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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설 21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21권 二十二,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서 문 무진장(無盡藏), 이 세상에서 무엇이 무진장입니까?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의 내용이 본래로 무진장입니다. 참마음과 참나와 차별 없는 참사람에게는 본래로 무진장입니다. 참되고 바른 이치를 믿는 믿음[信藏]도 처음부터 무진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매일매일 이와 같이 표현합니다. 윤리와 도덕과 질서를 지키는 계율[戒藏]도 참사람에게는 본래로 무진장입니다. 참사람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마음 참사람은 들어서 알고자 하는 것도, 남에게 무한정 베풀고 싶어 하는 것도, 타고난 지혜 등등도 일체를 본래부터 무진장으로 가지고 있어서 한량없이 원만한[十] 무진장(無盡藏)입니다. 그러므로 차별 없는 참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 무진장입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곧 무진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나 무진장으로 표현하며 무진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당신 스스로가 무진장인데 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까? 왜 가난하다고 생각합니까? 왜 없다고 생각합니까? 무진장인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천대하지 맙시다. 무진장인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한정지우지 맙시다. 무진장인 자신을 능력이 없어서 안 된다고 제한하고 규정지우지 맙시다. 무진장, 우리 모두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무진장으로 살아갑시다. 2015년 0월 0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차례 차례의 예-- 一, 1, (1) <1> 1) 1> > 二十二,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1. 삼세 부처님들의 열 가지 장(藏) 2. 열 가지 장(藏)의 이름 3. 공덕림보살이 열 가지 장(藏)을 설하다 (1) 신장(信藏)을 설하다 <1> 믿음의 상(相)을 밝히다 <2> 믿음의 힘을 밝히다 1) 업의 작용 二十二,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강설 ; 화엄경 7처 9회 39품 중, 제4회 4품 설법의 본론에 해당하는 십행법문을 마치고 결론에 해당하는 품이다. 십행법에서 더 훌륭하게 나아가는 덕을 보였다.열 가지 다함이 없는 장(藏)의 장(藏)이란, 창고, 곳집, 곳간, 갈무리 한 장소, 저장되어 있는 곳 등의 뜻이다. 그래서 그곳에 쌓아두었던 것을 출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를테면 하나의 곳집인 한 마음 안에 법계를 함유하고 있다. 그 한 마음은 곧 차별 없는 참사람이며, 모든 사람의 참마음이며, 진여본성이며, 참 생명이다. 그것에 온갖 덕을 거두어 그 활용과 작용을 내는 것이 하나하나 다함이 없다. 화엄경의 이치가 늘 그렇듯이 일체 존재와 일체 법의 원만성에 의지하여 만수(滿數)인 10을 나타내어서 열 가지 무진장이 되었다. 二十二,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1. 삼세 부처님들의 열 가지 장(藏) 爾時에 功德林菩薩이復告諸菩薩言하사대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藏하니過去未來現在諸佛이已說當說今說이시니라 그때에 공덕림보살이 다시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장(藏)이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이미 말씀하셨고, 장차 말씀하실 것이며,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강설 ; 십무진장품의 설법은 십행품에 이어서 공덕림보살이 설하였다. 십행법에서 더 나아가는 법으로 열 가지 다함이 없는 장(藏)을 설하면서 이 법은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다 설하시는 법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라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삼세의 부처님이 함께 설하신 것은 법이 수승함을 나타내어 모든 수행자가 다 따르게 한 것이다. 2. 열 가지 장(藏)의 이름 何等이 爲十고所謂信藏과戒藏과慚藏과愧藏과聞藏과施藏과慧藏과念藏과持藏과辯藏이니是爲十이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신장(信藏)과 계장(戒藏)과 참장(慙藏)과 괴장(愧藏)과 문장(聞藏)과 시장(施藏)과 혜장(慧藏)과 염장(念藏)과 지장(持藏)과 변장(辯藏)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열 가지 창고를 굳이 해석하여 설명하면 믿음의 창고와 계율의 창고와 자기 스스로 부끄러워함의 창고와 남에게 부끄러워함의 창고와 들음의 창고와 베풂의 창고와 지혜의 창고와 기억의 창고와 가짐의 창고와 변재의 창고다. 청량스님은 “마음이 청정한 것이 믿음이며, 제어하여 그치는 것이 계며, 어질고 선한 것을 받들어 존중하는 것이 참장(慙藏)이며, 포악을 막는 것이 괴장(愧藏)이며, 가르침을 받아드려 넓게 하는 것이 문장(聞藏)이며, 자기보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시장(施藏)이며, 모든 법을 잘 결택하는 것이 지혜며, 마음에 밝게 기억하는 것이 염장(念藏)이며, 배운 것을 잘 지니어 기억하는 것이 지장(持藏)이며, 지닌 법을 공교히 선양하는 것을 변장(辯藏)이라 한다. 십장이 각각 그 업의 작용이 있다.”고 하였다. 3. 공덕림보살이 열 가지 장(藏)을 설하다 (1) 신장(信藏)을 설하다 <1> 믿음의 상(相)을 밝히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信藏고此菩薩이信一切法空하며信一切法無相하며信一切法無願하며 “불자들이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신장(信藏)인가. 이 보살이 모든 법이 공함을 믿으며, 모든 법이 형상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원(願)이 없음을 믿느니라.” 강설 ; 믿음의 상(相)을 밝히는 내용이다. 신심명(信心銘)에는 “믿음과 마음이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닌 것이 신심이다.”라고 하였다. 기신론에는 네 가지 믿음을 열거하면서 불법승 삼보와 진여를 믿는다고 하였다. 십무진장품에서는 경문과 같이 설명하였다. 먼저 일체 법은 보통 사람들의 감정으로는 있지만 그 이치를 살펴보면 없기 때문에 공하다. 또 공하기 때문에 형상이 없다. 공하고 형상이 없기 때문에 원하는 바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먼저 믿는다. 信一切法無作하며信一切法無分別하며信一切法無所依하며 信一切法不可量하며信一切法無有上하며信一切法難超越하며信一切法無生하나니라 “모든 법이 지음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분별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의지함이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헤아릴 수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위가 없음을 믿으며, 모든 법이 초월하기 어려움을 믿으며, 모든 법이 남[生]이 없음을 믿느니라.” 강설 ; 다음은 모든 법이 인연생기(因緣生起)이므로 조작이 없다. 일체 법이 진실하지 않게 때문에 주관과 객관의 분별이 없다. 일체 법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의지하는 바가 없다. 일체 법에 대해서 이와 같은 이치를 믿는다. 또 일체 법은 광대무변하여 한량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은 수승하여 보다 더 높은 것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은 깊고 깊어서 초월할 수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은 불생불멸임을 믿는다. <2> 믿음의 힘을 밝히다 1) 업의 작용 若菩薩이 能如是隨順一切法하야生淨信已에聞諸佛法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一切佛不可思議호대心 不怯弱하며聞衆生界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法界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虛空界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수순해서 청정한 믿음을 내고나서 ‘모든 부처님의 법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怯弱)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중생의 세계가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법계가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허공계가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느니라.” 강설 ; 만약 일체 법에 대해서 공하며, 형상이 없으며, 원하는 바가 없음을 철저히 이해하고 확신 선 사람이라면 마음에 무슨 겁약이 있겠는가. 모든 불법이 불가사의하다하든지, 일체 부처님이 불가사의하다하든지, 중생세계가 불가사의하다하든지, 법계가 불가사의하다하든지, 허공계가 불가사의하다하든지, 그와 같은 소리에 무엇이 두렵겠는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도 객관도 모두가 공성이기 때문에 일체 법에 자유를 얻었으며 일체 법에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다. 聞涅槃界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過去世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未來世不可思議호대 心不怯弱하며 聞現在世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며聞入一切劫不可思議호대心不怯弱하나니라 “또 ‘열반계가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과거 세상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미래 세상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현재 세상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으며, ‘일체 겁에 들어감이 불가사의하다.’함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느니라.” 강설 ; 다시 또 열반계가 불가사의하다하든지, 과거세상 현재 세상 미래 세상이 불가사의하다하든지, 또 일체 겁이 불가사의하다하든지, 그와 같은 소리에 일체 법의 공성을 깨달은 사람이 무슨 겁약이 있겠는가.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설사 한 법이 있어서 열반을 지나간다하더라도 나는 또한 몽환과 같다 하리라.”라고 하였다. 일체 법이 꿈이요 환영인 것에 무슨 마음이 움직이겠는가. 2) 까닭을 해석하다 何以故오此菩薩이於諸佛所에一向堅信하야知佛智慧의無邊無盡이니라 十方無量諸世界中에一一各有無量諸佛이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已得今得當得하시며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한결같이 굳은 신심을 내어서 부처님 지혜의 그지없고 다함이 없음을 아느니라.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 가운데 낱낱이 각각 한량없는 부처님이 있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미 얻었으며, 지금 얻으며, 장차 얻을 것이니라.” 강설 ; 일체 법이 불가사의하다는 말을 듣고도 마음이 겁약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십행보살이 견고한 신심으로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그지없고 다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한량없는 세계에 한량없는 부처님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모두 최상의 깨달음을 이미 얻었고, 앞으로 얻을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已出世今出世當出世하시며已入涅槃今入涅槃當入涅槃하사대 彼諸佛智慧는不增不減이며不生不滅이며不進不退며不近不遠이며無知無捨니라 “이미 출세(出世)하였으며, 지금 출세하며, 장차 출세할 것이니라. 이미 열반에 들었으며, 지금 열반에 들며, 장차 열반에 들 것이니라. 저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으며,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 앎도 없고 버림도 없느니라.” 강설 ;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세계에 한량없는 부처님이 이미 출세하셨으며, 지금도 출세하시며, 앞으로 출세하실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열반에 대해서 역시 그와 같이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으며,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 앎도 없고 버림도 없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말을 듣더라도 마음에 겁약이 없다.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3) 믿음의 성취를 말하다 此菩薩이入佛智慧하야成就無邊無盡信일새 得此信已에心不退轉하며心不雜亂하며不可破壞하며無所染着하며常有根本하며 隨順聖人하며住如來家하며護持一切諸佛種性하며增長一切菩薩信解하며隨順一切如來善根하며出生一切諸佛方便하나니 是名菩薩摩訶薩信藏이니菩薩이 住此信藏하야는則能聞持一切佛法하야爲衆生說하야皆令開悟하나니라 “이 보살이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서 끝없고 다함없는 믿음을 성취하였느니라. 