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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나침반 23 |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싸구려 삶’ 따위 얻고 싶지 않아!!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성경 창세기 3장 19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모든 생명은 본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을 힘들여 경작해서 양식을 얻어,
勞動善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원래제자리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
인간의 마음과 몸을 정화시키고, 건강하게 사는 자연의 은혜입니다.
흙은 우리의 고향이며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포근하고 정겨운 근원입니다.
생계를 위한 일을 넘어 주말 레저와 농사일로 즐기는 ‘자연인’의 삶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기구원의 Healing입니다.
자유의지의 믿음을 언제나 자연에 의지하고 그 너머에서 찾습니다.
이렇게 사는 방법은 조금은 힘들고 복잡하지만 그래야 재미나는 일들이 예상 밖으로 생겨납니다.
삶의 재미는 자신을 자연에 투영하여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는 기쁨입니다.
삶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자연의 거울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지요.
그래 나는 언제라도 자연에 뒹굴 수 있는 잡동사니 도구를 한 짐씩 늘 지고 다니는
미련한 풍옹(風翁)일 뿐입니다.
세계는 지금 ASIA로 ASIA로!!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세상에서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GDP는 2만$를 넘어 살만해졌습니다.
가난하지만 물질적 풍요가 행복이 아닌 국가 ‘부탄’ 그리고 ‘라다크’···
그 나라국민의 GDP는 2,000$에 불과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행복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주관적인 것입니다.
지구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많습니다.
세계는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제러미 리프킨’의 이념과 철학이 담긴 ‘엔트로피(Entropy)’에 의한 지구멸망 경고 이후,
연달아 발표된 ‘공감의 시대’ ‘소유의 종말’ ‘EUROPEAN 드림’ ‘노동의 종말’등이 세계의 지성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자동차 문화보다는 도보문화를, 知覺없는 문명을 省察하며 자연과 흙을 가까이 하는
牧歌的生活이 다행이도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우친 西歐人들 중에는 ‘ASIA'로 ‘ASIAN’에 열광하며
자연의 삶을 배우려는 계층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계소식입니다.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챙겨봅니다.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의 길이 있겠지만, 개개인의 삶과 직결된 ‘삶의 方式’이 그 당사자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근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개인적인 ‘人生航路’는 모호한 채로 두고
타인과 사회와 국가의 탓으로만 돌립니다.
더 可觀인 것은 우리나라의 신문, 잡지, TV에 실리는 논객과 정치인이 왜 그리도 많은지 놀랐습니다.
국민들은 제 갈 길에 餘念이 없는데도, 그들이 못살겠다고 외쳐대며 선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자기네들끼리 만의 이득과 기득권을 얻기 위해 국민들을 선동해 서로 적대시하게 만드는 패거리로
갈라놓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생계나 삶의 질 향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네들만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의 ‘엔트로피’ 위협확산에 더하여
또 다른 조작된 인간의 ‘엔트로피’ 독소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恣行하는 쓸모없는 행사에 소비되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弊害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뿐 입니다.
IT시대를 넘어 ‘엔트로피’ 공포의 시대 어찌할 것인가?
‘엔트로피’를 간략하게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요지만을 정리해 봅니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화합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이며, 우주의 에너지는 늘 일정하지만 그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며
한번 바뀐 에너지는 일방적이어서 다시는 원상태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며
그것은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질서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만 변합니다.
나무 조각이나 석탄, 기름을 태웠을 때, 열이 발생하며
연기와 재와 탄산가스, 아황산가스 등 화학 반응을 일으켜 변합니다.
그 변해버린 열과 연기, 가스와 재는 지구상에 영원히 ‘엔트로피’ 공해물질로 남고,
원상태의 나무, 석탄, 기름으로는 절대로 환원이 될 수 없는 우주의 자연법칙입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개념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때처럼
‘엔트로피’ 법칙은 현재의 세계관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엔트로피’ 패러다임은 세계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규명되고 있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을 현존하는 세계관에 덧붙여 이식시키려면 자연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의 적립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람중심으로 보던 세상을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관을 새롭게 배우고 실행하여야 합니다.
정치가는 이것의 중요성을 에너지와 ‘엔트로피’ 문제부터 - 비무장 문제까지의 모든 문제를 놓고
논하게 될 것입니다.
신학자는 ‘엔트로피’ 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성경 해석을 할 것이고,
기술자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생긴 과학을 우주법칙에 융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학자는 고전 경제이론을 보다 자연에 친근할 수 있는 구조에 맞게 수정할 것이고,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하여 인간 본질을 재조명하게 될 것입니다.
