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 대한민국 (2)
아프리카 에디오피아보다 가난했던 한국이 선진국이 될수 있었던 비밀
1. 교육을 최우선에 두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습니다. 학교가 폭격으로 무너졌어요. 교실이 불탔고 책상이 부서졌죠. 아이들은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어떤 아이는 혼자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었어요. 책가방 대신 피난 보따리를 들고 신발도 없이 맨발로 걷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부산 대구 피란지에서 천막을 치고 학교를 열었습니다. 피난지 학교예요. 칠판도 없었어요. 나무판의 분필로 글씨를 쓰고 땅바닥에 앉아서 수업했죠. 책상도 없었습니다. 무릎위에 공책을 올려놓고 글씨를 썼어요. 여름에는 땀이 공책을 적시고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었죠. 폭격 소리가 들려도 아이들은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서울대는 부산에서 임시캠퍼스를 열었어요. 고려대는 대구에서 수업을 계속했죠. 연세대도 이화여대도 피난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판자집 교실에서 교회당에서 절마당에서 창고를 빌려서 수업했어요. 전쟁통에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겁니다. 세계 역사상 전쟁 중에 이렇게 교육을 계속한 나라가 있었을까요?
1951년 유네스코와 UN 한국 재건단이 한국에 선물을 줍니다. UN 한국 재건단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도와주는 UN기구였죠. 이들이 뭘 줬을까요? 탱크도 아니고 식량도 아니예요. 교과서 인쇄 공장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24만 달러. 당시 한국 정부 예산으로는 꿈도 못꿀 금액이었죠. 이 공장이 나중에 국정교과서 주식회사가 됩니다. 피란지 천막 교실에 새 교과서가 공급되기 시작했어요. 세계가 놀랐습니다. 전쟁중인 나라에서 아이들이 새 교과서를 들고 공부한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전쟁도 막지 못한다. 1953년 전쟁이 끝났습니다. 국토의 80%가 파괴됐어요. 1인당 국민 소득 67달러, 밥을 굶는 사람이 수백만이었죠. 보리고개라는 말 들어보셨죠? 봄이 되면 지난해 수확한 곡식은 떨어지고 새 곡식은 아직 안 익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어요. 학교를 지은 겁니다. 1954년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선언하고 6년간 무상으로 가르치겠다. 당장 배가 고픈데 30년후를 준비하겠다는 거죠. 미친 짓이다.
이런 말이 나왔어요. 밥도 못 먹이면서 무슨 학교냐? 당장 공장이나 지어라. 반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해냅니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 5년동안 초등학교 3,247개를 새로 지었어요.
5년은 약 1800일이거든요. 하루에 약 2개꼴로 학교를 지은 겁니다.
1945년 해방 당시 한국의 문맹률은 78%였어요. 100명 중 78명이 자기 이름도 못 썼습니다.
한글을 못 읽었지요. 일제가 우리말 교육을 막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거든요. 1959년 문맹률이 22%로 떨어집니다. 14년만에 56% 포인트가 줄었어요. 100명 중 78명이 글을 몰랐는데 이제 78명이 글을 읽게 된 거죠. 세계 역사상 이렇게 빠른 문맹 퇴치는 없었습니다. 유네스코가 교육의 기적이라고 불렀어요. 1960년 초등학교 취학률 96% 100명 중 96명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인도는 61%였어요. 필리핀은 72%였고요. 그런데 한국이 교육에서 앞서 갔습니다.
왜 이게 중요할까요? 교육은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요. 30년이 걸립니다.
1960년에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들이 어떻게 됐을까요? 1970년대에 공장 노동자가 됩니다.
다른 나라 노동자와 뭐가 달랐을까요? 글을 읽을 줄 알았어요. 작업 지시서를 이해했죠. 기계 메뉴얼을 읽었습니다. 숫자를 알았으니까 품질 관리를 할 수 있었어요. 불량품이 줄었습니다. 생산성이 올라갔지요. 1970년대에는 기술자가 됐어요. 단순히 시키는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설계도를 잃고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기술자들이었죠. 외국 엔지니어 없이도 공장을 돌릴 수 있었어요.
1980년대에는 반도체 연구원이 됐습니다.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들이었죠. 삼성반도체, 현대전자, LG반도체. 이 회사들을 만든 사람들이 바로 그 세대예요.