이 믿음을 얻고 나서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으며, 마음이 뒤섞이고 어지럽지 않으며, 파괴할 수 없으며, 물듦이 없으며, 항상 근본이 있어서 성인(聖人)을 따르며, 여래의 집에 살면서 모든 부처님의 종성(種性)을 보호해가지며, 모든 보살의 믿음과 이해를 증장(增長)하며, 모든 여래의 선근을 따르며, 모든 부처님의 방편을 출생하나니라.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신장(信藏)이니라. 이 신장에 머물러서는 곧 능히 일체 부처님 법을 듣고 가져서 중생을 위해 설하여 다 깨닫게 하느니라.” 강설 ; 신장(信藏), 즉 믿음의 무진장이란 일체 법이 공함을 믿으며, 일체 법이 형상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원(願)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지음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분별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의지함이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헤아릴 수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위가 없음을 믿으며, 일체 법이 초월하기 어려움을 믿으며, 일체 법이 남[生]이 없음을 믿음으로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서 끝없고 다함없는 믿음을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믿음을 얻고 나서 여래의 집에 살면서 일체 모든 부처님의 종성을 보호해 가지는 등의 성취가 있음을 자세히 밝혔다. 불법에는 믿음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열 가지 무진장에서도 믿음의 무진장을 먼저 들었다. 화엄경의 공부과정에도 믿음[信]과 이해[解]와 실천[行]과 성취[證]의 순서로 되어있다. 52위의 보살수행계위에서도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의 순서로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믿음의 창고인 신장(信藏)이다. (2) 계장(戒藏)을 설하다 <1> 열 가지 계를 성취하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戒藏고此菩薩이成就普饒益戒와不受戒와 不住戒와無悔恨戒와無違諍戒와不損惱戒와無雜穢戒와無貪求戒와無過失戒와無毁犯戒니라 “불자들이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계장(戒藏)인가. 이 보살이 널리 이익하게 하는 계와 받아들이지 않는 계와 머물지 않는 계와 뉘우침이 없는 계와 어기고 다툼이 없는 계와 손해되고 괴롭게 하지 않는 계와 뒤섞이고 더러움이 없는 계와 탐함이 없는 계와 과실이 없는 계와 헐고 범함이 없는 계를 성취하느니라.” 강설 ; 두 번째 계장(戒藏) 에서는 열 가지 계를 들었다. 흔히 계라면 5계, 10계, 10중 48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등을 떠올린다. 화엄경의 계는 기종의 계와는 전혀 다른 계다. 열 가지 계를 이래에 낱낱이 설명한다. <2> 널리 이익을 주는 계 云何爲普饒益戒오此菩薩이受持淨戒는本爲利益一切衆生이니라 “무엇을 널리 이익하게 하는 계라 하는가. 이 보살이 청정한 계를 받아 가짐은 본래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강설 ; 중생들을 널리 이익하게 한다는 것은 보살의 본래의 뜻이다. 부처님의 본래의 뜻이며 불법의 본래의 뜻이다. 설사 보살이 5계, 10계, 10중 48계,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등을 주거나 받더라도 오로지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가장 먼저 밝혔다. <3> 받지 않는 계 云何爲不受戒오此菩薩이不受行外道의諸所有戒하고但性自精進하야奉持三世諸佛如來의平等淨戒니라 “무엇을 받지 않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외도들의 온갖 계를 받아 행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품이 스스로 정진하여 삼세의 모든 부처님 여래의 평등하고 청정한 계를 받들어 가지느니라.” 강설 ; “보살은 외도들의 온갖 계를 받아 행하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열반경의 내용을 이끌어 왔다. 삿된 고행이나 삿된 계율은 결코 해탈을 얻지 못함을 경계한 내용이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자리에 머물고는 알기만 하고 보지는 못하나니, 무엇을 안다 하는가. 스스로 굶는 일, 못에 빠지고, 불에 뛰어들고,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고, 한 다리를 늘 뻗는 일, 다섯 가지 뜨거운 방법으로 몸을 지지는 일, 재와 먼지와 가시덤불, 엮은 서까래, 나뭇잎, 나쁜 풀, 소똥 따위의 위에 누우며, 굵은 베옷, 무덤 곁에 버린 더러운 걸레나 담요, 흠바라(欽婆羅) 옷, 노루 가죽, 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물 밥, 연근, 깻묵, 쇠똥, 근과(根果)를 먹으며, 걸식할 적에는 한 집에만 한하는데, 주인이 밥이 없다고 말하면 곧 떠나가고, 다시 부르더라도 돌아보지도 아니하며, 절인 고기나 다섯 가지 우유로 만든 것을 먹지 아니하고, 항상 뜨물과 백비탕을 마시며, 우계(牛戒), 구계(狗戒), 계계(雞戒), 치계(雉戒) 등 외도의 계율을 가지고, 재를 몸에 바르고 머리를 기르며, 양을 잡아 제사할 적에는 먼저 주문을 읽은 뒤에 죽이며, 넉 달 동안 불을 섬기고 7일 동안 바람을 섬기며, 백 천억의 꽃으로 하늘에 공양하면 모든 소원이 이것을 말미암아 성취된다고 하여 이런 법이 위없는 해탈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옳지 아니한 줄을 아는 것을 안다고 이름 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보지 못한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한 사람도 이런 법을 행하여 바른 해탈을 얻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보지 못 한다 이름 하느니라.” 어린 사미 시절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비구스님은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느라고 남근(男根)은 부정한 것이라 하여 소변을 볼 때 젓가락으로 집어서 본다고 하였는데 그 뒤 몇 년 후에 환속하였다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은 주문을 외며 수행하다가 남근을 자른 일도 있었다. 또 한 비구니는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기 위해서 늘선체로 소변을 본다는 말도 들었다. 불교는 연기의 이치를 가르치는 종교다. 위의 사례들도 연기의 이치에 해당이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4> 머물지 않는 계 云何爲不住戒오此菩薩이受持戒時에心不住欲界하며不住色界하며不住無色界하나니何以故오不求生彼하야而持戒故니라 “무엇을 머물지 않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계를 받아 가질 때 마음이 욕계에 머물지 아니하며, 색계에 머물지 아니하며, 무색계에 머물지 않나니, 무슨 까닭인가. 그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계를 가짐이 아님이니라.” 강설 ; 계를 받아 가질 때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설사 색계와 무색계는 욕계보다는 높은 차원의 세계라 하더라도 보살이 계를 받아가지는 최종 목적은 아니다. 그러므로 흔히 5계를 잘 지키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권하는 가르침은 방편이지 보살의 바른 길은 아니다. <5> 뉘우침 없는 계 云何爲無悔恨戒오此菩薩이恒得安住無悔恨心하나니何以故오不作重罪하며不行諂詐하며不破淨戒故니라 “무엇을 뉘우침이 없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항상 뉘우침이 없는 마음에 안주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무거운 죄를 짓지 아니하며, 거짓을 행하지 않으며, 청정한 계를 파하지 않는 까닭이니라.” 강설 ; 사람이 선량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면 후회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삶을 산다. 죄를 짓지 아니하면 뉘우침이 없는 삶을 산다. 거짓을 행하여 남을 속이지 아니하면 뉘우침이 없는 삶을 산다. 청정한 계를 파하지 아니하면 뉘우침이 없이 당당한 삶을 산다. 이것이 진정한 계이다. <6> 어기지 않는 계 云何爲無違諍戒오此菩薩이不非先制하고不更造立하며心常隨順하야向涅槃戒하며 具足受持하야無所毁犯하며不以持戒로惱他衆生하야令其生苦하고但願一切로 心常歡喜하야而持於戒니라 “무엇을 어기고 다툼이 없는 계라고 하는가. 이 보살이 먼저 제정한 것을 어기지[非] 않고 다시 만들지 않으며, 마음이 항상 수순해서 열반의 계를 향하여 구족하게 받아 가져서 헐거나 범함이 없으며, 계를 가짐으로써 다른 중생을 괴롭게 하여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며, 다만 모든 이들로 하여금 마음이 항상 환희하기를 원해서 계를 가지느니라.” 강설 ; 부처님 당시에도 제바달다가 이미 제정한 계를 어기기도 하고 스스로 새로운 계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와 같은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열반의 계를 향한다는 것은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은 언젠가 그 형상이 소멸하므로 형상을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열반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다. 또 계를 가짐으로서 다른 중생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계로써 다른 사람을 핍박하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파계를 하더라도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어떤 계를 가지든지 그 큰 목적은 일체중생을 편안하고 기쁘도록 하기 위하여 계를 가지는 것이다. <7> 괴롭히고 해롭게 하지 않는 계 云何爲不惱害戒오此菩薩이不因於戒하야學諸呪術하야造作方藥하야惱害衆生하고但爲救護一切衆生하야而持於戒니라 “무엇이 괴롭히고 해롭게 하지 않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계로 인하여 여러 가지 주술을 배워서 약을 만들어 중생을 괴롭히고 해롭게 하지 아니하고, 다만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 계를 가지느니라.” 강설 ; 이 경문에 대해서 청량스님은, “괴롭히고 해롭게 하지 않는 계란 중생을 괴롭히려고 먼저 계를 가지는 것도 아니며, 청정한 계를 이루기 위하여 중생을 괴롭히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또 말을 죽여 천신에 제사하는 것과 같은 등이다. 예컨대 용을 제어하려는 것과 같은 경우인데, 일찍이 아라한이 계를 가지고 그 계의 힘으로 용을 쫓아냈다는 말을 듣고 더디어 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것이다. 또 말을 죽여 천신에 제사한다는 것은 백론(百論)에 외도가 말을 죽여 천신에 제사하여 범천에 태어날 것을 생각하여 곧 말을 괴롭히고 해롭게 하였으니 이것으로 계를 삼은 것 등이다.”라고 하였다. <8> 섞임이 없는 계 云何爲不雜戒오 此菩薩이 不着邊見하며 不持雜戒하고 但觀緣起하야 持出離戒니라 “무엇을 뒤섞이지 않는 계라 하는가. 이 보살은 치우친 견해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뒤섞인 계를 가지지 아니하고 다만 연기(緣起)를 관찰하여 벗어나는 계를 가지느니라.” 강설 ; “치우친 견해”란 일체 법이 반드시 있다고 보거나 반드시 없다고 보는 견해를 치우친 견해라 한다. 보살은 있음과 없음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래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에도 뒤섞이지 않는다. 다만 일체 존재의 존재원리를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고 관찰하여 유와 무와 생과 사에서 멀리 벗어난다. <9> 탐하여 구함이 없는 계 云何爲無貪求戒오 此菩薩이 不現異相하야彰己有德하고但爲滿足出離法故로而持於戒니라 “무엇을 탐하여 구함이 없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기이한 모양을 나타내어서 자기에게 덕(德)이 있다고 드러내지 않고, 다만 벗어나는 법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계를 가지느니라.” 강설 ; 보살이 계를 가지더라도 다른 목적이 있어서 무엇을 탐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다. 어떤 수행자는 수행자라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멀쩡한 옷을 찢어서 누더기를 만들어 입는다든지, 또는 주장자를 들고 택시를 탄다든지 하여 남의 이목을 끄는 경우가 있다. 이 모두가 경문에서 경계한, 자신이 덕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보살은 오로지 번뇌 무명과 생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계를 지니는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은 옷 속에 넣어놓으면 저절로 그 끝이 옷을 뚫고 나오는 법이다. 굳이 덕이 있음을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10> 과실(過失)이 없는 계 云何爲無過失戒오此菩薩이不自貢高하야言我持戒하며見破戒人호대亦不輕毁하야今他愧耻하고但一其心하야而持於戒니라 “무엇을 과실(過失)이 없는 계라 하는가. 보살은 스스로를 높이 받들어서 말하기를 ‘나는 계를 가지노라.’