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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미학과 디자인design 1)
석호 서 기 식
1.들어가는 말
지금 뉴욕의 미술계는 강하고 빠르게 변하여 거대한 공장처럼 새로운 예술가를 찾아내어 유명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낙서예술Graffit Art>2) 이 뉴욕에 번지고 있을 때,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at”를 “제프리 다아치Jeffrey Deitich"라는 아트 딜러dealer가 발탁해 내었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에도 무색의 벽에 생명을 불어넣는 낙서예술이 퍼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예술가의 모든 행위는 반드시 이미 행해진 것과 서로 협력하는 것으로 예술가는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입장을 선구자 혹, 동시대인의 그것과 끊임없이 대조해 보아야하는 의무를 가지게 된다.’3)
무한한 창조의 샘을 가진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y Picasso(1862~1918)”는 살아서도 훌륭한 예술가로 대접을 받았는데,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죽은 후에 빛이 난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가 그린<아델레불로흐바우어의초상.원제;Bildimis Adele Bloch-Bauer,138*138,1907년작>에서 현실적으로 묘사된 얼굴과 현란한 장식으로 꾸민 의상의 대조로 여성이 마치 보석에 끼워 진 듯이 보이며 유화로 그린 후 황금색Gold oil Color으로 가필한 그의 대표작은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녹색과 붉은색으로 무서운 인간의 노동으로 정열을 표현하려고 애쓴 “빈센트 반 고흐Vicent Ban Go(1853~1890)"역시도 그러하다. 이제는 동서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양화 속에서도 우리는 디자인 개념을 분석해보아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1452~1956)"작 <모나리자>의 배경은 송나라 때, 산수화풍의 암석표현과 유사함이 있으며, 당나라 때, 잉크왕 “왕묵王墨”은 이미 여러 장의 비단을 깔아놓고 먹물을 단숨에 뿌리기 위해 발묵(潑墨)을 꾀한 최초의 화가였다.4) 이는 20C의 추상표현주의자인 “잭슨폴록jacksonPollock(1912~1956)"의 <연자줏빛 안개>그림에 등장하는 선線들은 동양서예에 대한 그의 영향 때문이라는 학자들의 분석이다. 일본의 “구로다세이끼黑田淸輝(1866~1924)5) 는 1894년 전시회에 일본 최초의 ‘누드화’ <아침의 몸단장>이라는 작품을 발표, 사회적논란을 일으켰으나 일본의 서양 인상주의 화파를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 11월 20일에 시대적 소명을 거역할수 없어 부산 국제신문사에서 “대한민국 서화디자인협회”가 주관하여 해담 오후규(부경대공학.철학박사)교수와 효봉 여태명(원광대서예과)교수가 사회디자인6)을 주제로 하여 강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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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디자인(design)이란 용어는 흔히 ‘계획한다.’혹은 ‘질서를 위한 계획’이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응용미술, 엔지니어링, 건축과 여러 창조적인 노력을 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물건(기계, 건축, 제품 등)을 개발하고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디자인은 동사와 명사로 함께 쓰일 수 있다. 명사로서의 디자인은 최종적인 계획 혹은 제안의 형식(도안,모델이나 다른표현)또는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안이나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결과를 말한다. 동사로서의 디자인은 지시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디자인은 주어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조형 요소 가운데에서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그것을 합리적으로 구성하여 유기적인 통일을 얻기 위한 창조활동이며, 그 결과의 실체가 곧 디자인이다.
;대세계백과사전(9) 미술. 홍성희.태극출판사.1972.p.511
2)아트앤드시티. 양은희. 랜덤하우스,2007,p,14
3)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수잔손탁(Usan Ontag)이병용,안재연옮김,현대미학사, 2004,p,28.)
4)동서양미술의 지평,서성록,재원1999,p,31
5)일본의 근대 미술사,이중희,p,123,2010
6)월간서예.해담의 서예만평.10월호,서화디자인,pp,14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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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어제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그러나 서화에서의 디자인은 새로운 시대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서화가 고정방식, 서법에 의한 형식추구라면 서화디자인은 창조적이며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런한 개념으로서의 디자이너designer는 조금이라도 한가할 수가 없다. 귀는 열어야 하고 눈은 더욱 멀리 보아야 하며 끊임없이 배우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동시에 오늘을 함께 하며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세계의 모든 환경은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변화되고 창조적 디자인이 경쟁력인데 - 곧 천지의 자연은 한 순간도 같은 모양이 없다.(則 天地曾不能以一瞬,즉 천지증불능이일순) - 우리는 너무 전통에만 안주하는 사이에 중국은 일찍이 중서절충(中西折衷)을, 일본은 우키요에(浮世繪)와 서양화를 변형한 신일본화에 전념하여 중.일은 미술을 통한 세계시장 제페에 나서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문화국민으로서 자존을 지키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인화를 디자인하여 현대인의 주거환경과 기호에 소통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문인화 디자인>은 ‘무엇을 어떻게 ?’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동서양의 철학자와 문인화가들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문인화의 시대적 배경
문인화는 자연에 있는 형상들을 기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방출하기 위해서 묵희(墨戱)로 사의(寫意)하는 것으로 시와 서를 그림에 포함하고 있는 예술이다.
