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9.
지난주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광주형 일자리'의 성사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홍 원내대표는 "사업이 확정되지 않았는데 예산을 주는 경우는 없다"며 중앙정부 예산 심의 전에 광주시와 현대차가 투자협약을 마무리 지어 줄 것을 촉구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말 다행한 일이고 큰 기대를 건다.
'광주형 일자리'란 한마디로 현재 자동차 공장 근로자들이 받는 평균 임금의 절반 정도만 받기로 하고 광주시 일대에 자동차 공장을 유치해 1만2000개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광주시를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이 2014년 취임 초부터 집요하게 노력해 왔으나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출범한 새 정부에서 공약사항이자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됐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는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고까지 한 후에도 '광주시만의 일'로 맡겨져 있었다. 중앙정부의 일자리 창출 의지와 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었다. 취임 초부터 최우선으로 성사시켜서 지금쯤 확산 단계에 들어갔으면 벌써 괄목할 만한 일자리 창출 실적을 자랑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자리 만들기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 출범 이후 '광주형 일자리'처럼 새 일자리를 만드는 일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등 이미 취직해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을 우선한 것이 문제였다.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도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손이 부족해지면 임금은 올라가고 근로조건도 개선되게 마련인데, 이 순로(順路)를 생략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다가 일자리 만들기 자체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1996년 우리나라에 마지막 자동차 공장이 지어진 후 지금까지 현대·기아차는 전 세계에 19개 공장을 지어 5만7000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들 나라의 지방정부들이 어떻게 투자 유치를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은 부지와 인력 확보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숙련도가 높아질 때까지 교육훈련비를 부담하기도 하고 낮은 임금을 약속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이 기업을 불러다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만들라고 해서는 웃음거리만 된다.
광주시는 지자체 부담으로 주택이나 교육·의료·육아 등 주민 편의시설 등을 지원해서 '광주형 일자리'에 취업하는 주민들의 소득을 보완할 계획이다. 낮은 임금을 내세워 투자를 유치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인 만큼 우리나라 지자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중앙정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를 만든다고 해도 노조가 기존 일감을 나누어 줄 리는 없으니 새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더 떨어지면 노조가 양해를 해 주더라도 성사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질 것이다. 속도를 내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기존 근로자들보다 20% 낮은 임금에 주 3시간 더 일하는 '아우토 5000' 실험으로 회생의 계기를 찾았고, 2009년 대규모 리콜로 위기에 빠진 도요타자동차는 낮은 임금을 내세워 투자를 유치한 기타큐슈 공장 덕분에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이 '광주형 일자리'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좋은 일자리만으로 온 국민을 취직시킨 나라는 없다. 노동계를 대표하여 아직 생기지 않은 회사의 근로자를 위해 임금 등 근로조건을 최대한 좋게 하려고 노력하는 한노총의 노고를 치하하지만 좀 못한 일자리에라도 취업하고 싶은 젊은이들의 비원(悲願)을 외면하지는 말아 주기를 부탁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지방마다 경제 사정도 고용 사정이 다르고 임금 수준, 생계비 수준도 다른데 하나의 잣대를 전국에 적용하는 경직적인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마침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노동법상의 권한을 최대한 지방으로 넘겨주어야 일자리 창출에 지방정부가 앞장설 수 있게 될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일자리 창출 의지와 능력을 가늠할 시금석으로서 최우선의 국가적 과제이다. 이것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 일자리 창출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박병원 / 前 한국경총 회장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