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8. 09
장기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를 만나기로한 날 언뜻 ‘대지약우(大智若愚)’라는 말이 떠올랐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크게 지혜로운 사람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1990년 이재오, 김문수와 함께 민중당을 창당한 이래 계속된 그의 굴곡진 정치역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자정당, 기성정당 할 것 없이 총선에서만 7번을 내리 낙선했고 이번에 또 대선출마를 한다는 것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운동권의 대부로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그는 왜 험한 정치판을 전전하는 것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의 측근 참모 중에 정치부 기자 시절 인연이 있어 한 번 봤으면 한다는 전갈을 드렸다. 흔쾌히 응해주어서 만남이 성사됐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76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했다. 걸음걸이도 힘찼고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는 심지어 뜀박질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인천 5·3 사태 때 그를 최루탄 속 지근 거리에서 본 적이 있다. 벌써 35년 전 일이다. 수년 전 학교 선배 상갓집에서 인사를 했지만 정식으로 식사까지 하며 자리를 하기는 처음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물음을 던졌다.
▲ 2020년 4월 2일 미래통합당 김해시을 장기표 후보가 경남 김해시 회현동 5일장을 돌며 지역구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조선일보DB
“왜 정치를 하십니까” 정치는 겉으로 보기에는 대리석 같이 하얗고 뽀얗지만 속은 썩고 곪아터졌다. 한때 나의 우상으로 순수하고 맑은 그에게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과거 운동권 시절 그는 ‘은둔의 고수’였고 신출귀몰했다. 60년대 운동을 시작한 이래 12년의 수배와 9년의 감옥살이 영향 때문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정체성에 맞게 살아야 한다. 내 스타일은 꼭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정치를)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전태일 평전’의 공동저자로 영화 <1987>에도 나왔던 친구 김정남 씨는 어느 해 그에게 간곡한 말을 했다고 한다. “제발 장기표가 잘돼 성공하는 것을 단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러나 그는 “본래 나는 인간해방 사회 건설을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고 정보문명 시대야말로 인간해방의 시대가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정치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단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게 이 혼탁한 세상을 사는 지혜(어부 굴원)인데 아예 담을 쌓았다. 정치를 자신의 천명(天命)으로 알고 사는데 객꾼들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보수정당 국민의힘에 오실 분이 아닌데 어떻게 왔나?
“일생동안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겠다는 이념과 정책을 정립하고 노력했다. 그걸 이루려면 집권세력이 돼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힘에 왔다. 또 다른 이유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나라를 파탄을 내는 것도 모자라 국민들을 편을 가르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윤리와 도덕, 가치관의 기준을 전도(顚倒)시켜 버렸다. 정권을 교체하는데 내가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09년 9월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수도분할반대 국민운동본부 장기표 대표가 농성투쟁 발대식을 갖기에 앞서 행사장으로 집기를 들이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이 단체는 발대식에서 "행정도시는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나라를 망치고 충청도민도 울리는 행정도시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사진=조선일보DB
- 정권교체는 가능할까?
“만만찮다. 이유가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과장돼 있다 해도 40%는 된다. 또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당대선후보 지지율을 합친 것이 야당 후보 지지율 합친 것보다 높다. 4,7 보궐선거 후 야당이 약간 높았는데 역전됐다. 믿을 것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조사 결과가 아직은 55% 정도 된다는 건데 저쪽(집권세력) 사람들이 권력과 정보, 돈과 언론까지 다 갖고 있어 문제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평가는.
“윤석열은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윤 전 총장이 검사밖에 한 것 없다고 하는데 검사는 형법 책만 읽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윤 전 총장은 권력의지가 강하다. 공무원 오래한 사람이 대통령과 맞짱뜨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해낸 사람이다”
-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해도 정치를 계속하나?
“나는 죽을 때까지 살아온 스타일대로 산다. 정치는 그만두지 않을 거다. 왜냐면 나는 스스로 ‘정치문화재’로 자부하는 사람이다. 정치문화재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일관된 자기의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다른 하나는 주관적이더라도 뭔가 우월성이 있어야 한다. 독자적인 정치의 이념과 전략이 정립돼야 한다. 대선이 끝나도 정치는 계속 할 거다”
- 지지율이 낮은데.
“사흘 전 여론조사에 처음으로 이름이 올랐는데 1.3% 지지율이 나왔다. 어제는 1.6%까지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내려오는데 나는 올라갔다. 여론조사 결과 수치는 낮지만 선전이 많이 된다. 장기표가 이제 대선에 출마했다는 것을 많이 아는 것 같더라”
▲ 2012년 3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정통민주당사에서 열린 정통민주당 4.11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에서 장기표 정통민주당 선대위원장이 결의를 다지며 "통합진보당의 동부연합에 대한 실체를 밝혀라"고 말하고 있다. / 사진=조선일보DB
- 주요 공약은?
“나라를 파탄 내는 주범으로 ‘망국 7적’이 있다. 그 1호는 민주노총이다. 2호는 전교조, 3호 대깨문, 4호 공기업, 5호 미친 집값, 6호 탈원전, 7호 주사파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그 폐해와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 ‘망국 7적’의 1호가 민주노총인데
“민주노총은 대통령이나 공권력, 정부여당이 꼼짝을 못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기관이 됐다. 총리가 민노총 위원장을 알현하러 갔다가 못 만나지 않았나. 경제파탄과 청년실업의 원인이 민노총에 있는데도 제대로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민노총은 대기업 신규 채용을 저지하고 있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않으니 청년들이 취업할 데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기업주 입장에서 한번 정규직으로 뽑아놓으면 (민노총 때문에)해고할 수가 없으니 비정규직으로 가는 거다. (민노총과 정부가)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인상해 자영업이 붕괴된다. 이런 주장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확인됐다. 민노총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이 정권은 겁을 내서 말도 못하고 있다”
그의 민노총에 대한 비판은 당당했다. 그는 “자신은 민노총에 충고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산 증인이라 그런 가 했더니 그는 “민노총은 장기표라서 겁내는 것이 아니다. 논리가 있어서 겁을 내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 대통령 임기 막판에 측근 비리 대신 특보하던 사람들의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이 정권에서 북한 돈을 받아 간첩활동을 했다고 국정원이 구속하는 사건이 생긴 게 신기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측근 비리가 없는 게 아니고 이미 많이 터졌다. 비리가 터져도 사회문제가 덜 돼 그런 것일 뿐이다.”
- 집권 586 운동권이 기득권이 돼 ‘운동권 팔이’하고 있는데.
“민주화 운동했다는 사람들이 나라를 망치는 원흉이 돼 있다. 그들이 민주화 운동을 팔아먹어 부끄럽게 하지만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정치는 따라다니면서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말해야 한다. 민주화 운동 했다는 것은 존경의 대상은 되지만 기대의 대상은 안 된다. 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발전전략을 정립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를 하는 이유다.”
- 젊은층 소위 MZ세대와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청년실업 해법을 갖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흉내를 못내는 나만의 논리가 있다. 최근 웹툰을 통해 청년세대와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 이제 대중 정치인이 다 됐다.
“나는 본래 그런 사람이다. 그동안 군소정당을 하다 보니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큰 정당에 몸을 담았으니 걸 맞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아직 여당후보가 누가 될지, 야당도 누가 후보가 될지 대통령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 말속에는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도 있다.”
이상곤 / 정치 칼럼니스트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