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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2장 소제, 레위기 3장 화목제
레위기는 부정적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성경항해의 암초, 고비사막, 깔딱고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가져보자.
레2장 소제
레3장 화목제
소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 |
소제의 예물
“누구든지 素祭의 禮物”(레 2:1): 하얀 제물 하얗다. 소(素)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 개정)
“"나 주에게 곡식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고운 밀가루를 제물로 바치는데, 거기에 기름을 붓고 향을 얹어서 바쳐야 한다.”(레 2:1, 새번역)
“어떤 사람이 {주}께 음식 헌물을 드리려거든 그는 고운 밀가루를 자기의 헌물로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은 뒤”(레 2:1, 킹흠정)
“누구든지 주께 음식제사를 드리고자 하면 그의 제물은 고운 가루로 할지니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다 유향을 놓아서”(레 2:1, 한글킹)
““‘When anyone brings a grain offering to the Lord, their offering is to be of the finest flour. They are to pour olive oil on it, put incense on it”(Lv 2:1)
““‘When anyone brings a grain offering ”(Lv 2:1, NIV11)
“ meat offering :”(Lv 2:1, KJV)
히브리 원어에는 희다는 의미가 없다.
1600년대 meat가 고기가 아니라 음식이었다. 짐승제물이기에 meat offering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히) 민하
2. 성경에서 가장 먼저 사용된 용례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3-5)
제물: 히) 민하이다.
H4503 מִנחָה 민하 minchah 선물, 공물, 제물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10회 나온다.
(a) 민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을 의미한다. 민하는 야곱이 에서에게(창 32:14-22, 창 33:21),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에게(창 43:11, 창 43:15, 창 43:26) 드린 예물(선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민하는 우월한 사람, 특히 왕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세속적 배경에서 사용되는데, 이는 그 사람에 대한 존경 혹은 복종의 태도를 나타낸다.”-베들레헴성경 원어사전
원래 민하라는 단어는 가인과 아벨의 제물이다. 꼭 곡물제물로 제한 되는 것은 아니다.
레2장 제사제도를 통해 곡물제물로 제한된다.
3. 소제도 속죄기능이 있는가?
□ 그러면 곡물도 희생제물인가? 속죄기능이 있는 희생제물인가?
모든 제물에는 피가 있어야 하는데,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부사- 거의가 있다. 피흘리지 않는 속죄예물이 있다는 의미이다.
“In fact, the law requires that nearly everything...”(Heb 9:22)
희생- 죽인다는 의미가 없다. 사크라.
sacrifice 어원적 의미: 거룩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이지 죽인다는 의미가 없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
소제의 예물: 레1:2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2)
예물=고르반이다. 2:1 예물이 고르반이다.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레 2:3)
고르반이 되면 하나님께 드리진 것이다.
소제의 경우에도 똑 같이 고르반이 사용된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레 2:4)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레 2:5)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단어하나도 놓지면 안된다. 고르반이 사용되면 제물이다.
사상영감이 제한적 의미이기에 인정하지 않는다. 단어의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문학구조를 이해해야 정확히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
1) 번제물에도, 소제에도 고르반이 사용된다.
2) 속죄제에 언급 중에도 고운가루 고르반이 있었다.
“[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12]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레 5:11-12)
동물제물만 희생제물이라고 말할 수 없다.
히 9:22 거의 모든 제물이- 거의가 들어간 이유가 분명해 진다.
소제는 피없는 제물이지만, 속죄제물이었다.
창 4:3-5 가인과 아벨시대
4. 사람 사이에도 드려진 소제
성소시대에 민하로 성문화되기전에도 다른 경우에도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도 사용되고,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민하)을 택하니”(창 32:13)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창 43:11)
요셉의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려 갈 때,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한다.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려가라고 허락하면서 총리를 만나거든 이런 예물을 주라고 한다.
야곱이 형을 위하여 준비할 때도 민하이다.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삼하 8:1)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삼하 8:2)
다윗이 모압, 아람을 정복하면서 수비대에게 조공을 바치게 한다.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 8:6)
“솔로몬이 그 강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그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섬겼더라”(왕상 4:21)
조공을 바친다. =민하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바치는 예물, 선물, 조공도 포함된다. 일종의 복종, 의존의 의미이다.
