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대부분 친구들은
나보다 한살이 많거나 때로는 두살이 많은 친구들도
있었다. 학생 수가 적어서 1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오로지 한 반 밖에 없기에 대부분 친구끼리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고, 옆 동네에 놀러 가는 일도 많았었다.
학교가 끝나면 같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놀던 때가 그리워진다.
그때 우린 많이 어렸었는데 이런 노래도 부르곤 했다.
마치 어른들이 불러야 할 노래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소꿉장난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고 흙장난도 하고
때로는 나무에 올라가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처럼
구슬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보고 듣는 건 적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며 재미있게 놀았고,
고등학교까지 한 학교를 같이 나오면서 친분이 더
두터워졌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 만나도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나싶다.
고등학교 이후 각자 취업을 나가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잊은 듯 지내온 시간이 있었지만, 그렇게
사회생활을 한 지 몇 년이 되지않아 갑자기 한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친구 중에는 처음으로
결혼하는 친구였기에 많이 축하해주려고 친구들과
함께 예식장으로 향했다.
따뜻한 계절에 결혼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바람도
많이 불어서 유난히 춥게 느껴지던 이른 봄에 친구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식 하는 장면을 처음
본다는 자체도 좋았지만, 어떻게 옷을 입고 가야 하나
많이 고민이 되었었다. 그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예쁘게
해서 나오라고 했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는지도
모른다.
남자 친구 한 명 없는 나에게 결혼식에 오게 되면 좋은
인연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바람이
불어 휘날릴 수 있는 머리를 풀고 투피스 정장에
부츠를 신고 겉에는 반코트를 입고 나갔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드레스가 친구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행복해 보여서 잘 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 장소로 고깃집을 갔더니
신부 측의 친구들은 스물 명 정도였는데, 신랑 측의
지인들이 50명 가까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피로연 장소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술도
마시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훤칠한 키에 유난히도 피부가 하얗고 잘생긴 사람이
피로연의 사회를 보며 신랑, 신부에게 게임을 시키고
술을 마시게 하며 때로는 조금 지나치다 싶은 걸 시킬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을 했었다.
돌아가며 지인들에게 술도 한 잔씩 따라주는데 나는
될 수 있으면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친구가
따라주는 술 한 잔은 마시며 잘 살고 행복해라고
한마디를 해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행복해 보이는 친구가 한편 부럽기도 하고, 친구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 순간만큼은
슬펐다고나 할까...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마음에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피로연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위해서 공항으로 향하는
친구를 배웅하면서 친구는 마지막으로 뒤풀이로
나이트에 가니까 꼭 함께 가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친구를 떠나보내고 다들 뒤풀이
가자는 말들을 하는데, 대부분 친구들은 각자 갈 길을
가고 신부 측의 친구들 몇 명과 신랑 측의 친구들
몇 명만 적은 인원으로 나이트에 가게 되었다.
피로연에서 70명에 가까운 많은 인원이 있던 것과는
다르게 적은 인원이 가게 되니까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같이 술 한 잔을 하며 서로 궁금한 것도 묻고 답해주며
음악이 흘러나오면 같이 춤도 추었다. 그러다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게 되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에게 같이
블루스를 추자고 다가왔다. 순간 당황은 되었지만, 그
남자는 피로연의 사회를 본 남자로 같이 갔던 친구
중에서 나를 선택했다는 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술 한 잔을 더 하면서 친구가 되고 싶다고 얘길
하기에 편안하게 친구가 되기로 했다.
뒤풀이가 끝나고 헤어질 때도 신랑 측의 친구들은
끝까지 신부 측 친구들을 잘 챙겨 주었다. 새벽이라
버스도 없는데 집까지 일일이 다 바래다주고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났다.
며칠이 지난 후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결혼식의
사회를 본 친구가 되고 싶다던 사람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다. 기쁜 나머지 편지를 뜯어보니 예쁘게
쓴 글자들과는 다르게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기분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편지의 내용을 보니 원래 그 남자는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여자친구가 성격도 까칠하고
늘 못 되게 굴면서 헤어지겠다고 하더니 친구 결혼식에
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고 하니까 질투심
때문인지 앞으로 잘하겠다며, 결혼식에 만난 여자는
친구 할 수 없다며 막무가내로 헤어지라고 했단다.
