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가 왜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ㅡ조성민(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성평등인권연구회 고문)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정철승 변호사(더펌 대표변호사)에게 시련이 끊이지 않는다.
정변호사는 일면식도 없었던 40대 여성 변호사로부터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해, 1심에서 1년 실형선고를 받고 현재 항소심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정변호사는 이 사건 이전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누명을 벗겨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는 과정에서 박 전시장 고소인한테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번의 사건은 2023년 3월 27일 서울의 한 주점에서, 대한변호사협회 감사인 정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의 임원인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역시 대한변협 임원인 여성 변호사가 도중에 합석하여 1시간도 안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후 며칠 후에 갑자기 성추행 주장을 하고 그 얼마 후에 고소를 제기한 사건이다.
사건 장소는 대한변협 감사인 정변호사가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100주기를 맞이하여 대한변협이 일본변협의 자료 협조를 받아서 관토 대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 위해 대한변협 인권이사와 상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매장에 진열된 와인을 판매하고 구입한 와인을 바로 마시기도 하는 오픈된 와인바 테이블에서 대한변협 인권이사의 친한 지인인 여성 변호사는 뒤늦게 합석한 후 정변호사, 인권이사와 1시간가량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헤어진지 며칠 후에 갑자기 정변호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여성은 정변호사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강제로 자신의 손을 주무르고 헤어질 때 자신의 등 부위를 더듬고 팔로 자신의 허리를 감아서 안았다고 주장했다.
과연 대한변협 감사인 정변호사가 공적인 업무를 상의하기 위해 대한변협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것도 일면식도 없었던 40세 가량의 여성 변호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 여성의 친한 지인인 남성 변호사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여성의 가슴을 찌르고 손을 주무르고 등을 더듬고 허리를 휘감는 강제추행을 저지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중년의 여성 변호사인 고소인 여성은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항의를 하거나 경찰을 부르는 등의 필요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현장에서는 아무 일도 없이 서로 웃고 헤어진 후 며칠 지나서 갑자기 강제추행 주장을 했다는 사실도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고소인의 그런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요컨대 1심 재판부는 상식에 부합하는 정변호사의 항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던 반면 상식에 반할 뿐만 아니라 현장증거인 CC TV 영상과도 맞지 않는 고소인 여성의 주장은 일관성이 있고 경험칙에 맞다고 하면서 정변호사에게 강제추행의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한 1심 판결은 공평하지 못할 뿐 아니라 황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증거인 CC TV 영상을 보면 고소인 여성은 입을 가리거나 고개를 뒤를 젖히며 크게 웃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이는데, 강제추행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웃는 모습은 상식은 물론이고 경험칙에도 맞을 수는 없다. 성추행의 통상적 행위패턴과 부합하지 않다는 영상분석 전문가의 감정의견도 있었다.
백보를 양보하여 고소인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일지라도, 정변호사가 다른 사람이 보는 장소에서 고소인 여성에게 과잉 행동을 했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전과도 없는 정변호사에게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80시간 동안 성폭력 교육을 받으라고 한 1심법원의 판결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변호사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판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변협 감사인 정변호사는 변혐 임원인 고소인과 함께 2년 동안 변협이사회 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상호 관계를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인간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정변호사가 고소인의 손을 만지는 등 신체접촉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매장과 다름없는 강제추행죄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가혹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잔인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정변호사는 인권이 부당하게 침해받은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간토 대지진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일본과 함께 개최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뜻을 가진 노력이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면서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추행을 하고 인권을 침해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정변호사는 현재 조선일보 폐간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 나라의 인권과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변호사의 투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그를 파렴치범으로 몰아 매장시키려는 의도를 혹시 누가 갖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나라의 큰 자산을 파멸로 이끄는 옳지 않은 행동이다.
만약 사법부가 알게 모르게 그러한 음모에 휘말린다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관련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의 경우를 여성과 남성의 대립적 관계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남성의 권리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법을 오남용하는 경우 오히려 양성평등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법을 이용해 남성의 취약한 점을 공략한다면, 남성의 여성과의 관계가 더욱 대결적이고 서로 소원해질 수 있다. 남자가 반갑다고 여자의 손이나 손목을 잡거나 격려하기 위해 등을 두드리는 경우 혹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하지 않을까 항상 신경써야 할 것이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는 여성의 신체에 닿지 않도록 남성은 잔뜩 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신체 접촉을 경험한 여성이 나쁜 마음을 먹거나 다른 세력의 조종을 받아 고소를 할 때 재판부(특히 여성 판사)가 우호적으로 판결을 내리게 된다면 오히려 여성의 권리가 위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성폭력 소송의 남발이 국민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이 오히려 진정한 성폭력 피해자의 고소 의지를 위축시킴으로써 꼭 보호받아야 할 성폭력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손을 만지고 등을 두드렸는데 상대가 단순히 성적수치감이나 모욕감을 느꼈다는 주장만으로 성추행 범죄라고 기계적으로 판결을 내린다면 법을 잘못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판사는 법조문이나 기존의 판례만 적용해 기계적으로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결정이 보편화가능성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은 입법에서 뿐 아니라 법의 적용에서도 고려해야 할 원칙이다. 자신의 결정이 보편화가능하다는 것은 그 결정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또는 자녀에게 적용되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어 보편적으로 적용될 때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결정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때 인간 관계가 조화롭고 원할하게 유지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변호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는 것이 보편화될 수 있는가? 보편화될 수 없다면 공정한 판결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선고가 유사한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재고해야 할 것이다.
세계인권선언과 인권규약은 모든 사람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스스로 침해한다면, 인권을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할 책무가 있는 판사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