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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우리에게 어떤 인물일까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저자, 수원 화성의 설계자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업적을 남긴 위인 정약용의 모습은 잘 알려져 있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자 사랑하는 자녀들을 둔 아버지 정약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하피첩霞帔帖: 노을빛霞 치마帔로 서첩帖을 만들다
젊은 시절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던 정약용은 1801년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루된 이후 1818년까지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부인 홍씨는 시집올 때 가져온 노을 빛깔의 치마를 정약용에게 보냈고, 정약용은 이 치마를 잘라 서첩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완성된 서첩 위에 두 아들에게 전하고픈 당부의 글을 적었는데, 이것이 ‘하피첩’입니다.
아버지 정약용의 마음을 전하다
정약용은 총 4첩의 ‘하피첩’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3첩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첩帖의 순서에 따라 “가족공동체와 결속하며 소양을 기르고(1첩), 자아 확립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아 근검하게 살며(2첩),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을 대비할 것(3첩)” 등의 내용이 담겨있습니 다.
보물 ‘하피첩’을 공개하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는 개관 2주년을 맞이하여 2010년 보물로 지정된 ‘하피첩’을 공개합니다. 관료 혹은 실학자 정약용이 아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지닌 아버지 정약용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가르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1첩(甲) 1810년, 31.2×24.8×2cm 孝弟爲行仁之本。 부모에 대한 효도(孝)와 형제에 대한 우애(弟)는 사람다움(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 |
2첩(乙) 1810년, 31.2×24.9×2cm 敬直義方。 공경하는 마음(敬)으로 내면을 바르게(直) 하고, 정의로운 자세(義)로 행동을 반듯하게(方) 해야 한다. | |
3첩(丁) 1810년, 28.8×24.2×2cm 汝等知此, 姑緩鑽硏之工, 首務矜持之業。 너희는 깊이 탐구하는 공부를 잠시 늦추고, 우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공부에 힘쓰도록 하라. |
옮김:
국립민속박물관 > 전시 > 파주관 전시 > 지난전시(상세보기) - 하피첩: 아버지 정약용의 마음을 담은 글 (nf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