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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는 동화> 숫벌 지다.
삐들 치(비둘기 고개) 냇가 큰 버드나무 아래 왼쪽에서 다섯 번째 벌통 이것이 숫벌 봉달이의 집 주소입니다.
숫벌 봉달이는 태어 난지 이제 17일 째 되는 애기 숫벌입니다. 애벌레 양육 소 동기들인 일벌들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마치고 이제 막 밀랍 생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애벌레 양육소가 아닌 그야말로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이 승진하고 성장 하는 과정들이 부러운 숫벌 봉달이는 속이 쓰립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때린 비상 메시지도 무시해 버렸습니다. 보나 마나 녀석들은 새로 맡은 일이 어떻고 너무 힘이 들어서 날개 죽지에 힘이 하나도 없다느니 앞발에 잔털이 자라서 이제는 제법 모양새를 갖추었다며 면서 의시 댈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숫벌 봉달이는 할일이 없습니다. 점심 배식은 있다가 2-3시간은 더 있어야 될 일이고 부서를 배속 받지 못했으니 어디 가서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또 외출이 가능한 출입증을 받지 못했으니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저 배가 고플 때 까지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때였습니다.
벌들 전용 통신망인 향기 주머니에서 소집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했던 봉달이는 신이 나서 공동회의 장소인 2층 집합실로 갔습니다.
집합 실은 4천여 마리나 되는 숫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몇몇 아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숫벌들이 더 많은 것으로 봐 각 구역별로 나누어져 있던 숫벌들이다 모인 자리인가 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 회의가 무척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다들 긴장한 얼굴이 역력했습니다. 봉달이도 흥분되고 긴장이 되서 턱이 달달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아~ 아!”
3층 장로벌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2층에 여왕벌이 있다면 3층은 장로회 벌들이 있습니다. 수자 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실질적으로 삐들 치(비둘기 고개) 냇가 큰 버드나무 아래 왼쪽에서 다섯 번째 벌통을 움직이는 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왕벌은 알 낳기에 바빠 벌통마을을 이끌어 나갈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장로회 벌들이 중요한 모든 일들을 결정합니다. 장로회 벌들은 색깔은 약간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일벌들에 비해 눈이 크고 사납게 생겼습니다. 그 외모만으로도 위엄과 권위가 서는 듯합니다.
“에~
병정벌들은 장내 질서를 유지시켜 주시고 외부의 어떤 벌들도 이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을 통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숫벌 여러분들은 다들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왕 폐하로부터 숫벌 여러분들에게 아주 특별한 지시가 내려 졌습니다. 95일생 이후의 숫벌들은 특별 훈련에 돌입하라는 명령이십니다. 95일 이후 출생 숫벌들은 후배 숫벌들의 특별한 운동을 돕는 것으로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한 마리의 어른 숫벌 팀장에게 어린 숫벌 5마리가 배속될 것입니다. 어른 숫벌들은 팀장 번호를 출입문에서 왼쪽 창구에서 받아 가시고 어린 숫벌들은 자신에게 배속된 팀장 및 훈련 장소 확인은 출입문에서 오른쪽 창구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훈련?
봉달이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출입문 오른쪽으로 가 안내 벌이 발라주는 끈끈한 약을 가슴에 발랐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 신분을 확인하는 인식표이기도 합니다. 절대로 이 인식표에 물을 뭍이 거나 비를 맞히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일벌들에게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끈끈이 액과 같은 냄새를 가진 숫벌은 숫벌 방 3-2-(a)방에 있는 100일차 숫벌이었습니다.
100일 차 숫벌 팀장 밑에
35일 차 비 오는 날 12번
30일 차 번개 치는 날 30번
25일 차 맑은 날 새 꽃밭 15번
19일 차 이른 아침 6번
17일 차 봉달이 25번
이렇게 다섯 마리의 벌이 팀장이라는 어른 숫벌 밑에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벌들의 이름은 애벌레 실에서 유충이 벌로 탈바꿈 할 때 주위 일기상태를 보고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는데 그것이 곧 벌들의 이름입니다. 봉달이 이의 이름 또한 주위 환경을 보고 지은 이름입니다.
글쎄 봉달이 태어나던 날 벌통을 관리하는 주인아저씨가 막걸리를 담아 왔던 검은 봉지가 바람에 날려갔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봉지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봉달이 봉달이하고 외쳤고-이 지역 사투리로 봉지를 봉달이라고 부른다.― 보모벌이 그 말을 듣고는 태어난 숫벌마다 봉달이라는 이름과 번호를 매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태어난 벌들의 이름은 제다 앞에 봉달이라는 명사가 붙었습니다.