“이 사람 없이 어찌 하루라도 살 수 있겠는가? (何可一日無此君가가일일무차군)”7)라며 사랑한 것은 “왕휘지王徽之,344~388”였다. 동진 때, “왕희지王羲之,303~361”의 아들 휘지는 하루라도 떨어져 살 수 없었던 것이 미인도 아니고 대나무였다는 것이다.
초나라 “굴원屈原BC343~278"은 난초를, 동진(東晉)의 “도연명陶淵明,344~388”은 국화를 사랑했다. 원元나라초 “정사초鄭思肖,1239~1310”는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노근난(露根蘭)을 통해 대부의 정신적인 벗을 삼고 살았다.8)
이처럼 문인화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220~589)시대를 거쳐, 당나라 “왕유王維(699~759)를 시종으로하여 송나라” 소식蘇軾(1036~1101),원나라(1260~1368)를 거쳐 명나라(1368~1644),청나라(1644~1912)까지 오면서 관직생활의 엘리트집단이 품격 높은 사인화(士人畵)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 태조 왕건(877~943)의 무덤에서 세한삼우도가 발견된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1075~1151)”은 묵죽을, “정지상鄭知常(?~1135)”은 매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문인화는 송대의 영향을 받아 묵죽화로부터 전래되어 난초와 대나무를 많이 그렸고 국화가 제일 늦게 그려졌으며, 남종문인화가들에 의해 사군자를 주축으로 널리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지방자치제의 활성화로 형식면으로는 많은 증가를 보이고 있으나 내용면에서는 문인화의 디자인에도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만 하겠다.
이제 세계는 가깝다. 아프리카의 미술에도 수묵화를 발견할 수 있다.세네갈Sengal에서 활동하고 있는 “듀츠Douts(1973~)"9)는 ‘서민지역의 건축 무질서’란 논문으로 수석 졸업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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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예술풍수, 덩시위안 저. 이화진옮김, 이빛, 2010,p, 46.
8)월간미술,2000,7월호,p,106
9)아프리카미술을 외치다. 정해광, 심포지움,2009.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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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스페인Gijonal 미술관에 초청 전시되었던 작품, <1;100, 100;1>을 발표하여 미국 워싱턴의 세계은행Bank of Mondial에서 작품모두를 구입하였다. 서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무질서한 모습을 원색으로 표현한 100개의 작은 그림은 설치미술 효과를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게 하였다.2008년 3월에는 감성을 느끼게 하여 많은 반응을 일으켰다.
수단Sudan의 “이마르Dalah Ammar"10)는 음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주제로 ‘여자’와 ‘달’에서 이데아를 찾아 수묵화를 표현하였다. 여자는 아이를 보호하므로 절대적으로 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했고, 달은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잠재우게 하는 평화의 세계로 이끈다.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한 아프리카의 그림도 흰색은 밝고 검은색도 밝게 보인다고했다.