1979년 독일 프랑크프루터 차이툰 기자가 한국 공장을 취재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었어요.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가진 나라였죠. 한국 공장을 우습게 봤을 거예요. 개발도상국 공장이 뭐 대단하겠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기자가 가장 놀란게 뭐였는지 아세요? 현장 노동자들이 설계도를 읽을줄 안다.
기사에 이렇게 썼어요. 이건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기술자 수준이다.
독일 기자가 놀란 겁니다. 한국 공장 노동자들의 수준이 독일과 비슷하다고요.
다른 개발도상국은 노동자들이 글을 몰랐습니다. 외국인 관리자가 와서 손짓 발짓으로 지시해야 했죠.
설계도를 줘도 읽지 못했어요. 그래서 단순 조립만 할 수 있었습니다.
나사 조이고 부품끼우고 그게 전부였죠. 부가가치가 낮았어요.
한국은 달랐습니다. 24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24년이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었죠.
배고픈 시절 천막에서도 가르치고 폐허에서 학교부터 지은 그 선택 1955년의 선택이 30년 후에 한국을 만든 겁니다.
2. 꿈같은 목표를 세우고 불가능에 도전했습니다
1961년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4,088만 달러였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중소기업 하나 매출 수준이죠.
나라 전체가 1년 동안 수출한 금액이 그 정도였습니다. 수출품이 뭐였을까요? 오징어, 김, 텅스텐, 철광석. 바다에서 잡은것, 땅에서 캔 것이었어요. 공산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TV도 못 만들고 자동차도 못 만들고 라디오 하나 제대로 못 만들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정부가 목표를 세웁니다.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겠다.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공장도 별로 없고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1억 달러라고요? 허황된 꿈이다.
될리가 없다. 이런 말이 나왔죠. 그런데 1964년 11월 30일 달성합니다. 이 날이 수출의 날이 됐습니다.
10년 안에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 전 세계가 비웃었지요. 세계 은행도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한국은 농업 국가로 남아야 한다. 공업화는 안된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 수출 10억 달러를 돌파해요. 6년 만이었습니다. 목표보다 4년 빨랐죠. 어떻게 했을까요?
1965년 9월 13일 청와대에서 첫 수출 확대 회의가 열립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어요. 경제부처 장관 은행장 대기업 총수가 한 자리에 모였지요. 매달 한번씩 열렸습니다. 1979년까지 계속됐어요. 1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수출이 국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수출하지 않으면 외화가 없습니다. 외화가 없으면 석유를 못사요. 기계를 못 사지요. 나라가 멈춥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챙긴 거예요.
1962년 1월 울산이 특정 공업지구으로 지정됩니다. 당시 울산은 허허벌판 어촌 마을이었어요. 고래잡이 배가 드나들던 작은 항구였지요. 인구 10만 명도 안됐습니다. 그런데 정유 공장이 올라갑니다. 비료공장. 자동차공장. 조선소가 올라갑니다.
단일 도시 수출 1천억 달러 돌파 허허벌판 어촌이 세계적인 산업 도시가 되죠.
1968년 2월 1일 경부 고속도로 착공 서울에서 부산까지 428km 그 돈으로 국민 밥이나 먹여라. 국회와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 세계은행 조사단이 왔어요. 경부고속도로는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중요할지 모르나 경제적으로는 타당성이 없다.
돈 안빌려 주겠다는 거죠. 그래도 밀어붙였습니다. 대일 청구권 자금과 월남파병을 통해 만들어진 피같은 돈이죠.
대통령이 직접 헬리콥터 타고 전 구간을 답사하고 설계했어요.
1970년 7월 7일 2년 5개월 만에 개통했어요. 외국 전문가들은 최소 5년 걸린다고 했거든요. 총공사비 429억원.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싸게 지은 고속도로라는 기록을 세웠죠.
포항제철소도 불가능한 현실에 도전해 이룬 결실입니다. 자동차, 배, 건물, 다리 전부 쇠가 필요해요. 선진국이 되려면 철강 산업이 필수입니다. 세계은행의 차관을 요청했어요. 거절당했죠. 한국에는 철강 산업이 맞지 않는다. 철광석도 없고 석탄도 없고 기술도 없다. 그러나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철소가 절대 필요하다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사장의 뚝심으로 일본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강행했죠.
1973년 포항에서 첫 쇳물이 쏟아집니다.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도 쇠를 만들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 포스코는 세계 6위 철강 회사예요. 연단 조강 생산량 4천만톤 이상이죠.