하지 않으며, 계를 파한 사람을 보고도 또한 가벼이 여겨서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 마음을 오로지 해서 계를 가지느니라.” 강설 ; 보살이 계를 가지는 바람직한 태도를 밝혔다. 첫째 계를 청정하게 가지더라도 스스로 계를 가진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다음은 파계한 사람을 가벼이 여기거나 파계를 꾸짖어서 그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계를 잘 가지거나 또는 파계를 하거나 그 자신이 가장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도 또 다른 파계다. <11> 헐고 범(犯)함이 없는 계 云何爲無毁犯戒오此菩薩이永斷殺盜邪婬과 妄語兩舌惡口와及無義語와貪瞋邪見하고具足受持十種善業하나니라 “무엇을 헐고 범함이 없는 계라고 하는가. 보살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邪淫)과 거짓말과 두 가지 말과 악한 말과 옳지 않은 말과 탐심(貪心)과 진심(嗔心)과 사견(邪見)을 영원히 끊고 열 가지 착한 업을 구족하게 받아 가지는 것이니라.” 강설 ; 보살의 헐고 범(犯)함이 없는 계란 열 가지 악한 행을 영원히 끊고 반대로 열 가지 선한 행을 구족하게 잘 받아 지니는 것이다. 菩薩이 持此無犯戒時에作是念言호대一切衆生이毁犯淨戒는皆由顚倒라唯佛世尊이能知衆生의以何因緣으로而生顚倒하야毁犯淨戒하시나니我當成就無上菩提하고廣爲衆生하야說眞實法하야令離顚倒라하나니是名菩薩摩訶薩의 第二戒藏이니라 “보살이 이 범함이 없는 계를 가질 때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일체중생이 깨끗한 계를 헐고 범하는 것은 다 전도(顚倒)하였기 때문이니, 오직 부처님 세존은 중생이 무슨 인연으로 전도하여 깨끗한 계를 헐고 범하는가를 능히 잘 아시느니라. 내가 마땅히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취하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해서 전도를 떠나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 2계장(戒藏)이니라.” 강설 ; 보살의 헐고 범(犯)함이 없는 계란 또 스스로 무상보리를 이루어서 일체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해주어 전도된 삶을 영원히 떠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중생이 청정한 계를 범하는 것은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여 삶의 바른 길을 모르고 잘못되고 전도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법을 배워 진실하고 유익한 바른 이치를 알게 된다면 저절로 계를 잘 가지게 되는 것이다. (3) 참장(慙藏)을 설하다 <1> 악을 지은 것을 부끄러워하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慚藏고此菩薩이憶念過去所作諸惡하야而生於慚하나니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참장(慙藏)인가. 이 보살이 과거에 지은 모든 악을 생각해서 부끄러움을 내느니라.” 강설 ; 흔히 참괴심(慙愧心)이라고 하여 한꺼번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세분하면 과거에 지은 악한 업을 부끄러워 뉘우치는 마음을 부끄러울 참(慙)이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잘못하는 일을 짓지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는 마음을 부끄러워할 괴(愧)라 한다. <2> 과거에는 악을 짓고 부끄러워함이 없었다. 謂彼菩薩이心自念言호대我無始世來로與諸衆生으로皆悉互作父母兄弟姉妹男女하야具貪瞋癡와憍慢諂誑과及餘一切諸煩惱故로更相惱害하고遞相陵奪하야姦淫傷殺을無惡不造하며一切衆生도悉亦如是하야以諸煩惱로備造衆惡일새是故로 各各不相恭敬하며不相尊重하며不相承順하며不相謙下하며不相啓導하며不相護惜하고更相殺害하야互爲怨讎하나니라 “저 보살이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모든 중생으로 더불어 다 서로 부모도 되고 형제자매와 남녀가 되었었다. 그래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과 교만과 아첨과 온갖 번뇌를 갖춘 연고로 서로 괴롭게 하고 손해를 입혔으며, 서로서로 업신여기고 빼앗으며, 간음하고 살생하여 온갖 악을 다 지었었다. 일체 중생에게도 다 또한 이와 같이 해서 온갖 번뇌로 여러 가지 악을 다 지었느니라. 그러므로 각각 서로 공경하지 아니하며, 존중하지도 않으며, 순종하지도 아니하며, 겸손하지도 아니하며, 서로 계도(啓導)하지도 않으며, 서로 보호하고 아끼지도 아니하고, 서로 살해해서 서로가 원수가 되었느니라.'라고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세세생생 살아온 삶에 대해서 반성한다.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들도 기억하는 일이든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든 불법 안에서 참회하는 법을 이해한 이상 언제나 지난날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와 같은 보살의 마음 자세를 밝혔다. <3> 부끄러운 상을 나타내다 自惟我身과及諸衆生이去來現在에行無慚法을三世諸佛이無不知見하시나니今若不斷此無慚行이면三世諸佛이亦當見我하시리니我當云何猶行不止리오甚爲不可로다是故로 我應專心斷除하고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廣爲衆生하야說眞實法이라하나니是名菩薩摩訶薩의 第三慚藏이니라 “스스로 생각하건대, ‘나의 몸과 모든 중생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부끄러움이 없는 법 행하기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알고 보지 않으심이 없나니, 이제 만약 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행을 끊지 아니하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또한 나를 보시리라. 내가 어찌 아직도 행하면서 끊지 아니하리오. 매우 옳지 못한 일이로다. 그러므로 나는 응당 일심으로 끊어서 제거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해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하리라.’라고 하리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3 참장(慙藏)이니라.” 강설 ; 지난 세상 세세생생을 살아오면서 저지른 일에 대하여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를 밝혔다. “아무리 비밀한 일이라도 모든 일은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이 안다.”라는 말이 있다. 중생이 하는 일을 삼세의 부처님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또 악을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악은 끊어 제거하고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여 널리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할 것을 서원하여야 할 것이다. (4) 괴장(愧藏)을 설하다 <1> 과거 부끄러웠던 일을 생각하여 수행하다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愧藏고此菩薩이自愧昔來로於五欲中에 種種貪求하야無有厭足일새因此增長貪恚癡等의一切煩惱니我今不應復行是事라하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괴장(愧藏)인가. 보살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를 '옛적부터 오욕락(五欲樂) 가운데서 가지가지로 탐하여 만족할 줄을 모르며, 그로 인해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증장(增長)하였으니, 내가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을 행하지 아니하리라.'하느니라.” 강설 ; 과거에 저지른 일을 생각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이 괴장(愧藏)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청량스님은 “참(慙)과 괴(愧)가 서로 다르니 여러 설명이 다르다. 열반경에는 ‘참은 하늘에 부끄러워함이고 괴는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이다. 또 참은 스스로 악을 짓지 않는 것이고 괴는 다른 사람에게 악을 짓지 아니함이다. 또 참은 속으로 스스로 부끄러워함이고 괴는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이다.’ 유가(瑜伽) 44에 또 ‘안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을 참이라 하고, 밖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을 괴라 한다.’”라고 하였다. <2> 중생을 해치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又作是念호대衆生이 無智하야起諸煩惱하야具行惡法하야不相恭敬하고不相尊重하며乃至展轉互爲怨讎하야 如是等惡을無不備造하고造已歡喜하야追求稱歎하며盲無慧眼하야無所知見하니라 “또 생각하기를 '중생들이 지혜가 없어서 온갖 번뇌를 일으켜서 여러 가지 악한 법을 모두 행해서 서로 공경하지 아니하고, 서로 존중하지 아니하며, 내지 더욱 더 서로 원수가 되나니, 이러한 악한 일을 짓지 않은 것이 없으며, 짓고 나서는 기뻐해서 서로 칭찬하기를 바라며 맹인이 되어 지혜의 눈이 없어서 지견(知見)이 없었느니라.” 강설 ; 중생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일들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그 모든 악은 지혜가 없어서 짓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지혜가 있다면 포상을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악을 짓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불교는 가장 힘주어 역설하는 것이 지혜다. <3> 세간사를 돌아보아 부끄러워하는 행을 닦다 於母人腹中에入胎受生하야成垢穢身하야畢竟至於髮白面皺하나니有智慧者는觀此에 但是從婬慾生不淨之法이라 三世諸佛이皆悉知見하시나니若我於今에猶行是事하면則爲欺誑三世諸佛이라是故로 我當修行於愧하야 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廣爲衆生하야說眞實法이라하나니是名菩薩摩訶薩의 第四愧藏이니라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고 태어나며, 더러운 몸을 받아서 필경에는 머리는 희고 얼굴이 쭈그러지게 되나니, 지혜 있는 이가 이것을 보고는 다만 이것은 음욕으로 생기는 청정하지 못한 법이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아신다. 만약 내가 이제 이러한 일을 오히려 행한다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부끄러워하는 행을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이루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하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4 괴장(愧藏)이니라.” 강설 ; 보살이 또 스스로 생각한 내용들이다. 불교적 관점에서 평범한 인생사를 돌아보면 하나하나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더 이상은 이와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아니하리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오로지 중생을 위하여 진실한 법을 설하여 깨우쳐 주리라. (5) 문장(聞藏)을 설하다 <1> 보살이 온갖 법을 들어서 알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聞藏고此菩薩이知是事가有故로是事가有하고是事가 無故로 是事가無하며是事가起故로是事가起하고是事가滅故로是事가 滅하며是世間法이요是出世間法이며是有爲法이요是無爲法이며是有記法이요是無記法이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문장(聞藏)인가. 이 보살이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으며, 이 일이 일어나는 고로 이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이 소멸하는 고로 이 일이 소멸하며, 이것은 세간법(世間法)이요, 이것은 출세간법(出世間法)이며,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이것은 무위법(無爲法)이며, 이것은 기록할 수 있는 법이요, 이것은 기록할 수 없는 법임을 아느니라.” 강설 ; 문장(聞藏)이란 보살이 교법에 대하여 많이 듣고 많이 아는 것을 뜻한다. 앞의 네 구절은 불교의 근본 교설인 일체 존재의 있음과 없음과 일어남과 소멸함의 연기법을 들어서 아는 것을 밝혔다. 장아함경 20에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여래의 존재와 무관하게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다. 여래는 이법을 스스로 깨닫고, 깨달음을 완성한 뒤에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해서 연설하고 이를 드러내 보이시니,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일체 존재는 모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합성된 것이며,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다음에는 유루오온(有漏五蘊)과 무루오온(無漏五蘊)과 유위(有為)와 무위(無為)와 유기(有記)와 무기(無記)의 법을 들어서 안다는 것을 밝혔다. <2> 인연으로 유무 생멸하는 법 何等이 爲是事有故로是事有오謂無明이 有故로行有니라何等이 爲是事無故로是事無오謂識無故로名色이 無니라何等이 爲是事起故로是事起오謂愛起故로苦起니라何等이 爲是事滅故로是事滅고謂有滅故로生滅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있으므로 이 일이 있음인가. 