게 무슨 죄야
한국일보 수정: 2015.10.02. 14:33 등록: 2015.10.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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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은 X이 졸업하면 건글(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안 나온 척한다. 너부터 인터넷 봐라 지잡대 X아"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 K교수의 발언이다. 학생들에게 되도 않는 소리를 했다. 자기 제자에게 ‘지잡대놈’이라고 막말하는 세태다. 악플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학 교단에 있었다. 지난 24일, 충북 충주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의 K학장은 스마트폰으로 교내 익명 대화방 ‘프리톡’에 이와 같은 글을 올렸다. 왜?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발단은 대학구조개혁 평가다. 지난 8월 31일,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일반대 32곳·전문대 34곳이 하위등급(D·E 등급)을 받았다. 개중에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가 있었다. 하위등급을 받은 대학은 재정지원 제한, 신·편입생 학자금 대출 제한, 컨설팅을 통한 학과 통폐합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장 가장 큰 불이익을 받는 것은 학생들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비판하자, K학장은 "이럴 시간에 공부해라. (D등급 받은) 원인을 모르느냐? 교육부다"라며 서두와 같은 막말을 한 것. 논란이 되자 K학장은 다음날 강의 도중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과는 두고두고 하셔야겠다. 하위 등급(D·E 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앞으로 더 힘든 현실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 마케팅이 이미 판친다.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라고 편입학원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대체 학생은 무슨 잘못인가. 대학 ‘구조’를 잘못 만든 구성원으로 책임져야 할 주체는 교육부고 대학 본부다. 운영, 관리에 책임이 있는 사학재단들도 두말 할 것 없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의 취지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때, 대학이 어영부영하다 다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size-down'하자는 것이다. 취지는 십분 이해하나,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피해보고 있는 것이 학생들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 대학이 부실대학일 줄 알고 점쳐서 대학 간 것도 아닌데.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취업 시장에서 불이익을 겪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전공이 사라질 불안에 놓여있다. 교육부 컨설팅으로 학과 통폐합을 진행해야 부실대학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학과 통폐합엔 이미 선례도 있다. 한려대는 2010년 사회복지학과와 토목환경공학과를 묶어 환경토목·복지 전공을 만들었다. 배재대는 2014년 공학 계열인 화장품학과와 응용화학과를 통합해서 의약 계열인 제약공학과를 만들었다. 건양대는 2012년 건축학과(공학)와 인테리어학과(예체능)를 없애고, 새로 의료건축디자인공학과를 만들었다. 팔다리 다른 데서 떼와서 몸통에 붙이는 요상한 통폐합이다. 인문학, 예체능 계열 학과들은 특히 폐과의 대상이 되어왔다. 대학이 미래에 길러내고 싶은 인재가 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막무가내 구조개혁이다.
거리로 나온 전통의상학과 학생들 "통폐합 백지화를 요구합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구조 만든 쪽은 책임 안 지고, 학생들만 불쌍하다. 통폐합도 통폐합인데,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에 대한 제한, 축소 방침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국가장학금의 취지는 배울 권리를 보장하고 과도한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대학 목을 옥죄려는 의도인데, 대학생 목을 옥죄는 방향이 되면 안 되지 않나.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에 관한 부분으로 대학 목을 옥죄려면 국가가 부담하지 않는 만큼 대학이 부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청주대는 하위그룹에 분류되어 생긴 불이익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땜빵’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 제한과 관련해 1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대학 적립금을 붓겠다고 했다. 적립금은 학생들 등록금으로 쌓는다.
대학 구조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대학 구조를 만든 사람들을 평가해야 하고, 구조를 만든 사람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어불성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지난해 새누리당이 발의한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을 두고 ‘먹튀 논란’ 얘기가 나온다. 법안 내용 중엔 사립대가 법인을 해산할 경우 국고로 귀속되어야 할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가 회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책임을 묻는 법이 아니라 책임 덜어주는 법이다. 이상한 일이다. 사립대학재단의 비리가 논란이 된 것이 한 두 가지 사례가 아닌 걸 많이들 알 것이다.
일각에선 대학구조개혁평가와 함께 재단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립대학본부는 사립재단과 연결되어 있고, 인사권과 재정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구조개혁에서 피해를 떠안는 것이 학생들이어선 안 된다. 구조를 만든 사람들의 책임을 물어야지, 안 그래도 취업난에 학자금 대출에 힘들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대학생들한테 왜 멍에를 지우나. ‘지잡대놈’ 운운한 막말 교수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운 대학을, 부실한 대학을 만든 것은 학생들이 아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