이처럼 세계는 소통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동양의 먹을 받아드리고, 일본은 유럽미술을, 중국은 일본의 화단을 거울삼고, 유럽의 피카소는 아프리카 미술을 통해 원시적인 색깔과 예술전반에 걸쳐 소통한 것을 보면 우리도 서로를 받아드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문화를 폭 넓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동서양의 미학자들
가)문인화가들의 견해
“고개지顧愷之(345~406)”는 “상상의 공간을 절묘하게 살려야 한다.(遷想妙得천상묘득)”11)
“장언원張彦遠(815~875)”은 “골격과 기운 및 형사는 모두 뜻을 세우는 데서 시작하여 일필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글씨도 잘 쓰는 사람이 많았다.(骨氣形似 皆本於立意而歸於用筆 故工畵者多善書. 골기형사 개본어입의이귀어용필 고공화자다선서)”12)
“형호荊(907~960)”는 당대에 노장사상의 은일적인 삶을 사는 자연주의자로 저서 <산수결>이라는 필법기에“오도자의 산수화는 필은 있어도 묵이 없고 항용의 묵은 있어도 필이 없다. 나는 이 두사람의 장점을 취해서 일가의 체를 이루었다. (語人曰;吳道子畵山水/有筆而無墨/項容有墨而無筆/吳當采二子所長/成一家之體어인왈;오도자화산수/유필이무묵/항용유묵이무필/오당채이자소장/성일가지체)”13) “구양수 歐陽修(1007~1072)”는 송대 소식의 스승으로 다음과 같은 의意, 즉 개념을 형상(形象)과 대비했다. “이 옛 그림(古意)은 의를 그린 것이지 형을 그린 것이 아닌데,매요신의 시(화제)는 사물을 읊되 숨겨진 것이 없네. 형을 잊고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무니 그림보듯이 시를 보는 것이 낫겠네.(古畵畵意不畵形/梅時詠物無隱情//忘形得意知者寡/不若見試如見畵고화화의불화형/매시영물우은정//망형득의지자과/불약견시여견화)”14)
“소식蘇軾(1036~1101)”은 왕유의 그림을 보고 “마힐의 시를 음미하면 시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의 그림을 보면 그림속에 시가있네.(味摩詰之時/詩中有畵//觀摩詰之畵/畵中有詩미마힐지시/시중유화/관마힐지화/화중유시.)”15) 동파(東坡)의 유명한 형사에 관한시는 “그림을 형사로 논한다면, 식견이 아동의 식견에 가깝다네.(畵論以形似/見與兒童隣 화론이형사/견여아동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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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앞의 책.p,112
11)문인화총론, 이근우, 서예와문인화,2009.p,96
12)역대명화기, 장언원저, 조송식옮김, 시공아트,2008,p.48
13)문인화론의 미학. 강행원, 서문당, 2001,p,111
14)중국의 문인화, 수잔부시 지음. 김기주 옮김, 학연문화사, 2008,p.48
15)위의 책.p,50.
16)중국의 문인화. 앞의 책.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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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회화가 자연과 유사함에 얽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시가 그림 속에 녹아들고 그림이 시적 감흥에 녹아들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황정견 黃庭堅(1045~1105)” 은 “무릇 서화에서는 항상 운(韻)을 찾아야만 한다.(凡書畵當觀.범서화당관운.)”17) 고 했는데 여기서 운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어떤 작품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운(氣韻)이 아니다. 문인화가의 평가는 그가 문인이어야 하고 화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었다. 즉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있다면, 용필에 한 점의 속기도 없을 것이다.(胸中有萬卷書/筆夏無一點俗氣 흉중유만권서/필하무일점속기)”18) 라고 말한 황정견은 예술가에 대해 공부의 정화효과를 강조하였다.
원대의 “조맹부(1254~1322)”는 “그림을 제작할 때는 고의(古意)가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만약 고의가 없다면 비록 작품이 공교(工巧)하다고 할지라도 무익할 것이다. 요즘화가들은 단지 용필을 섬세하게 사용하고 색을 베풀어 농염한 것을 알면 자기들이 유능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고의가 결여되어 있다면 온갖 유형의 병폐가 작품도처에 나타날 텐데, 어찌 그것을 볼만하다고 하겠는가 내가 그린 그림은 요약적이고, 거친 듯하다. 그러나 감식가들은 그것이 고인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19)
명대의 “동기창董基昌1555~1636” 은 “기운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하늘이 부여하는 것이지만 또 배워서 묘처를 얻을 수 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하고 나면 마음속에 티끌과 혼탁한 것을 벗어버리고 절로 속세를 벗어나 견악甄鄂을 이루어 내어 손가는 대로 그려대니 모두 산수의 전신이 된 것이다.”20)
“제백석齊白石(1863~1957)” 은 “대상과 유사하지 않은 것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고,(欺世기세)지나치게 유사한 것은 세상에 아부하는 것이라.(媚世미세)”21)했고 또한 “스승의 예술정신을 배우는 자는 살아남을 수 있으나 스승의 예술양식만 닮아가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學我自生,似我自死.학아자생,사아자사.)”22)고 했다.
나.철학자들의 미학개념
“소크라테스Socrates(-470~ -399)"는 아름다운 것에는 “정연한 것, 또는 적절한 것”을 제일로 보고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것과 완전하고 만족을 주는 것”23)이라고 했다.
“플라톤Platon(-428~ -348)" 은 예술을 ‘닮은 꼴 제작 Semblance-making'의 범주에 넣으면서,예술가들은 “진실은 제쳐두고 사실은 자기가 만든 상에다가 진정한 비례가 아닌 아름답게 보일듯한 비례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24) 그러면서도 아름다움의 표현은 절도와, 균형, 조화롭고 “올바른 질서”25)를 세우고 유지할 때 탄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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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중국의 문인화. 앞의 책.p,50
18)위의 책.p,84
19)중국의 문인화, 수잔부시, 학연문화사, 2008, p,204
20)중국의 고전미학. 주래상저,남석현.노장시 옮김 미진사,2003,p.243
21)문인화총론, 이근우, 서예문인화, 2009, p, 192
22)위와 같음.p.192
23)미학사,먼로C비어슬리Monroc,C,Beardsley. 이성훈/안원현 옮김,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p,37, 1987.