열역학 법칙은 모든 물리적 현상에 적용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화학자 ‘소디’는 열역학 법칙이 모든 정치체제의 흥망성쇠,
국가의 자유나 속박, 산업의 움직임, 가난이나 부의 근본, 그리고 모든 종족의 행복까지도
관장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생물들이 결국은 죽게 되는
물리적인 세계에 적용됩니다.
정신의 세계란 경계나 한정이 없는 비물질적 무한대의 세계입니다.
내면적인 세계를 무한한 全體라고 본다면, 물리적 세계는 그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을 관장하지만,
또한 이를 인식하는 인간의 영적인 힘에 의해서 전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문명이 물리적 실체를 조직화하는 방법과 물질에 부여하는 중요성의 정도는
정신의지 계몽의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우주적 세계관 일수록 인간의 욕망은 덜해 갑니다.
문명이 물리적 세계에 덜 부착되어 있을수록 인간은 물질의 한계를 초월하고
내면세계의 진수를 누리게 됩니다.
열역학 법칙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해 나가느냐가 바로 인간의 행복이 번영할 것인가
소멸될 것인가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모든 정신적 발전이 물리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엔트로피’ 법칙의 완전한 이해와
그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을 학습하며)
문화의 이름으로 생태계와 삶을 망친다
인류의 문명사는 사람들 사이의 ‘공감’을 통해 발전해왔고 그것이 역사를 바꾸어 왔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공감적 존재 즉, ‘호모 엠파쿠스’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공감’과 ‘엔트로피’의 역설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시기로서
우리는 이를 극복 못하고 좌절할 것인가 또는 다른 공감의 지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공감’은 좋은 측면과 해로운 면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본능적 ‘공감’ 의식에 의해서 서로 다투어 발전해온 문명이 최대의 상승효과로
‘엔트로피’ 값이 인류에게 위협 수준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서로 다투어 개발을 최대의 善으로 여기고 경쟁 하고 있습니다.
개발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고 巨大 도시를 형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게 발생하는 물리적 독해인 ‘엔트로피’와
인간의 일방적인 욕구와 맞물려 문화라는 이름으로 위장되어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 불행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을 버리고 도시를 걷는 군상의 말로입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지역 문화축제
한 예를 들자면 화천군에서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화천 강 어름 판 위에서 산천어 축제를 합니다.
주말에는 1만 5천~2만 명이 발 디딜 틈도 비좁은 어름 판에서 법석을 떨며
손가락 크기의 빙어 몇 마리를 건져 올려,
파르르 떠는 고기를 어린자녀와 부모가 날것으로 씹어 먹는 장면은 영화 몬도가네를 무색하게 하는
야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월 한 달 동안에 전국에서 15만명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모여든 많은 차량의 에너지 소모와 공해...
그리고 먹고, 여행하는 경비는 얼마나 소비되는 것인지를 추산해보았습니다.
그 행사를 통해 얻어지는 문화적인 가치와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소비하는 경비와
에너지 소모에 대한 ‘엔트로피’ 공해를 생각해 봅니다.
평가는 아래의 통계수치를 보고 각자가 판단하기 바랍니다.
이런 일은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인간만이 끊임없이 하는 작태입니다.
이와 유사한 크고 작은 사례는 우리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작은 산골 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사용된 차량연료가 무려 2,812 드럼이나 됩니다.
산천어 몇 마리를 산채로 먹기 위해 이 아름다운 강산에 죽음의 독 ‘엔트로피’를 뿌려대고 다니지만,
사회지도층이나 언론 할 것 없이 이것을 자연생태를 사랑하는 축제문화라며 대서특필 합니다.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할 수 없지요.
1. 차량대수=37,500대(150,000명/4인 가족 기준)
2. 소비연료량=562,500리터(37,500대x15리터, 휘발유+경유/2)
3. 연료비용=1,012,500,000원(562,500리터x1,800원/1리터)
(10억1천2백5십 만원)
산출근거: 서울~화천=150km/1리터 주행거리10km
연료소요량=150km/10리터=15리터
연료비=휘발유 1리터=1,900원, 경유1리터=1,700원, 평균가=1,800원
소요연료를 Dram 단위로 환산하면 562,500리터/200리터=2,812Dram
4. 한 가구당 소요경비
차량연료비=15리터x1,800원/리터=27,000원
식대비 4인x6,000원x3식=72,000원
간식 및 잡비=20,000원(4인x5,000원/1인당)
합계=27,000+72,000+20,000원=119,000원
숙박은 하지 않는 기준으로 산출함.
