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1
카를로 안첼로티가 2016/17 시즌부터 바이에른 뮌헨 새 사령탑에 오른다. 안첼로티는 펩 과르디올라 후임 감독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에른이 안첼로티와의 3년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바이에른은 포스트 과르디올라 시대를 일찌감치 대비하는 기민한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안첼로티 부임은 여러모로 바이에른에겐 최적의 선택이라고 칭할 만 하다. 이는 크게 2가지 면에 기인하고 있다.
# 토너먼트 전문가 안첼로티
안첼로티는 1992년 선수 은퇴 후 레지나 사령탑에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감독직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파르마와 유벤투스를 지도한 안첼로티는 AC 밀란을 시작으로 첼시, 파리 생제르맹(이하 PSG),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수행하며 황금기를 구가했다.
오랜 감독 경력 동안 안첼로티는 유난히 컵 대회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실제 안첼로티가 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3회(AC 밀란 2003/04, 첼시 2009/10, PSG 2012/13)가 전부이다. 안첼로티의 명성을 감안하면 다소 부족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컵 대회 우승은 무려 13회에 달한다. 토너먼트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안첼로티이다.
무엇보다도 안첼로티는 리버풀의 전설 밥 페이즐리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3회 기록하며 최다 우승의 영예를 안고 있다. 2002/03 시즌과 2006/07 시즌엔 AC 밀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했고, 2013/14 시즌엔 레알 마드리드의 '라 데시마(La Decima: 챔피언스 리그 통산 10회 우승을 지칭함)' 위업을 달성한 안첼로티이다.
이는 바이에른이 원하는 바와 일치한다.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3연패를 달성하며 독일 1강으로서의 체제를 공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경기 무패(53경기)를 비롯해 최다 연승(19연승), 최단 기간 우승(27라운드), 최다 원정 무패(33경기), 최다 경기 연속 골(65경기), 최다 경기 연속 멀티 골(20경기), 한 시즌 역대 최다 승(29승) 등 각종 기록들을 써내려가며 분데스리가 무대를 폭격했다.
과르디올라 본인 역시 분데스리가 역대 신임 감독 부임 후 최다 경기 무패 기록(28경기)을 수립했고, 분데스리가 역대 감독들 중 경기당 최고 승점(2.53점)을 올리는 등 적어도 분데스리가 성적에 있어서만큼은 독일 역대 최고에 해당한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이번 시즌에도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 우승이 유력한 팀이다. 만약 이번에도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다면 바이에른은 독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분데스리가 4연패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된다.
이제 바이에른은 분데스리가에서 이룰 게 없다. 바이에른의 최우선 목표는 다름 아닌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다. 물론 펩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바이에른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약점을 보인 건 절대 아니었다. 4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 진출했고, 최근 6시즌 중 무려 5시즌 동안 준결승에 올랐다.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챔피언스 리그 3강의 위치를 공고히 다진 바이에른이다. 게다가 과르디올라 역시 바르셀로나 감독 부임 후 지난 6시즌 동안 모두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이상 진출했고, 2회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스 리그의 강자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다만 과르디올라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기로 결정한 만큼 바이에른 입장에선 토너먼트 전문가를 영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 대상으로 안첼로티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게다가 바이에른은 유프 하인케스 체제에서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과 우승을 연달아 차지했다. 과르디올라 체제에선 준결승전에서 연달아 탈락했다. 특히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선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무기력하게 패하는 모습을 보였다(1, 2차전 도합 스코어 0-5). 바이에른 입장에선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20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당시 바이에른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안긴 인물이 다름 아닌 안첼로티이다. 안첼로티는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유난히 바이에른에게 강한 면모를 자랑했다. 주요 고비처마다 바이에른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 안첼로티의 바이에른 상대 전적은 6승 2무 무패이다. 그 누구보다도 바이에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안첼로티이기에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실용주의자 안첼로티
안첼로티가 자국 리그보다도 토너먼트에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그가 실용주의에 가까운 전술을 구사한다는 데에 기인하고 있다. 물론 안첼로티 역시 전술 철학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안첼로티는 '압박 축구'라는 패러다임은 축구계에 이식한 '전설' 아리고 사키의 제자답게 압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가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고집하는 감독이라면 안첼로티는 팀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에 속한다. 과르디올라가 플랜 A에 기반한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유형이라면 안첼로티는 다양한 플랜을 통해 약점을 최소화하는 데에 능하다.
실제 안첼로티는 그 동안 다양한 팀을 맡으면서 특성에 맞게 다양한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AC 밀란 감독 초창기엔 4-3-1-2를 즐겨 사용했고, 이후 4-3-2-1 크리스마스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첼시에선 4-3-3과 다이아 4-4-2를 유연하게 돌려썼다. PSG에선 첫 시즌엔 4-3-3을 쓰다가 2번째 시즌 들어 플랫 4-4-2를 팀에 이식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상대에 따라 4-3-3과 플랫 4-4-2를 능숙하게 활용했다.