“내 이름은 찬바람 78호 100일차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너희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추위가 엄습 했었다. 그 때 삐들 치(비둘기 고개) 냇가 큰 버드나무 아래 왼쪽에서 다섯 번째 벌통 마을은 많은 가족을 잃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남아 꿀벌 마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무서운 추위와 싸우며 비상하는 그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장로 회읜가 뭔가 허는 것들이 나를 현역에서 은퇴시키고 교관을 만들어 버렸다. 나는 지금도 나의 재심요청이 받아 들여 질것이라 믿는다. 95일차도 현역 교육을 받는데 누구보다도 건강한 내가 100일차라는 이유로 현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꿀벌 사회의 모순이고 현 지도부의 실책인 것이다.
에~~
그것은 그것으로 하고 너희를 맡은 이상 후임자가 올 때 까지 나는 너희를 철저히 훈련시켜 우리 팀원 중에서 비상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기초 체력을 다지는데 만전을 기할 것이다.“
찬바람 78호는 알 수 없는 말 들을 쏟아 낸다.
입에는 거품을 물었다. 무척 흥분되어 있었으며 격앙되어있었다.
봉달이는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교관이면 꽤 높은 자리인데 왜 그것을 실타 하고 훈련 생 벌이 되려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해 훈련을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면 삐들 치(비둘기 고개) 냇가 큰 버드나무 아래 왼쪽에서 다섯 번째 벌통 마을 꿀벌들 모두가 특별한 운동 이라는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먹고 노는 게 일이었던 숫벌들을 불러 모아 체력 훈련이라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상?
그것은 뭘까?
그것을 위해 숫벌이 있는 것이고 비상을 할 수 있는 숫벌만이 진정한 숫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찬바람 78호가 저렇게 입에다 거품을 무는 게 아닐까요?
봉달이는 훈련에 열중입니다.
4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여왕과 결혼을 하고 말겠다는 다부진 꿈이 봉달이에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벌 친구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벌침 하나에 목숨 걸고 죽도록 고생하는 일벌에 비해 봉달이 이의 신세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팀장 벌이 왜 그토록 훈련생 벌이 되려하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숫벌로 태어나 여왕벌과 결혼하고 싶다는 꿈이야 누군들 갖지 않겠습니까? 봉달이 만일 팀장이라도 분하고 원통해서 죽어버릴 것입니다.
찬바람 78호 팀장은 매일 장로회실로 찾아가 따집니다. 이제는 장로님이 아예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장로실 정문을 지키는 병정벌이 들여보내 주지를 않습니다.
오늘도 훈련을 마친 팀장 벌이 장로실로 찾아 갑니다. 그리고 정문을 막아선 병정벌과 승강이를 버립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모든 새끼 벌 들이 얼어 죽을 때 살아남은 찬바람78번이야……. 니들 같이 비리비리한 새끼들은 한 주먹감도 안 된 다구 알아. 멍청한 새끼들아…….”
팀장벌이 조금 이상합니다.
평소와는 몹시 흥분해 있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있습니다. 입에서는 이상한 냄새도 납니다.
“이런……. 인간들이 마시는 막걸리는 먹고 왔군!…….”
지나가던 늙은 병정벌이 혀를 찹니다.
그리고 많은 벌들이 근심어린 표정을 짓습니다. 봉달이 25번은 막걸리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팀장이 여러 벌들의 웃음꺼리가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막걸리를 담았던 검정 비닐봉지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막걸 리가 그렇게 나쁜 건가요?”
“세상에 나쁜 건 없단다. 나쁘게 먹으면 나쁜 거고 좋게 먹으면 좋은 거지…….”
“그런데 왜 벌들이 팀장님을 한심스러워 하죠?”
“글쎄다. 우리들의 통념이겠지……. 공동체의 생각 말이다. 너희 팀장은 우리들과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구나…….”
봉달이 25번은 늙은 병정벌의 말을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봉달이 팀장 그리고 팀원들끼리 생각이 틀린 적은 없었고 원하는 것이 다른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봉달이가 원하는 것을 더욱 간절히 원하는 것은 팀장이었으니까요…….
다음날 팀장 벌은 검디 검은 주검이 되었습니다.
봉달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싸늘하게 식어 있는 팀장의 주검 앞에 모두들 무심히 지나쳐 자기들의 일을 합니다. 어른 벌 아이 벌 그리고 심지어 같은 숫벌들까지 무관심과 무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자, 자 비켜 주세요.”