말하자면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음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없으므로 이 일이 없음인가. 말하자면 식(識)이 없으므로 명색(名色)이 없음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일어나는 고로 이 일이 일어남인가. 말하자면 애(愛)가 일어나므로 고(苦)가 일어남이니라. 어떤 것이 이 일이 소멸하므로 이 일이 소멸함인가. 말하자면 유(有)가 소멸하므로 생(生)이 소멸함이니라.” 강설 ; 문장(聞藏)의 열 가지 법 중에 앞의 네 구절은 연기법을 들었다. 네 구절의 연기법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연기법이란 일체 법, 일체 존재에 다 해당하는 법이지만 일체 법 중에 사람의 열두 가지 인연생기하는 법이 가장 근본이 되므로 12인연을 간략이 들었다. 그리고 이 12인연은 모두가 다 낱낱이 있으므로 있고, 없으므로 없고, 일어남으로 일어나고, 소멸하므로 소멸한다. 즉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등이 서로 서로 연관관계에 의해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밝혔다. <3> 세간(世間)의 법 何等이 爲世間法고所謂色受想行識이니라 “어떤 것이 세간법인가. 이른바 색(色)과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이니라.” 강설 ; 세간(世間)의 법이란 사람의 오온을 단순하게 오온으로만 관찰하는 경우에는 곧 세간법이 된다. <4> 출세간(出世間)의 법 何等이 爲出世間法고所謂戒定慧解脫解脫知見이니라 “어떤 것이 출세간법인가. 이른바 계(戒)와 정(定)과 혜(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니라.” 강설 ; 출세간(出世間)의 법이란 오온을 단순하게 오온으로만 관찰하지 아니하고 오온을 굴려서 오분법신(五分法身)으로 만들면 그것이 곧 출세간의 법이 된다. 오온으로 구성된 사람의 몸과 마음을 떠나서 달리 무슨 출세간법이 있겠는가. 계와 정과 혜를 불교의 삼학이라 한다. 이 삼학을 잘 닦아서 해탈을 얻게 되고, 해탈을 얻고 나서는 다른 모든 중생들도 다 같이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해서 보살행으로 실현하는 것이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다. 이것이 출세간법이며, 불교를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한 것이다. <5> 함이 있는 법[有爲法] 何等이 爲有爲法고所謂欲界와 色界와無色界와 衆生界니라 “어떤 것이 유위법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중생계(衆生界)이니라.” 강설 ; 청량스님은 유위법을 유가론과 지도론을 인용하여 밝혔다. “유위법이란 유가론 1백에 이르되, ‘생멸이 있어서 인연에 얽힌 것을 유위라 한다.’하였고, 지도론에 이르되, ‘얻은 바가 있기 때문에 유위라 한다.’라고 하였다.” <6> 함이 없는 법[無爲法] 何等이 爲無爲法고所謂虛空과 涅槃과數緣滅과 非數緣滅과緣起와 法性住니라 “어떤 것이 무위법인가. 이른바 허공과 열반과 헤아림의 인연으로 소멸함과 헤아림의 인연이 아님으로 소멸함과 연기(緣起)와 법성주(法性住)니라.” 강설 ; 허공은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위법이다. 열반도 본래 존재하는 것이지 만들어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무위법이다. 숫자의 인연이 소멸하고 숫자가 아닌 인연도 소멸한 경지는 무위법이다. 연기도 누가 만든 법이 아니다 다만 세존이 이미 존재하는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 법성주(法性住)란 진여를 말한다. 모두가 조작하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무위법에 속한다. <7> 기록할 수 있는 법[有記法] 何等이 爲有記法고謂四聖諦와 四沙門果와四辯과 四無所畏와四念處와四正勤과四神足과五根과 五力과七覺分과 八聖道分이니라 “어떤 것이 기록할 수 있는 법인가. 말하자면 사성제(四聖諦)와 사사문과(四沙門果)와 사변(四辯)과 사무소외(四無所畏)와 사념처(四念處)와 사정근(四正勤)과 사신족(四神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팔성도분(八聖道分)이니라.” 강설 ; 기록할 수 있는 법이란 고집멸도와 수다원과,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와 법무애, 의무애, 사무애, 요설무애와 일체지(一切智)무소외, 누진(漏盡)무소외, 설장도(說障道)무소외, 설출도(說出道)무소외와 신념처(身念處), 수(受)념처, 심(心)념처, 법(法)념처와 율의단(律儀斷), 단단(斷斷), 수호단(隨護斷), 수단(修斷)과 욕(欲)여의족, 정진(精進)여의족, 심(心)여의족, 사유(思惟)여의족과 신근(信根), 정진근(精進根), 염근(念根), 정근(定根), 혜근(慧根)과 신력(信力), 정진력(精進力), 염력(念力), 정력(定力), 혜력(慧力)과 택법각분(擇法覺分), 정진(精進)각분, 희(喜)각분, 제(除)각분, 사(捨)각분, 정(定) 각분, 염(念)각분과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8> 기록할 수 없는 법[無記法] 1) 아(我)에 나아가서 무기(無記)를 밝히다 何等이 爲無記法고謂世間有邊과世間無邊과世間亦有邊亦無邊과世間非有邊非無邊과世間有常과世間無常과 世間亦有常亦無常과世間非有常非無常과如來滅後有와如來滅後無와如來滅後亦有亦無와 如來滅後非有非無와我及衆生有와我及衆生無와我及衆生亦有亦無와我及衆生非有非無니라 “어떤 것이 기록함이 없는 법인가. 말하자면 세간이 끝이 있음과 없음과, 세간이 또한 끝이 있고 또한 끝이 없음과, 세간이 끝이 있음이 아님과 끝이 없음이 아님과, 세간이 항상함이 있음과 항상함이 없음과, 세간이 항상함이 있음이 아니며 항상함이 없음이 아님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있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없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또한 있고 또한 없음과, 여래가 열반하신 뒤에 있음이 아니고 없음이 아님과, 나와 중생이 있음과 나와 중생이 없음과, 나와 중생이 또한 있고 또한 없음과 나와 중생이 있음이 아니며 없음이 아님이니라.” 강설 ; 기록할 수 없는 법[無記法]이란 세간법이나 출세간법을 있다거나 없다고 분명하게 명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실로 확정하여 있는 것은 무엇이며 확정하여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 경문이 비록 열여섯 구절로 산만하게 설하고 있으나 결국 유와 무의 두 가지 견해며,단(斷)과 상(常)의 두 가지 견해뿐이다. 그 두 가지 견해로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2) 범부와 성인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過去에有幾如來의 般涅槃과幾聲聞辟支佛의 般涅槃이며未來에 有幾如來와幾聲聞辟支佛과幾衆生이며現在에有幾佛住와幾聲聞辟支佛住와幾衆生住니라 “과거에 몇 분의 여래가 열반에 듦과, 몇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이 열반에 듦이 있으며, 미래에 여래와 몇 성문, 벽지불과 몇 중생이 있으며, 현재에 몇 분의 부처님이 머물러 있고, 몇 성문 벽지불이 머물러 있고, 몇 중생이 머물러 있느니라.” 강설 ; 과거 미래 현재의 성인과 범부의 숫자의 많고 적음을 거리낌 없이 멋대로 논하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무기를 밝혔다. 거리낌 없이 멋대로 논하는 일이 끝이 없으므로 기록할 수 없다. 3) 선후의 범부와 성인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何等如來가最先出이며何等聲聞辟支佛이最先出이며何等衆生이最先出이며何等如來가 最後出이며何等聲聞辟支佛이最後出이며何等衆生이最後出이며何法이 最在初며何法이 最在後오 “어떠한 여래가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성문 벽지불이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중생이 가장 먼저 났으며, 어떠한 여래가 가장 뒤에 나며, 어떠한 성문 벽지불이 가장 뒤에 나며, 어떠한 중생이 가장 뒤에 나며, 무슨 법이 가장 먼저 있었으며, 무슨 법이 가장 뒤에 있는가?” 강설 ; 여래와 성문, 벽지불, 중생, 그리고 법까지 들어서 선과 후를 논하여 기록할 수 없음을 밝혔다. <4> 세계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世間이 從何處來며去至何所며有幾世界成이며有幾世界壞며世界가從何處來며去至何所오 “세간은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가며, 몇 세계가 이루어지며, 몇 세계가 파괴되며, 세계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인가?” 강설 ; 세간이 온 곳과 가는 곳과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세계가 온 곳과 가는 곳은 전혀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이다. <5> 생과 사의 경계선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何者가爲生死最初際며何者가爲生死最後際오是名無記法이니라 “무엇이 생사(生死)의 가장 처음의 경계며, 무엇이 생사의 가장 뒤의 경계인가? 이것이 이름이 기록함이 없는 법[無記法]이니라.” 강설 ; 생사가 유유하여 정지함이 없거늘 앞과 뒤의 경계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이치에 당하지도 않는 말을 하여 혼란하게만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은 전혀 기록할 수 없는 법들이다. (9) 많이 들어 아는 뜻을 나타내다 菩薩摩訶薩이作如是念호대一切衆生이 於生死中에無有多聞하야不能了知此一切法하나니我當發意하야 持多聞藏하야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爲諸衆生하야說眞實法이라하나니是名菩薩摩訶薩의第五多聞藏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일체중생이 생사 가운데서 많이 듣지 못해서 이 모든 법을 잘 알지 못하나니, 내가 마땅히 뜻을 내어 많이 듣는 장을 가져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진실한 법을 설하리라.'하나니 이것이 이름이 보살마하살의 제5 다문장(多聞藏)이니라.” 강설 ; 다문장(多聞藏)이란 진리의 가르침을 선지식으로부터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많이 읽고, 많이 느끼고, 많이 깨달아서 궁극에는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여 모든 중생을 위해서 진실한 법을 널리 설한다는 것이다. 불교인은 무엇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듣고 많이 읽어서 많이 아는 것이 첫째 과제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여 아예 처음부터 문자로 된 가르침을 멀리한다는 뜻이 아니라, 문자를 공부하되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문자를 통해서 문자가 가리키는 뜻을 깨달아야 된다는 의미이다. 달을 가리키는 방편을 이용하여 달을 보라는 뜻이다. 지공(誌公)화상의 대승찬(大乘讚)에는 “만약 도의 참 본체를 깨닫고자한다면 소리와 물질과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언어가 즉시 큰 도다. 번뇌도 끊어서 제거할 것이 아니다. 번뇌는 본래 공적한 것이니라.”하고 하였다. 이와 같은 차원은 아니더라도 많이 듣고 많이 읽는 것을 통해서 불법을 바르게 아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6) 시장(施藏)을 설하다 <1> 열 가지 보시(布施)의 이름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施藏고此菩薩이行十種施하나니所謂分減施와 竭盡施와內施와外施와內外施와一切施와過去施와未來施와現在施와究竟施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시장(施藏)인가.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분감시(分減施)와 갈진시(竭盡施)와 내시(內施)와 외시(外施)와 내외시(內外施)와 일체시(一切施)와 과거시(過去施)와 미래시(未來施)와 현재시(現在施)와 구경시(究竟施)니라.” 강설 ; 열 가지 무진장 중에서 시장(施藏)이란 보살의 제일덕목인 보시를 말한다. 보시는 불교수행의 제일항목이며 지혜와 자비를 몸소 실천하는 구체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보시를 실천하지 않고 지혜와 자비를 논할 수 없다. 보시를 실천하지 않고 불교를 논할 수 없다. 어떤 경전을 공부하던지 보시를 빼고는 이야기할 것이 없다. 특히 바람직한 불교, 이상적인 불교인 대승불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체 보살행의 제일 조건이 곧 보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더욱 철저하게 하기 위해서 열 가지의 보시를 설하였다. <2> 나누어주는 보시[分減施] 佛子야云何爲菩薩의 分減施오此菩薩이稟性仁慈하야好行惠施라若得美味하면 不專自受하고要與衆生然後에 方食하며凡所受物도悉亦如是니라 “불자여, 무엇이 보살의 나누어주는 보시라 하는가. 보살의 성품은 인자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만약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오로지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나누어준 뒤에 바야흐로 먹으며, 무릇 남에게 받은 물건도 다 모두 그렇게 하느니라.” 강설 ; 맛있는 음식이나 그 외에 다른 일체의 물건들도 다 같이 나누어 먹고 나누어 쓰라는 가르침이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든 지금 막 생긴 것이든 보살은 항상 나누어주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若自食時엔作是念言호대我身中에 有八萬戶蟲이依於我住하야我身充樂하면彼亦充樂하고我身飢苦하면 彼亦飢苦하나니我今受此所有飮食을願令衆生으로普得充飽하야爲施彼故로而自食之요不貪其味라하며 “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의 몸 가운데에 팔만의 벌레가 나를 의지해서 머무나니, 내 몸이 충족해서 즐거우면 그들도 또한 충족해서 즐거워한다. 나의 몸이 굶주리고 괴로우면 그들도 또한 굶주리고 괴로워한다. 