24)앞의 책. p.36
25)예술이란 무엇인가?.미카엘하우스켈러지음/이영경 옮김. 철학과 현실사. pp,20~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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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384~ -322)”는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살아있는 생물체이든 부분들로 구성된 구조이든 간에 부분들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연적이지 않은 일정한 크기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미는 크기와 배열에 있기 때문이다.
미의 형태는 질서, 균제, 한정이다.”26) 라고 했다.
“피타고라스Pythagoras(-582?~ -497?)" 는 수를 이 세상의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아름다움이란 “균제, 대칭, 조화 등 수적비례에 의한 것”27) 이며 “미는 수와 수의 조화”28)라고 주장하였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1724~1804) 는 예술가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가는 ‘천재’이다. 며 천재는 ‘주관 안에 자연을 가지고 있는 존재Natur im Subjekt’로서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과 미적인 이념들을 제시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며 미를 진이나 선과의 연관성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이제 미는 서술적이고 고유 가치를 지니는 자율적인 것이 되었다.29)
“아우구스티누스Augustnus(345~430)" 는 미의 개념을 “통일성, 수, 일치, 비례, 질서라고 했고, 적절히 질서 있는 것은 아름답다.30)고 했다.
“레오 톨스토이Lol Tostoy(1828~1910)"는 예술은 미를 산출하는 것으로 상호소통이 수행되는 작품을 해야 하며 “감염이 강렬할 수록 그 예술은 예술로서 더 훌륭하다.”31)
“왕필王弼(226~249)”은 “뜻을 얻으려면 형상에 얽매어서는 안되고 형상을 얻으려면 말에 얽매어서는 안된다.”32)는 것이다.
4. 우리나라의 근대 문인화
조선시대에도 많은 문인사대부가 맥을 이어갔다. “문자향 서권기”를 주장한 김정희, 매화에 조희룡, 난초에 이하응과 민영익이 있고, 후기에 허백련, 서병오, 김용진, 정운면 등이 품격 높은 그림을 그렸다. 1910년 일제 강점기에 국권을 강탈당하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맞게 된다.
중국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걸쳐 그들의 전통회화를 신일본화와 신중국화로 변신시켰다.동양화를 배우러 당대의 대가였던 조석진, 안중식 문하에 들어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그 당시 그리는 그림은 모두 중국인의 고금화보를 펴놓고 모방하여 어느 분수에 근사하면 제법 성가 했다고 하는 것이며, 타인의 소청을 받아 응수하는 것이다.(중략) 창작이라는 것은 명칭도 모르고 그저 중국 것만이 용하고 장하다는 것이면 그 범위 바깥을 나가보려는 생각조차 없었다.”33) 1918년 5월 18일 고희동이 주동이 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단체인 ‘서화협회’를 창립하였다. “안중식”이 회장을 맡고 조석진, 김규진, 오세창, 이도영, 정학수, 등 13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921년 제1회 <서화협회전>을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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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예술이란 무엇인가?.미카엘하우스켈러지음/이영경 옮김. 철학과 현실사. pp,20~24, 2004
26)미학사,먼로 C 비어슬리Moncor, C, Beardsley. 이성훈/안원현 옮김,도서출판 이론과 실천.1987. p,59
27)영화로 읽는 미학, 오영덕 지음, 랜덤하우스중앙,2006, p, 23
28)이중텐 미학강의. 이중텐. 곽수경옮김.2009. p,308
29)영화로 읽는 미학, 노영덕 지음. p,86
30)미학사,먼로 C 비어슬리Moncor, C, Beradsley. 이성훈/안원현 옮김,도서출판 이론과 실천.1987. p,59
31)위의 책, p, 99
32)이중텐 미학가의,곽수경 옮김,김영사.2009 p,404
33)문인화총론. 이근우지음.서예와 문인화.2009.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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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만세 사건 이후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은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를 1922년부터 1944년까지 개최하였다. 여기서 근대 6대 화가를 비롯한 서양화가들이 일제의 선전에 입상하여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화명을 얻었다.
“김영기金永基(1911~2003)”는 중국의 ‘신문인화’를 도입, 그 화풍을 소개하는데 많은 활약을 하였다.북경의 보인대학교(輔仁大學校)를 졸업한 김규의 아들이기도 한 김영기는 ‘동양화’대신 ‘한국화’란 명칭을 처음 제시하였다.
