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어머니)는 물때에 맞춰 바다로 '바래'를 나간다.
갯벌이나 갯바위에 앉아 소쿠리에 항거슥(가득) 해초류와 조개를 캐서 담는다.
대 소쿠리와 호멩이만 준비 되면,
우리네 어무이들은 그날 밤 새끼들 먹일 반 찬 꺼리는 준비된다.
굽어진 허리에 호미질이 힘에 부친다.
그러나 바다는 어무이에게 생명이자 가족의 생계다.
갯것들이 새비렀(널려있)지만 한 끼 찬거리만 소중히 담았다.
어무이는 욕심을 더 가지지 않았다.
내 아래의 어무이들도 또 나와야 할 바다여서.
어무이는 그제서야 바다를 떠난다.
딱 한 소쿠리만에 행복과 만족을 가졌던 당신이었다 .
석양이 긴 그림자를 그리며 정지(부엌)까지 함께 한다.
경남 남해에 걷는 길이 생겼다.
'바래길'이다.
'바래'는 남해의 아낙네들이 팔 목적이 아니라, 제 가족 먹기 위해 바다로 나가 갯것들을 캐는 일을 말한다.
그러니 '바래길'은 호미(호맹이)와 소쿠리를 들고 갯것을 캐러 가던
그 길이다.
남해는 예부터 살림이 궁했다.
섬이라기보다 바다에 불쑥 솟은 산에 가까워 지금도
논과 밭이 산비탈에 기대어 있다.
물이 가두어진 곳은 논이오.
물이 가두지 않은 곳은 떼기 ( 밭)이다
이 가파른 비탈에 씨를 뿌렸던 흔적이 : 다랭이 논이다.
가천에만 있는게 아니다.
가천 다랭이 논
Nepal (네팔의 다랭이 논)
Indonesia
(인도네시아발리섬의다랭이 논)
(( 세계의 여러 다랭이 논))
여기서, 대한 민국 , 경남 남해 가천의 다랭이 논은 다른 세계의 다랭이 논과 다르다.
대부분의 다랭이 논들이 산이나 구렁지에 있다.
가천의 다랭이 논은 바로
"우리의 어무이들의 삶의 터요, 우리의 생명인 바닷가에
바로 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 바다와 산이 지천에 있는 가천의 다랭이 논이 더 좋다.
그기가 내 어무이 이리라 .
((향촌,
선구,
임포,
운암,
유구.
평산,
오리.
덕월.
상가.
구미,
양지.
죽전,
우형,
당항,
숙호,
석교,
월포,
홍현,
무지게))
남해 남면의 논들은 모두 다랭이 논이다.
내가 시간이 나면, 이 잘못된 다랭이 논의 홍보를 하고 싶은데, 가천 가이나 손 xx이가 하도 설치사서 참는다.
다랭이 논은 달갱이 이라고도 한다.
남해를 처음 찾은 사람들은 그런 다랭이 논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색다른 풍광 뒤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스스로를 길들이며 살아온 남해인들의 삶이 녹아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가파른 산기슭에 논과 밭을 일궈야 했고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바다로 나가야 했던 삶의 엄숙함이 곳곳에 스며 있다.
바래길은 그래서 남해사람들의 생명이 살아 숨쉬는 길이다.
길을 걸을 때 눈 앞에 펼쳐진 바다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두 발 디디고 걷는 땅과 남해인들의 삶을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해안선 길이가 300㎞가 넘는 남해에 난 바래길은
모두 8개 코스다.
물론 새로 낸 길은 아니고 마을과 마을을, 포구와 포구를 잇는 길이다.
흐려진 길들을 다듬기는 했으되 자연 그대로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8개 코스 중 다랭이 지겟길(1코스)와 앵강 다숲길(2코스)를
걸었다.
1코스가 바래길의 본령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면 2코스의
주인공은 앵강만이다.
1코스와 2코스를 가르는 경계가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가천마을 왼쪽으로 평산항까지 16㎞ 길이 다랭이 지겟길이고,
평산항 :
전라도 여수를 가는길은 남해읍이 아니라도 더 빠른 뱃길을 열어 준 항이다.
강 창진의 동네.
오른쪽으로 벽련마을까지 18㎞ 길이 앵강 다숲길이다.
다랭이 지겟길-척박한 자연환경에 기대 살아온 생명길
들머리인 평산항에 섰다.
바래길 안내판을 끼고 마을언덕에 오르자 남해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편도 5시간짜리 코스의 시작이지만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발걸음이 경쾌하다.
여기 사진이 평산 2구
강 창진이 동네.
이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궁금함을 갖지마라 !!.제발 !!!!!
한 구비 돌자 마늘밭과 다랭이논, 쪽빛바다가 다가온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어머니처럼 길도 장식 없이 수수하다.
"인공미는 전혀 없고 오로지 남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자연 그대로의 길"이라며
"아기자기한 해안에 펼쳐진 몽돌해변과 갯벌, 그리고 상쾌한 숲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다."고 자랑을 쏟아낸다.
길은 줄곧 해안을 끼고 들고난다. 바다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는 자그마한 언덕을 넘고 마늘밭의 둑을 지난다.
숲길을 지나기도 하고 백사장을 따라 걷기도 한다.
유구와 사촌, 선구와 항촌을 잇는 해안에서는 잘그락 거리는 몽돌 소리가 귀는 물론 마음까지 정화시켜 준다.
유구와 사촌의 해변을 낀 모래사장은 내 초등 시절의 멱 감았던곳.