이는 안첼로티의 성격에 일정 부분 기인하기도 한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기 위해 구단과의 싸움도 불사하는 인물이다. 당연히 선수들과도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있다. 바이에른에서도 마리오 만주키치와 충돌한 전례가 있다. 또한 독일 스포츠 전문지 '키커'는 과르디올라가 바이에른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의료진과의 의견 충돌'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첼로티는 구단과 마찰을 최소화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바로 안첼로티가 오랜 감독 기간 동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밀란 구단주와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 그리고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 같은 자기 주장이 강한 인물들 사이에서도 원만한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안첼로티의 지도를 받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안첼로티에 대해 "그는 큰 곰과도 같다. 그는 귀여운 사나이고, 세심한 인물이다. 우리는 많은 우승 트로피를 함께 차지했기에 난 그가 많이 그립다"라고 토로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바이에른이 황금기를 구가한 시기는 실용주의 감독들과 함께 한 시기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는 바이에른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실 바이에른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의 강호와는 거리가 있었다. 도리어 구단주와 주축 멤버들이 거의 유대인이었기에 아돌프 히틀러 지배기의 바이에른은 '유대인의 구단'이라는 압박 속에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이렇듯 명문과는 거리가 멀었던 바이에른이 독일의 지배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건 다름 아닌 구 유고의 명장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이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십대에 불과한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와 '폭격기' 게르트 뮐러, 그리고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를 중심으로 평균 연령 22세에 어린 선수단으로 개편하며 팀 전술을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뒤를 이은 우도 라텍이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독일을 넘어 유럽 축구계의 정점에 올라섰다. 이후 바이에른은 독일 최강자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져나갔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바이에른은 2009년 여름, 네덜란드 명장 루이스 판 할을 신임 감독직에 임명했다. 비록 판 할은 2년간 바이에른을 지도하면서 수뇌진들은 물론 선수들과도 마찰을 빚었으나 판 할의 지도 하에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대박을 쳤고, 토마스 뮐러와 홀거 바드슈투버 같은 어린 선수들이 팀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판 할의 최대 공적은 바로 바이에른에 패스 축구를 이식한 것이었다. 그리고 판 할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지휘봉을 잡은 하인케스는 판 할의 패스 축구에 실리를 더하며 2012/13 시즌 독일 구단 역대 최초의 트레블(챔피언스 리그, 분데스리가, DFB 포칼 삼관왕)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바이에른은 과르디올라 체제에서 패스 축구를 극대치로 끌어올렸다. 바르셀로나보다 더 바르셀로나스러운 축구를 하는 팀이 바로 바이에른이다(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에서 비록 바이에른이 탈락했으나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은 바이에른이 우위를 점했다). 게다가 더글라스 코스타와 킹슬리 코망 같은 어린 선수들이 가세하며 포스트 로베리 시대(아르옌 로벤과 프랑크 리베리로 구축된 바이에른의 좌우 측면 공격진으로 바이에른 황금기의 주축이었다)를 대비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안첼로티가 실리를 더하기만 하면 된다.
안첼로티에게도 바이에른은 좋은 선택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안첼로티는 과르디올라-주제 무리뉴와 함께 현역 감독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장이지만 정작 자국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편에 속했다. 서두에도 언급했다시피 안첼로티의 리그 우승은 3회가 전부다. 이는 자신보다 경력이 더 적은 후배격에 해당하는 무리뉴(8회)와 과르디올라(5회)보다 밀리는 수치이다.
바이에른은 독일에서 독보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팀이기에 리그 우승에 대한 부담감은 다소 적은 편에 속한다. 즉 안정적으로 리그 우승 숫자를 늘려나가면서 안첼로티의 장기인 토너먼트에서 힘을 발휘한다면 바이에른은 안첼로티 재임 기간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첼로티 우승 경력
UEFA 챔피언스 리그(AC 밀란: 2002/03 & 2006/07, 레알 마드리드: 2013/14)
UEFA 슈퍼 컵(AC 밀란: 2003 & 2007, 레알 마드리드: 2014)
FIFA 클럽 월드컵(AC 밀란: 2007, 레알 마드리드: 2014)
세리에A(AC 밀란: 2003/04)
코파 이탈리아(AC 밀란: 2002/03)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AC 밀란: 2004)
프리미어 리그(첼시: 2009/10)
FA컵(첼시: 2009/10)
커뮤니티 실드(첼시: 2009)
리그 앙(PSG: 2012/13)
코파 델 레이(레알 마드리드: 2013/14)
김현민 기자
자료출처 : 골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