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는 직업
금강산 시인대회 하러 가는 날, 고성 북측 입국심사대의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 군관 동무가 서정춘 형을 세워놓고 물었다. “시인 말고 직업이 뭐여?” “놀고 있습니다.” “여보시오, 놀고 있다니 말이 됩네까? 목수도 하고 노동도 하면서 시를 써야지……” 키 작은 서정춘 형이 심사대 밑에서 바지를 몇 번 추슬러올리다가 슬그머니 그만두는 것을 바다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미루나무
간밤 눈보라에 시달렸을 미루나무에오늘은 새로운 까치네 동무들이 가득 찾아와그 작은 발바닥으로 뱃바닥을 누르고 귓볼을 간지럽히는 바람에온몸에 웃음을 참지 못한 나무는새빨갛게 타오르는 서녘 하늘을 향해 껑충한 키를 구부린 채간들간들 간들간들 웃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고향4 - 가지 않은 길
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이 남아 있을까중학 1학년, 새벽밥 일찍 먹고 한 손엔 책가방,한 손엔 영어 단어장 들고기름젱이 콩밭 사잇길로 사잇길로 시오리를 가로질러읍내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에함뿍 젖은 아랫도리가 모락모락 흰 김을 뿜으며 반짝이던,간혹 거기까지 잘못 따라온 콩밭 이슬 머금은작은 청개구리가 영롱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팔짝 튀어 달아나던.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을 다시 한 번 걸을 수 있을까
사람이 그리운 날, 나는 강변에 나가 새들의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강변에는 갈숲이 무더기로 우거져 있어 그들의 즐거운 서식처였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둔 그 중의 한 보금자리를 향해 가만가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내 발길이 닿기도 전에 참새들은 일제히 갈숲을 차고 달아나며 그 바르르 떨리는 작은 눈동자로 나를 쏘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갈숲 그늘 자리엔 다행히 그들의 온기가 조금 남아 있어 나는 그곳에 짐승인 내 어두운 두 발을 깊숙이 묻었습니다.
14k
어머님 돌아가셨을때 보니 내가 끼워드린 14k 가락지를 가슴 위에 꼬옥 품고
누워계셨습니다 그 반지는 1972년 2월 바람 부는 졸업식장에서 내가 상으로 받은,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어머님의 다 닳은 손가락에 끼워드린 것으로, 여동생 말에 의하면 어머님은 그 후로 그것을 단 하루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 시인들을 위하여
누구나 다 한때는 순결한 영혼들이었다. 독자들이 그 영혼에 입맞추자 그들은 곧 배부른 돼지들이 되어 부끄러움도 잊고 제 분홍 머리들을 서점의 진열대 위에 올 려놓은 채 호호 웃고 있으니 우리가 이제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의 적이 아니라 바로 저 상업의 노예들인지도 모른다.
후꾸도
장사나 잘 되는지 몰라
흑석동 종점 주택은행 담을 낀 좌판에는 시푸른 사과들
어린애를 업고 넋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내
어릴 적 우리 집서 글 배우며 꼴머슴 살던
후꾸도가 아닐는지 몰라
천자문을 더듬거린다고
아버지에게 야단 맞은 날은
내 손목을 가만히 쥐고 쇠죽솥 가로 가
천자보다 좋은 숯불에 참새를 구워주며
멀뚱멀뚱 착한 눈을 들어
소처럼 손등으로 웃던 소년
못줄을 잘못 잡았다고
보리밭에 송아지를 떼어놓고 왔다고
남의 집 제삿밤에 단자를 갔다고
사랑이 시끄럽게 꾸중을 들은 식전아침에도
말없이 낫을 갈고 풀숲을 헤쳐
꼴망태 위에 가득 이슬 젖은 게들을 걷어와
슬그머니 정지문에 들이밀며 웃던 손
만벌매기가 끝나면
동네 일꾼들이 올린 새들이를 타고 앉아
상머슴 뒤에서 함박 웃던 큰 입
새경을 타면 고무신을 사 신고
읍내 장터로 서커스를 한판 보러 가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서울서 온 형이
사년 동안 모아둔 새경을 다 팔아갔다고 하며
그믐날 확독에서 떡을 치는 어깨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날 밤 어머니가 꾸려준 옷보따리를 들고
주춤주춤 뒤돌아 보며 보름을 쇠고
꼭 오겠다고 집을 떠난 후꾸도는
정이월이 가고 삼짇날이 가도 오지 않았다
장사나 잘 되는지 몰라
천자문은 다 외웠는지 몰라
칭얼대는 네댓살자리 계집애를 업고
하염없이 좌판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사내
그리움에 언뜻 다가서려고 하면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자를 눌러쓰고
이내 좌판에 달라붙어
사과를 뒤적거리는 사내
정 님 이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 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있니 맛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 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 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 섣달 긴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랑잘그랑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 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 나올 것만 같더니
한 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 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이시영(李時英) 시인은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제3회 <월간문학> 신인 작품 모집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만월(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이슬 맺힌 노래(1991), 무늬(1994), 사이(1996), 조용한 푸른 하늘(1997), 은빛 호각(2003), 바다 호수(2004), 아르갈의 향기(2005),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2007), 긴 노래 짧은 시(2009),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2012) 등이 있다. 정지용문학상(1996), 동서문학상(1998), 현대불교문학상(2004), 지훈상(2004), 백석문학상(2004) 등을 수상했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착과 초빙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