5. 다른 제사와 함께 드려진 소제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레2:1 누구든지(네페쉬) , 남자나 여자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민 5:6)
레3:1 사람이 만일
소제는 다른 제물과 함께 드렸다.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레 23:12)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레 23:13)
5대 제사 외에 나머지 제사의 이름은 드리는 방법의 의미이다.
전제: 부어서 드린다.= 관제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개역)
솔로몬 성전봉헌 때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왕상 8:64)
화제: 태워서 드린다.
성경전체에서는 번제+소제+화목제가 함께 드려진다.
□ 번제+소제+화목제가 함께 드려질 때 무엇을 먼저 드리나?
번제이다.
소제는 번제를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소제만 드린 경우도 있다. 소제는 기본적으로 충성, 곡식을 드린다는 의미이다.
번제: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
소제:그리스도의 삶
번제로 드려진 다음에 삶을 산다.
6. 소제 드리는 다양한 방법
1) 첫 번째 소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
2) 화덕에 굽는다. 무교병(등치 크다), 무교전병을 드린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레 2:4)
3) 철판에 부치는 소제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레 2:5)
4) 냄비에 찌거나 삶는 소제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레 2:7)
5) 첫 열매를 드릴 때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레 2:14)
소제의 절차
1) 첫째: 고운 가루를 준비한다.
2) 기름과 유향을 첨가함
3) 굽거나 붙이거나 찌거나 요리한다.
4) 누룩과 꿀을 넣지 않아야 한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5) 소금을 넣는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6) 한 움큼을 화제로 기념물로 드린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2)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레 2:16)
유대인들은 이렇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서 예배를 드렸다. 오늘날 우리는 목회자로서 소제의 담겨있는 제물이 담겨있는 과정과 절차의 신학적 의미를 예배정신, 동기, 마음으로 담아내야 한다.
“제사장의 모든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레 6:23)
레5장까지 5대제사가 끝난다.
5:8-7장 드리는 규칙이 나온다.
번제의 규례
6:14-24 소제의 규칙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레 6:14)
“그 소제의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레 6:15)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레 6:16)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물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레 6:17)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레 6:18)
7) 제사장들의 소제물은 남겨서 먹어서는 안된다.
소제의 한움큼을 하나님께 화제로 드린 다음에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다.
“제사장의 모든 소제물은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지니라”(레 6:23)
일반인이 드린 소제물은 소제의 한움큼을 하나님께 화제로 드린 다음에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다.
제사장이 드린 소제물은 또 남겨서 먹어서는 안된다. (6:23)
7. 절차 속에서 발견하는 영적 의미
1) 고운가루 – 가루가 고와질라면 껍질을 벗겨야 한다. 거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은 사라지고, 성령으로 변화된 모습, 옥토이다.
가시덤불 다 사라지고 옥토같은 심령이 되어야 한다.
찬미 229장 살아계신 주의 영 부어 주소서
새로 지은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 주의 영 부어 주소서
나를 부수고, 나를 녹이고, 나를 다시 조형하고, 나를 채워주소서
고운 가루가 되게 해달라는 의미이다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Melt me, mold me,
Fill me, use me.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Chorus: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Melt me, mold me,
Fill me, use me.
Spirit of the Living God,
Fall afresh on me.
2) 기름과 유향
감람유,
유향은 예수님께 드려졌다. 동방박사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11)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막 14:3)
기름과 향이 한꺼번에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소제에 드리는 기름과 향
빻아지는 아픔다음에 성령으로 역사하는 기쁨, 유향이 포함되어야 한다.
향기, 냄새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4, 15)
3) 요리한다. -굽거나, 찌거나 부치거나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민 11:8)
만나의 요리때와 같다. 만나 하늘에서 왔다고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해서 먹었듯, 소제도 마찬가지이다.
말씀도 다양한 요리가 필요하다.
바울의 경험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1-23)
소신이 분명한 것하고, 고집은 다르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향기롭게 다가가는 유향같은 모습이다.
4) 누룩, 꿀을 넣지 않는다.
누룩과 꿀을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라
누룩 히) 흥분시키는 것, 날카롭게 찌르는 것의 의미이다.
부정적 의미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갈 5:9)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막 8:15)
허위, 과정 위선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8)
꿀=쾌락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잠 25:27)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2]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지며”(레 2:11-12)
12절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것- 히브리 원어, 헬라어 원어와 몰라도 아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방법
절대로 주석을 보지 말라. 마지막에 주석을 보라.
