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우리 모교는 1899년에 중구(명동)에서 개교하여 종로구(수송동)를 거쳐 1939년에 영등포구(대방동)로 옮겨와 1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일제 강점기(1910~1945년)에는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이 함께 입학하여 공부하고 졸업을 하였습니다.
2005년 10월 1일에 일본 교토(京都)에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學校) 제35회 동창회를 개최한다면서 한국의 동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35회 졸업생은 경성공업학교의 마지막 일본 학생으로서 저(61회)보다 무려 26년 선배님으로 당시의 연세로 80대 초반이셨고 지금은 거의 타계하셨지만 생존해 계신다면 100세 전후가 되십니다.
우리 한국 방문단은 동문과 가족을 포함하여 약 70여명에 이르렀는데, 제일 선배 기수는 48회였고 제일 후배 기수는 저를 포함한 61회 동문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大阪) 공항에 도착하여 교토(京都) 행사장으로 갔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많은 일본 선배님들과 가족들께서 우리를 진심으로 뜨겁게 환영해 주시면서 반가움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선배님 대부분은 건강하셨지만 몇분은 지팡이에 의지하셨고 몇분은 가족이 휠체어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경성공업학교 제35회 일본 동창회 회장님은 참으로 인자하셨던 사사키(佐佐木) 회장님이셨는데 수년전 타계하셨습니다.
사사키(佐佐木) 회장님을 비롯한 일본 선배님 말씀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오늘은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의 만남이 아니고, 경성공업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 출신의 선배와 후배가 만나는 자리이다."
"우리는 사정에 따라 자기가 태어난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도 바꾸고 심지어는 성별까지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교인 경성공업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를 버리고 모교를 다른 학교로 바꿀 수는 없다."
지금도 그때의 벅차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