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서 배치
1950년 8월 5일경 무더운 날 훈련이 종료되어 30일간 개성에서 인민군 교육을 받은 동기생 전원은 남한의 행정기관과, 도, 시, 군, 읍, 면으로 배치 받았다.
우리 일행들은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싸우라고 훈련을 받고 보내는 것이 아니고 남한에 내려가서 치안확보와 여수, 순천, 제주도의 4.3사건의 북한 공산당편 요원이므로 특수전 및 게릴라전을 펼치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고행문형은 충청도로 배치되고, 나는 전라남도 여수로 배치 받았고 내려가는 길은 충청북도 쪽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떠나는데, 1개 소대 30명씩 편성되었다.
소대장은 대원끼리 선출하였는데 인민군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자로 선발되었다.
소대장에게는 99식 장총 한 자루와 실탄 10발이 지급되었고 소대 밑에 또한 분대장 3명씩을 선발하였는데 분대장도 주체사상이 확고한 자로 선발하여 수류탄 각 2발씩 지급해 주었다.
1950년 8월 7일 부대에서 출발한 시간은 저녁9시쯤으로 무덥고 캄캄한 밤이었다.
행군에 앞서 인민군이 신고 있는 발싸개와 비누를 지급받고 발싸개에 비누를 칠하여 신은다음 농구화를 신었다.
개성에서 출발한지 3일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시 용산 부근이었는데 인민군주둔지 근처에 한국군비행기가 폭탄을 투하하면서 전쟁 중이었다.
인민군의 말에 의하면 용산에는 탄약고가 있어서 그것을 한국군이 폭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민군은 지상에서 야포로 비행기를 향해 쏘면서 대항했지만 비행기는 포탄을 투하하고 사라지곤 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우리일행들은 소대원과 같이 선발대를 따라 계속남쪽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
발싸개에 비누칠을 하고 철저히 준비하였으나 발바닥이 부풀고 다리도 아파서 행군하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솔자는 밤낮으로 행군을 강행한다.
서울지역을 벗어나서 어느 촌락에 도착하여 인민군사무실을 찾아가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쉬었다.
하루를 쉬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부대장 인솔에 따라 야간행군으로 남쪽으로 걸었다.
철로가 보여서 혹시 화물열차라도 있으면 탈 생각으로 걸었는데 마침 석탄을 운반하는 화물열차가 있어서 그 열차위에 타서 조치원에 도착했고 우리는 잠시 그곳 역내에서 인원점검을 받았다.
인솔자의 말은 이곳 조치원은 전투가 아주치열한 곳이니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경이었다.
내일이면 각자 배치 받은 지역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하였다.
조치원역 주변을 보니 인민군전차와 야포가 폭격을 받아 불타고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고, 민가 집과 건물들도 포탄폭격으로 불타고 부서지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밤 행군이 시작되었다.
나와 고행문형은 일행과 같이 걸었다.
시가지를 벗어나 논두렁을 따라 일렬종대로 걷고 있는데, 가까운 곳에서 기관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총알이 빨간 불빛을 가르면서 우리 앞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열이 흩어지면서 논두렁에 엎드렸다.
인민군과 국군의 교전인지 우리를 향해 국군이 쏘는 것인지, 인민군이 우리를 향해 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앞뒤에서 같이 걷던 고행문형도 안보이고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었다.
어둠속에서도 우리가 걷고 있던 방향으로 뛰어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기관총소리는 주변과 뛰어가는 사람을 향해 계속 난사한다. 총알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린다.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포로가 될지도 몰라 계속 낮은 포복자세로 앞을 향해 기어갔다.
총소리가 조금 멈추는 틈을 타 뛰기도 했는데 옆에서 누군가 “아이쿠!”하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아비규환 지옥이란 이런 모습을 말하는가?
칠흑 같은 밤이라 사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알수가 없었고, 고행문형은 어디로 갔는지 논두렁에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형!”“형!”하고 여러 번 불러보았지만 형의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엎드린 채 앞을 보니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우리 일행으로 알고 그 사람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관총소리는 멎었고,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 묵묵히 걸어간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도 출발해서 5시간쯤 된것 같다.
어느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이 밝아오고 얼굴을 분간 할 수 있는 이른 아침에 대원들을 보며 고행문형을 혹시나 하고 찾았으나 없었다.
처음 전라남도 여수지역으로 배속 받을 때는 고행문형과 같이 행동하다 전쟁이 끝나면 같이 고향으로 가자고 굳게 약속했는데,
기습공격을 받을 때 논밭에서 쓰러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고 같이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격려도해주곤 했는데 앞으로는 혼자서 어떻게 지낼 것인가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였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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