주어진 본문을 5개 이상의 역본으로 비교해 보라. 원어를 아는 효과가 그대로 발생한다.
그것은 누룩과 꿀이다.
누룩과 꿀을 사용하는 예배
“처음 추수한 것을 주께 바칠 때는 누룩이나 꿀을 바쳐도 된다. 하지만 불에 살라 그 향기로 주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주께 바치는 모든 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넣으면 안 된다.”(레 2:12, 쉬운말)
누룩과 꿀의 제한이 절대가 아니다. 초실의 의미가 다 덮어 버린다. 초실의 중요한 의미가 누룩과 꿀의 의미를 덮어 버린다.
소금을 쳐야 한다.
“[11]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1, 13, 개정)
소금은 반드시 쳐야했다.
왜 반드시 쳐야했나?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개정)
소금을 먹을 때- 식사할 때
고대근동의 의식중에 서로 계약을 맺은 다음에 반드시 지킨다는 언약비준 절차로 상대방의 소금을 각각 먹었다.
피차 반드시 지킨다는 언약의 불변성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개정)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제사의 배경속에서 소금을 치라.
드린 제물의 언약적 의미이다.
신약에서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방부제, 보존제의 의미를 가진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2)
“[8]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9]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8-9)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레 2:16)
8. 번제와 소제의 비교
2절을 비교해보자. 번제와 비교해 보라.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2)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9)
번제, 소제의 결과가 똑 같다.
이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의 곡물, 을 드림으로서 그 모든 것을 주시는 소유주,공급자 임을 고백한다.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주신다.
9. 소제의 정신 – 청지기 정신
소제를 드리는 우리의 정신- 예배속에 나타난 청지기 정신이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11)
소제의 정신을 신약을 표현으로 한구절로 한다면 벧전 4:10
청지기= 헬)오이코노모스 오이코스=집, 노모스= 법, economy 이커노미=경제, 청지기에서 경제라는 단어가 왔다. 선한 청지기, 소제에 담긴 영적 의미가 예배동기에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레위기 강의 02-02
지금까지 자원소제이다.
번제도 의무+자원번제가 있다.
소제도 자원소제, 의무소제가 있다.
의무소제는 제사장들이 반드시 드려야 하는 것이 있었다.
성소 첫째칸의 12덩이 떡, 소제이다.
레3장 화목제
peace offering: 화목이라는 단어가 슐라밈, 샬롬과 같은 어원이다. 화평, 평화, 화목하게 하다. 완전, 안전, 회복시키다. 모든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well-being offering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개정) |
“"‘만일 그 예물이 화목제이고 소로 예물을 드리려면 수컷이든 암컷이든 상관없이 흠 없는 온전한 것으로 여호와께 드려야 한다.”(레 3:1, 우리말)
“만일 그의 봉헌물이 화평 헌물의 희생물이며 그가 그것을 소 떼에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주} 앞에 드릴지니”(레 3:1, 킹흠정)
“"'If someone's offering is a fellowship offering, and he offers an animal from the herd, whether male or female, he is to present before the LORD an animal without defect.”(Lv 3:1, NIV84)
“And if his oblation be a sacrifice of peace offering, if he offer it of the herd; whether it be a male or female, he shall offer it without blemish before the LORD.”(Lv 3:1, KJV)
“"If your offering is a Peace-Offering and you present an animal from the herd, either male or female, it must be an animal without any defect.”(Lv 3:1, MSG)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화목)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창 37:14)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제바)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셸렘 shelem
화목제, 감사제
셸렘(명남)은 샬람(H7999)에서 유래했으며, '화목제 peace offering, 감사제 thank offering'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7회 나오며, 오직 암 5:22을 제외하고 모두 복수형 셸라밈이 사용되었다.
화목제의 절차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레 3:2), 콩팥과 기름과 간 꺼풀은 단 위에서 불사른다(레 3:4, 레 3:5, 레 3:14, 레 3:15).
셸렘의 특징은 그 제물의 나머지를 제사장과 제물을 든 예배자가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이다. 제물의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제사장의 몫이며(레 10:14), 그 나머지는 예배자와 그 가족, 손님(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레 7:15, 신 12:17, 신 12:18). 그리고 삼일 후에 남은 제물은 모두 불살랐다(레 7:17, 레 7:18).