내가 지금 받은 이 음식을 원컨대 중생들에게 널리 충족하고 배부르게 해서 그들에게 베풀기를 위하는 고로 스스로 먹는 것이요, 그 맛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니라.” 강설 ; 보살이 자신의 신체에 또 다른 수많은 생명체가 있음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실로 우리들의 몸은 60조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또 그 세포 하나하나마다 역시 60조의 세포가 있어서 모두 3천 6백조의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육신이다. 어쩌면 더 세분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굶거나 배가 부르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존경을 표하거나 화를 내거나, 한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3천 6백조의 생명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살은 배불리 먹거나, 기뻐하거나, 모두 3천 6백조의 생명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여겨야한다. 復作是念호대我於長夜에愛着其身하야欲令充飽하야而受飮食일새 今以此食으로惠施衆生하야願我於身에永斷貪着이라하나니是名分減施니라 “다시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긴 세월동안 그 몸을 애착해서 배를 불리려고 음식을 받았으니 이제 이 음식으로 중생들에게 베풀어서 나의 몸에는 길이 탐욕과 애착을 끊으리라.' 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나누어주는 보시[分減施]이니라.” 강설 ; 보살은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참회를 하고 예배를 하거나 일체를 뭇 생명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해야 한다. <3> 전부 다하는 보시[竭盡施] 云何爲菩薩의 竭盡施오佛子야此菩薩이得種種上味飮食과香華衣服資生之具하야若自以受用하면則安樂延年이요 若輟己施人하면則窮苦夭命이라도時或有人이來作是言호대汝今所有를悉當與我하라하면菩薩이 自念호대我無始已來로 以飢餓故로喪身無數호대未曾得有如毫末許도饒益衆生하야而獲善利니今我亦當同於往昔하야而捨其命이라 是故로 應爲饒益衆生하야隨其所有하야一切皆捨하며乃至盡命하야도亦無所悋이라하나니是名竭盡施니라 “무엇이 보살의 전부 다하는 보시[竭盡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갖가지 맛좋은 음식과 향이나 향과 꽃과 의복과 생활을 돕는 물건을 얻었을 때에 만약 스스로 받아서 쓰면 안락하여 오래 살 것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자신은 곤궁하고 고통스러워 빨리 죽게 될지라도 그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러한 말을 하되, ‘그대가 지금 가진 것을 나에게 다 주십시오.’라고 하면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오랜 옛적부터 주린 연고로 몸을 버린 것이 그 수가 없었으나 일찍이 터럭 끝만큼도 중생을 요익하게 하여 좋은 이익을 얻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 내가 또한 마땅히 지난 옛적과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그 가진 것을 모두 다 주며 내지 목숨이 다하더라도 아끼는 바가 없으리라.'하나니 이것이 이름이 전부 다하는 보시[竭盡施]라 하느니라.” 강설 ; 전부 다하는 보시인 갈진시(竭盡施)는 어떤 경우라도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위해서 그 가진 것을 모두 다 주며 내지 목숨이 다하더라도 아끼는 바가 없이 일체를 다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4> 속 보시[內施] 云何爲菩薩의 內施오佛子야此菩薩이年方少盛에 端正美好하며香華衣服으로以嚴其身하고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七寶具足하야王四天下어든時或有人이來白王言호대大王아 當知하라我今衰老하야身嬰重疾하고煢獨羸頓하야死將不久어니와若得王身의手足血肉과頭目骨髓인댄我之身命이必冀存活이로소니唯願大王은莫更籌量하야有所顧惜하고但見慈念하야以施於我하라하면爾時菩薩이作是念言호대今我此身이後必當死라無一利益이니宜時疾捨하야以濟衆生이라하고念已施之하야心無所悔하나니是名內施니라 “무엇이 보살의 내시[內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나이가 한창 젊어서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향과 꽃과 의복으로 그 몸을 꾸미고 비로소 관정(灌頂)하고 전륜왕의 지위에 올라서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를 다스릴 때에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대왕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지금 노쇠하여 몸에 무거운 병이 들었으며 외롭고 여위고 지쳐서 곧 죽게 되거니와 만약 대왕의 몸에서 손발과 피와 살과 머리와 눈과 골수를 얻는다면 나의 목숨은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오직 원하노니 대왕은 더 생각하거나 돌아보거나 아끼지 마시고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나에게 보시 하소서.'하면 그때에 보살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지금 나의 이 몸이 뒤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도 이익이 없으리니 마땅한 때에 빨리 보시해서 중생을 구제하리라.'라고하고 나서 그에게 베풀어서 마음에 후회함이 없나니 이것이 이름이 내시[內施]니라.” 강설 ; 속 보시[內施]란 아무리 존귀한 지위에 있더라도 내 몸을 아무에게나 다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청량스님은 “제3 내시란 내 몸을 보시하는 것이라 한다. 외로울 경[煢]은 혼자라는 뜻이다. 옥편에 형제가 없는 것을경(煢)이라 하고 자식이 없는 것을 홀로[獨]라 한고, 돈(頓)이란 손실[損]이라 하고 기(冀)는 바란다는 뜻이다.”하였다. <5> 겉 보시[外施] 云何爲菩薩의 外施오佛子야此菩薩이年盛色美하야衆相具足하며名華上服으로而以嚴身하고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七寶具足 하야王四天下어든時或有人이來白王言호대我今貧窶하야衆苦逼迫이로소니惟願仁慈는特垂矜念하사捨此王位하야以贍於我 하소서我當統領하야受王福樂이라하면爾時菩薩이作是念言호대一切榮盛이必當衰歇이라於衰歇時엔不能復更饒益衆生이니 我今宜應隨彼所求하야充滿其意라하고作是念已하고卽便施之하야而無所悔하나니是名外施니라 “무엇이 보살의 외시(外施)라 하는가. 이 보살이 나이 젊고 용모가 단정하여 여러 몸매가 구족하였으며, 훌륭한 꽃과 좋은 의복으로 몸을 장엄하고 처음으로 관정(灌頂)하여 전륜왕이 되어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를 통치할 적에, 그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나는 지금 곤궁하고 여러 가지 고통이 핍박하오니, 바라옵건대 인자하신 분께서는 특별히 불쌍히 여기사 이 왕의 자리를 나에게 주시면, 내가 이 천하를 거느리고 임금의 복락을 받겠나이다.'라고 한다면, 이때 보살이 생각하되 '모든 영화는 반드시 쇠하는 것이요, 쇠하게 되면 다시는 중생에게 이익 줄 수 없나니, 내가 이제 마땅히 저 사람의 요구를 따라서 그 뜻을 만족케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곧 보시하여 주고 뉘우치는 마음이 없으면, 이것을 외시(外施)라 하느니라.” 강설 ; 외시(外施)란 세상 사람들이 다 바라는 왕의 지위를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왕위를 차지하려고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았는가. 그런데 보살은 말 한마디에그토록 소중한 왕의 지위를 헌신짝을 버리듯이 버리는 것이다. 청량스님은 “제4 외시(外施)란 곧 완의 지위다. 구(窶)란 재산이 없이 예를 갖춘 것이다.”라고 하였다. <6> 안팎 보시[內外施] 云何爲菩薩의 內外施오佛子야此菩薩이如上所說하야處輪王位하야七寶具足하야王四天下어든時或有人이而來白言호대此轉輪位에王處已久나我未曾得이로소니唯願大王은捨之與我하시며幷及王身이爲我臣僕하라하면爾時菩薩이作是念言호대我身財寶와及以王位가悉是無常敗壞之法이어늘我今盛壯에富有天下하니乞者가現前에當以不堅으로而求堅法이라하고作是念已하고 卽便施之하며乃至以身으로恭勤作役호대心無所悔하나니是名內外施니라 “무엇을 보살의 안팎 보시라 하는가. 이 보살이 위에 말한 것처럼 전륜왕의 자리에 있어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에 왕이 되었을 적에,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대왕은 오래 전부터 전륜왕이 되었거니와, 나는 한 번도 이 자리를 얻지 못하였 사오니,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그 자리를 나에게 주시고 왕의 몸소 나의 신하가 되소서.'라고 한다면, 그때 보살이 생각하기를 '나의 몸이나 재물이나 왕의 지위는 모두 무상한 것이어서 필경에는 망가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건강하고 천하를 가졌는데, 달라는 이가 앞에 나타났으니, 마땅히 견고하지 못한 것을 버리어 견고한 법을 구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보시하여 주고, 내지 몸소 공순히 섬기되 뉘우치는 마음이 없나니, 이것을 안팎 보시라 하느니라.” 강설 ; 이 내외시는 왕의 지위도 보시하고 재물도 보시하고 몸소 하인이 되어 공순하게 섬기기도 하는 것이다. 청량스님은 “제5 내외시는 왕위가 외시가 되고 겸하여 몸소 공순히 섬기는 것이 내시가 된다.”라고 하였다. <7> 일체 보시[一切施] 云何爲菩薩의 一切施오佛子야此菩薩도亦如上說하야處輪王位하야七寶具足하야王四天下어든時有無量貧窮之人이 來詣其前하야而作是言호대大王名稱이周聞十方하야我等이 欽風일새故來至此라吾曹가今者에各有所求로소니願普垂慈하사 令得滿足케하라하고時諸貧人이從彼大王하야或乞國王하며或乞妻子하며或乞手足과血肉心肺와頭目髓腦하면菩薩이 是時에 心作是念호대一切恩愛가會當別離하야而於衆生에無所饒益이니我今爲欲永捨貪愛하야以此一切必離散物로滿衆生願이라하고作是念已하고悉皆施與호대心無悔恨하며亦不於衆生에而生厭賤하나니是名一切施니라 “무엇을 보살의 일체 보시라 하는가. 이 보살이 위에 말한 것 같이 전륜왕의 지위에 있으면서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에 왕이 되었을 적에, 그때에 한량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 앞에 와서 말하기를, '대왕의 거룩한 소문이 시방에 두루 퍼졌으니 저희들이 덕화를 우러러 여기에 왔나이다. 저희들은 지금 제각기 구함이 있사오니 자비를 베풀어서 소원을 만족케 하소서.'하면서, 그때에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그 대왕에게 혹은 국왕을 달라 하고, 혹은 처자를 달라 하고, 혹은 수족과 혈육과 염통, 허파, 머리, 눈, 골수들을 요구한다면, 이때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은혜와 애정은 모이면 마땅히 떠나고야 마는 것이고, 중생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제 탐욕과 애정을 영원히 버리고, 서로 떠나고 흩어지게 될 온갖 것으로써 중생의 소원을 채워 주리라.'하고 나서, 모든 것을 베풀어 주고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중생에게 싫어하거나 천하게 여기지도 아니하나니, 이것을 일체 보시라 하느니라.” 강설 ; 일체 보시[一切施]란 그야말로 일체를 다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왕의 자리든 국토든 처지든 수족과 혈육과 염통, 허파, 머리, 눈, 골수 등 모든 것이다. 요즘의 표현대로라면 피와 장기와 시신까지 젊고 건강하고 살아 있을 때 기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를 다 보시하는 것이다. <8> 과거 보시[過去施] 云何爲菩薩의 過去施오此菩薩이聞過去諸佛菩薩의所有功德하고聞已不着하야了達非有하야不起分別하며不貪不味하며亦不求取하며無所依倚하나니見法如夢하야無有堅固하며於諸善根에不起有想하며亦無所倚하고但爲敎化取着衆生하야成熟佛法하야而爲演說이니라又復觀察호대 過去諸法을十方推求하야도都不可得이라하야作是念已하고於過去法에畢竟皆捨하나니是名過去施니라 “무엇을 보살의 과거 보시라 하는가. 이 보살이 지난 세상의 부처님과 보살들이 가진 공덕을 듣고도 집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 줄로 알아서, 분별하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고 맛들이지도 않으며, 또한 구하여 가지려고 하지도 않고 의지하려고도 아니하느니라. 법은 꿈과 같아서 견고하지 않음을 보며, 모든 선근에는 있는 것이란 생각을 내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며, 다만 집착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불법을 성숙시키려고 그를 위하여 연설하는 것이니라. 또 과거의 모든 법을 보건대 시방으로 찾으려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과거의 법들을 끝까지 버리나니, 이것을 과거 보시라 하느니라.” 강설 ; 보살이 과거의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공덕과 법과 선근을 들어서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에 집착하거나 탐하지 않는초연한 마음이 곧 보시다. 앞의 초발십공덕품에서 발심의 공덕을 얼마나 높이 찬탄했던가. 그럼에도 보살의 차원 높은 보시의 경계는 이와 같다. 다만 집착이 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불법을 성숙시키려고 그와 같은 공덕을 연설하는 것이다. 보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근본이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공덕이나 법이나 선근에 대해서 꿈과 같이 알아 일체 집착이 없는 것이 또 다른 차원의 보시이다. <9> 미래 보시[未來施] 云何爲菩薩의 未來施오此菩薩이聞未來諸佛之所修行하고了達非有하야不取於相하며 不別樂往生諸佛國土하야不味不着호대亦不生厭이라不以善根으로廻向於彼하며亦不於彼에 而退善根하야常勤修行하야未曾廢捨하고但欲因彼境界하야攝取衆生일새爲說眞實하야令成熟佛法이니라 然此法者는非有處所며非無處所며非內非外며非近非遠이니라復作是念호대若法非有인댄不可不捨라하나니是名未來施니라 “무엇을 미래 보시라 하는가. 