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의 모계(母系)중에 백제혈통(百濟血統)이 있다고 공개를 한바가 있다. 2001년 12월 125대 쓰구 아키히토(繼明仁명인) 일본천황이 68세 생일날 기자회견(記者會見)에서 칸무(桓武환무) 천황(天皇)의 생모(生母)가 백제무령왕(百濟武寧王)의 자손(子孫)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것에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일본천황이 백제 후손이라는 설이 전해지긴 했지만 천황이 직접 사실을 고백하고 밝혀 역사적 사실로 확인한 셈이다.
칸무(桓武 환무) 천황(天皇)은 궁궐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백제(百濟) 조상신(祖上神)을 모실정도로 어머니 혈통(血統)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속일본기에 의하면 50대 칸무천황의 어머니인 고야신립((高野新笠)이 무령왕(武寧王)의 아들 순타태자(淳陀太子)의 후손(後孫) 화을계(和乙繼)의 딸 화신립(和新立)이 칸무(桓武)을 낳아 천황(제50대)으로 이어진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무령왕은 개로왕(蓋鹵王)의 아우인 곤지(琨支) 일행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일본의 가까라시마(各羅嶋) 섬에서 태어나 백제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무령왕이 동성왕의 뒤를 잇기까지 근 40년 세월의 흔적은 역사서가 아닌 일본 오사카 아스카베 신사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무령왕은 가까라시마(各羅嶋) 섬에서 태어난 개로왕(蓋鹵王)의 아들이 아닐까? 한 중 일 삼국 사서가 차이가 많이 나서, 합리적인 유추로 보면 무령왕은 개로왕의 일본으로 곤지와 함께 간 애첩이 낳은 아들이 아닐까? 그래야 곤지 일행이 일본으로 가는 도중 일본의 가까라시마(各羅嶋) 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입증이 된다. 그래야 무령왕은 40세에 25대 백제 왕이 된 것도 시간 적으로 맞아 들어 갈 것 같다. 백제인들은 5세기 후반 일본에는 다수의 백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토목, 관개 등 백제의 선진 기술을 전해주기 위해 이주해 간 사람들로 곤지 일행도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곤지가 461년 일본 열도에 건너가 적어도 15년을 가와치 아스카 일대를 개척하고 무령왕도 이 일대에서 성장했을 가능성 높다고 본다.” 무령왕은 40세에 백제 25대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일본 성씨 158개 전부가 다 백제계라고 한다. 백제 무령왕(武寧王)이 양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여러 차례 고구려를 격파하여 다시 강국이 되었다고 누파구려(累破句麗) 갱위강국(更爲强國)”고 선언했다. 갱위강국(更爲强國) 선언은 당시 국제관계에서 무령왕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