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事理와 道理에 밝아야, 혜안이 갖추어져 나라의 기틀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이 事理와 道理에 밝으면, 위정자들의 권모술수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이런 국민들이 많을수록 나라는 정의롭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윗사람의 지시라면 무조건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나 집단은 매우 충직한 추종자이거나 어질고 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한 집단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하는 상대를 쫓아다니다가도 상대가 곤경에 처하면, 그를 포기하고 의지할 다른 상대를 찾으면 그만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자기들 방식대로 하려 하며 변화를 거부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나라를 혼란스럽고 위태롭게 만든다. 반면에 지혜롭고 혜안이 갖추어진 사람들이야말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앞장서서 인도하며 모범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한 진정한 영웅이며, 나라에 꼭 필요한 구성원들이다.
事理와 道理에 밝을 때만이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있고, 맡은 바 직분을 소신껏 성실히 이행할 수 있다. 약 500년 전의 퇴계 이황은 국가의 이익을 위하고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올곧은 성품은 투철한 배움에 있었던 것 같다.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퇴계는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松齋(송재) 李堣(이우)에게서 논어를 배웠다. 숙부는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세상 사람들이 늘 과부의 자식들은 가르침이 없다고 비방하니, 너희들이 공부에 100배 힘쓰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모함을 면하겠느냐”며 자녀들에게 훈계를 자주 한 점을 보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냉엄하고 간절한 당부와 당시의 생활환경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사람은 事理와 道理와 밝아야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럼, 事理와 道理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事理와 道理에 밝을 수 있을까? 우선 사전적 의미의 事理와 道理를 살펴보자, 事理는 사물(事物)의 이치(理致) 또는 일의 도리(道理)를 말한다. 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行) 해야 할 바른길이다. 事理와 道理의 뜻을 종합해 보면, 事理와 道理는 말이나 행동 등에서 정당하고 도리에 맞으며, 체계가 서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임을 알 수 있다. 결국 事理와 道理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손등과 손바닥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事理와 道理에 밝기 위해서는 첫째, 자신을 늘 스스로 돌아보고 省察(성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면, 義(의)가 길러지고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 맹자 공손추 장구의 호연지기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일체의 부도덕(삿된 마음,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제거하고 도의를 실현하는 참다운 용기로 가득 찼을 때 마음에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자면, 正義와 道에 부합하는 것으로 항상 옳은 일만을 생각하고 옳은 일만을 행할 때 길러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습관이 실천으로 체화되어 증득할 수 있으면 慧眼(혜안)이 갖추어져 못 이룰 일이 없게 된다. 즉 臨戰無退(임전무퇴)의 굳센 기상이 길러지고 정의감이 넘치는 나라의 훌륭한 인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반드시 읽히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이라야 말로 義(의)가 깃들어 몸에 밴, 일당백의 자질이 갖추어진 나라에 필요한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자녀의 인품은 태어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양육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니 부모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솔선수범이다. 즉 모델이 되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의 솔선수범에 의해 모든 것을 느끼고 배운다. 자녀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압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 꽃밭에 들어가 오래 머문 사람에게는 꽃향기가 몸에 배고, 인분통을 매고 밭에 거름을 오래 준 사람에게는 인분이 몸에 배게 마련이다. 그러니 어질고 현명한 부모가 되느냐, 아니면 모질고 천박한 부모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번지르르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실천에 있는 것이므로 자녀도 그렇게 물들어 가는 것임을 꼭 알아야 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事理와 道理에 밝을 수 있는“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제대로 알려주어 나라의 튼튼한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지도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러한 글을 접하는 독자들도“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잘 읽혀 자신을 향상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래야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이 갖추어져 현명하고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밖으로는 통찰력을 높이고, 안으로는 자기를 수양하기 위한 학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잘 읽혀 실천으로 옮겼을 때, 놀라운 효과가 증명될 것이다.
첫째는,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점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되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단기간이 아닌 꾸준한 독서가 필요하다. 즉 끊임없는 독서를 말함이다. 이는 곧 자신과의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만 말고 꾸준히 실천해 보라 반드시 효과가 증명될 것이다. 방법은 책을 아무것이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이나 인문학 서적을 탐독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둘째는, 지혜와 혜안이 갖추어져 위정자들의 권모술수에 넘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모술수를 부리지 못하게 된다. 결국 잘못된 정치체제를 바로잡고, 나라의 기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진다.
