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에세이 그리움과 사랑의 여운
스타와 팬
손진숙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는 빛나는 스타가 있다. 어릴 적 고향집 밤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그중 유달리 밝게 빛나는 별도 있었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좀체 별을 볼 수가 없다. 베란다에 나가 밤하늘을 살펴도 별이 보일까 말까다. 도시에서 오래 별을 보지 못하고 살아서였을까. 오랫동안 나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스타에도 관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 연말, 좋아하게 된 스타가 생겼다. 그날은 우연히 예능 프로를 방영하는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되었다. 모니터에 클로즈업된 가수는 J. 듬직한 풍채, 오른쪽 콧방울 사선 아래 난 검정콩만 한 점. 턱수염과 콧수염이 입술을 에워싸고 긴 머리카락을 한 가닥으로 묶었다. 단정하기보다 흐트러진 감을 주었다. 그것이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왔다. 점잖게 서 있을 때는 큰 바위 얼굴 같고, 쩌렁하게 노래 부를 때는 사자가 포효하는 같았다.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 말투는 순수하고 천진하여 웃음을 안겼다. 검은 선글라스에 가린 눈은 또 어떤 광채를 품고 있을까.
듀엣가수와 함께 부른 예선 곡은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 이혼 후 자기 자신을 잃은 듯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 했다. 저마다 아픔을 겪은 팬들은 이 노래에서 치유와 새 희망을 얻는 듯 환호하고 열광했다. 나도 걱정이 있을 때 노랫말을 흥얼거리면 어두움이 걷히고 밝음이 찾아들 것만 같았다. 파이널 곡 <사랑한 후에>는 어머니 돌아가신 날 느낀 극도의 우울과 허무함을 이기고자 쓴 가사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프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으랴. 내게도 어머니는 삭이고 고인 슬픔의 응어리가 아니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J밴드 팬카페에 가입하였다. 가수에 대한 광범하고 신속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해 3월 콘서트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초대권 이벤트가 있었다. ‘J에게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해 J 밴드 초대권을 드립니다.’에 응모하여 당첨되었다. 성남아트센터에 가서 공연을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듬해 7월에는 여름 캠핑 ‘J님과 함께 별, 노래 그리고 사랑이야기’가 가평 캠프힐에서 열렸다. 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동참했다. 처음이라 모두 낯설었지만 J라는 스타 주위로 모여든 팬들이었기에 어색하거나 서먹한 줄 모르고 즐겁게 어울렸다. 한여름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초롱이고, 한적한 산기슭 캠프힐에는 스타와 팬들의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때로는 잔잔하게 넘쳐흘렀다.
8월에는 영천 귀애고택에서 고택음악회 녹화가 개최되었다. 가수 J 출연 소식에 가까운 거리라 가슴 설레었지만 늦은 밤 돌아오려면 차량 없이는 힘들어 애태우는데, 다행히 같이 가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귀애정 연못에는 연꽃이 정결하게 피어있고, 고택에서는 200년 숨결과 향기가 풀려나왔다.
들뜬 분위기에 상하좌우를 살피지 않은 탓일까. 고택에 들어서다가 대문 입구 가운데 박힌 문턱 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멘트 바닥이라 왼 볼에 찰과상을 입었고 왼손 새끼손가락에서는 살이 찢어져 피가 뚝뚝 떨어졌다. 주위에 버려진 일회용 행주가 있어 상처를 싸맸다. 응급실에 가는 불행을 피하고 음악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J의 연주를 감상한다면 새끼손가락 하나쯤 잘못돼도 감수하겠다는 비장한 기분마저 들었다.
피날레 무대인 J밴드 순서가 되자 친구가 가자고 귀엣말을 했다. 못 들은 척 꿈쩍 않자 조금 더 기다려주더니 먼저 나가 있겠다며 일어섰다. 더는 머뭇거릴 수가 없어 친구를 따라 음악회장에서 나와야 했다. 등 뒤에서 그의 노래 ‘걷고, 걷고’가 고요한 여름밤 고택 가득히 울려 퍼졌다.
다친 얼굴과 손을 치료하러 3주 동안 병원에 다녔다. 상처 때문에 손을 물에 넣을 수 없어 세수도 못하고 불편한 나날을 보냈다. 그때 생긴 흉터가 지도의 산맥처럼 남아 있다. 여러 해가 흐른 지금까지도, 귀애고택 음악회는 한여름 밤 고풍스러운 한옥과 어우러져 그 가수의 멋진 모습과 노랫가락으로 되살아난다.
팬은 스타가 공연하는 어디든 달려간다. 스타를 따름으로써 건강한 에너지를 듬뿍 전해 받아 오늘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내일도 활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기에 가능할 것이다.
J 가수 팬임을 자처하며 행사에 몇 번 참여했지만, 올해는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한 상태다. 먼 도시에서 열리는 공연에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갈 만한 여건이 되질 안았다. 현재는 팬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하지만 어느 연예인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J 가 틀림없다. 지나간 슬픈 얘기들 훌훌 털어버리고 온 열의를 다해 노래하는 가수. 아직도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하는 그. 더욱더 빛나는 전설적인 스타가 되기를 응원한다.
유년에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키웠듯이, 노년에 이르러서도 빛나는 스타를 생각하며 새로운 꿈을 키우고 싶다.
2024년 《그린에세이》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