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주목한다, 시조시학 평설
존재의 이면과 생의 근원
이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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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여정-김덕남, 봄 탓이로다』
2010년 《부산시조》 신인상,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덕남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은 자신의 DNA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다. 「시인 의 말」에서처럼, 그는 제 몸속 먼 조상이 새 혹은 뱀이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꽃길을 마다하고 길 아닌 길을 찾아" "익명의 암호 캐기 위해 "밤마다 불을” 켰던 시인의 삶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자서에서 밝혔듯 시인은 자신의 시가 "자연 속에서, 삶의 현장에서, 역사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체험 공간을 산책하면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에 영혼이 따라오지 않을까 늘 두렵다고 고백하는 시인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날 때까지 스스로를 다독이며 채근하겠다는 다짐을 이번 시집은 증명한다. "똑바로 보려거든 그대를 뒤집어라"며 "한 번쯤 뒤집고 보면 가는 길이 보이리" (「거울」)란 깨달음이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김덕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적 대상에 대한 면밀한 탐색을 통해 문명의 이기 속에 멍든 이 시대 뼈아픈 삶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가고 있다.
저 눈깔, 오죽하면 범의 아재비일까
그러니까 호랑이보다 항렬이 높다는 말
겁 없는 반골의 기질, 낫을 들고 덤비네
혁명을 꿈꾸는가 위장과 위협으로
밑바닥 뒤집고픈 게릴라성 폭우처럼
오금도 달싹 못하는 나비를 덥석 무는데
슬금슬금 다가오는 회심의 저 두꺼비
눈앞의 성찬이다. 찰나의 혀를 보라
그러게, 나는 놈 위에 노리는 놈 있다니까
- 「사마귀」 전문
장자의 우화 중에 먹이사슬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 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다들 자기가 취하려는 먹이만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자기가 어떤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 몸도 돌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사람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욕심 부리는 대상에 정신이 팔려, 자기를 먹으려는 다른 포식자로부터 사기를 당하거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전혀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 시는 나를 노리는 포식자는 내가 무언가에 집착해 있거나 빠져 있을 때 나를 공격하여 잡아먹는다는 장자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사마귀도 마찬가지다. 사마귀가 나비를 먹으려고 할 때 사마귀는 방심하여 두꺼비에게 잡아먹힌다. 그러기에 "나는 놈 위에 노리 는 놈 있다"고 하는 것이다. 동물들 세계 이야기만이 아닌, 이것은 인간 세계의 이야기다. 사마귀는 위장과 욕심으로 먹이를 제압하는 곤충이다. 사마귀 앞발은 낫처럼 생겼다. 낫은 삶의 도구이면서 무기다. 겁 없이 덤벼드는 속성, 마치 인간의 맹목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대 귀에 달린 것은 귀고리가 아니다
노예의 상징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한 끼의 입맛을 위한 이력서일 뿐이다
그대 코 뚫은 것은 피어싱이 아니다
유혹의 허방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살가죽 벗겨지도록 집 지우기 위함이다
엉덩짝 불도장은 비정규의 주홍글씨
빌딩이 높을수록 그늘은 더욱 깊어
지상의 모든 고삐로 생채기는 덧난다
- 「귀표 혹은 코뚜레」 전문
그의 귀에 달린 것은 귀고리가 아니라 노예의 상징이다.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히브리인이 같은 동족의 노예가 되는 표식으로 귀를 뚫는 의식을 행한 후에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게 되는 것에서 유래한다. 이렇게 귀를 뚫은 후에 거기에 장식을 달았을 것이라 쉽게 추측한다. 고대 근동의 관습으로 귀를 뚫는 것은 완전한 예속隸屬과 순종을 나타내는 의식이었던 것 같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있어서 귀는 '예속의 기관'이었으니 귀를 뚫린다는 것 은 곧 '자유의 상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일 칼타고인들은 종의 표식으로 종의 귀에 귀걸이를 매달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끼의 입맛 을 위한 이력서”일 뿐이라고 했으니 취업 후 종이 되겠다는 현대판 노예의 표식으로 본 것이다.
코뚜레 역시 피어싱이 아니고 유혹의 허방이다. 소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 뚫는 것이 코뚜레 아닌가. 코뚜레를 하고 있는 가축이나 노예들이나 놓여 있는 처지가 지금의 비정규직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이야기다. 빌딩이 높다는 것은 문명이 발달되고, 자본력이 커지고 인간의 욕망이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이 고용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그래서 그들의 존중받지 못한 삶들이 깊어진다. 착취, 학대, 소외, 무시, 도구화된 비정규직 의 삶의 고삐가 일터에 묶여 있다. 노예나 가축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써의 "지상의 모든 고삐"로 인해 자꾸만 생채기가 덧난다.
담장 밑 길게 누운 투명한 빈집 한 채
머리에서 꼬리까지 계절을 벗어놓고
내면을 응시하는가
눈빛이 서늘하다
껍질을 벗는다면 오욕도 벗어날까
숨가쁜 오르막도 헛짚는 내리막도
날마다 똬리를 틀며 사족에 매달린다
별자리 사모하여 배밀이로 넘본 세상
분 냄새 짙게 피운 캄캄한 거울 앞에
난태생 부활을 꿈꾼다
어둠 훌훌 벗는다
- 「허물벗다」 전문
사족이 달리면 이제껏 해온 작업이 다 헛짓이 된다. 사족이 오욕일까? 더럽고 욕된 것을 계속해서 매달고 있을까? 별자리는 이상세계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어둠을 벗으면 새로운 이상세계가 열린다. 사족이란 말 자체에서 느껴지는 불필요하게 붙어 있는 허물을 벗으면 삶이 밝아지고 가벼워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속이 캄캄하다. "껍질을 벗는다면 오욕도 벗어날″텐데, 오르막도 내리막도 "날마다 똬리를 틀며 사족에 매달˝려 있다. 그럼에도 화자는 여전히 어둠 훌훌 벗는, "난태생 부활을 꿈˝꾼다. 온통 사족 뿐인 세상을 훌훌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열망일지도 모른다.
또한 시인은 시조 「블랙박스」를 통해 "봉인을 뜯는 순간 내장이 쏟아˝지며 “당신의 검은 음모가 꼬리 물고 재생”되는 장차관들의 비리 의혹과 부정청탁에 관한 진의를 파헤치는 현실을 예리하게 담는다. 그런가 하면, 「요양원 일기」에서는 "흐릿한 눈동자에 갇힌/ 새 한마리″에 비유된, 마지막 생을 붙든 여인을 바라보기도 한다. 「폐업하는 날」에서는 생존을 위해 맨살의 시멘트벽에 "말없이 달라붙은 담쟁이"의 저 안간힘들을 보며, 그 속에서 “수많은 잎사귀를 끄는"푸르른 숨소리를 듣기도 한다.
김덕남 시집의 미학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삶의 이야기를 낯설게 느껴지리만치 섬세한 감정과 서사로 독자를 압도하는 데 있다. 타자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만이 자기 안의 놓인 여럿의 자기를 만날 수 있다. 김덕남의 시편들이 그 길을 보여준다.
이송희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활성화지원금 및 <한국문화예술 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 받음,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과 오늘의시조시인상, 무등시조문학상 받음, 시집 '환절기의 판화, 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 「이태리 면사무소, 평론집 눈 물로 읽는 사서함」, 「아달린의 방』, 「길 위의 문장」, 「경계의 시학 등이 있음, 현재 전남대에 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
- 《시조시학》 2018.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