'흔한 몽돌이지만 가족 있는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몽돌을 주워가는 여행객들에게 던지는
"애교어린 간판에
마음이 짠하다."
사촌과 유구의 설찡이를 사이에 둔 몽돌밭은 너무나 경이로운 곳 이었다.
모래 밭 사이를 둔 몽돌은 어떻게 생깃는지 ,
지리학자들도 모린다.
근데 그 몽돌들이 지금은 없다.
이 나뿐 , 도시놈들 다 주웠서 저거네들 집에,저거네들 화단에 두었으리라.
몽돌은 몽돌 밭에, 있어야 몽돌이다.
가지고 간 놈들 빨리 제자리에 갔다 놓았주면 좋겠는데.
남해 남면의 같은 동네라도,
임포와 운암은 산촌중에 산촌인 곳에 터를 잡고 산 ,
우리네 아부지,어무이들은 선구를 넘나드는 고개와 눈뜨면
보이는 기암 괴석들에 해넘이를 보고,해뜸이를 본 그 기암 괴석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었을까?
바래길에서는 자주 뒤를 돌아다봐야 한다.
다른 길과는 달리 고개를 돌려 뒤를 보면 걸어온
길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미국 시인 프로스터가 "가지 않은 길"을 이 바래길에서
영감을 가지고 갔을 지도 모리것다.
미국놈은 길을 두 길 중에 "가지않은 한 길"에 여운을
두었지만,
늘 안가는 길에 대한 운명을 가진 놈들은 미국 놈들이지만,
우리네 어무이들이 걸었던 바래 길은 두개가 아니다.
한(1)개의 바래 길 이다.
그 한개의 바래 길을 두고, 우리들의 운명을 저울질 했을지도 모리것다.
해안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율동을 거듭하며 걸으니 지나와 뒤로 밀려난 길들을 돌아보면 바다쪽으로 들고나는 길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고 보면 다랭이 지겟길은 우리네 어머니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하며 그 정을 그리워 하는 길이다.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문득 문득 사무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1코스의 끝은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바다로 뚝 떨어지는 비탈에 100여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여행자에게는 봄부터 가을까지 초록과 황금빛으로 물드는
다랭이 논 풍경으로 유명하다.
앵강 다숲길-숲과 바다가 연출하는 자연을 내 품에
가천 다랭이 논과 바다가 만나는 언덕배기 정자에서 앵강 다숲길이 시작된다.
길은 남해 앵강만(鸚江灣)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로 곁에 두고 즐기며 걷는 숲길이다.
가천마을에서 15분 정도 길을 걷자 깍아지른
절벽 옆으로 섬 깊숙히 파고든 앵강만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길을 돌아섰다. 와~ 감탄사와 함께 무릅을 치게 만드는곳이 나타났다.
앵강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마련된 조그만 쉼터다. 나무의자에 앉았다.
남해바다를 내 품에 안는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앵강만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앵무새가 우는 강, 다시 말해 앵무새 우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앵강만은 잔잔하고 평화롭다. 앵강마을을 바라보는 해안가 마을도 평화롭기는 마찬가지다.
"남해바다가 그린 그림의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한 없이 편안하게 한다"면서"숱하게 이 길을 오고 가곤 했지만 걸을 때마다 정말 매력적인 길"이라고 모든 사람들은 자랑한다.
말대로 길은 걷는 내내 숲과 바다가 연출하는
자연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바다가 불러주는 자연노래를 들을 수 있고,
그 노래는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가 였을 ,
깍아지른 기암절벽 틈새로 하얀포말을 만들고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숲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앵강 다숲길, 한 뼘 한 뼘 사람이 빚어낸 길을
걸으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법을
마음으로 느껴진다.
종착지인 벽련마을 앞두고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드넓은 앵강만의 바다가 두 팔 벌려 안아줄 듯 파란 미소를 지어보인다.
**. 바래길 Course .**
그런데, 이 바래길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남아 있는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떨어지기 전에
나를 슬프게 하는 그런 슬픔이 아니다.
돈 된다고, 다 팔아 묵은 우리의 아부지,어무이의 삶을
돈 때문에 다 폴아묵은 우리네 새끼들.
참 슬푸고도 슬푸다.
니 애미,애비를 팔아묵은 새끼들.
이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너거들 팔았으면, 부지런히 돈 모아서
빨리 , 아부지,어무니를 제 자리에 돌려 놓거라!!!!!
*****
오늘도 잠시 시간 내어
바래길 따라
내 어무니( 엄마)를 그리워 한다.
"엄마(어무이) !
"바래 많이 했십니꺼?
"오냐 ! 많이 했다.
"한 소쿠리면, 오늘 너거 4형제 반찬 되것다.
"두 소쿠리는 안 됩디까?
"오늘 만 묵을래.
"모자라모, 낼 또 바래 가몬 된다.
이렇게 해 주었던
내 어무이를 바래길 따라 걸어며~~~~~
생각 해본다.
지금 내 어무이는
당신이 손수 바래해서 먹이고
키운 새끼들
그 바래길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 보고 계신다.
어무이가 보고 싶다.
아이구 ! 내 새끼야 하던
내 어무이를
*****
어무이 ~~~~~~~~~~~~~~~~~
너무 보구 접소.
아들,딸 낳아서 키워 보니.
당신이 더 보구 접소 !!!!!
첫댓글 옛정,옛추억이 가슴뭉클!!!---부모님 그리운정을 고향풍경과 함께 잘읽고 잘봤네
人生歷程 삶의 가치를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