臥(누울 와) 薪(섶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복수를 하기 위해 온갖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다.
월(越)나라는 오나라와 남쪽으로 접경하고 있는 변방 나라로서 지금의 절강성(浙江省)이 이에 해당한다. 지금의 절강성이라고 하면 중국 본토에서도 손꼽을 만한 요지의 하나로 헤아려지겠지만, 주실천하(周室天下) 당시로 말하면 '천하'의 변토(邊土)로 간주되고 있었다.
오나라만 하더라도 자기들과 접경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중원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또 근자에 이르러서는 오자서나 손무 같은 천하의 준걸들을 얻어 지금까지 강성을 자랑하던 초나라를 무찌르고, 또한 북방문화 중심국의 하나인 제나라와 통합함으로써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따라서 월나라가 오나라, 초나라와 같이 천하의 웅국(雄國)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려면 자기들과 북쪽으로 접경해 있는 오나라, 초나라를 쳐서 이기는 길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월왕 윤상(允商)이 범려, 문종(文鍾) 같은 현신들을 모아 천하에 웅비할 날을 기다렸다.
그는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아들 구천(勾踐)이 윤상의 뜻을 물려받고 왕위에 올랐다.
"윤상의 아들은 구천만이 아니며 이 왕위계승도 순조롭게 행해진 것은 아니다. 지금 월은 동요하고 있다. 공격할 호기다."
오나라 합려는 그렇게 판단하여 군대를 동원했다.
이때 오·월의 전장은 추리라는 곳이었다. 태호(太湖)와 항주만의 중간으로 현재의 절강성 가흥현 부근이라고 전해진다.
양군은 대치하였고 승패는 의외로 월군의 대승리로 끝났다.
월군은 눈사태처럼 오의 본진을 습격하여 왔다. 월의 용장 영고부는 창을 바짝 잡아들고 오왕 합려에게 달려들었다. 간발의 차로 오왕은 몸을 획 돌려 피했으나 영고부의 창은 오왕의 엄지발가락에 꽂혔다.
오왕은 순간적으로 신발을 벗어 던지고 비틀거리면서 도망쳤다.
그러나 자기 영지 안의 형이라는 곳까지 다다랐을 때의 발가락의 상처가 원인이 되어 오왕 합려는 죽고 말았다.
합려는 아들 부차(夫差)를 머리맡에 불러,
"부차야, 너는 월왕 구천이 너의 아비를 죽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하고는 숨이 끊어졌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입술을 깨물고 부차는 비통함을 참으며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다.
새로이 즉위한 부차는 궁전의 정원에 가신을 세워 놓고 자신이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벌써 잊었느냐?" 하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하였다.
새 오나라 왕 부차는 궁전에 출입할 때마다 월나라군에 쫓기었던 때의 치욕을 상기하며,
"아니오.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사기>나 <춘추좌전>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십팔사략>에는 부차가 아버지의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부드러운 침대에서 자지 않고 딱딱한 장작 위에서 잤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전 - 사기(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