5. 총 경비 내역
차량 연료 대=1,012,500,000원(10억1천2백50만원)
총 참가자 경비=4,462,500,000원(37,500가구x119,000원/가구당)
(44억6천2백50만원)
차량 연료소모=2,812Dram
6. 화천군 주최측의 경비는 별도 산출하지 않았음.
주한 덴마크 대사관의 전기절약 녹색운동
여러분은 새로 출시된 삼성 스마트폰이나 LG TV를 구입하자마자 버릴 것인가?
모든 사람이 주저 없이 대답할 것 입니다. 당연히 버리기 위해 물건을 돈을 주고 사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전기 사용에서만큼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을 켜두거나 창문을 열어둔 채로 에어컨을 가동하는 등의 잘못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기의 양은 상당합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반 이상도 절약할 수 있으며,
매년 3조1,000억 원에 상당하는 1년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결론은 지난 2년간 주한 덴마크 대사관의 ‘Green Embassy Initiative
(녹색 대사관 만들기 또는 녹색 대사관 실천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 2년 만에 대사관은 한 해 전기 사용량을 57% 줄였습니다.
계획이 시작되기 1년 전인 2010년 대사관은 44,000㎾h보다 많은 양의 전기를 소모했으나,
지난 12개월간 대사관의 전기 소비량은 약 19,000㎾h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년간 대사관 직원이 11명에서 18명으로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직원 1인당 전기 소비량은 1,000㎾h를 살짝 웃돌며 74% 감축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이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는다면 먼저 덴마크 사람들의 에너지 인식형 행동을 들고 싶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부분 검소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전기 절약 지침을 따르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는 지난 40년 동안 덴마크의 경제가 에너지 소비와 분리되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2년 전, 주한 덴마크 대사관이 한국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소비했을 당시,
우리는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지속 가능한 행동이 정치적인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생활의 작은 변화와 의식의 개선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녹색 대사관 계획의 핵심으로 행동지침을 만들었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은 작은 행동의 변화였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신과 당신 가족도 이를 실천하여 돈을 절약하고 환경을 위해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방의 불을 끄고, 전구의 수를 반으로 줄이고(그래도 충분히 밝다),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끄고, 에너지 절약 멀티탭을 사용하며,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꼭 필요할 때만 에어컨을 사용하고,
에너지 절약 표시 제품을 이용하는 습관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큰 어려움 없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 입니다.
대사관이 녹색 대사관 계획을 통해 이뤄낸 결과를 한국 가정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전체 한국 가정은 2011년 61,564GWh의 전기를 소비했습니다.
57%의 감소는 연간 가정 소비량을 26,476GWh로 줄일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소비자들이 현재 전기 사용료로 지불하는 가격에서 3조 1,000억원을 절약할 것이고,
전체 한국 전기 소비량이 7.7% 감소될 것이며,
국민 1,500만 명의 연간 배출량과 맞먹는 16.4메가톤 가량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 개인이 습관을 바꿈으로써 한국이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큰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녹색 대사관 계획의 첫 두 돌을 기념합니다.
전기 소비량 감소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준 결과와 한국의 큰 잠재력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노력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출처: 피터 한슨 주한 덴마크 대사)
천주교 환경 연대의 지구 살리기 운동을 아십니까?
한국은 ‘세계 석유 수입’ 3위.
1인당 석유 소비량 6위.
환경오염 배출 밀도 선진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에 비해 10배 수준.
세계경제포럼 평가 환경 지속성 지수 142개국 중 136위.
단위면적(인구 개인당) 에너지ㆍ자원 소모, 환경오염 배출 세계 최고 수준......
다름 아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대-한-민-국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인구 60억 명이 살아가는 지구는 이미 생태계 부양 인구 수준을 넘어섰고,
이제 우리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 내용은 ‘하느님, 지구와 같은 별을 천오백 개만 더 만들어 주세요’ 입니다.
1,500개의 지구와 같은 별이 있다면, 인류는 4,000만 명 씩 이주해 다시 개발을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이루어질리 만무하지만···
우리 삶이 변화되어야 하고, 특히 에너지에 대한 관점과 태도의 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바로 ‘대안에너지(alternative energy resources)
’<대안에너지는 종래의 화석연료의 매장량 한계와 지구환경오염의 초래로 인해,
이를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를 의미 합니다>
용어상으로 대안에너지, 대체에너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가 혼용되고 있으나,
재생에너지의 경우 넓은 의미에서는 대체에너지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체에너지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이해됩니다.