당시 불가능하다고 했던 보고서를 쓴 담당자가 훗날 포스코 본사를 방문해서 내가 틀렸다. 한국인의 의지를 과소 평가했다. 고백했다고 합니다.
1970년 정주영회장이 조선소를 짓겠다고 나섭니다. 현대건설은 배를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회사였죠. 건물 짓고 도로 닦던 회사가 갑자기 배를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조선소를 지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영국 바클레이 은행에 차관을 요청했어요. 담당자 이름은 롱바톰 회장 이었습니다. 그가 물었죠. 한국이 배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배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회사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해요.
조선소도 없고 기술자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요. 누가 빌려 주겠어요? 정주영회장이 지갑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5백원짜리 지폐였어요. 거기에 거북선 그림이 있었죠. 우리나라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영국보다 300년 앞섰죠. 조선 기술은 우리 핏 속에 있습니다. 롱바톰이 웃었다고 해요. 이 사람 재미있네 하지만 설득당했습니다.
그리스의 선주를 찾아 계약 체결해 들고가 4,300만 달러 차관이 승인됐어요.
1972년 3월 현대 조선소 기공식 1974년 6월 준공. 조선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22만톤 두척을 건조했습니다.
세계 조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죠. 보통은 조선소 먼저 짓고 그 다음에 배를 만들거든요.
한국은 둘 다 동시에 한 거예요. 11년 뒤인 1985년. 한국은 세계 조선업 1위가 됩니다. 500원짜리 지폐 한장의 도전이 세계 1위 조선 강국을 만든 거죠.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해냈죠.
3. 선택과 집중 뼈 깎는 구조 조정
한국 경제는 위기가 많았습니다. 1980년 경기 침체, 1997년 IMF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숨돌릴 틈이 없었어요. 일어서면 또 쓰러지고 겨우 일어나면 또 맞았죠.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위기 때마다 같은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남은 것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선택과 집중이라는 네 글자가 한국 경제의 DNA가 된 거죠.
1980년 중화학 공업에 발전 설비공장, 자동차공장, 중전기공장 같은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여러 개씩 있었죠.
삼성도 만들고 현대도 만들고 대우도 만들고 서로 경쟁하다가 다 망하게 생겼어요.
전두환정부가 칼을 뺍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의 정부의 실행력(국보위)은 무소 불위의 힘을 발휘 하던 때라서 가능 했을지 모릅니다.
중화학 공업의 투자조정 - 현대 자동차. 대우자동차 2체제, 중소형화물 소형차 - 기아자동차, 중공업은 -두산으로
조선은 현대로, 60여개 해운사를 20여개 대형사로 개편 통폐합 되었습니다.
삼성은 자동차를 포기하고 반도체에 올인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회사가 됐죠. 1995년 LG반도체는 세계 6위였어요. 디램시장에서 삼성, 현대와 연간 순위 9억원을 내는 알짜 사업이었습니다. 반도체 회사가 세 개나 필요 없다. 둘이면 충분하다. LG는 반도체를 현대에 넘기고 디스플레이에 집중하라.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쳐지고 SK하이닉스가 됩니다. AI 칩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 HBM.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죠. LG 디스플레이는 OLED 패널 세계 1위예요. 아이폰 화면 LG가 만들거든요.
왜 내 사업을 뺏느냐? 이건 사유재산 침해다. 기업 총수들이 항의했죠. 그런데 이 수술이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에 밑걸음이 됐어요. 아픈 부분을 잘라냈더니 몸이 건강해진 거죠.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터집니다. 한국 경제가 쓰러졌어요.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지요. 한때 제계 2위였던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됐죠. 실업자가 길거리에 쏟아져서요.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한강다리 위에 섰습니다. IMF 실직자 자살이라는 기사가 매일 신문에 실렸죠. 국제통화 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어요. 나라가 부도나기 직전이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한국도 흔들렸죠. 조선 해운 업계가 특히 심했어요. 한진 해운 세계 7위 해운사가 사라졌죠. 현대 중공업은 2024년 조선 수주 세계 1위를 탈환 합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반도체에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50조원이면 웬만한 나라 1년 예산이에요. 그 돈을 반도체 하나에 쏟아 붙겠다는 거죠.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HBM에 모든 것을 걸었어요. 그 결과 세계 시장 80%를 점유하게됐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에 집중해서 테슬라 GM에 납품하는 세계 1위 배터리 회사가 됐지요.
잘하는 것 하나에 집중한다.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한다. 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