레 7:12-17과 레 22:18-30의 규정에 의하면, 유교병과 무교전병이 수반된, 감사로 드리는 찬양의 셸라밈이 있었고, 헌신의 마음으로 자유롭게 드리는 자원의 셸라밈 및 이전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드리는 특별 서원의 셸라밈이 있었다. 이 삼자 간의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화목제를 드리는 특별한 시기는 국가적인 경축일(삼하 6:15-19, 왕상 8:63, 왕상 8:64), 칠칠절(레 23:15-19), 제사장의 성별식(레 9:18-22), 나실인의 서원식(민 6:13-20)이었다. 화목제를 드린 자들은 나손(민 7:17), 여호수아(수 8:31), 다윗(삼하 6:17, 삼하 24:25) 등이다.
셸렘의 의미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세 가지 사상 주류를 따르고 있다. 첫째로 셸렘은 샬롬의 은사 즉 완전과 번영의 축복 및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상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충만, 번영 및 인간들과의 평화가 샬롬 상태의 결과로서 기대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죄 용서 이상의 뜻을 함축한다.
둘째로 '친교 제사' communion sacrifice로 인지한 드 보(De Vaux)의 견해이다. 즉 희생 동물을 나누며 그 결과 식사를 둘러싼 교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그러므로 셸라밈은 여호와 '앞에서' 가지는 사회적 행사였다(결코 여호와와 "함께" 가진 것이 아님; 참조: 신 12:7, 신 12:18, 신 14:23, 신 14:26, 신 15:20).
셋째로 셸렘이 보통 제사 목록의 마지막에 온다는 사실로 인해(그러나 레 1장 - 레 5장의 기술에서는 그렇지 않음) 몇몇 학자들은 이것이 '완결적 희생제사' concluding sacrifice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 견해에서는 셸렘을 드문 피엘형 의미 '완성하다'에서 온 것으로 본다. 만일 이러한 개념이 옳다면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화평으로 언급한 것(예: 엡 2:14)은 보다 의미가 깊어진다. 그는 우리를 위한 궁극적 희생제물이기 때문이다(참조: 히 9:27, 히 10:12)(G. L. Carr).
(참조: BDB; TBT).
□ 제물, 제바가 들어가는 순간, 번제나 속죄제와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다를까?
제바가 들어가면 제물을 드리는 자가 고기를 먹는다. 제바가 들어가면 드리는 자 자신이 물질적으로 그 제물로부터 무엇인가를 돌려받는다. 다른 제사와 완전히 다르다. 제사장도 먹고, 드리는 자가 먹는다.
이것에서부터 다른 제물과 의미가 달라진다.
화목(슐라밈)=화평, 평강, 평온,
중국어는 평화라는 단어가 없고, 화평만 있다.
/한국어의 단어의 의미들/
평화: 전반적인 사회적 상태,
평안: 인간 사이의 관계의 평안
화평: 인간의 관계적 상태
평강: 주권을 가지신 분이 주시는 것, 평강의 왕
이 모든 것을 담아내는 히브리어 단어가 셀렘이다.
□ 화해, 화목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화목제라고 번역했을까?
소제는 우리말 성격으로 바꾼 흰 제물이다. 소제라는 단어자체 속에는 희다는 의미가 없다.
왜 화목제라고 번역했을까? 어떤 신학적 의미를 그 단어속에 포함시켰을까요?
의도적이고, 바르게 담아왔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만일]
①“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레 1:3)
②“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레 1:10)
③“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레 1:14)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레 3:6)
“만일 그의 예물로 드리는 것이 어린 양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레 3:7)
“만일 그의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레 3:12)
1:2,10,14 만일, 만일 ... 경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레 1:2)
번제는 당연히 드려야한다.
이런 3가지 경우로 드릴 수 있다. 소, 양과 염소, 비둘기로 드릴 수 있어,
3중에 골라서 형편대로 드릴 수 있다.
화목제의 4 경우> 형편대로- 네가 할 수 있는대로
3:1 소‘ 6양 7 어린양, 12염소
예물을 드릴 때 조차 섬세하게 표현되어 진다.
번제 3번:소+양과 염소+ 비둘기
화목제 :1소, 6양 7어린 양, 12 염소일 때
□ 번제는 비둘기있고, 화목제는 비둘기가 없을까?
반복될 때, 없을 때 질문해보고 의미를 찾아야한다.
번제와 비교하면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 번제는 반드시 수컷이다. 그런데 왜 화목제는 암+수컷이 가능한가?