어디선가 일벌들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봉달이 30호가 보입니다. 며칠사이에 또 진급을 하였는지 이제는 앞자리에 서서 무리를 지휘합니다.
“어?! 봉달이 25번이구나……. 2층 3-6(a32)구역에 숫벌이 죽어 있다고 해서 걱정했었어.……. 니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고마워……. 그런데 환경반인 니가 여기 웬일이야?”
“죽은 벌 치우는 것도 우리 환경 반 일 이거든…….“
“환경 반?”
그랬습니다. 벌들의 사회에서 죽음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주위를 깨끗이 쓸고 닦는데 거치적거리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얘들아……. 어서 치우자……. 벌써 냄새가 날려고 그런다…….”
“잠깐만……. 우리 팀장님은 어디로 가니?”
“니 팀장? .……. 벌통마을 입구에서 곧바로 날개 짓 100번인데…….”
“거기가 어디냐고…….”
“개미마을…….”
팀장은 개미 마을 먹이로 던져지나 봅니다.
봉달이 큰 충격에 쌓였습니다. 팀장의 갑작스런 죽음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죽은 팀장을 개미 마을에 버리다니……. 아니 그것은 버리는 게 아니라 개미들에게 먹이로 주는 것과 같습니다.
-벌통 마을에서 죽은 벌의 시체는 개미굴에 던집니다. 그 대가로 개미들은 벌통 마을을 습격하지 않습니다.―
봉달이는 일벌들에게 끌려가는 팀장의 주검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멍이 든 팀장의 모습, 심지어 팀장의 가슴에는 병정개미의 벌침이 꽂혀 있는 것입니다. 병정벌의 창자가 벌침에 매달려 덜렁거리며 봉달이를 비웃습니다.
그렇다면!
그랬습니다. 찬바람 78번 팀장은 병정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여왕벌 아니 어쩌면 장로회 벌들의 지시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봉달이 가슴은 다시 터져버릴 것 만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봉달이와 팀원들은 각기 흩어져 다른 팀에 배속 되었습니다.
다만 봉달이와 이른 아침 6번은 한 팀장 밑으로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각 팀은 팀장 밑에 다섯 마리의 숫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팀장과 팀원이 짜여 지지 않는 숫벌들은 버리는 수로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봉달이네 팀은 그래도 운이 좋은 팀인지 모릅니다. 어쨌건 다시 팀을 배정 받았으니까요.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의 명령은 곧 법이다.
나의 지시는 여왕폐하의 지시고 장로회 의원님들의 의결 사항이며 더 나아가 우리 꿀벌 마을의 질서와 안위를 위한 것이다. 특히 너희 두 놈!
내가 지켜보겠다. 혹시라도 너희 전임 팀장에게 물이 들어 우리 꿀벌 마을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훈련을 게을리 하거나 훈련생들을 선동 한다면 우리 팀에서 퇴출 될 것이다. “
퇴출!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형벌입니까.
차라리 싸늘한 주검이 된다면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꿀벌 사회에서 쫓겨난다는 의미는 굶어 죽으라는 것입니다. 굶주린 숫벌들은 벌통 마을을 배회 하거나 다른 벌통 마을에 숨어들어 꿀을 도적질 하겠지요. 그러다가 들키고 그리고 매를 맞고 벌침에 찔려 죽을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면 다시 다른 벌들처럼 개미마을에 버려져서 개미들의 밥이 될 것입니다.
‘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다면 내가 우리 팀장님의 한을 풀어 드릴 거야…….
꼭 여왕페하와 결혼을 해서 비참하게 죽어간 찬바람78 팀장 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겠어!……. ‘
“야…….
오늘 배식부터 약초 꿀이 나온 댄다!…….
너 약초 꿀이 뭔 줄이나 아니? 약초 꿀은 말이야……. 산도라지, 더덕, 엉겅퀴, 산 작약. 백봉령 등에서 딴 꿀과 아카시아에서 딴 꿀을 적당히 섞어서 만든 아주 귀한 거라고……. 정문 앞을 지키는 정예 병정 일벌들만 먹는다는 그 스테미너 식이라니까……. “
이른 아침 6번이 밀랍을 우물거리며 신이나 있었습니다.
“선배? 선배는 그게 그렇게 좋아요?”
“왜? 너는 띠껍냐? 내가 이렇게 말 하는 게 못 마땅하냐?
빙신 같은 새끼…….
우리는 어차피 소모품이야 알아?
지금 저들은 여왕의 침실로 밀어 넣을 씨종자를 구하는 거라구…….