즉, 대체에너지는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로,
재생에너지를 포함해 연료전지·석탄액화가스·수소에너지·미활용에너지·핵융합에너지·열병합 에너지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개념입니다. 나라에 따라 대체에너지에 대한 정의가 약간씩 다릅니다.
특히 앞서 살펴보았듯이, 단위 면적과 국민1인당 에너지와 자원소모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대안에너지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대안에너지를 찾아 천주교 환경연대에서는 이 같은 대안에너지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지난 7월 운영위원과 집행위원들이 현재 지역에서 새로운 대안에너지를 실천하고 있는 충남 홍성 풀무고등학교와 문당리 친환경농업교육관과 그 일대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충남 홍성지역은 ‘함석헌’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는 기독교 선각자들이 노작(勞作) 교육을 중심으로 1956년 창립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뜻있는 사업들을 함께 전개하고 있습니다.
학교 창립 당시 ‘교회는 지역사회와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지고, 1970년대에는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유기농운동을 지금까지 전개하고 있고, 1998년부터는 대체에너지 부분까지
그 관심과 대안적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풀무고등학교의 경우 스위스 기술자의 도움으로 지난 1998년 풍력시설(필란드 개발 풍력발전기 600W수준)과 1999년 태양광시설(12W)을 설치 운영하고 있었고, 문당리 지역 내 농가에서는 바이오가스 (정확한 명칭은 바이오 매스. 이는 동 식물 등 생물체로부터 생산, 배출되는 유기물에서 얻는 에너지임) 시설을 설치했습니다.
위 시설과, 마을 찜질방에는 풍력발전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풍력과 태양광에너지의 경우, 에너지 관리공단에서 올해부터 500가구를 대상으로 70:30(자부담)의 비율로 2만 가구를 목적으로 시설에 대한 지원을 실시하고 있고, 이 지역 7개 농가들도 지원 사업을 신청하였습니다.
태양광의 경우 이 같은 자원을 이용하면 설치와 운영이 비교적 쉬운 편인데, 문제는 충전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마철이 7일에서 10일 정도인데, 이 기간 동안 완전방전을 방지하기 위하여
별도 모터를 사용해야 하고, 충전기가 비싸기 때문에 한국 전력과의 연동식 모델이 적합해 보입니다.
지열(地熱) 에너지의 경우, 400미터 이하 땅 속은 지상보다 5도 정도의 온도 차이가 있어,
여름에는 온도가 낮고 겨울에는 높기 때문에 냉ㆍ난방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지열의 경우 에너지 회수율이 높기 때문에, 아직 설치 단가가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이미 상용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이오가스의 경우 이 지역의 이원희씨 농가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본 기술자가 결합하여, 가정용 가스로 사용하고 있었고,
부산물인 액체비료(액비)는 농사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원희씨는 6천 평 정도의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으로, 바이오가스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바이오 가스의 경우 간단히 말하자면, 과거 70년대 정부에서 농가에 보급하였던 메탄가스 발생장치를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당시에는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톱밥을 제외한 축 분과 동물과 식물의 유기물 모두를 이용할 수 있고,
축분의 경우 35% 정도의 가스 발생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액체비료로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현재 유기재배 농가의 경우는 생활용 에너지로 상용화되기보다는, 액체비료에 더 초점이 맞춰 있어 보였습니다. 바이오 가스의 경우 가정에서 상용화하려면 남는 음식물과 신선한 똥 등 유기물의 투입이 용이해야 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 미생물 관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같이 매일 적당한 유기물과, 수분 그리고 적절한 가온(加溫)이 되면 연중 상용화도 가능해 보였습니다.
바이오 가스 시설은 현재 LP 가스 보급이 안 된 나라들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중국이 약 152만기, 네팔이 8천기의 시설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바이오 가스의 경우, 도심의 남는 음식물을 이용한 바이오 가스 상용화 방안이 고안된다면
남는 음식물 재활용과, 에너지 발생이라는 일석이조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무지개 - 대안에너지!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에는 농민과 교사 등 대안에너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손수에너지 모임’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손수(手)’라는 말은 에너지를 직접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뜻을 담고 있었고,
변산자연학교 등 이들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지역에서 필요로 할 경우 직접 시공도 해주고 있습니다.
