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행자(行者)가 본제(本際)로 돌아가니
행자가 본제(本際)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시간적으로 그 본제를 일분일초라도 떠나본 사람이 있는가.
공간적으로 0점 1미리라도 거리를 두어본 사람이 있는가.
돌아가기는 어디서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要識本際麽아
본제(本際)를 알고자 하는가?
問禪인댄 禪是妄이요
“선(禪)을 물으면 선(禪)은 바로 망(妄)이요,
求理인댄 理非親이니
이치를 구하면 이치는 멀어진 것이니,
直饒玄會得이라도 也是眼中塵이로다
설사 깊이 알았다 하더라도 또한 눈속의 티끌인 것이다.”
행자(行者)가 본제(本際)로 돌아가니 처음도 끝도 모두가 본제이기에
본제를 알고자 한다는 말이 이미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선(禪)을 물으면
선(禪)은 바로 망(妄)이요, 이치를 구하면 이치는 멀어진 것이 된다.”고 하였다.
24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으려 해도 반드시 되지 않으리라.
“가히 망상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얻지 못한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화엄경>과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있지도않은 망상을 언제 쉬고
본제(本際)를 얻는다는 말인가.
三世諸佛은 是守屍鬼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바로 시체를 지키는 귀신이요,
歷代禪師는 是愽地凡夫라
역대선사는 곧 못난[博地]범부이다.
直饒佛이 說하고 菩薩이 說하며 刹이 說하고 三世가 一時說이라도
설사 부처님이 설하고 보살이 설하며
국토가 설하고 삼세가 일시에 설한다 하더라도
不異㞘沸熱椀鳴聲이니 於向上一着에 了沒交渉이라
끓는 주전자의 김새는 소리와 다르지 아니한 것이니
향상(向上)의 일착(一着)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盡大地가 是業識일새 茫茫하야 無本可據니 何故오
온 대지가 곧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하여
의거할 근본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但以假名字로 引導於衆生이로다
“다만 거짓 명자(名字)로써 중생을 인도한 것뿐이다.”
선가(禪家)에서는 높은 안목과 높은 견해를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향상일착자(向上一着子)니 향상일로(向上一路)니 하는
말을 즐겨 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바로 시체를 지키는 귀신이요,
역대선사는 곧 못난[博地]범부이다.”라는 말이
고준한 견해를 높이 사는데서 나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