여기서 문제…….
씨종자를 구한 다음 필요 없는 씨종자는 어떻게 할까요?
빙고~ 끽~~~이지“
봉달이는 숫벌 자신을 비하하는 이른 아침 6번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봉달이는 이른 아침 6번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후려치려 했습니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살의를 느낍니다.
“미친 새끼 날치려고?
넌 날 못 칠걸? 너나 나나 적색리스트(요주의 인물)로 올랐어! 그 빌어먹을 팀장 때문에 말이야…….
이제 우린 사소한 잘못도 퇴출에 이유가 되지……. 여왕의 침실로 기어들어 가고픈 네가 날 때리고 벌통 마을에서 쫓겨나고 싶겠니? “
“더러 븐 새끼 배 터지게 처먹고 데져라…….”
“물론 그럴 거야……. 쫓겨나기 전에 마니 처먹어 둘 거라구 배가 터지게 말이야.
하하하
하하…….“
이른 아침 6번은 휘적휘적 걸어갑니다.
봉달이는 이른 아침 6번을 죽일 듯이 씩씩거리지만 봉달이 마음이 텅 빈 듯 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과연 봉달이는 여왕과 혼인 비행을 할 수 있을까요?
봉달이 받는 훈련은 정말 고된 것입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 훈련은 짜여 진 프로그램에서 도태 한 벌은 무조건 퇴출입니다.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직 훈련생 이라는 의미고 식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퇴출 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봉달이는 식당에 갈 때마다 행여나 제재를 당하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딱히 성적이 공개 되는 것도 아니고 서열이 메겨지는 것도 아니니 어느 날 갑자기 식당 출입이 금지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매일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숫벌은 미쳐서 날 뛴 적도 있습니다.
어떤 숫벌은 병정벌에게 달려들어 침을 가슴에 꽂고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숫벌은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치기도 합니다.(훈련생 숫벌은 도망을 쳐도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곧 굶어죽거나 다른 벌통 마을에 들어가 도둑질 하다가 벌침에 찔려죽습니다. )
4천 마리나 되는 훈련생 숫벌이 도태 데고 다시 어린 숫벌로 충원되는 일이 반복 되면서 낮 익은 얼굴들이 사라져갑니다.
‘있다 저녁에 보자…….’
봉달이 30번의 연락입니다.
한 동안 소식이 뜸하던 봉달이 30번에게서 연락이 오다니…….
아마 또 승진을 하거나 새로운 보직을 임명 받았나 봅니다.
봉달이 30번은 밀랍을 질겅질겅 씹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6번처럼 불량스러워 보입니다. 봉달이는 이른 아침 생각이 나자 또 심기가 불편해 집니다.
“너는 밀랍이 그렇게 마싯냐?”
“머싯잔아…….”
“머싯 긴……. 불량스럽게만 보이 그만……. 근데 왜 불렀어? 또 승진했냐?”
“어떻게 알았어? 야 너 귀신이구나!…….”
“미친놈……. 너 승진할 때만 나 부르잖아…….”
“크크 그랬던가?…….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지……. “
“뭐가?”
“내가 3층 32-5-(a)구역에 경비를 서고 있거든 그런데 말이야 거기에 누가 있는 줄 아냐?”
“………….”
“크크크
새로 태어난 여왕님이 있어…….
이제 20일 찬데 와……. 몸매가 쥐긴 다……. 함 볼래?”
봉달이 30번이 25번의 손을 끌고 갑니다. 봉달이의 대답은 듣지도 안고 말이죠!…….
사실 봉달이도 싫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새끼 여왕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봉달이 30번은 제법 지위가 높은가 봅니다. 봉달이 25번을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새끼 여왕 가까이 까지 데리고 갔으니 말입니다.
봉달이는 새끼 여왕벌이 있는 방 바로 앞에까지 갔습니다. 새끼 여왕벌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숨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새끼 여왕벌도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몸에 무거운 것을 들고 날개 짓을 합니다. 봉달이 하는 체력 훈련과는 조금 다른 훈련기법입니다.
“여왕벌은 왜 저런 훈련을 하고 있는 거지?”
“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 이 운동을 해야……. 꽉 쪼이는 맛이 있지 안하것냐?“
“지롤~……. “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봉달이 30번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날 밤 봉달이는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자꾸 어린 여왕벌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봉달이는 밖을 배회 해 봅니다. 깊은 밤을 이용해 밖에 나가 산책을 해 보기도 하고 잠을 청하기 우해 땀 흘려 운동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새끼 여왕벌의 아름다운 자태입니다. 귀족적인 몸동작이고 우아한 날개 짓입니다.