공부해서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진정한 인격을 갖춘 수양이 된 인재는 나오기 어렵다. 그 이유는 과거의 聖賢(성현)들이 공부했던 爲己之學의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이 날로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풍족해지고 경제적인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기가 편안한 세상이 되었다. 이는 곧 물질만능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옛 성현들의 지혜를 빌리고 거울삼아 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성현들의 지혜를 실천적 교훈으로 삼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실행한다면, 사리와 도리에 밝아지고 언제 어디서든 義(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자신을 향상하고 혜안이 갖추어진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고 하지만, 마음은 어딘가에 쫓기며 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물질로 마음을 채우려고 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되고 만다. 내 가슴속에서 뭔가 큰 덩어리가 빠져나간 듯한 허전하고 공허한 텅 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모든 것을 다 잊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주고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때로는 여행도 다녀보고, 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 시도해 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마음이 편안하고 내면에서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나만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간절하게 찾아야 한다. 어쩌면 그중의 하나가 독서일 수도 있다. 차분히 않아서 지나온 과거의 학창 시절의 나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려보라. 그러면서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골라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제대로 터득하여 알아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고, 자녀들에게 올바른 지도를 할 수 있다. 결국 독서의 중요성은 남에게 알리는 공부가 아니라 自己完成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 즉 爲己之學(위기지학)의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설령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나이가 지긋한 연세가 되었다고 해도, 지금이라도 독서를 통해 마음에 위안과 평안함을 찾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나라에 道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국민들이 지혜롭고 현명해져야 한다. 국민들이 어리석으면,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헤아릴 수 없고, 선전⋅선동하거나 표퓰리즘 政治(populism 정치:일반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 체제)를 하는 것을 그대로 믿거나 휘둘리기가 쉽다. 그 이유는 지혜의 눈이 없고 혜안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갖추지 못하게 되어 소신 없이 남의 말에 끌려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지혜롭고 혜안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안들은 국민들 모두의 공통 과제이며 합심으로 꾸준히 노력해 나갈 때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런 것을 명확히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하고, 국민이 지혜로워야 사상이 건전하고 올바른 사람을 뽑을 수 있으며, 나라가 한 단계 성숙하고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최하위 정치 수준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앞장서서 바로 잡아나가야 하고 국민들 스스로가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위정자들은 무책임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蒙昧(몽매)한 그런 사람들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모든 책임을 짊어질 수 있고, 나라의 안위를 늘 고민하고 걱정하는 모범적인 사람이라야 한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서 국민들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은 배에 사람을 가득 싣고 산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와 같은 것이다. 국민들이 지혜롭고 혜안이 갖추어져야 걸맞은 사람을 뽑을 수가 있고, 삿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라. 그러면 자신을 향상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지혜와 어리석음은 전파력이 매우 강해서 어리석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점점 더 어리석어지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점차 지혜롭고 현명해진다.
지혜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익혀야 한다. 최고의 지혜는 경험이다. 자신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습관이 들었다고 하자, 예를 들어, 5년 동안 나쁜 습관이 쌓여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몸에 배 버렸다고 한다면, 그 습관을 고치는 데도 5년을 노력해야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나쁜 습관을 고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정성을 들여야 함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많은 국민들이“聖賢(성현)의 제시하는 학문에 이르는 길”을 터득하여 꾸준한 독서로 義(의)를 향한 나침판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래서 浩然之氣(호연지기)가 몸에 밴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통찰력이 길러지고 혜안이 갖추어진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지혜롭고 혜안이 갖추어진 현명한 국민이 되었을 때 위정자들에게 끌려다니거나 휘둘리지 않게 된다. 결국 지혜롭고 혜안이 갖추어진 현명한 국민에 의해 蒙昧(몽매: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한 위정자들이 삿된 길로 가는 것을 바로잡고,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컬어“事理와 道理에 밝아야, 혜안이 갖추어져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끝으로 모든 국민이 좀 더 행복해지고 평안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註) 聖人의 言語란 성인의 말씀으로, 古典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古典이란 성현들의 지혜를 담고 있는 寶庫(보고)의 결정판이기 때문에, 현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실천적 교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실행한다면 자신을 향상 시키고 지혜가 나날이 늘어나 현명해 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