해방이전에 일본에 유학한 “근원 김용준”34)은 모더니스트 유화가로 세기말적 퇴폐미술을 추구했으나 1930년대 말에 남종문인화로 전향하여 동양주의 미술론과 문기있는 작품으로 새로운 문인화를 전개했던 한국현대 문인화의 선각자라고 했다.
가. 근대 6대가
“청전이상범(1897~1972)”은 새로운 산수와 양식을 창안하였고, “소정변관식(1899~1976)”은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고, "이당김은호(1892~1979)“는 북종화풍의 그림을 즐겨 그렸다. 해방을 전후로 미술교육자로서 여러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김기창, 장우성, 한유동, 이유태, 백윤운 등이며 작품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초상’과 ‘춘향초상’ ‘승무도’등이 있다.
“심전노수현(1898~1978)”은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배웠으며, 간결한 필치와 온화한 화풍인 남종산수화가 주종을 이루었다. 대표작은 조강도(釣江圖). 하계유거도(夏溪幽居圖) 등이다.
“심향박승무(1893~1980)”는 1949년에 시작한 대한민국 미술전함회(국전)에 추천작가와 초대작가가 되었으나 국전의 문제점을 들어 한번도 출품치 않았다. 그의 화풍은 전통적인 남종산수화으로 부드럽고 소박한 그림으로 그렸으며 겨울 풍경을 비롯한 사계의 산수나 일상적인 풍경이 주되 소재였다. 대표작으로 ‘설경산수도’ ‘춘하추경산수도’등이 있다.
“의재허백련(1891~1977)”은 소치 허련의 족친으로 운림산방에서 11살 때부터 미산 허형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일본 메이지대학 법과를 중퇴한 후 일본 남종화의 대가 고무로스이운(小室翠雲)에게 그림을 배운적도 있었다. 제1회 선전의 동양화부에 출품하여 2등상을 받았으며 그 후에도 수 차례 출품하여 1920년대 최고의 남종화가로 화면을 날렸다. 1939년에는 의재 문하생들의 모임인 연진회(鍊眞會)가 창립전을 열었다. 해방 후에는 광주 무등산자락에 춘설헌(春雪軒)을 짓고 제자양성과 호남의 맥을 잇게 하였다.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의 화풍을 이어받아 일본화풍을 배제하고 한국적 남종화를 고수, 계승하여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마지막 거장이다. 광주 농업 기술학교를 세운 교육자와 계몽운동가이기도 한 그의 대표작으로 ‘추경산수도’ ‘설경도’ ‘계산청하도’등이 있다.
나. 현대 문인화가
“월전장우성(1912~2005)”은 ‘화단풍상 70년’이란 회고록에서 이전에는 화숙에서는 실기 위주였고, 이론을 배울 수가 없었으며 문, 사, 철의 인문학적 소양은 도외시 한 채 기교적 숙려만을 중시하여 창의성없는 도제교육만 하였다. 사군자와 인물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관심을 동반하면서도 단아하고 단박한 정감있는 작품을 창작해 갔다.정갈한 필력과 채색으로 밝은색 그대로의 맑음을 보여주는 격조 높은 조형성을 엿볼 수 있다.
월전이 본 우리 화단은 1971년 이후에는 가정집이나 공공의 건물에 산수화가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의 붐이 일어나으나 1980년대 이후 가옥 구조가 현대식 아파트로 변모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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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신문인화의 창신, 손병철 논문,2003,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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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TV의 등장 등으로 색감에 관한 대중들의 심미의식의 변화로 서양화가 자리잡기 시작하엿다고 한다.
“고암이응로(1904~1989)”는 문인화에 현대적 감각을 접목시킨 그는 김규진으로부터 전통화법을 배웠으며 1958년 파리로 건너가 동양의 수묵을 서구의 조형감각과 접목시킨 동서양융합의 실험작업을 하였다. 1970년대에는 기호화된 문자 (한글, 한자)를 통한 추상화를 시도하였고 80년대에는 소위 인간(군상)시리즈를 창작하여 자유로이 춤추고 생동하는 모습을 그렸다.
“운보김기창(1913~2001)”은 18세때 이당김은호에게 그림을 배운 6개월만에 선전에 입선하여 대가의 제목임을 증명했다. 그는 산수, 인물, 화조, 영모, 풍속등에 능했으며 형태의 대담한 생략과 왜곡으로 주상과 구상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활달하고 힘찬 붓놀림,호탕하고 동적인 화풍으로 문인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착하였다.