“안 돼~~ 안 돼~~악~~!”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은 자 둬라……. 그래야 힘을 쓸 수 있다.”
옆 자리에서 잠자던 비 오는 날 253번이 충고 합니다. 잠자리에서 더 이상 뒤척이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담겨 있겠지요. 고된 훈련생이 잠이라도 푹 자 둬야 내일 맡은 훈련을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봉달이는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합니다. 잠이 들라치면 또 악몽에 시달리고 잠이 들라치면 또 악몽에 시달립니다.
찬바람 78번 팀장이 여왕벌과 혼인비행을 하는 꿈을 꿉니다,
이른 아침 6번이 여왕벌과 혼인 비행을 하는 꿈을 꿉니다.
수많은 숫벌들이 여왕벌에게 덤벼들어 유린하는 꿈을 꿉니다.
등에 맺힌 식은땀이 날개깃을 타고 떨어집니다.
“숫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벌들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내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왕벌을 다른 숫벌에게 주고 싶지가 않다. 내 눈으로 그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으리라…….”
봉달이 25번은 여왕벌처럼 무거운 것을 붙들고 날개 짓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몹시 어설프고 이상했지만 하면 할수록 날개에 힘이 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런 쓰 잘 데기 없는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니까.
누가 여왕벌과 혼인비행을 하느냐는 누가 더 높게 빨리 올라가느냐로 결정 된다더라.……. 그러니까 체력 훈련도 체력 훈련이지만 날개에 힘이 누가 더 많으냐, 출발 스피드를 누가 잡느냐로 혼인비행의 성공을 결정짓는 다구……. 그러니까 너는 여왕벌이 하는 운동을 똑같이 따라해……. 체력하면 너도 떨어지진 않으니까 여왕벌의 훈련을 똑같이 따라한다면 니가 피날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야……. “
고된 훈련 속에서도 봉달이는 저녁이면 새끼 여왕벌을 훔쳐봅니다.
어린 티가 역력하던 새끼 여왕벌이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갑니다. 가슴도 나오고 허리도 잘록해집니다. 조금 씩 조금 씩 성장해 가는 모습들을 하루라도 지켜보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가서 손도 잡아 보고 볼도 비벼보고 싶은 충동에 몸 둘 바를 모릅니다. 그러다 또 좌절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그녀를 4천 마리나 되는 숫벌들과 함께 탐내고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듭니다. 봉달이 25번이 밤하늘을 향해 소리질러봅니다. 그리나 그 소리는 메아리 처 돌아오지 않습니다.
‘보고 싶다 여왕벌.
갖고 싶다 너를~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나에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
여왕벌이 무럭무럭 자라나 이제 어엿한 처녀티가 납니다. 보면 볼수록 가슴이 뜁니다. 숫벌들을 독려라도 하듯 숫벌들이 훈련하는 장소에 새끼 여왕벌은 자주 나타납니다.
하루는 숫벌들의 훈련장에서 화려한 비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곱고 아름다운 자태가 바람결에 날리며 하강을 할 때 숫벌들은 미칩니다. 숨을 헐떡이며 입에다 거품을 무는 놈도 있고 숫벌의 상징을 두드리며 신음하는 놈도 있습니다.
그걸 보는 봉달이는 속이 터집니다. 이미 봉달이 이의 마음속에는 여왕벌이 자신의 여자인 것입니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여자…….
이미 여왕벌은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집을 만들어 떠났습니다. 그러니 머지않아 혼인비행이 있을 것입니다. 잠시라도 여왕벌의 자리는 비울 수가 없으니까요. 봉달이는 혼인비행 날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조바심이 납니다. 어린 여왕벌을 다른 숫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새끼 여왕벌이 다 큰 처녀 여왕벌이 되고 그 여왕벌을 다른 숫벌들이 유린하는 악몽을 밤마다 꿉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도록 말입니다.
오늘도 봉달이는 고된 훈련을 마치고 여왕벌을 훔쳐보기 위해 여왕벌의 숙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봉달이 30번이 없습니다.
또 다른 곳으로 승진 배속된 모양입니다. 여왕벌의 숙소는 그 동안 얼굴을 익혀온 벌들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 봉달이 25번은 30번에게 긴급연락을 했습니다. 이제 막 저녁을 먹었다는 봉달이 30번은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미안해 25번 너무 바빠서 미리 연락을 못했어.…….”
“어떻게 된 거야…….”