이 보살이 미래 세상 부처님들의 수행함을 듣고는 있는 것이 아닌 줄로 알아서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따로 부처님의 국토에 왕생하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며, 맛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또한 태어남을 싫어하지도 않으며, 선근으로써 저기에 회향하지도 않고, 또한 저기에서 선근을 퇴전하지도 않으며,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조금도 폐하여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다만 저 경계로 인하여 중생들을 거두어 주며 진실한 이치를 말하여 불법을 성숙시키려는 것이니라. 그러나 이 법은 처소가 있지도 않고 처소가 없지도 않으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것이니라. 다시 생각하되 만일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버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니, 이것을 미래 보시라 하느니라.” 강설 ; 미래 부처님들의 수행에 대해서나, 또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일이나, 용화세계의 미륵부처님 세계에 가서 태어나는 등에 좋아하지도 않으며, 집착하지도 않으며, 싫어하지도 않는 것이 미래 보시가 된다. 또 스스로 닦은 선근을 극락세계나 용화세계에 회향하지도 않는 것이 또 미래 보시가 된다. 실은 극락세계에 가든 용화세계에 가든 그 모든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꿈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기 때문이다. <10> 현재 보시[現在施] 云何爲菩薩의 現在施오此菩薩이聞四天王衆天과三十三天과 夜摩天과兜率陀天과化樂天과他化自在天과梵天에 梵身天과梵輔天과 梵衆天과大梵天과光天에 少光天과無量光天과 光音天과淨天에 少淨天과無量淨天과 徧淨天과 廣天에 少廣天과無量廣天과 廣果天과無煩天과 無熱天과善見天과 善現天과色究竟天하며乃至聞聲聞緣覺의 具足功德이라도聞已에 其心이 不迷不沒하며不聚不散하고但觀諸行이如夢不實하야無有貪着이로대爲令衆生으로 捨離惡趣하야心無分別하며修菩薩道하야成就佛法하야而爲開演하나니是名現在施니라 “무엇을 보살의 현재 보시라 하는가. 이 보살이 사천왕중천,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타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범천, 범신천, 범보천, 범중천, 대범천, 광천, 소광천, 무량광천, 광음천, 정천, 소정천, 무량정천, 변정천, 광천, 소광천, 무량광천, 광과천, 무번천, 무열천, 선견천, 선현천, 색구경천을 듣거나, 내지 성문과 연각의 구족한 공덕을 듣고도, 마음이 미혹하지 않고 침몰하지 않고 모으지 않고 흩지도 않느니라. 다만 모든 행이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음을 관찰하여 탐착하는 일이 없느니라. 중생으로 하여금 나쁜 갈래를 버리게 하며, 마음에 분별이 없이 보살의 도(道)를 닦게 하며, 불법을 성취케 하기 위하여 연설하나니, 이것을 현재 보시라 하느니라.” 강설 ; 28개의 천상을 열거하였다. 실재하는 천상이든 우리들의 의식으로 만든 하늘[意成天]이든 하늘나라를 좋아하는 중생들이 많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와 같이 많은 하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늘나라를 듣거나 성문이나 연각의 공덕을 듣고도 마음이 미혹하지 않는 것, 이것이 또 다른 보시다. 모든 행이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음을 관찰하여 탐착하는 일이 없는 것이 또한 보시이다. 이와 같은 이치가 있기 때문에 선불교에서는 좌선을 통하여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 속에 보시 등 일체의 바라밀이 다 구족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11> 최후의 보시[究竟施] 云何爲菩薩의 究竟施오佛子야 此菩薩이假使有無量衆生이或有無眼하며或有無耳하며或無鼻舌과 及以手足이라來至其所하야告菩薩言호대我身이 薄祜하야諸根殘缺이로소니惟願仁慈는以善方便으로 捨己所有하야令我具足케하라하면菩薩이 聞之하고卽便施與호대假使由此하야經阿僧祗劫토록 諸根不具라도亦不心生一念悔惜하고但自觀身이從初入胎로不淨微形과胞段諸根이生老病死하며 “무엇을 보살의 최후의 보시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가령 한량없는 중생이 혹 눈이 없거나, 귀가 없거나, 코가 없거나, 혀가 없거나, 손이 없고 발이 없이 이 보살에게 와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박복하여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인자하신 이여, 좋은 방편으로 당신에게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시하여 우리의 모든 근(根)이 구족하게 해주소서.'하거든, 보살이 듣고는 곧 바로 보시하여 주느니라. 가령 그때부터 아승지 겁을 지내도록 여러 근(根)이 불구라 하더라도, 또한 잠깐이라도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다만 스스로 관하기를 '이 몸이 처음 태에 들 때부터 부정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러 근을 형성하여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라.'하느니라.” 강설 ; 사람에게 있어서 눈과 귀와 코와 혀와 손과 발 등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이와 같이 중요한 자신의 신체 부분 부분들을 나누어 주어 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불구자로 지내게 된다하더라도 조금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마음이 없는 것, 이것이 완벽한 최후의 보시이다. 又觀此身이無有眞實하고無有慚愧하야非賢聖物이라臭穢不潔이며 骨節相持요血肉所塗며九孔常流에人所惡賤이라하야作是觀已하고不生一念愛着之心하며 “또 관(觀)하기를, '이 몸은 진실하지도 않고 부끄러움이 없어서 성현의 물건이 아니며, 더럽고 불결하여 골절이 서로 연속하고 피와 살이 싸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나쁜 것이 항상 흐르는 것이로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잠깐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강설 ; 자신의 육신을 부정하고 진실치 못하며 성스럽지도 못한 것이라고 관하여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것이 이것이 완정한 최후의 보시이다. 復作是念호대此身이 危脆하야無有堅固하니我今云何而生戀着이리오應以施彼하야充滿其願하고如我所作하야 以此開導一切衆生하야令於身心에不生貪愛하야悉得成就淸淨智身이라하나니是名究竟施니是爲菩薩摩訶薩의 第六施藏이니라 “또 생각하되, '이 몸은 연약하고 위태하여 견고한 것이 아니거늘 내가 무어라고 연연하고 애착하랴. 마땅히 저들에게 보시하여 그의 소원을 채우리라, 나의 이렇게 하는 것으로 일체중생을 인도하여 몸과 마음에 애착을 내지 않게 하고,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을 최후의 보시라 하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6 보시하는 장[施藏)이라 하느니라.” 강설 ; 또 생각하기를 ‘이 육신은 연약하고 위태하여 견고한 것이 아니거늘 내가 무어라고 연연하고 애착하랴. 마땅히 저들에게 보시하여 그들의 소원을 채우리라.’라는 생각으로 조금도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 이것이 완전한 최후의 보시이다. 여기까지가 보살마하살의 제6 보시하는 장[施藏)이다. (7) 혜장(慧藏)을 설하다 <1> 지혜로 모든 법을 사실대로 알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慧藏고此菩薩이於色에 如實知하고色集에 如實知하고色滅에 如實知하고色滅道에 如實知하며於受想行識에 如實知하고受想行識集에 如實知하고受想行識滅에 如實知하고受想行識滅道에 如實知하며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지혜로운 장(藏)이라 하는가. 보살은 색(色)을 사실대로 알고, 색의 집(集)을 사실대로 알고, 색이 멸(滅)함을 사실대로 알고, 색이 멸하는 도(道)를 사실대로 아느니라.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사실대로 알고, 수상행식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수상행식이 멸함을 사실대로 알고, 수상행식이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아느니라.” 강설 ; 혜장(慧藏)이란 모든 법의 실상을 지혜로 사실 그대로를 꿰뚫어 아는 것을 말한다. 모든 법 중에 가장 가깝고 근본이 오온부터 분석하였다. 즉 육신인 색(色)과 그 색의 원인이 되는 집(集)과 색이 소멸하는 것과 색이 소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아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인연으로부터 짓는 것은 일체가 허망하여 공하고 실재가 없음을 안다는 뜻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만고의 이치다. 정신의 일체 작용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경우도 색(色)의 경우와 같다. 역시 인연의 결과이므로 허망하고 공하여 실재하는 것이 없다. 於無明에 如實知하고 無明集에 如實知하고 無明滅에 如實知하고 無明滅道에 如實知하며 於愛에 如實知하고 愛集에 如實知하고 愛滅에 如實知하고 愛滅道에 如實知하며 “무명(無明)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이 멸(滅)함을 사실대로 알고, 무명이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알며, 애(愛)를 사실대로 알고, 애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애가 멸함을 사실대로 알고, 애가 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아느니라.” 강설 ; 12인연의 전 과정을 낱낱이 열거하여 밝힐 것을 무명과 애(愛)만을 밝혀서 전체를 비추어 알도록 하였다. 즉 무명과 무명의 원인과 무명의 소멸과 무명의 소멸의 도를 여실하게 안다. 행과 식과 명색과 육입과 애(愛)와 취와 유와 생과 노사도 또한 그와 같다. 일체가 인연으로 조작된 것이므로 공하며 허망하여 실재하는 것이 없음을 안다. 於聲聞에 如實知하고聲聞法에如實知하고 聲聞集에 如實知하고聲聞涅槃에 如實知하며 於獨覺에 如實知하고獨覺法에 如實知하고獨覺集에 如實知하고獨覺涅槃에 如實知하며 於菩薩에 如實知하고菩薩法에 如實知하고菩薩集에 如實知하고菩薩涅槃에 如實知하나니라 “성문(聲聞)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성문의 열반을 사실대로 알며, 독각(獨覺)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독각의 열반을 사실대로 알며, 보살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법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집을 사실대로 알고, 보살의 열반을 사실대로 아느니라.” 강설 ; 성문과 성문의 법과 성문의 원인인 집과 성문의 결과인 열반을 여실하게 다 안다. 독각과 보살의 경우도 성문의 경우와 같음을 안다. 그 역시 인연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공하고 허망하고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 안다. <2> 사실대로 아는 뜻을 해석하다云何知오 知從業報諸行因緣之所造作은一切虛假하야空無有實하야非我非堅固며無有少法可得成立이니라 “어떻게 사실대로 아는가. 업을 지어 과보(果報)를 받는 일은 모든 행(行)의 인연으로부터 짓는 것이어서 일체가 허망하여 공하고 실재가 없음을 알며, '나'도 아니고 견고한 것도 아니어서 조그만 법도 성립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강설 ; 5온과 12인연과 성문과 독각과 보살의 실상을 어떻게 사실대로 다 아는가? 그것은 업을 지어 결과의 보를 받는 인연의 조작이다. 인연의 조작은 일체가 다 허망하고 공하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주체적 실체도 없으며, 견고하지도 아니해서 수시로 변하여 조금도 성립함을 얻을 수 없음을 다 안다. 지혜의 장(藏)이란 이와 같다. <3> 실다운 성품을 알게 하려고 법을 설함 欲令衆生으로知其實性하야廣爲宣說하나니爲說何等고說諸法不可壞니라何等法이 不可壞오色不可壞며受想行識이 不可壞며無明이 不可壞며聲聞法獨覺法菩薩法이 不可壞니라 “중생들로 하여금 실다운 성품을 알게 하기 위하여 널리 연설하느니라.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법을 파괴할 수 없음을 말하느니라. 무슨 법이 파괴할 수 없는가? 색을 파괴할 수 없으며, 수상행식을 파괴할 수 없느니라. 무명을 파괴할 수 없으며, 성문법, 독각법, 보살법을 파괴할 수 없느니라.” 강설 ; 앞에서는 5온과 12인연과 성문법과 독각법과 보살법이 모두 허망하여 공하고 실재가 없음을 알며, ‘나’라는 변하지 않는 주체도 없고 견고한 것도 아니어서 조그만 법도 성립할 것이 없음을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분명히 그렇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없다고 한 뜻을 무엇인가? 5온과 12인연과 성문법과 독각법과 보살법이 모두 진여자성의 자유로운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과 물결의 관계와 같다. 물은 인연을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천변만화하지만 언제나 변함없는 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물이라는 본성을 파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5온과 12인연과 성문과 독각과 보살로 나타나더라도 그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다 같은 법이지만 관점을 달리하고 있음을 밝힌 내용이다. 