양 “[3:9] 그는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그 기름 곧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염소 [14] 그는 그 중에서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레 3:9, 14)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 양에서만 사용
화목제로 양과 염소를 드리는데 , 양과 염소의 구분
화목제를 어떻게 드리는가?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레 3:2)여기까지는 번제와 절차가 같다.
드리는 과정이 다르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레 3:6)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레 3:16)
화목제 규정상 뒤로 가면 세분화된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레 3:16)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3:17)
다 하나님께 드리는데 3:16-17 기름을 여호와께 드린다.
화목제의 규레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물의 규례는 이러하니라”(레 7:11)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레 7:31)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레 7:32)
① 기름- 여호와께
② 가슴-제사장
③ 뒷다리-제사장
④ 나머지는 드린 자가 먹음 – 제바(제물)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레 7:15) 드리는 자가 그날에 먹을 것이요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레 7:16)
화목제물의 3종류(동기에 따른 분류)
1) 감사 15절
2) 서원화목제 16절
3) 자원화목제물 16절
왜 거룩함이 유지되는 것 이틀 유지됨, 남겨두지 말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레 7:15)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네다바)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레 7:16)
자원(네다바)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시 54:6)
낙헌제=서원제, 네다바, 같은 말이다. 즐거움을 드리는 제사 낙헌제이다.
서원: 열심히 살겠습니다.
낙헌제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2)나 낙헌제(3번째 제사)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민 15:3)
낙헌제=자원제이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서원화목제)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신 12:11)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신 12:12)
화목제는 여러 사람과 나눠먹는다.
드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제사장에게 나눠먹는 잔치의 시대이다.
여호수아, 사울,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시대에도 화목제는 늘 드려진다. 기본성격은 주 기능이 속죄의 의미를 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주 목적이다. 드리고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가 목적이다.
함께 나눠 먹는다.
□ 화목제물에 비둘기를 드리지 않는 이유는?
함께 먹는다. 즐거움+교제이다.
“화목제의 제물. 화목제로 하나님께 바쳐질 희생 제물로는 제물 드리는 자의 생활 형편에 따라 다음 세 가지 짐승이 가능했다. 즉 그것은 (1) 흠 없는 수소나 암소(1-5절), (2) 흠 없는 숫양이나 암양(6-11절), (3) 흠 없는 숫염소나 암염소(12-17절) 등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화목제의 경우, 번제의 경우와는 달리 희생 제물로서 비둘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아마 이것은 화목제의 독특한 특징인 제사 후 공동식사에 있어. 비둘기는 여럿이 함께 나누어 먹을 양으로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만나주석
화목제의 의미: 화해와 화목은 비슷하나 다르다. 화해는 서로 먹어졌던 사람이 한쪽이 일방이 어떤 방식으로 용서할 때 이루어지는 순간적 개념이다. 화목은 순간적 개념이 아닌 지속적 개념이다. 쌍방이 서로 주고 받아야 하는 개념이다. 악수를 내밀 때 받아줘야 화목이다.
신약에 카탈라게이다. 화목) καταλλαγη
αλλος 알로스: 다르다.
αλλασσω 알랐소, 바꾼다. 교환하다.
카탈라쏘= 맞교환하다. 명사형이 카탈라게, 맞교환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καταλλάσσω
카탈랏소 katallasso-
바꾸다, 화해시키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카탈랏소는 카타(G2596)와 알랏소(G236: 변하다, 변경하다, 바꾸다)에서 유래했다. 변화의 개념이 두드러지는 이 단어는,
(a) '바꾸다, 변화하다' change.
(b) '교환하다' exchange(Plat., Hdt.).
(c) '화해시키다' reconcile(Aristot.).
(d) '스스로 화해하다' reconcile(Xenoph.).”- 베들레헴 원어사전
하나님이 은혜 주신다. 우리는 작은 것을 드리면,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어떻게 같은 값으로 드릴 수 없으나 불가능하지만, 화목은 같게 여겨주신다.
수많은 은혜를 감사한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내 사정에 따라 드리면 같은 가치로 받아주셔서 맞교환해 주신다.
우리와 주신이 화목하게 된다.
누구와 화목하나? 음식의 대상을 통해 화목의 대상이 결정된다.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레 3:3)
1) 하나님께- 첫째 화목의 대상이 하나님
2) 제사장: 가슴+뒷다리(힘의 근원) 심장과 힘을 보태주라.
3) 자기가 취함: 화목의 대상,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해야한다.