“새 여왕님이 거처할 궁전 건립과 그 주변 경호 책임을 맡다 보니까 정신이 없었어.…….”
“그게 아니라……. 니가 아니면 나는 여왕벌을 훔쳐볼 수 없잖아…….”
“그게……. 아이 씨……. 이걸 얘기해야 하나?~~”
“뭔데.”
봉달이 30번이 오늘 들은 얘기를 25번에게 들려줍니다.
이때까지 봉달이 25번은 자기 혼자만이 여왕과 결혼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숫벌들이 여왕벌을 흠모하거나 좋아 하는 표시를 하면 화를 내고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여왕벌은 3~4마리의 숫벌과 결혼을 한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말입니다. 한 여자가 한꺼번에 여러 명의 남편을 맞는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입니다. 봉달이 30번이 주섬주섬 얻어 들은 얘기들을 주절거리고 있지만 봉달이 25번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너무도 황당한 얘기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게 뭐야……. 여왕은 남편이 네 명이나 된단 말이야? 숫벌 하나 만으로는 부족하대?”
“그게……. 여왕은 알을 낳아야 하잖아……. 그래서 숫벌 한 마리로는 부족 하대……. “
봉달이 25번은 자신이 숫벌이 된 것을 저주 했습니다.
“아~~~!”
그리고 가슴팍에 돋아난 털을 뜯으며 소리 질러 불렀습니다.
“산수유, 산수유…….”
어린 여왕은 이름이 없습니다.
여왕벌이 벌집에 있을 때는 새끼 여왕이라 부르고 여왕벌이 분봉하여 나가면 어린 여왕이라 부를 뿐입니다. 그러나 봉달이에게는 여왕벌의 이름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봉달이 지어준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봉달이는 어린 여왕을 처음 본 순간 산수유 꿀이 생각났습니다. 일벌이 물고 들어와 한 방울 나누어 주었던 산수유 꿀……. 그 향긋한 냄새가 어린 여왕에게서 났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봉달이는 어린 여왕을 산수유라 불렀습니다. 봉달이 짓고 봉달이만 혼자 부를 수 있는 이름 그 이름은 산수유였습니다.
봉달이 30번이 자리를 뜹니다.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기도 하지만 봉달이 25번 옆에 있는 다고해서 딱히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혼자 있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일 수 있으니까요.
‘너희들은 여왕폐하가 혼인비행(여왕벌은 혼례를 치르기 위해 높이 치솟아 날아오른다. 가장 힘 있고 능력 있는 숫벌만이 여왕을 따라 올라 갈수 있으며 그들만이 여왕과 짝짓기를 할 수 있다.)을 하는 동안 하늘의 무법자(새)들이 여왕폐하를 잡아먹으려 든다면 너희들이 달려들어 하늘의 무법의 먹이가 되어라!
우리는 하늘의 무법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여왕폐하 대신 너희들이 그 먹이가 되는 것이다. 너희는 여왕폐하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 너희가 대신 죽음으로서 여왕폐하는 짝짓기를 할 수 있고 여왕폐하가 짝짓기를 해야 벌통마을은 영원할 것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왕 폐하가 짝짓기를 끝내고 난 다음, 너희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 벌집 마을의 번영을 위하여 혼인비행에 성공하지 못한 숫벌들을 우리의 무리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들을 살려둔다면 우리들의 겨울 양식을 그놈들이 다 먹어 치울 것이다. 그러니 단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여왕폐하의 호위병인 너희들이 그들을 우리 벌집 마을에 되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경계경비를 서야 할 것이다. 알겠나! ‘
‘예 알겠습니다.’
봉달이 30번도 배에 힘을 주고 복창합니다. 봉달이 30번은 깨달았습니다. 봉달이 30번이 내 쫓아야 할 숫벌들 속에 깨 복 쟁이 친구 봉달이 25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제발 봉달이 25번이 혼인비행에 성공한다면 그런 불행한 일은 없겠지만 만일 성공하지 못한다면 ……. 봉달이 30번의 손으로 친구를 내쫓을지도 모릅니다. ‘25번 성공해라 넌 꼭 성공해야 한다.’
‘근디 사령관님……. 질문 있는 디요! ‘
‘뭔가~?’
‘혼인 비행에 성공한 벌들은 어쩐 다요? 그~~ 그러니께 그분들의 경비는 누가 선대요?‘
‘걱정하지 마라…….
그놈들은 여왕폐하와 혼인한 대가로 내장이 터져 죽으니 너희들이 따로 경비를 서거나 내쫓을 필요가 없다.’