何以故오一切法이無作無作者며無言說無處所며不生不起며不與不取며 無動轉無作用이니라菩薩이 成就如是等無量慧藏하야以少方便으로了一切法호대自然明達이요不由他悟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법이 지은 것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동(動)하는 일도 없고 작용도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지혜로운 장(藏)을 성취하고 조그만 방편으로 일체 법을 아나니, 저절로 그러히 분명하게 아는 것이요, 다른 이로 인하여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강설 ; 일체 법을 본질의 관점에서 보면 “지은 것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동(動)하는 일도 없고 작용도 없는 것이다.” 5온과 12인연과 성문법과 독각법과 보살법이 모두 그와 같다. <4> 지혜의 무진장은 열 가지 다할 수 없음이 있다 此慧無盡藏이有十種不可盡일새 故說爲無盡이니何等이 爲十고所謂多聞善巧가不可盡故며親近善知識이 不可盡故며 善分別句義가不可盡故며入深法界가不可盡故며以一味智莊嚴이 不可盡故며集一切福德에 心無疲倦이 不可盡故며 “이 지혜의 무진장은 다할 수 없는 것이 열 가지가 있으므로 무진(無盡)이라 말한다.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많이 들어 공교함을 다할 수 없으며, 선지식을 친근(親近)함을 다할 수 없으며, 글귀와 뜻을 잘 분별함을 다할 수 없으며, 깊은 법계에 들어감을 다할 수 없으며, 한결 같은 지혜로 장엄함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 복덕을 모으되 피곤하고 게으른 마음이 없음을 다할 수 없느니라.” 강설 ;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고 한다. 그런데 지혜를 성취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는가? “지혜의 무진장은 열 가지 다할 수 없음이 있다.”라는 것에 그 답이 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선지식을 친근하는데 다함이 없다. 끓임 없이 선지식을 친근하여 배우려고 한다. 경전을 공부하고 법문을 듣는데 다함이 없다. 우주법계의 이치에 들어가는데 다함이 없다. 지혜가 많아도 지혜로 장엄하는데 다함이 없다.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 복덕을 잘 닦는다. 그래서 일체 복덕을 모으는데 다함이 없다. 入一切陀羅尼門이 不可盡故며能分別一切衆生語言音聲이 不可盡故며能斷一切衆生疑惑이 不可盡故며 爲一切衆生하야 現一切佛神力하야敎化調伏하야 令修行不斷이 不可盡故니 是爲十이니라 “일체 다라니문에 들어감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 중생의 말과 음성을 능히 분별함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중생의 의혹 끊음을 다할 수 없으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나타내어 교화하고 조복하며 수행함이 끊어지지 않게 함을 다할 수 없는 연고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강설 ; 다라니란 모든 법문을 다 지닌다는 뜻이다. 모든 법문을 다 지니는 일에 다함이 없다. 일체 중생의 말과 음성을 능히 분별해야 중생을 교화하며, 일체 중생의 의혹을 능히 끊어야 중생을 교화한다.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나타내어 교화하고 조복하며 수행함이 끊어지지 않게 함이 다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다. <5> 지혜의 장에 머무는 이익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七慧藏이니住此藏者는得無盡智慧하야普能開悟一切衆生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7 지혜로운 장이라 하나니, 이장에 머무는 이는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어 일체 중생을 널리 깨우치느니라.” 강설 ; 위와 같은 지혜의 무진장에 머물면 결과적으로 무슨 이익이 있는가?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는 이익이 있다. 보살은 자나 깨나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일 중에 가장 값진 일은 일체 존재의 실상에 눈을 뜨게 하고 일체 법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8) 염장(念藏)을 설하다 <1> 미진수와 같은 일을 다 기억하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念藏고此菩薩이捨離癡惑하고得具足念하야憶念過去의一生二生과 乃至十生百生千生百千生無量百千生과成劫과 壞劫과 成壞劫과非一成劫과非一壞劫과非一成壞劫과 百劫과 千劫과百千億那由他와乃至無量無數無邊無等과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不可說劫하며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기억하는 장[念藏]이라 하는가. 이 보살은 어리석음을 여의고 구족하게 기억하나니, 지난 세상의 일생(一生), 이생으로 내지 십생, 백생, 천생, 백천생, 무량 백천생이니라. 이루는 겁과 무너지는 겁과 이루고 무너지는 겁이며, 한번 이루는 겁만이 아니며, 백겁, 천겁, 백천억 나유타로 내지 한량없고, 수 없고, 끝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을 기억하느니라.” 강설 ; 염장(念藏)이란 기억의 무진장이다. 보살이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루(無漏) 지혜와 숙명(宿命) 지혜를 통해서 미진수와 같은 일을 다 기억한다. 먼저 과거에 살아온 무수한 생(生)들을 다 기억한다. 또 세계가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무수한 겁을 다 기억한다. 念一佛名號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名號하며念一佛出世說授記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出世說授記하며念一佛出世說修多羅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出世說修多羅하고如修多羅하야祇夜와授記와伽陀와尼陀那와優陀那와本事와本生과方廣과未曾有와譬喩와 論議도亦如是하며 “또한 한 부처님 명호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명호를 기억하느니라. 한 부처님이 출세하여 수기(授記)함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출세하여 수기 주는 것을 설함을 기억하느니라. 한 부처님이 출세하여 수다라(修多羅)를 설함을 기억하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이 출세하여 수다라를 설함을 기억하느니라. 수다라와 같이 기야(祇夜), 수기, 가타(伽陀), 니다나(尼陀那), 우다나(優陀那),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미증유(未曾有), 비유, 논의(論議)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강설 ; 또 부처님의 무수한 명호를 다 기억하며, 그 많은 수기를 다 기억하며, 일체 경교인 8만 4천 장경을 다 기억하며 12부 경론을 다 기억한다. 보살의 기억하는 념장(念藏)이란 이와 같다. 念一衆會와乃至不可說不可說衆會하며念演一法과乃至演不可說不可說法하며念一根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根種種性하며念一根無量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根無量種種性하며念一煩惱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煩惱種種性하며念一三昧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三昧種種性이니라 “한 대중의 모임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대중의 모임을 기억하느니라. 한 법을 연설함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을 연설함을 기억하느니라. 한 근기(根機)의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근기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기억하느니라. 한 번뇌의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번뇌의 갖가지 성품을 기억하느니라. 한 삼매의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갖가지 성품을 기억하느니라.” 강설 ; 한 대중의 모임만 하더라도 그 수효를 알 수 없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대중의 다 기억한다.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을 연설함을 기억하고, 말할 수 없는 근기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기억하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번뇌의 갖가지 성품을 기억하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갖가지 성품을 기억한다. 이것이 보살의 기억하는 무진장이다. <2> 기억에 열 가지 수승함이 있다 此念이 有十種하니所謂寂靜念과淸淨念과不濁念과明徹念과離塵念과離種種塵念과離垢念과光耀念과可愛樂念과無障礙念이라 “이 기억에 열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고요한 기억, 청정한 기억, 흐리지 않은 기억, 분명한 기억, 티끌을 여윈 기억, 가지가지 티끌을 여윈 기억, 때를 여윈 기억, 광명이 빛난 기억, 사랑스러운 기억, 장애가 없는 기억이니라.” 강설 ; 무엇을 기억하더라도 그 기억에 수승함이 있기도 하고 하열함이 있기도 하다. 때로는 확실하지 않는 못한 기억 때문에 큰 손실을 입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열 가지 수승한 기억의 상을 나타낸 것이 그것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잘 기억해야한다. <3> 기억의 장에 머무는 이익을 밝히다 菩薩이 住是念時에一切世間이無能嬈亂하며一切異論이無能變動하며往世善根이悉得淸淨하며於諸世法에無所染着하며 衆魔外道의所不能壞며轉身受生에無所忘失하며過現未來에說法無盡하며於一切世界中에與衆生同住호대曾無過咎하며 入一切諸佛衆會道場호대無所障礙하며一切佛所에悉得親近하나니是名菩薩摩訶薩의 第八念藏이니라 “보살이 이 기억에 머문 때에는 일체 세간이 번거롭고 어지럽게 하지 못하고, 일체 다른 주장이 변동하지 못하고, 지난 세상의 선근이 모두 청정하여지고, 모든 세상 법에 물들지 않고, 마군들과 외도가 파괴하지 못하고, 다른 몸을 받아 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에 법을 설함이 다하지 않고, 모든 세계에서 중생들과 함께 있어도 허물이 없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대중이 모인 도량에 들어가는 데 장애가 없고, 모든 부처님 계신데 모두 친근하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8 기억하는 장이라 하느니라.” 강설 ; 기억의 무진장에 머무는 이익을 열 가지로 밝혔다. 그중에 “다른 몸을 받아 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에 법을 설함이 다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은 생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실로 기억의 무진장이다. 기억이 이와 같다면 세세생생을 법을 설한들 다하겠는가. 경전을 외거나 외국어를 공부해보면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잊지 않고 다 외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기억의 무진장을 설한 것이다. (9) 지장(持藏)을 설하다 <1> 제법을 들어서 오랫동안 지님을 밝히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持藏고此菩薩이持諸佛所說修多羅호대文句義理를無有忘失하야一生持하고乃至不可說不可說生持하며持一佛名號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名號하며持一劫數와乃至不可說不可說劫數하며持一佛授記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授記하며持一修多羅와乃至不可說不可說修多羅하며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지니는 장[持藏]이라 하는가. 이 보살이 여러 부처님이 말씀한 수다라의 구절과 뜻을 지니고 잊지 아니하느니라. 일생 동안 지니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생 동안 지니며, 한 부처님의 명호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명호를 지니며, 한 겁의 수효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의 수효를 지니며, 한 부처님의 수기(授記)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의 수기를 지니며, 한 수다라와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수다라를 지니느니라.” 강설 ; 부처님이 말씀한 수다라의 구절과 뜻을 오랫동안 지니고 잊지 아니하는 것을 지니는 무진장이라 한다. 부처님의 명호와 겁의 수효와 수기 등을 한 겁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과 그 수효를 지니는 것이다. 持一衆會와乃至不可說不可說衆會하며持演一法과乃至演不可說不可說法하며持一根無量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根無量種種性하며持一煩惱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煩惱種種性하며持一三昧種種性과乃至不可說不可說三昧種種性이니라 “한 대중의 모임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대중의 모임을 지니며, 한 법을 연설함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을 연설함을 지니며, 한 근기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근기의 갖가지 성품을 지니며, 한 번뇌의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번뇌의 갖가지 성품을 지니며, 한 삼매의 갖가지 성품과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갖가지 성품을 지니느니라.” 