상처받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자살한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화목제물을 통해서 받아들임의 의미를 배워야 한다
화목제- 신약성경에 성찬식이다.
안식일 아침에는 성만찬이 아니다. 아침에는 성찬이다. 만찬은 저녁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성만찬,
낮시간에는 성오찬이다.
십자가=번제
성찬식=화목제
고기는 당일에 먹어야 했다. 성찬식에 남은 것은 깨끗한 곳에 묻는다.
두음 매기마다 정확힌 성찬식 1년에 4번 한다. 늘 의미가 새롭게 구현되기 위해 새롭게 준비한다.
성찬식: 즐겁고, 명랑
화목제물을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 신약에 화목제물로 번역된 두 구절의 의미가 옳은가?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레위기에 근거해서 화목제물의 개념을 파악한 사람이라면 요일2:2 화목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힘을 위한 화목제물은 되지만
죄를 위한 속죄개념이다.
헬) 힐라스모스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헬) ἱλαστήριον 힐라스테리온 hilaste-rios, 속죄하는 것, 속죄소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 9:5)
힐라스테리온 hilaste-rios
속죄하는 것, 속죄소
속죄소: 속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화목제물보다 속죄제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의미이다.
새번역, 우리말 성경- 속죄제물, 현대인:구원하는 제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개정)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롬 3:25,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롬 3:25, 우리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개정)
εἰρήνη 에이레네 eire-ne-
평화, 복지, 번영
평안: 샬롬(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화목제의 결과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개정)
화목의 결과로 노래를 할수 있게 되었다.
찬미 529.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주의 팔에 영원한 팔에 안기세 영원 영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국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주의 팔에 영원한 팔에 안기세 영원 영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주의 팔에 영원한 팔에 안기세 영원 영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찬미 630.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나 즐겁게 늘 부르네 이 노래를 부를 때에 큰 평화 임하도다
[후렴]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도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2. 주 십자가 달리시어 내 빚을 다 갚으셨고 주 예수님 고난 받아 나 평화 누리도다
[후렴]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도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3. 나 주님께 영광 돌려 참평화가 충만하네 주 하나님 축복으로 이 평화 누리도다
[후렴]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도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4.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 주시도다
[후렴]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도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
찬미 636. 나 어느 곳에 있든지
1.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후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거세나 맘이 늘 평안해
2. 내 맘에 솟는 생명수 한없이 흐르니 목마름 다시 없으며 늘 편함 있도다
[후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거세나 맘이 늘 평안해
3. 참 되신 주의 사랑을 내 형언 못하네 그 사랑 내 맘 여시고 큰 소망 주셨네
[후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거세나 맘이 늘 평안해
4. 주 예수 죽음 고생을 왜 몸소 당했나 주 함께 고생 당하면 면류관 얻겠네
[후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거세나 맘이 늘 평안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빌립보서: 기쁨의 책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4-5)
기뻐하라는 명령이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레3장 본교주석 “3장에 관한 추가적 설명
“실제로는 기쁨과 감사의 화목제가 더 이상 드려지지 않지만 그 정신은 계속되어야 한다. 소위 “선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도 마땅히 해야 할 만큼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특권인데도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기뻐하는 자들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결여에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종교 생활에서 행복한 것이 그들의 특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태양 빛보다는 십자가의 그늘 안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행복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며, 심지어 미소도 적합하지 않으며 솔직한 웃음이나 그밖의 다른 웃음도 신성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일찍이 웃거나 심지어 미소를 지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이 머리를 빗었다거나 목욕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의 짐을 자신들의 어깨에 지려고 하며 휴양에 사용되는 시간은 모두 시간 낭비일 뿐만 아니라 불경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느낀다. 그들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지만 행복한 자들은 아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시대에 살면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 가운데 있었더라면 그들은 그분이 갈릴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의심하고 기껏해야 그분을 마지못해 따랐을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매우 초조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그분은 큰 일을 해야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이 사교 모임에 시간을 낭비할 수 있었는가? 그분에게 일할 시간이 단 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더욱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교적 활동에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어떻게 그분이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데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가? 심지어 바리새인들도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지적하며, 연회에서 먹고 계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책망을 암시하면서 의아해 했다(눅 5:29~35).