‘어메……. 짠 헌거……. 숫벌들 신세가 부럽다고 한탄 했드만 항개도 부러울 것이 없고 마이…….’
항개도 부러울 것이 없고 마이........
항개도 부러울 것이 없고 마이................
항개도 부러울 것이 없고 마이...............................
의미 없이 내뱉는 병정벌의 말이 여울목처럼 봉달이 30번의 귓가에 울립니다.
봉달이 30번이 25번을 멀리서 지켜봅니다. 봉달이 25번이 울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꺼억, 꺼억 거리며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그렇게 울고 있습니다.
‘내일이 혼인비행 날이라고 알려 줘야하나?’
그렇지만 그것은 극비사항입니다. 요 몇일 사이에 혼인 비행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지만 날짜와 시간을 외부로 발설하는 것은 여왕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사령관 벌은 보안에 특별한 엄명을 내렸습니다.
봉달이 30번은 뒤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숙소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병정벌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숫벌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인원 파악에 들어간 숫벌의 수는 3천8백 마리 정도 되었습니다. 이제 숫벌들은 팀장에 의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팀장 숫벌은 보이지 않습니다. 봉달이 30번도 팀장 숫벌의 거취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다만 혼인비행에 앞서 처치되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병정벌들이 숫벌들을 지휘 통제 합니다. 숫벌들은 천여마리의 단위로 나누었습니다. 봉달이 25번은 마지막 단위의 무리에 배속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여왕 폐하와 혼인비행을 할 것이다. 혼인 비행이 끝난 조는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밖에서 대기 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제 1열 출발~~”
숫벌들은 발을 맞추어 구령을 외치며 제 1열의 숫벌들이 벌통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봉달이 25번의 눈에서 자꾸 눈물이 납니다. 참으려 해도 참으려 해도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1열의 숫벌들이 빠져 나가고 잠시 후 제 2열의 숫벌들이 빠져나가고 제 3열의 숫벌들이 빠져 나갑니다. 이제 봉달이 속해 있는 제 4열 숫벌들만 남았습니다.
“제 4열 출발~~”
봉달이 속해 있는 줄은 4열의 다섯 번 째 줄입니다. 앞선 줄의 벌들이 무리지어 날아오릅니다. 온통 하늘이 시커멓게 보입니다. 숫벌들로 하늘을 덮은 것처럼 보입니다.
봉달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봉달이는 날아오릅니다. 병정벌들이 안내 하는 대로 하늘로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저공비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왕벌은 보이지 않습니다.
봉달이는 이제 선두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앞에 몇 마리의 숫벌이 있기는 하지만 평소 체력이 약한 숫벌들이라는 것을 봉달이는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는 않습니다.
벌통 마을 주변을 맴돌고 맴돌아 감나무와 뽕나무를 지나고 높다란 미루나무 앞에 왔을 때 여왕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정벌들은 곧바로 여왕벌에게로 인도하지 않고 계속해서 경주를 시킵니다. 여왕벌을 발견한 숫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쫓아옵니다.
미친 듯이 입에 거품을 물고서 봉달이 25번을 추격합니다. 쫓기고 쫓기를 몇 번 드디어 봉달이는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여왕벌과 혼인비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봉달이는 여왕벌에게로 인도 되었습니다.
여왕벌은 전신이 땀에 젖어 있습니다. 벌써 몇 번의 혼인비행으로 전신에 피로는 극에 달해 있습니다. 봉달이 여왕벌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산수유~”
“그것이 무엇이냐?”
“당신의 이름…….”
“내 이름? 나는 이름이 없다. 나는 여왕일 뿐이다.”
여왕벌은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도 그 고귀함과 귀족적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왕벌은 죽으면서도 저런 모습으로 죽으리라…….
“어서오너라……. 시간이 없다……. 이제 곧 해가 지리니 해가 지면 우리의 사랑을 이룰 수가 없구나.…….”
봉달이는 여왕에게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여왕의 냄새를 맡습니다. 달콤하고 향긋한 여왕의 냄새 그리고 그 냄새는 따뜻하며 부드럽습니다. 여왕이 봉달이 이의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그러자 봉달이는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리고 숫벌의 상징이 배안에서 꿈틀거립니다.
“어서……. 너의 것을 나에게 다오…….”
“내 이름은 봉달이25번, 당신이 유충일 때부터 보아 왔지. 그리고 정말 당신을 사랑했어.”
“너는 이름에 집착하는구나.……. 그러나 어찌 한다……. 니 이름이 무엇이든 나에게는 상관이 없구나.…….”
