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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잠 스님의 녹균헌(於潛僧綠筠軒)
-소식蘇軾(1037~1101)
[해석]
밥상에 고기가 없어도 되지만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으면 안 되리
고기 없으면 수척해질 뿐이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비속卑俗되게 되나니
수척해진 사람은 살찌우면 되지만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가 없다네
이 말을 듣고 옆 사람이 ‘고상한 듯하나 도리어 어리석다’ 비웃었지만
대나무를 보면서 고기도 먹는다면,
세간에 어찌 양주학이란 말이 있겠는가!
於潛僧綠筠軒
-蘇軾
可使食無肉가사식무육
不可居無竹불가거무죽
無肉令人瘦무육영인수
無竹令人俗무죽영인속
人瘦尙可肥인수상가비
士俗不可醫사속불가의
傍人笑此語방인소차어
似高還似痴사고환사치
若對此君仍大嚼약대차군잉대작
世間那有揚州鶴세간나유양주학
[감상]
소식이 1073년 그의 나이 36살 되던 해, 오잠(於潛, 지명) 지역에 갔다가 스님이 계시는 절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둘러쳐진 녹균헌綠筠軒이라는 건물을 보고 지은 시이다. 소식은 군자의 절개를 나타내는 대나무를 무척이나 사랑했나 보다. 대나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고 한다. 대나무가 푸르게 하늘 위로 쭉쭉 솟아오른 것을 볼 때면 시원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고 엄숙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고기를 먹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고기 못 먹으면 수척해지기만 할 뿐이지 뭔 대수겠는가.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으면 비속하게 된다. 곧은 절개를 가까이서 볼 수 없게 될 테니. 도를 닦는 스님이요, 군자가 비속하고 천박해지면 고칠 수가 없다고 소식은 생각했나 보다.
소식의 이 시는 매우 유명하다. 검색해 보면 수많은 이들이 감상문을 쓰고 견해를 밝혀 놓은 글을 읽어 볼 수 있다. 대나무의 절의도 좋지만 여기서 소식이 말하고 싶은 바는 마지막 두 연이 아닐까 싶다. ‘양주지학’ 고사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혹은 소식의 이 시로 인해 양주학이 더 알려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주학 고사의 출처는 梁나라 殷雲의 『小說』이라고 한다. 그 책 卷六, 「吳蜀人」 中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객들이 서로 따르며, 저마다의 소원을 말하는데, 어떤 이는 ‘양주자사가 되기 바란다’라 하고어떤 이는 ‘재물이 많기를 바란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학을 타고 하늘로 오르기를 바란다’라고 하거늘 그 중의 한 사람이 이르기를 ‘허리에 10만 관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서 양주자사가 되길 바란다’라고 하니 이는 세 사람의 소원을 겸하고자 한 것이다.
[有客相從, 各言所志. 或願爲揚州刺史, 或願多眥財, 或願騎鶴上升. 其一人曰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 欲兼三者.]
※ 양주(揚州) : 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자강 북쪽 기슭에 있는 상업 도시. 대운하(大運河)의 개통과 함께 발전, 수륙교통이 매우 편리하여 쌀·소금 등을 집산하며, 명승고적으로는 수서호(瘦西湖)·평산당 등이 있다고 함.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란 것이 대단함을 느낀다. 아이도, 청년도, 노인도 버릴 수 없는 욕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성적인 마음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양주학이다. 훈련되고 수련되지 않은 인간이라서 이 양주학의 꿈을 꾸는 걸까? 나 자신을 갈고닦지 않아서 생기는 일일까? 양주학의 꿈이 없다고 하면 다들 콧방귀를 뀔지 모르겠다. 돈 욕심, 권력 욕심, 인간 세상을 초탈한 신선이 되고 싶은 욕망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세 가지를 모두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이란 허망하고 불가능한 그 무엇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누리고 싶은 탐욕이라고 말하고 싶다.
양주학을 바라는 마음을 나는 이기적인 욕심과 본능적인 욕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날 것 그대로의 태생 때의 원초적인 이 욕심과 욕망은 길들여지지 않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난폭한 욕망 같다고 늘 느낀다.
그러면 인생사에서 나의 소원은 무엇인가? 나도 양주학을 꿈꿀 것인가? 나는 양주학을 포기할 것인가?
대나무 둘러쳐진 녹균헌에서 소식은 배불리 고기 먹는 일 따위는 꿈꾸지 말라고 한다. 이율배반인 것이다. 두 가지 마음을 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양주학의 꿈은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