“산정서세옥山丁徐世鈺(1929~ )”은 해방 후 등장한 새 세대로 전통 문인화를 현대 감각으로 변용을 모색하여 재료나 기법, 또는 기본의 틀에 얽매임 없이 새로운 수묵의 세계를 창출하고 문기를 조화롭게 통합시켜 독자적인 세계에 도달하였다. 서울미대 1회 졸업생으로 서울미대학장을 역임하였고, 그의 예술관은 ‘인간’을 평생예술로 삼았고, 먹 속에 색이 있고 색 속에 먹이 있네.(墨中有色 色中有墨)라며 남종회화사의 독특한 문과 묵이 만나는 지점에 그가 자리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영원히 그려야 할 일이 남아 있다.”35)며 한 손만 잡아야 한다고 했다.
5. 창작론
창작이라는 말을 몰라서 창작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에 깊이 빠져 오늘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法古勿泥법고물니;옛법을 익히되 진흙에 빠지지 말라.) 문인화는 인문학적 소양과 이론적 바탕을 많이 길러야 한다. 미술은 “일생의 고통과 해탈을 묘사하여 우리 생이 의존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이 질곡의 세계로부터 이 생활의 욕구 투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평화를 얻게 하는데 이것이 모든 미술의 목적”36)이다. 동양, 선(禪) 사상에 음악을 적용시킨 침묵의 옹호자인 “존케이지Jhon Cage(1912~1992)"의 ‘4분 33초’의 연주는 계획적으로 예술을 부인함으로써 예술의 절대적 열망이라는 똑 같은 사상이 반응하도록 청중을 유도하였으며 최근의 미학에서 침묵은 진지함을 평가하는 주요한 기준으로까지 격상되어 있다.
“석도石濤(1641~1720)”는 옛것을 모방하는데 반대하며 창신을 주장하여 “어떤 대가의 작품과 꼭 닮게 그렸다고 해봤자 그 역시 그 사람이 먹다 남은 국물 찌꺼기를 들이키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縱逼似某家/亦食某家殘羹耳/于我何有哉 종핍사모가/역식모가잔갱이/우아하유재)”37) “그림을 그리는 법은 곧 자신으로부터 세우는 것이니,······ 대저 그림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一畵之法 乃自我立······ 夫畵者從於心子也 일화지법 내자아립······ 부화자종어심자야일화지법.)”38) 일본의 시인이자 번역가였던 “우비에다 빈(上田,1874~1916)”39)은 “우리시대는 특별하다. 이유인 즉 우리는 이전 세대에 의해 세워진 규칙과 규범을 던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의 말을 빌자면 이제야말로 한물간 표현의 수단들을 팽개칠 절호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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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한국현대미술, 오늘의 얼굴 1.김종근. 이트블루, 2003.p,56
36)화하미학, 이택휴저/권호옮김,1990.p,296
37)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잔손탁 지음/이병용, 안재연 옮김. 현대미학사, p,52, 2004
38)문인화 총론, 이근우, 서예문인화,2009,p,165
39)동서양 미술의 지평, 서성록, 도서출판 재원.1999,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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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표현수법들은 무용할 따름이며, 또 무용한 것들은 허망할 따름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란 예술 및 도덕, 관습 속에 숨겨진 구습을 버리고 철학적인 담론으로 새로 쓰는 것이다.”며 일본은 유럽 문화와의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1920년대의 시인이자 조각가인 “다까무라 교타로(高村光太郎)”의 “녹색의 태양”40)이라는 글에서 “나는 예술계의 절대적인 자유를 탐색한다. 따라서 나는 예술적 개인성을 무한한 권위로 인정하고자 한다.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예술가를 유일한 개체의 인간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예술적인 개인성을 따르는 예술작품을 시발점으로 여기려고 한다. 말 그대로 개인성 자체를 연구하고자 하며, 개인성에 어떤 불필요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둘 혹은 세 사람이 태양을 녹색으로 그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태양은 그렇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며 거침없이 일성을 토하기도 하였다. 운보 김기창은 “예술이란 늙어서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으로 귀의하며 하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긍극적 목표”라고 했다.41)
“홉스T.Hobbes.1588~1679”는 어떤 사물을 본 후에 눈을 감고 있어도 그 사물에 대한 형상은 남겨져 있다. 다만 직접 눈으로 볼 때보다 모호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이 로마인들이 말하는 상상imagination이라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가슴과 머리에 뜻이 담겨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황정견은 “흉중에 애초부터 언덕과 계곡이 저절로 있었으므로, 바람과 서리에 뒤틀린 노목(老木)을 그렸네.(胸中元自有丘壑/古作老木蟠風霜 흉중원자유구학/고작노목반풍상)”42) 란 일구일학(一丘一壑)의 형상이 가슴에 담겨 있어야 하고, 동파는 <운당곡언죽기>에서 “대나무를 그리는 사람은 반드시 흉중에 성죽을 먼저 얻어야 한다.(畵竹者先必得成竹於胸中 화죽자선필득성죽어흉중)”43).라고 하여 반드시 정신을 담고 있어야함을 밝히고 있다.