“똑똑히 들으라고……. 내 이름은 봉달이 25번 89일차야……. 나만이 당신을 갖고 싶어 몸부림 쳤던 봉달이 25번이라고…….!”
봉달이는 자기의 이름을 외치며 숫벌의 상징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봉달이 아랫배는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여왕벌은 봉달이 25번의 상징을 자기의 채정낭(採精囊-정자를 모아두는 곳-)에 집어넣어 숫벌의 유정을 받습니다.
"봉달이 25번 이제 네 할일은 끝났구나.……. 네가 나에게 넘겨준 씨로 일벌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너와 나의 자식들이 우리들의 벌통 마을을 잘 보존하고 지킬 것이다. 잘 가거라…….“
봉달이는 아랫배가 찢어지고 내장이 뽑혀나가 더 이상 날갯짓을 할 수 없습니다. 기운이 빠져서 숨쉬기도 힘이 듭니다. 여왕벌은 봉달이를 버리듯 밀쳐내 떨구어 버리고 병정벌들의 호위를 받으며 바람처럼 벌통 마을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공식적인 혼인비행 절차가 모두 끝났습니다. 벌통 마을을 지키는 병정벌들이 숫벌들의 출입을 막습니다. 1열 2열 3열 4열에 속해 있던 숫벌들은 벌통마을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힘을 합쳐 대항하자고 일어섭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숫벌입니다. 병정벌 처럼 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벌처럼 꿀을 딸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봉달이 25번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버림받은 숫벌들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가? 삶의 목적을 이루었으니까?’
봉달이 떨어진 곳은 삐들 치(비둘기 고개) 냇가 큰 버드나무 아래 왼쪽에서 다섯 번째 벌통에서 약간 떨어진 개울가입니다. 생전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무척 아름다운 곳입니다.
“힘드냐?”
“넌 ?”
이른 아침 6번 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6번은 봉달이와 조가 바뀐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퇴출 된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 있다니…….
“난 네가 성공할 줄 알았다……. 봉달이 25번”
“어떻게……. 어떻게…….”
“내가 속한 조는 2조인데 나는 혼인비행에 참가하지 않았어?……. 성공하지도 못할 꺼 뭐 하러 생고생이냐……. 그래서 네가 성공하나 못하나 그것만 지켜봤지……. 축하한다. 봉달이 25번”
“이게 축하 받을 일이냐?
사랑하는 여자를 혼자 차지하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내 꼴이 축하 받을 일이냐. 그리고 저 꼬락서니들을 봐라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저렇게 버려도 되는 거냐…….”
“인마 그건 내 대사야 네 대사가 아니라구…….
이게 죽을 라고 그러니까 정신마저 못 차리네.……. 임마 그래도 넌 저 벌통 마을 4/1은 네 새끼들일 꺼 아냐……. 사내로 태어나 그 정도면 됐지 뭘 바래……. 그게 네가 할 일이었다고……. 네 자식을 만들어서 벌통 마을이 보존되는 것 그게 너와 나 그리고 여왕 저 병정벌, 일벌들이 살아있는 목적이야…….”
봉달이의 내장이 터져 바닥으로 쏟아져 역한 냄새가 납니다. 이른 아침 6번은 봉달이 숨을 거둘 때 까지 봉달이를 지킵니다. 개미들이 봉달이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날카로운 어금니를 들어내 으르렁 거립니다. 그러나 개미들은 손쉽게 봉달이를 뜯어먹지 못합니다. 이른 아침 6번이 개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 무식한 놈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 있는 놈의 살점을 뜯어먹으려 하냐?
가라……. 저리 가라……. 불쌍한 놈 죽을 때 까지만 기다려라…….”
봉달 이의 죽음을 지키던 이른 아침 6번이 봉달이 죽자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이미 이른 아침 6번도 개미들에게 물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갑니다. 이른 아침 6번은 개울물에 떨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개울물에 떨어져 죽으면 최소한 살아 있을 때 개미들이 살점을 뜯어 먹지는 않을 테니까요.
개미들이 쏟아져 나온 봉달이 이의 내장을 꺼내 갑니다. 어금니로 질겅질겅 잘라 갑니다. 여왕의 목소리가 여울목이 되어 찢겨진 몸둥아리에 맴돕니다.
‘너는 이름에 집착하는구나.…….
그러나 어찌 한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든 나에게는 상관이 없구나.…….’
봉달이 시체는 분해되었습니다. 하나 씩 하나 씩 해체되어 개미굴로 가져갈 것입니다. 봉달이는 그렇게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으로 생을 끝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