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호
형호(855? - 915?)는 당말에 하남성 심수(沁水)에서 태어나서 오대에 이르는 시기까지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생몰년대는 모른다. 당말에 나라가 시끄럽자 태행산(太行山) 홍곡(洪谷)에 은거하였다. 산수화 이론서인 필법기(必法記)를 남겼다. 필법기는 송의 궁전에서 보관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전해졌다.
중국회화사에서는 형호의 유필유묵적 회화를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중국 회화사에서 당나라와 송나라를 이어주는 중요한 화가이다.
수나라 때가 되면 먹의 사용법을 점차 알게 되었다. 만당 시기에는 이미 초보이나마 준법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윤곽선과 선염(연하게 색칠하는 것)이 합쳐져서 새로운 화법이 태어났다. 이 기법을 산수화에 적용하여 나무와 돌은 평원으로, 구름 위에 솟은 산봉우리는 고원으로 그리는 양식이 나타났다. 고대 화법에서 사람을 산보다 더 크게 그린 회화는 점차 사라졌다. 사람을 작게 그리는 점경인물(點景人物) 양식이 나타났다.
高遠 -- 산봉우리 등을 그릴 때, 밑에서 위로 처다 본 광경이다.
平遠 -- 수평으로 바라보고 그린 광경이다.
(중국 산수화에 三遠法이라 하여 시점을 말한다.)
皴 -- 중국화에서 먹과 붓을 사용하는 기법이다.
*광려도(匡廬圖)는 형호의 작품으로 전해온다.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로 그렸다. 거대한 자연을 한 화폭에 담았다. 그림을 감상하면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고픈 마음이 일어난다. 광려도에는 구륵(윤곽선), 준법, 선염의 기법이 모두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을 관찰해보면 손위의 고일도(高逸圖) 기법을 따온 것이 많다.
필법기는 그가 쓴 산수화 이론서이다. 필법기에는 물상(物象)을 관찰하여 진실을 취한 후에 그려 낼 수 있은 기법을 익히는 것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에는 필법을 잊어버리고 진경만 남기라고 하였다. 형호의 산수화와 이론은 11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중국 산수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북방의 산수화에 기초가 되었다.
형호의 제자인 관동, 이성, 범관을 북송의 3대 화가라고 말한다. 형호의 수제자로는 관동(關仝)을 꼽는다. 형호의 작품들은 그의 진적으로 인정받지 못 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관동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첫댓글 중국 회화에 대한 소양을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나는 산수화를 볼 때 바위와 나무들 사이로 숨었다, 나타나다 하는 길을 찾아가는 버릇이 있습니다. 길 찾기는 산수화 감상법을 안내하는 어느 책에도 없습니다. 나 혼자만 즐기는 나의 방법입니다. 이 그림에서도 바위 속으로, 나무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찾아보십시오.
저는 그림을 볼 줄 모릅니다만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중국특유의
과장이 들어간 것 같이 보입니다.
중국 산수화 잘 보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나누는데. 위의 산수화는 북종화 계열로 중국 북방의 산수를 그렸다고 합니다. 황산이나, 화산에 가서 보면 사실적인 면모도 많습니다. 반드시 과장인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다음에 보게 될 중국의 남쪽 산야를 그린 남종화 계열의 산수화는 산세가 많이 부드럽습니다.. 중국 그림이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하였으니 과장도 있을 것이나 사실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