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근간에 올챙이 송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단조로운 가사에 단조로운 곡조임에도 불구하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마 쉬워서 일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복잡하고 힘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동요를 통해서라도 잠시라도 그러한 것에서 떠나 위로 받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올챙이는 올챙이로서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올챙이는 개구리의 시간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올챙이가 최종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듯이 우리들도 건조한 땅에서만 살아 시들한 삶을, 하나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강가를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치고 답답한 영혼들이 동요하나 부르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얻고 누리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 모든 것의 시작은 성소로부터입니다.(겔47:12)
가인의 삶의 시작은 죄였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져 있으니까’ 집에서 나갈 때나, 들어올 때에는 항상 죄를 밟고 나가야 했고, 죄를 밟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것이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 가운데 나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성소로부터 시작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이사야, 요한이 본 환상의 세계였고, 실제적으로 예수님으로 시작되는 세계였습니다. 그 세계는 한 마디로 온갖 좋은 것들의 세계였습니다.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영광의 세계이었습니다. 온갖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예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3. 복된 사람들의 삶의 특징도 한결같은 성소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의 특징은 쉐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읽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힘쓰는 것입니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시작하고 말씀으로 마치라는 것입니다. 넘치는 은혜와 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물가에 심겨져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즉시, 바로 가서 라는 단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교회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