친구도 안되고 절대 동생도 될수 없다며 다그치는 그
여자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이별 통보를 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었다.
결혼식에서 처음 만나 호감을 느끼고 먼저 사귀자고
했던 남자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사이여서 정말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받으면서 무작정 이별 통보를
하는 게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아무 일 없는 듯
잊어버리면 된다 생각했기에 그저 답장은 해주는 게
예의라는 생각에 답장을 쓰고 있는데 한번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어쨌든 한번 만난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질 수 없겠지만, 만나서 답장을 전해주기로 했다.
며칠 후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어느 대학교 앞에서
약속이 되었었고 버스를 타고 그곳을 향해 가는데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편지만 주고 돌아서려는데
나를 붙잡는 것이었다.
그 남자의 엄마가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사주라며
돈을 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난 정중하게 거절하고
편지만 전해주고 곧바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어질 인연도 아닌데 어떠한 추억조차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때까지 보수적인 아버지 때문에
남자친구 한 명 사귀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 결혼한
친구가 남자 친구를 만들 기회를 줬었는데, 그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3월에 결혼했던 친구가 그해 여름, 딸을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너무나 뜻밖의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빨리 결혼을 해야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한여름에 친구가 아기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집에 온 날, 그
친구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무더운 날씨에 마음놓고 찬물에
샤워도 할 수 없는 그 친구를 위해서 무엇이 좋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일 친구 생각에 아기를 낳으면
당연히 미역국은 늘 먹을 것이고 산모에게 좋은
영양가 있는 것을 고민하다 보니 콩국수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일은 회사일 때문에 갈 수 없어 돌아오는 휴일에
친구에게 갈 생각에 아침 일찍부터 콩을 삶고 갈아서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넣어 두고, 집 앞
담벼락 아래서 자라는 오이 하나를 따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냄비를 들고 그렇게 점심때가 되기 전에
미리 친구 집에 갔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친구 집
주위까지는 가봤지만, 실제 그 친구가 사는 집안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일 나가시고 안 계셨고, 친구 혼자서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다른 친구도 아기를
낳은 친구 집으로 왔기에 셋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먼저 내가 국수를 삶고 한 친구는 오이를 씻고 썰기
시작하는데 칼질을 못해서 마저 내가 썰어서 두고
삶은 국수 위에 채 썬 오이를 올리고 콩국물을 부어서
아기 낳은 친구에게 주니 너무나 맛있다며 조금도
남김없이 다 먹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친구는 먹는 둥 마는 둥하면서 아기만 바라봤다.
그리고 서로 대화가 오고 가면서 빨리 결혼한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구도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가니 배는 불러오고 회사 유니폼이
맞지 않게 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스커트의
지퍼도 다 올려지지 않았다면서 반쯤 올리고 다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결혼식 때 찍은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피로연 때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때
사회 보던 신랑 측 친구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고 집들이할 때 신랑 측 친구들이 왔을 때 당연히
그날의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사회를 보았던 친구에게 많은 질타가 오갔다고 한다. 순진한 여자를 가지고 놀았다며 상처를 준 것 때문에
신랑 측 친구들에게도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난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웃어넘겼다.
아직은 아이 같은 친구가 아기를 안아서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 조금 해보고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나보다 체격도 작은 아직도 아이 같은 친구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그때는 신비롭게 느껴졌었다.
그 후로는 멀리 있어서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친구를 더더욱 만날 수가 없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생활을 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친구
생각이 간절해 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살아가고 있음이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
갈수록 더위에 지쳐 머리까지 아픈 요즘 입맛이 없어서
콩국수를 먹고나니 새삼 그때 친구가 맛있게 콩국수를
먹던 생각이 났다. 그 친구를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추억을 얘기하며 같이 또 해먹고 싶다.
©️비꽃(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