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의 기도 / D. 크레머
주님,
왜 저의 색깔은 잿빛인가요?
희지도 검지도 않은 이 회색은
어디에나 잘 어울립니다.
약간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지요.
불쾌와 우울증을 잔뜩 뿜어낼 때는
내 마음은 종종
어두운 그늘에 짓눌린답니다.
걸핏하면 제가 고집스런 것이 이상하신지요?
등엔 짐을 진 채
양 발굽으로 버티고 서서
꿈쩍도 않을 때를 이해하시는지요?
볏짚, 사기그릇, 박하자루를
그리고 매일의 양식들을
멍청할 만큼 잔뜩 지고는
채찍과 모진 욕설에도 불구하고
주일도 없이 항상
마치 다른 짐꾼은 모르는 양
그저 내게만 짐을 지우니
주님, 어쩝니까? 하는 수 없지요!
좋습니다.
저도 정의롭고 싶으니까요.
주님, 당신은 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아름다운 귀를 주신 줄 압니다.
내 귀는 마치
방향 탐지기처럼 움직인답니다.
그렇습니다. 이 귀는 당신 섭리로
저에게 배려된 것이었지요.
당신이 이 세상에 아기로 태어나셨을 때,
내 귀로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얼마 뒤에, 저는 당신을
이집트까지 모셔드려
헤로데 왕에게서 구했답니다.
그리고 웃날 다시
당신을 모실 수 있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임금으로 다시 내 등에 업히신 일 말이에요.
이처럼 영광스럽던
모든 날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루하루 생활이 더 밝아진 건 아니지요.
하기야
언제나 ‘황금같이 빛나는 순간’만이
지속될 수는 없는 거죠.
그러나 당신은 그 후로
내게 묘한 소리를 주셨어요.
이아 -
아무도 이 소리를 나처럼 똑같이 내고
또 그 뜻을 풀이할 수 없답니다.
그 뜻은
“나는 당신을 사랑으로 모셨고,
당신도 나를 사랑으로 쓰셨습니다.”이거든요.
I.A. = In Amore = 사랑으로!
그렇습니다.
이것은 내게 무척이나 큰
위안을 준답니다.
아멘.
카페 게시글
가슴에 남는 시
당나귀의 기도 / D. 크레머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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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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