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02
영화 ‘폼페이’로 본 화산 폭발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웅장한 규모로 생생하게 재현해낸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인기가 뜨겁다. 서기 79년 8월 24일에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은 휴양 도시로 유명했던 폼페이를 한순간에 통째로 삼켜버렸다. 대량 분출된 뜨거운 화산재에 폼페이 시민들도 묻혔고, 그 형태가 그대로 굳어져 ‘인간 화석’이 되었다.
‘인간 화석’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폼페이’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용암이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베수비오 화산 폭발까지 최후의 순간을 함께한 노예 검투사 ‘마일로’와 폼페이 영주의 딸 ‘카시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화산 폭발에서 가장 무서운 현상은 용암이 가스와 뒤섞여 산기슭을 따라 흘러내리는 ‘화산쇄설류’이다. 온도가 500~1000℃에 이르고, 시속 130~180㎞의 빠른 이동속도로 덮치기 때문에 위험하다. 폼페이의 ‘인간 화석’도 화산쇄설류의 뜨거운 열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 영화 ‘폼페이’의 한 장면
화산 폭발은 베수비오처럼 한 문명의 몰락을 가져올 만큼 파괴적이기도 하며, 2010년 아이슬란드의 사례처럼 지구를 휘감을 정도로 광범위하기도 하다. 영화 ‘폼페이’가 개봉되기 직전인 지난 2월 초에는 우연히도 인도네시아에서 두 차례의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수마트라 서부에 위치한 시나붕 화산과 자바섬 동부의 클루드(Kalud) 화산이 분출한 것이다. 인간의 과학 기술이 발전을 거듭해온 21세기에도 한 도시를 통째로 삼켜버린 폼페이의 재앙이 다시 반복될 수 있을까.
지구는 아직 젊다. 때문에 내부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화산 폭발이나 지진이 일어난다. 화산 폭발은 지질학적으로 ‘환태평양 화산대’에서 자주 일어난다. 화산 활동이 빈번한 장소를 세계 지도에 표시하면 주로 태평양 주변의 육지와 바다 경계를 따라 둥근 띠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환태평양 화산대’라고 한다. 이곳에는 세계 화산의 약 60%가 모여 있다.
지진도 마찬가지다. 지진은 ‘불의 고리(Ring of Fire)’라 불리는 지역에서 자주 일어난다. ‘불의 고리’는 전 세계 주요 지진대와 화산대 활동이 중첩된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거의 환태평양 화산대와 일치하나 환태평양 지진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인도네시아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환태평양 화산대에 존재하는 동시에 ‘판 구조론’에서 말하는 지각을 덮는 여러 판들 중 가장 큰 판인 태평양판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얘기다. 결국 ‘불의 고리’는 ‘불’과 ‘꿈틀대는 땅’이 만나 서로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를 축적시키며 대폭발을 준비하는 지구의 ‘시한폭탄’인 셈이다.
현재 ‘불의 고리’ 지역에서 판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곳은 하와이제도이다. 하와이섬에서 약 500㎞ 북서쪽에 위치한 카우아이섬은 지금의 킬라우에아 화산 폭발로 약 500만년 전에 생성된 이후, 1년에 약 10㎝씩 북서진하는 태평양판을 타고 지금의 위치로 이동했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하와이 사람들은 동시에 태평양판 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태평양 밑바닥에서는 지구 내부의 물질이 솟아올라 새로운 지각 판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판과 기존의 지각 판은 서로 충돌하여 엄청나게 센 마찰력을 만들고, 그럼으로써 뜨거운 열이 생겨 판의 일부가 부서지면서 지진이 일어난다. 뜨거운 열은 주변의 암석을 녹여 마그마로 만든다. 이 마그마가 지각을 뚫고 땅 위로 터져 나옴으로써 화산이 만들어진다. 태평양을 둘러싼 화산대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폼페이에서 발굴된 ‘인간 화석’.
환태평양 화산대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칠레 앞 해안에서 미국 알래스카에 이르는 남미와 북미 해안, 태평양 건너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이 하나의 고리(총 길이 4만여㎞)로 연결되어 있는, 지각이 가장 불안정하고 약한 지대이다. 그래서 육지와 해저를 가리지 않고 다발적으로 화산이 폭발한다. 세계 화산 폭발의 80%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환태평양 화산대의 대표적인 재앙으로는 1883년 핵폭탄급 위력으로 인도네시아 해안을 날려버린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을 들 수 있다. 123년 만에 다시 폭발한 1980년의 미국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 또한 일본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보다 무려 500배나 강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환태평양 화산대는 피해 규모가 큰 대폭발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를 경계로 만나는 두 지각 판이 부딪치면서 부쩍 환태평양 화산대의 화산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환태평양 지진대가 또다시 분노하고 있다’며 새로운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최대 활화산인 중부 자바의 메라피 화산(해발 2914m)이 메가톤급 재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메라피 화산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것은 지난 1994년. 당시 화산재 등으로 6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현재 메라피 화산 활동은 3단계. 3단계는 화산 활동 4단계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이다.
높이 2744m의 한반도 최고봉 백두산에도 세계 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휴화산인 백두산에서 화산 활동이 재개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다. 중국의 지진연구소와 한국의 화산 전문가들은 조만간 대폭발 가능성을 예측해 놓은 상황. 백두산은 1000년에 한 번씩 크게 분화했는데, 969년 대분화 이후 아직까지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일본의 후지산도 화산 활동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지산은 4개의 지각 판이 모두 만나는 곳에 있어 활동이 활발하다. 후지산이 폭발할 경우 남서풍의 영향으로 도쿄 인근 공단지대와 도쿄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18시간 만에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 또한 다시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 화산학자들은 2006년 3월 베수비오 화산에 대해 경계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게 되면, 주위의 대도시인 나폴리 전체를 포함해 반경 약 25㎞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300만명의 시민들이 위협을 받을 전망이다.
세계 과학자들이 100년 넘게 현대적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음에도 화산은 정체불명에다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아직도 화산의 변덕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다. 어떤 과학기술로도 화산의 힘을 제압하고 분출을 막을 방법이 아직은 없다. 제2의 폼페이 재앙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