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일대 쇄신이 답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22.11.08 03:10
지금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자국(自國) 이기주의를 앞세우는 권위주의형 지도자들이 속속 당선되거나 호출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솔리니 파시스트 독재를 승계한다는 이탈리아 극우 정치의 복원이다. 지난날의 정치 체제로 되돌아가는 복고형(復古型) 권력 행태도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있고 브라질의 룰라가 그 대표적 케이스다.
인도의 모디는 급격히 성장하는 힌두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소수 무슬림을 탄압하는 강권 정치를 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은 스스로 ‘황제’의 격(格)에 올랐다. 필리핀은 어제의 독재자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돼 복고의 정치를 휘두르고 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93세의 전 총리가 재출마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독재’의 표본은 헝가리다. 12년 전 총리에 ‘당선’된 빅토르 오르반은 민주 억압, 언론 탄압, 사법부 무력화,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국민이 뽑은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부드러운 독재’(soft autocracy)의 전형이다. 중미의 엘살바도르에서도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의 의회 무력 진압 등 독재국가 뺨치는 강권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미국 또한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오늘 치러지는 중간선거는 미국의 전범(典範) 격인 자유민주주의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로 대표되는 미국 국가주의의 복원을 의미하며 공화당 극우화의 실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부터 비(非)자유민주 또는 ‘자유 없는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쿠데타나 혁명이 아닌 적법한 민주 절차를 거쳐 정권을 장악한 뒤 지지층 결집으로 유권자를 분열시키고 편파적 공약과 퍼주기로 한쪽의 세력을 극대화해서 반대자를 약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스웨덴에 있는 브이-뎀(V-Dem)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최고조에 달했던 전 세계의 42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10년 만인 2022년에 34개 국가로 감소했다. 이를 인구 숫자로 보면 자유민주주의 치하에서 살았던 인구가 18%에서 13%로 크게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세계의 자유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독재 내지 권위주의는 날로 득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뉴욕대학의 리처드 필데스 교수는 9월 30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 그것은 국민들로부터 유리되고 불신과 신뢰 철회를 초래하게 되며, 이런 사태는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불러들이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지어 “이런 상황이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단순한 회의를 넘어 반(反)민주 성향으로까지 가게끔 만든다”고 했다. 필데스 교수의 설명은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그에게 닥친 여러 비우호적인 사건들이 그를 왜소하게 만들면 국민은 그로부터 이완되고, 지지층 결집의 구호 아래 국민을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끄는 권위주의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나라는 불행히도 ‘선출에 의한 독재’로 떨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해 열린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금 윤 대통령을 보면 번번이 사건 뒤처리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 터지면 그리 달려가고 저기 막히면 그리 몰려간다. 매일 빈소만 쫓아다니는 모습이다.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있다고 해야 검사 출신 몇 사람이 사고만 치고 있다. 이 사람 얘기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보면 그쪽이 길인 것 같다. 야당 쪽 아는 사람 없고 자기편의 ‘제갈공명’도 없다. 그런 그에게 하나 끈질긴 것이 있다. 고집인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다. 그는 민주주의 앞에 반드시 ‘자유’를 붙였다. 불행히도 세계는 지금 그 ‘자유’를 버리거나 유보하고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 가는 위험한 추세에 있다. 심지어 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사람’을 ‘구관이 명관’이라며 되살려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공세, 야당과 주사-좌파의 집요한 퇴진 압박, 그리고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민심의 불안감 등 초보 대통령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봉착해 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시기에 그를 대통령으로 불러들였을까? 무엇이, 어떤 섭리가 그를 대통령이라는 리더의 자리에 밀어 올렸을까? 초심으로 돌아가 그 답을 구해야 한다. 일대 쇄신만이 그 답일 것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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