이것은 영원의 문턱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를 충분히 고려하여 기록된 것이다. 만약 진지함과 침착함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삶을 특징지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다가오는 위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한다(벧후 3:11). 모든 경박함을 뒤로 하고 엄숙함이 모든 신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크고 중대한 사건들이 임박해 있다. 어리석은 것들과 무의미한 것들을 위한 시간이 없다. 왕중왕께서 문 앞에 당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왕의 자녀이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으며 따라서 행복하고 기뻐해야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업은 완성되어야 하며 우리도 거기에서 한 몫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이루어져야 할 필요에 대하여 기도로써 하나님께 독촉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에 소중하게 보이는 몇몇 중요한 일들을 그분이 잊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항상 바르게 행하려고 노력하는 “선한” 영혼들이지만 그들의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의 짐을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짐에 눌려 신음할지라도 결코 포기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분투 노력하여 많은 선을 행한다. 그들은 가치 있는 일꾼들이며 주님은 그들을 매우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사업과 노력에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일을 시작하신 그분이 마치실 것이며 그분은 그 일에 그들만큼, 심지어 그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그분은 한순간에도 이룰 수 있지만 모든 일을 계속적으로 이루어 나가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 그들은 신앙생활에서 기쁨을 거의 발견하지 못하고 수많은 걱정거리만 찾는다. 그들은 마르다처럼 수고하고 염려하지만 한 가지 필요한 일을 빠뜨렸다. 그들은 마리아와 같은 자들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며 주님께 그들에 대해서 불평하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마리아의 몫을 담당하고 계시는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두 명의 마리아만 있고 마르다가 없다면 과연 음식이 준비될 수 있겠는가라고 그들은 묻는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직무에 신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몫을 이행하고 있지 않으며 너무 많은 짐이 그들에게만 지워져 있다고 마음속으로 느낀다.
이와 동일한 교훈이 탕자의 이야기에서도 강조된다. 맏아들은 자신은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항상 열심히 일했으며 잔치와 환락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이제 동생이 방탕한 삶으로 유산의 몫을 소비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화를 내며 돌아온 동생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가서 그에게 간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창기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잔치를 베풀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으면서도 순종하는 아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해주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힐난(詰難)했다(눅 15:30).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엄숙한 사건들의 한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즐거워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앞에서도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간직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들의 심령에 새로운 노래를 두었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자녀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마땅히 해야 하며 권리가 부여된 만큼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잊었다(요 14:27).
많은 사람들의 심령은 괴로워한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그들은 걱정한다. 어떤 소중한 자가 양의 우리 밖에 있으며 그들은 그가 “들어오도록 그를 위해서 기도한다.” 밤낮으로 그들은 수고하며 기도한다. 그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그의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서라면 하나의 돌멩이도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수고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그렇게 하려고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계획에서 하나님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분께 기도한다. 그들은 그분께 탄원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재촉을 필요로 하는 분처럼 기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중한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해 하는가! 이제 그들은 쉴 수 있다. 그들의 일이 이루어졌고, 과업이 달성되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 회심하는 데 그들만큼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그들이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그들이 기도하고 일하기 오래 전에 이미 하나님은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대리자들을 움직이셨다는 사실이 그들의 마음에 떠오른 적이 있을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의지를 역행하면서 그를 구원하실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분은 그 모든 것을 행하고 계신다. 우리가 그분을 지도하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조용히 물으면서 그분과 협력한다면, 그분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행하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분간하고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 더 나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업을 떠맡은 다음에야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깨달음이 영혼에 이르러 오는 순간, 그것과 함께 평화도 온다. 그는 적게 일하거나 적게 기도하지만,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분이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들은 전보다 더 많이 기도하겠지만, 우리는 그 책무를 하나님께 맡길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의 심령과 삶을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께 드리자.“
믿음으로 기도하고 좀 쉬어! 대단한 역설이다. 추가설명이다.
비록 영적인 일이라도 너무 많이 정신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기쁘게 하는 것이 의무이다.
하늘은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다.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속에서 구현해 내야한다.
추가질문에 대한 답변)
초실로 드리면 , 처음 것을 드리면 나머지 것이 예외가 될 것만큼 중요하다. 초실의 의미가 무엇이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처음, 나중에, 모두를 드린다는 의미이다.
의사들이 우리에게 왜 레위기 필요한가?
의대공부할 때 해부학 할 때 텍스트보고 한다. 나중에 사람으로 실습하다. 레위기는 텍스트를 가르쳐 준다. 레위기를 제대로 만져야 진리를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