6.서화 디자인
“해담 오후규”는 월간서예 10월호 ‘해담의 성 만평(57)’내용에는 <서화디자인>의 개념에서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많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우뚝한 것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서화가의 경우, 천 수 백년 동안의 전통기법을 탐구하여 자기의 혼을 작품에 불어넣고자 하였으나 아직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이제 디자인을 생각해 볼 때이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미의식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마음, 나의 것과 융합하여 새로움을 구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때라고 했다.
가. 디자인의 목표
1)기능과 형태의 융합미(融合美)를 찾고 2)새롭고 독창적인 것
3)과학기술에 입각한 것 4)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것
5)정확한 인간 공학적인 능률을 고려한 것 6)재료의 특성을 유효하게 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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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동서양 미술의 지평, 앞의 책 ,p,75
41)“운보김기창” 예술론 연구, 최병식, 동문성, 1999,p,125
42)중국의 문인화, 수잔부시, 학연문화사,2008,p,88
43)문인화론의 미학, 강행원저, 서문당,2001,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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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화디자인의 개념
1)모든 조형활동에 대한 개념 2)합목적성적인 조형의 구체적 개념
3)인간의 창작행위(본성)를 살려 나가자. 4)새로운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사고하는 과정
5)보다 나은 삶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과 행위
다. 서화디자인의 개념분석
1)편리하고 아름답게 한다. 2)생활의 일부이며 그 환경자체이다.
3)생활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한다. 4)인간의 욕구충족-소비, 환경, 사회, 문화
5)예술의 한 형태-좋은 디자인은 좋은 예술이다.
6)인간생활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인공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요소
라. 서화디자인의 요소
첫째. 서화디자인은 항상 배우는 정신으로 새로움을 구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현대인과 소통되는 서화를 하자는 것이며, 셋째, 창의성이 돋보이는 서화를 하자는 것이다.
디자인은 그 시대의 사상이나 개인성뿐만 아니라 시대의 환경이나 사회적, 문화적 양식의 흐름 등 그 시대의 유행에 영향을 받는 특징이 있다.
디자인의 조형원리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요소로는 조화, 균형, 대칭, 비례, 대비, 강조, 착시 등이 있는데 이 요소들로 효과적인 구성을 만드는 것이고 그 원리는 서화창작에도 동일하다. 해담의 서화만평(58)<창작을 향한 서화가의 자세>44) 가 설명되어 있다.
그리스 인들은 수학적 비례를 통하여 미를 합리화시키고자 했음에 비해 동양화가들은 정신에 고무되어 그 이념의 본질을 보존하고 이와 함께 유기적인 완전성을 표상하기를 희구했다.
7.마치는 말
우리는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은 없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자.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Ea ist genug. It is anouh” 45) 우리의 삶이 복잡한 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다순해지자. 음악이 그러하고 시가 그렇다. 그림도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
독창적인 디자인을 하고 그 속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무엇? 이 있고, 조화적 비례를 통한 아름다움이 오래 기억되는 생명력 있는 작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인구의 6%정도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 부(富)의 약 60%를 차지한다니 그 시장에 현대차나 삼성반도체만 들어갈 것이 아니고 문인화도 들어갈 수 있도록 고전을 연구하고 스승의 정신을 공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디자인Design이 뛰어나지 않은 문인화(서예)는 설 곳이 없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감상자의 기호와 소통할 수 없는 작품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근원 김양동”은 미국 전시를 마치고는 이곳은 “노동이 베인 작품”46)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 정신성과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야 하며 기계가 못하는 것을 인간의 힘으로 에너지가 느껴지도록 하고,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한국적인 작품을 창조하라는 것이다.
