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담의 매력에 빠지다---돈암서원 숭모사의 꽃담
2012-03-28 15:41:00
탑정호는 몇 년 전 문학회 회원들과 한번 가 본적이 있었다. 그 때에는 탑정호 주변이 진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봄날이라 싱그러웠지만 겨울바람이 휩쓸고 가는 호수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살얼음 낀 호수의 물결은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거리고 물새들만 살얼음위에 시린 말을 얹고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사실 겨울 탑정호의 풍광은 볼 것이 없다. 맨 얼굴을 보는 듯 밋밋하다. 바람결 따라 잔물결만 찰랑댈 뿐, 딱히 한군데 눈이 가는 곳이 없다.
탑정호 주변 식당에서 얼큰한 매운탕으로 추위에 젖은 속을 달래고 즉석에서 관광지도를 펴놓고 찾은 곳이 돈암서원이다. 너무 시간이 이른 탓에 한 곳만 더 둘러보고 갈 생각이었다. 관촉사나 개태사는 볼 것이 없다는 핑계로 미내다리로 향하다가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돈암서원으로 핸들을 꺾었다.
돈암서원은 노론의 거두 김장생을 모신 기호지방의 대표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지방관을 하다 광혜군 계축옥사(인목대비 부친의 역모사건) 때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던 사람이다. 김장생의 문화생 중에는 윤증과 사사건건 대립한 송시열도 있었다.
돈암서원의 정경
유생들의 교육기관인 응도당, 눈썹지붕과 소금기둥이 이색적이다
원래 돈암서원은 숲말에 있었던 돼지를 닮은 바위에서 이름을 따왔다. 툭하면 홍수가 지는 저지대라 고종 때 응도당만 남기고 현재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운 좋게도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중의 하나인 돈암서원, 입덕문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건물 몇 채가 눈길을 잡아끈다.
여기에도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거구의 풍모에 중후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다. 해설사가 상주하는 건물 앞에는 매끈한 살결을 한 배롱나무가 신기가 들린 듯 나뭇가지를 뒤틀고 있다.
양성당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 동재 뒤 낮은 굴뚝에 눈이 멎었다. 어른의 허리춤 정도 되는 높이다. 굴뚝을 낮게 만든 이유는 겸손과 배려 차원이다. 높은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를 때 가난한 사람들이 받게 될 상심과 분노를 생각한 것이다.
숭모사 내삼문
숭모사의 꽃담
명재고택이나 돈암서원의 낮은 굴뚝만 봐도 그들의 성품이 오롯이 드러난다. 학문적 사상이나 주의는 달라도 겸손과 배려심만은 속 깊이 감추고 있다. 노론과 소론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사상은 극단을 치달을 정도로 달랐다. 자주와 실리를 주장한 윤증과는 달리 돈암서원의 응도당엔 그들의 사상을 환히 드러내주는 물증이 있다. 기와지붕에 쓴 명나라 연호다. 명나라가 청에 복속되었어도 마지막까지 명나라 연호를 고집한 세력들의 모화사상은 유별났다. 응도당이 눈썹지붕과 소금기둥 등 획기적인 건축법을 사용했어도 기와 지붕위에 명나라 연호가 새겨져 있는 한 돈암서원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낮은 굴뚝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겸손과 배려심의 차원이다
후진양성을 위해 김계희(김장생 부친)가 설립한 정회당을 둘러보는 길에 숭모사 꽃담에 눈길이 갔다. 숭모사는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 네 분을 모신 사당이다. 추석 특집 프로로 방영된 KBS의 “꽃담의 유혹”을 본 적이 있다. 돌이나 사기그릇 파편으로 치장한 민가의 질박한 꽃담과는 달리 사대부가의 꽃담은 수려하다. 아녀자가 수를 놓듯 다양한 무늬와 모양을 넣어 만든 꽃담은 보는 이의 가슴에 정취를 불러일으키다.
요즘 들어 시골 골목길에 꽃을 그려놓은 꽃담이 많이 새겨난다. 낡고 누추한 집들을 꽃담으로 환하게 밝혀놓기 위해서다. 이웃집 아낙네들이 담장을 넘어다보며 알콩달콩 수다를 떨던 그 옛날의 추억은 아파트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적잖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숭모사 내삼문의 꽃담을 보는 맛은 남다르다. 낙관을 쿡쿡 찍어놓은 듯한 전서체는 다양한 형태의 돌들과 어울려 화사한 맛을 낸다. 그 화사함이 담장 주변의 묵은 기운을 털어낸다. 낯설고 난해한 글씨지만 그 글씨들은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그 글자에 담긴 뜻을 알아내려고 꽃담과 수없이 대화를 나눠보기도 한다. 꽃담의 글씨가 서일화풍, 치부해함, 박문약려라고 했던가, 글자의 이름과 뜻을 해설사로부터 전해 듣고 손바닥을 딱 쳤다. 바로 이것이다. 연일 불화와 갈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마음속에 새겨 넣어야 할 내용들이 모두 여기에 새져져 있다.
서일화풍은 날로 삭막해져 가는 이웃 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것이요. 치부해함은 모든 것을 받아주자는 포용의 정신이며, 박문약려는 행동을 중히 여긴 삶의 미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다.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내용들이다. 이것만 실천해도 우리 사회는 금방 밝아지고 모두들 도덕군자가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꽃담으로 둘러싸인 숭모사.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송시열, 송준길을 모신 사당이다
절개를 지키듯 네 활개를 펼치고 서있는 향나무
양성문과 동서재로 둘러싸인 마당에 들어서니 돈암서원 원정비가 눈길을 거슬리게 한다. 한마디로 옥에 티다. 김장생의 제자들이 세웠다는 원정비는 서원을 설립하게 된 사연과 김장생과 아들 김집 부자의 학문과 업적을 적고 있지만 왠지 배치가 맞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원정비 때문에 양성문의 현판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차라리 원정비를 마당가에 세우고 그 자리에 배롱나무라도 심었더라면 넓은 마당이 환하게 될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돈암서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 바람은 여전히 쌀쌀한 기운을 싣고 달아나고 멀리 눈앞으로 계백장군이 전투를 벌였던 황산벌이 보인다. 조국을 위해 제 몸을 초개같이 버린 계백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충남의 작은 도시지만 논산을 다녀온 기분은 남다르다. 윤증과 송시열이란 두 거두가 문학적 사상과 주의를 달리했지만 충절과 절개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봄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면 돈암서원의 배롱나무도 뒤따라 지조를 지키듯 붉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