충남 홍성 지역의 대안에너지에 대한 이 같은 노력들은, 신자유주의 신봉자와 거대한 댐이 마치 발전의 상징인양 생각하는 개발론 자들의 눈에 비칠 때는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개발의 끝은 분명 천오백개의 지구를 더 필요로 하는 인류의 파국에 다름 아님을 생각할 때,
이들의 모습은 마치 노아의 방주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준비해가는 이들의 모습이 점차 우리 사회에 퍼져 나갈 때, 창조주 하느님은 천오백개의 지구 대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새로운 희망의 계약, 무지개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천주교 환경연대 인용 )
무엇을 말해야할지 난감 할뿐...
‘생명’의 엄숙함을 망각하고 폭주하는 거대한 괴물들, 이것이 현대 사회이고 사람들입니다.
대자연과 인간의 생명까지도 생존경쟁 속에서만 생존원리를 찾는 자아중심주의,
그리고 작은 지혜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위대, 최상이라고 착각하여 자연의 준칙을 무시하고
인간 교만의 지상주의, 이러한 잘못된 원리 위에 서있는 근대문명은
그것은 다만 죽이는 것과 빼앗는 것으로만 광분하는 오늘을 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머니인 대자연’에게 빈사상태의 중상을 가하고
‘엔트로피’의 무서운 독의 홍수를 발생시켜 스스로 그 속에 빠져 표류 하고 있는 군상들입니다.
인간의 상상을 허락지 않는 높고 높은 우주의 존재를 새삼 섬기며 ‘생명의 農’ ‘생명의 레저놀이’
‘주말 초원의 캠프’ ‘눈밭을 하염없이 걷는’
맑은 가난을 마다않고 오늘도 떠날 짐을 꾸리기에 가슴이 벅찹니다.
늦은 시간에 점심을 잔치국수로 때우기 위해 손님을 불러대는 시끌벅적한 동대문시장
장터좌판에 자리했습니다.
끈에 달린 <동부 62호> 라고 쓰인 상호가 흔들리며 나를 봅니다.
출출하면 가끔 찾는 노점상인데 나를 알아보고 반색하는 그 1초를 잊지 못해 그 아주머님을 찾아갑니다.
"어머나 반가워유··· 오늘은 배낭을 안 메셨네···"
배낭과 깐돌이 머리가 나의 브랜드란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김 서린 순대까지 예뻐 보였습니다.
그래 국수에 순대까지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나 순대도 드실 수 있으신가보네···’
그는 내가 순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 까지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신통 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게 나는 거리에서 이 해를 곱씹으며 늙어가는 산 꾼입니다.
좌판에 버려진 신문을 보니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떠난 지 35년 만에
태양계의 끝자락인, 태양으로부터 180억km 떨어진, 태양계와 또 다른 외부우주공간의 경계인
‘헤리오포스Heliopause’에 접근했다고 합니다.
이 우주항해 쇼는 동력이 바닥이 나는 202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 된다고 합니다.
지난여름 ‘큐리오시티Curiosity’ 화성탐사 로봇이 발사돼 화성의 토양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생명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생명체를 구성하는 성분인 탄소가 함유된 ‘유기화합물’도 미량 검출됐지만,
이는 지구에서 묻어간 것 일거라고 나사에서 분석했습니다.
‘큐리오시티’의 목표는 화성에 미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놀랍게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잔치국수와 순대 덕분에 우주여행을 마친 깐돌이는 먹다 남은 순대를 싸들고,
문득 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하늘 빛은 침침하고 오래지않아 곧 도시의 노을이 시작될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나는 좋습니다. 나도 모르게 ‘종묘 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저절로 눈과 머리가 뜨거워지면서 마침내 볼을 따라 눈물이 흘렀습니다.
슈만의 ‘Traumerei’···
우주, 자연, 지식사회··· 상상의 도전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왜 우리는 ‘巨視的 이론(Grand theory)’이 나올 수 없는가?
이제 知性은 전체성을 띤 방향으로 나가야.
‘존재의 과학’에서 ‘生成의 과학(Sience of becoming)으로.
항간의 지식인은 ‘博’士 아닌 ‘狹’士.
선진적 사상을 흡수할 수 있는 본질적 지식을 쌓아야.
세계적 학문과 그 사상을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물어 가는 이 해의 끝자락,
홀로의 거리를 걸으며···
<2012년 11월 깐돌이, 박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