“도곡 김태정”도 미국인들은 “알지고 못하는 글씨를 줄줄 쓰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동양 붓이 가지는 역동적인 힘과 생명작용을 알고 싶어하고 있으며 고도의 함축과 자유정신을 갈구하고 있었다.”47)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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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월간서예.2010,10월호,pp,140,143
45)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이진우. 책세상.2010,p,50
46)묵가.2006.2월호,p,76
47)서예문인화, 2002,8월호,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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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과 문인화도 섭렵한 서예가 “무산 허회태”48)도 중국은 간자체(簡字體)를 통용함으로서 서예의 전통성과 예술성을 상실하고 있고, 일본은 전통서도연구 보다도 변칙 현대서예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무산은 문자의 기록이 아닌 “감정을 나타낸 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에 “기술을 통해서 도에 들어간다.(유기진도由技進道)”49)는 포정이 터득한 것으로 “마음과 손이 응하는 대로 되려면 (심수상웅心手相應)” 필법이나 기법의 묘리(妙理)를 터득해야 한다. 중국의 “이가염 李可染”은 “칠십이 되어서야 나 자신 무지함을 알았다.(칠십시지기무지七十始知己無知)”50). 며 칠십이 되어 다시 밑바닥부터 정상에 오르기를 결심할 만큼 예술혼을 불 태웠다.“산정 서세옥”은 개성 넘치는 작품을 하려면 “위로는 스승이 없어야 하며 옆으로는 벗이 없어야하며, 아래는 제자가 없어야 한다.”51) 고 했다. 이 얼마나 예술의 독창성이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막 뿌렸더니 저렇게 혼란스러운 자국들이 만드어지더라”는 추상표현주의자인 “잭슨폴록Jackson Pollock(1912~1956)”52)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위한 노력이 아니다. 그저 행위를 하다보니 생긴 우연의 자국들이 모양을 만들어 낸 셈이다. 또 광고미술에서 출발한 앤디 워홀Andy Warhol(1930~1987) 은 현대 문명의 대량생산과 광고, 소비, 기업윤리에 대한 “사업으로서의 미술 Art as Business”53)을 표방하여 미국의 가정마다 매일 먹는 깡통수프와 섹스의 상징인 “그린 매릴린 먼로”54)의 사진 이미지로 대중성을 강조하여 2007년 경매에서 8천만 달러의 생생한 업적을 남겼다.많은 작품을 하다가 보면 수작이 나오기도 한다. 열정을 가지는 것이 창작의 지름길일수가 있다.
중국화단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을 벗어 던지고 “미술교육으로써 종교교육을 대신한다.”55)고 말한 전 북경대학 총장 “채원배”의 교육철학을 엎고 전통화풍의 토양을 바탕으로 민족 미술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서양미술과 접목하고 소신있는 교육철학과 소명의식을 가졌던 근현대 화가들에 의해 세계미술시장에 나서고 있다.
너무나 웅장하고 찬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개막과 2010년 아시안게임의 개막! 화려하게 디자인된 큰힘의 중국미술을 누구나 보았고 감동 또한 클것이다.
일본의 문인화는 자오(自娛;스스로 즐김)적인 면이 많지만 신 남화 표현을 적극 도입하였다. 자유로운 필묵에 의해 독특한 조형세계를 창출한 “도미오카 뎃사이富岡鐵薺1837~1924” 56) 에게 공감하고 청나라의 석도와 팔대산인 같은 개성적인 화가를 재발견하여 중국화에서 남화적인 요스를 찾고자 하였다. 지금은 지난날의 화려한 영화를 다시 누리기 위해 고유한 미술, 우키요에(浮世繪)와 양화를 접목한 신일본화의 보급을 위해 국가가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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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월간서예,2009년 11월호,p,73
49)동양미학론.이상우지음.시고아트.1999.p,70
50)문인화 총론, 이근우, 서예와 문인화, 2009.p,198
51)한국현대미술 오늘의 얼굴.김종근지음.2003.p.59
52)현대미술가를 위한 발칙한 저항.김영숙 지음.마로니에북스. 2010. p,64
53)아트 앤더 시티Art and City.양은희 지음.랜덤하우스 2010. p. 122
54)현대미술가를 위한 발칙한 저항.김영숙 지음.마로니에북스.2010. p,150
55)문인화 총론,이근우.서예와 문인화.2009,p,197
56)일본근대미술사.이중희.예경.2010.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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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등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많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우리는 청담은일(淸淡隱逸)로 공맹(孔孟)이나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사상에 젖어 문인의 향기만 즐기지 말고 이론적 토양(土壤)을 길러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신념으로 관습이나 형식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적 창의 (自己的 創意)”57)로 한국적 예술혼이 담기도록 디자인된 작품만이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시장으로 나설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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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황창배) Gold & Wise. 2005,12월호.p.50
※참고사항 ; 서양미술에서도 우리 문인화의 ‘디자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경매;2004년5월5일“구스타프클림트작;아델레블로흐바우어상,1907년작” 뉴욕의 소더비 경매사
1억3천5백만 달러. 미화장품회사재벌인 로널드로더씨가 구입.
“파블로 피카소작; 파이프를 든 소년,1905 년작” 1억416만8천 달러,
뉴욕의 소더비 경매사에서 - (2006년 6월 20일 미술신문 14면)
2010년 5월 4일 “파블로 피카소작,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1932년작” 1억6백40만 달러,뉴욕 경매소 - (월간서예,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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