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트로이는 9치례나 폐허와 재탄생의 과정을 거쳤다. 유적지는 고대 그리 이스의 작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어드와 오딧세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 졌다. 신화와 전설이 결국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트로이의 유적지를 밝혀 낸 사람은 전문 고고학자가 아닌 독일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다. 1873년 마침내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했는데 일리어드를 길잡이로 사용 했단다. 일리어드는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파트로클로스, 핵토르의 싸움 이야기다. 오디세이는 증오 받는 자라는 뜻을 가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두 서사시는 기원전 6세기부터 그리이스의 문학, 교육, 사고(思考)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가이드 김*영 씨는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또한 다재다능하여 우리들을 여러 차례 감동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제1기 자연석 성곽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돈이 되는 유물 채집에만 집중하고 체계적인 발굴은 뒷전이었다. 자연히 유적지는 도굴꾼이 거쳐 간 곳처럼 산만하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제2기 흙벽돌 성곽
지푸라기를 섞어 벽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성 안에는 우물과 제단이 있으며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트로이 시는 인구수가 적었다. 적은 수의 시의원이 토론장으로 사용했던 오데이온이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축소판 원형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로마 시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트로이의 오데이온
성벽은 제1기부터 제9기까지 혼재되어 있는 곳도 있다. 체계적으로 발굴하지 않고 도굴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주는 역사적 흔적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는 2014년에 만들어져 전 시되고 있다
트로이의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