강설 ; 한 대중의 모임과 내지 무수한 대중의 모임과 법을 연설함과 근기의 성품과 번뇌의 성품과 삼매의 성품을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음을 지닌다. <2> 지니는 덕(德)의 양(量)을 밝히다 佛子야此持藏이無邊難滿하며難至其底하며難得親近하며無能制伏하며 無量無盡하며具大威力하야是佛境界라唯佛能了니是名菩薩摩訶薩의 第九持藏이니라 “불자들이여, 이 지니는 장은 그지없어 가득차기 어렵고, 밑까지 이르기 어렵고, 친근하기 어렵고, 제어할 수 없고, 한량이 없고, 다함이 없고, 큰 위력을 갖추고, 부처님의 경계며, 오직 부처님만이 능히 아시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9 지니는 장이라 하느니라.” 강설 ; 지니는 덕(德)의 양(量)은 한마디로 무량하다. 끝이 없다. 그 밑이 없다. 큰 위력을 갖추었다. 부처님의 경계라서 오직 부처님만이 안다. 이것이 제9 지니는 무진장이다. (10) 변장(辯藏)을 설하다 <1> 부처님의 경전과 똑같이 법을 설하다 佛子야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辯藏고此菩薩이有深智慧하야了知實相하고廣爲衆生하야演說諸法호대 不違一切諸佛經典하고說一品法과乃至不可說不可說品法하며說一佛名號와乃至不可說不可說佛名號하며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말하는 장[辯藏]이라 하는가. 이 보살은 깊은 지혜가 있어 실상을 분명히 알고 중생에게 법을 설하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어기지 아니하느니라. 한 품(品)의 법을 설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품의 법을 설하며, 한 부처님의 명호를 설하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 명호를 설하느니라.” 강설 ; 보살은 깊은 지혜가 있어서 일체 존재의 실상을 분명히 알고 중생에게 법을 설하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어기지 아니한다. 오늘 날 법을 전하고 포교를 하면서 부처님의 경전을 어기면서 자신의 소견을 가지고 불법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찍이 조사스님께서 경계하기를, “불법을 이야기함에 경전에 포섭되지 않는 말을 한다[談說不攝於典藏].”라고 하였다. 모든 설법이 부처님의 경전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진정한 말의 무진장이다. 如是說一世界하며說一佛授記하며說一修多羅하며說一衆會하며說演一法하며說一根無量種種性하며 說一煩惱無量種種性하며說一三昧無量種種性하며乃至說不可說不可說三昧無量種種性하며 “이와 같이 한 세계를 설하며, 한 부처님의 수기를 설하며, 한 수다라를 설하며, 한 대중의 모임을 설하며, 한 법을 설하며, 한 근기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설하며, 한 번뇌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설하며, 한 삼매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설하며,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삼매의 한량없는 갖가지 성품을 설하느니라.” 강설 ; 깊은 지혜가 있어서 일체 존재의 실상을 분명히 알면 불가설 품의 법과 불가설 부처님의 명호 등 온갖 내용을 마음대로 부연하여 설명하게 된다. 또 현대적인 사례를 들어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게 된다. 현대의 과학적 연구를 통한 지식이 얼마나 많이 발전하였는가. 말의 무진장을 얻은 보살이라면 동서고금의 사례들과 지식들을 모두 동원하여 참으로 감동적이며 멋진 설법을 할 수 있으리라. 예컨대 암석 하나에서 이 지구의 45억년의 역사기록을 다 읽는 다는 과학자들의 이론은 곧 ‘먼지 하나에 시방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화엄의 이치를 그대로 증명하는 말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들을 깊이 알아서 불법과 연관시켜 설명한다면 훌륭한 설법이 되리라. 或一日說하며 或半月一月說하며 或百年千年百千年說하며 或一劫百劫千劫百千劫說하며 或百千億那由他劫說하며 或無數無量과 乃至不可說不可說劫說하야 劫數는 可盡이어니와 一文一句는 義理難盡이니 何以故오 此菩薩이 成就十種無盡藏故니라 “혹 하루 동안 말하고, 혹 보름이나 한 달 동안 말하고, 혹 백 년, 천 년, 백 천 년 동안 말하며, 혹 일 겁, 백 겁, 천 겁, 백 천 겁 동안 말하며, 혹 백 천 억 나유타 겁 동안 말하며, 혹 수 없고 한량없고 내지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말하나니, 겁의 수효는 다할 수 있더라도 한 글자 한 구절의 이치는 다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이 열 가지 무진장을 성취하는 연고니라.” 강설 ; 보살이 열 가지 무진장을 성취하게 되면 한 글자나 한 구절에 담겨있는 이치를 설명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루, 보름, 한 달, 백년, 천년, 만년, 백겁, 천겁, 만겁 동안을 설명할 수 있다. 설사 겁의 수효는 다할지라도 한 글자, 한 구절의 뜻은 다할 수 없다. 이것이 보살의 열 가지 무진장을 성취한 능력이다. <2> 말의 무진장으로 얻은 이익 成就此藏에得攝一切法陀羅尼門이 現在前하야百萬阿僧祗陀羅尼로 以爲眷屬하나니得此陀羅尼已에以法光明으로廣爲衆生하야演說於法이니라 “이 장을 성취하여 일체법의 다라니 문을 거두어 앞에 나타남을 얻으니 백만 아승지 다라니로 권속이 되었느니라. 이 다라니를 얻고는 법의 광명으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널리 연설하느니라.” 강설 ; 말의 무진장을 얻게 되면 따라서 일체법을 다 지니는 다리니를 얻는다. 그 다라니는 백만 아승지 다라니로써 권속이 되어있다. 또 법의 광명으로써 중생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는 이익을 얻는다. 其說法時에以廣長舌로出妙音聲호대充滿十方一切世界하야隨其根性하야悉令滿足하고心得歡喜하야滅除一切煩惱纏垢하며 “그 법을 설할 때에 넓고 긴 혀로써 미묘한 음성을 내어 시방의 일체 세계에 충만하였으며, 그들의 근성을 따라서 만족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며, 일체 번뇌의 얽매임을 소멸하느니라.” 강설 ; 부처님의 설법을 넓고 긴 혀라는 광장설(廣長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혀는 시방세계를 다 덮는다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설법이 온 시방에 가득함을 나타낸 말이다. 또 부처님의 설법은 중생들의 근기와 성품과 욕락을 따라 다 만족하게 하여 마음을 환희하게 한다. 또한 중생들의 일체 번뇌의 속박과 때를 모두 소멸한다. 善入一切音聲言語文字辯才하야令一切衆生으로佛種不斷하고淨心相續하며 “일체의 음성과 말과 문자와 변재에 잘 들어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고 청정한 마음이 계속하게 하느니라.” 강설 ; 말의 무진장으로 얻은 이익은 결국 일체의 음성과 말과 문자와 변재에 잘 들어가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고 청정한 마음이 계속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부처님이 깨달아 중생에게 가르치신 진리의 법문이 영원히 계속되어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님으로 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亦以法光明으로而演說法호대無有窮盡하야不生疲倦하나니何以故오 此菩薩이成就盡虛空徧法界無邊身故라是爲菩薩摩訶薩의 第十辯藏이니라 “또한 법의 광명으로써 법을 연설하여 다함이 없으면서도 고달픈 생각을 내지 않나니, 무슨 연고인가. 이 보살은 온 허공과 법계에 가득한 그지없는 몸을 성취한 까닭이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제10 말하는 장[辯藏]이라 하느니라.” 강설 ; 말의 무진장으로 얻은 이익은 법의 광명으로 법을 연설하는데 무궁무진하다. 결코 피곤해 하거나 싫증을 내지 않는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전파하는데 무슨 싫증이 나겠는가. 오직 환희심만 넘쳐날 뿐이다. 넘쳐나는 환희심으로 듣는 사람들을 감동하게 할 뿐이다. 이것이 말의 무진장이다. 4, 장(藏)의 수승함을 말하다 此藏이 無窮盡이며無分段이며無間이며 無斷이며無變異며無隔礙며無退轉이며甚深無底며難可得入이며普入一切佛法之門이니라 “이 장은 다함이 없고, 분단이 없으며, 사이가 없고, 끊어짐이 없고, 변하여 달라짐이 없고, 막힘이 없고, 퇴전함이 없고, 매우 깊어 밑이 없으며, 들어갈 수 없으며, 일체 불법의 문에 두루 들어가느니라.” 강설 ; 이 열 가지 무진장은 다함이 없으며, 분단이 없으며, 사이가 없는 등의 수승함으로 일체 불법의 문에 널리 들어간다. 즉 열 가지 무진장만 갖추면 일체 불법은 다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5, 열 가지 무진장에는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이 있다 佛子야 此十種無盡藏이 有十種無盡法하야 令諸菩薩로 究竟成就無上菩提케하나니라 “불자들이여, 이 열 가지 무진장에는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이 있어서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구경에 무상보리를 성취케 하느니라.” 강설 ; 열 가지 무진장에는 또 다시 열 가지 무진장의 법이 있다. 그 열 가지 무진장의 법으로 구경에는 부처님이 성취하신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한다. 何等이 爲十고饒益一切衆生故며以本願으로 善廻向故며 一切劫에 無斷絶故며盡虛空界悉開悟하야 心無限故며廻向有爲호대 而不着故며 “무엇이 열인가. 일체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연고며, 본래의 서원을 잘 회향하는 연고며, 일체 겁에 단절함이 없는 연고며, 온 허공계를 모두 깨우치되 한정하는 마음이 없는 연고며, 함이 있는 데로 회향하되 집착하지 않는 연고니라. 강설 ; 구경에는 부처님이 성취하신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열 가지 무진장의 법 중에 먼저 다섯 가지다. 불법은 어떤 이유에서건 중생에게 이익이 있어야 한다. 보살의 본래의 서원은 어떤 선근공덕을 닦든지 모두 중생에게 회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무수한 세월에 단절이 없어야 한다. 온 우주법계를 다 깨닫게 하고도 마음에 한정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보살이 닦은 선근공덕을 설사 유위에 회향하더라도 집착이 없어야 한다. 一念境界에 一切法이 無盡故며大願心이 無變異故며善攝取諸陀羅尼故며一切諸佛의 所護念故며 了一切法이 皆如幻故라是爲十種無盡法이니能令一切世間所作으로悉得究竟無盡大藏이니라 “한 생각의 경계에 일체 법이 다함이 없는 연고며, 크게 서원하는 마음이 변동이 없는 연고며, 모든 다라니를 잘 거두어 잡은 연고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는 연고며, 일체법이 모두 환술과 같음을 아는 연고니라. 이것을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이라 하나니, 능히 일체 세간의 짓는 것을 모두 끝까지 이르게 하는 큰 무진장이니라.” 강설 ; 구경에는 부처님이 성취하신 무상보리를 성취하게 하는 열 가지 무진장의 법 중에 다음의 다섯 가지다. 한 생각,즉 짧은 한순간에 일체법이 다 포함되어 있어서 다함이 없다. 보살은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겠는 크게 서원하는 마음이변함이 없다. 모든 법을 다 거두어 지니는 모든 다라니를 잘 포섭하여 취한다. 보살은 일체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며 가피하여 불사를 돕는다. 궁극에는 일체법이 모두 환영과 같고 환술과 같은 다 깨달아 안다. 이것이 열 가지 무진장에 있는열 가지 무진장의 법이다. 십무진장품을 마치면서 십행법문이 중심이 되는 제4회 야마천궁에서 설한 법문은 이것으로 마쳤다. 십무진장품 끝 제21권 끝 |
첫댓글
화엄경 7처 9회 39품 중, 제4회 4품 설법의 본론에 해당하는 십행법문을 마치고 결론에 해당하는 품이다.
십행법에서 더 훌륭하게 나아가는 덕을 보였다.열 가지 다함이 없는 장(藏)의 장(藏)이란, 창고, 곳집, 곳간,
갈무리 한 장소, 저장되어 있는 곳 등의 뜻이다. 그래서 그곳에 쌓아두었던 것을 출생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열 가지 창고를 굳이 해석하여 설명하면
믿음의 창고와
계율의 창고와
자기 스스로 부끄러워함의 창고와
남에게 부끄러워함의 창고와
들음의 창고와
베풂의 창고와
지혜의 창고와
기억의 창고와
가짐의 창고와
변재의 창고다.
혜장(慧藏)이란
모든 법의 실상을 지혜로 사실 그대로를 꿰뚫어 아는 것을 말한다.
모든 법 중에 가장 가깝고 근본이 오온부터 분석하였다.
즉 육신인 색(色)과 그 색의 원인이 되는 집(集)과 색이
소멸하는 것과 색이 소멸하는 도를 사실대로 아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서 그 결과가 있게 된 것이다.
인연으로부터 짓는 것은 일체가 허망하여
공하고 실재가 없음을 안다는 뜻이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만고의 이치다.
정신의 일체 작용인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경우도 색(色)의 경우와 같다.
역시 인연의 결과이므로 허망하고 공하여 실재하는 것이 없다.
일체법이 지은 것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고 처소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함께하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고,
동(動)하는 일도 없고 작용도 없는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지혜로운 장(藏)을 성취하고
조그만 방편으로 일체 법을 아나니,
저절로 그러히 분명하게 아는 것이요,
다른 이로 인하여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