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시산맥창작기금 선정/ 장욱 시인
제4회 시산맥창작기금 선정자 장욱 시인
■ 선정작 기억함을 던져라 외 2편
기억함을 던져라
기억 속에 사는 것 아니다
기억 속에 죽는다
아침에 받아보는 햇빛 한 접시ㄴ들
눈이 부시게
부서진 문맥 부서진 이해 부서진 논리 부서진 판단
그 핏빛 흔적의 꼬투리를 깊고 은밀한 못에 던져 불태우는 모란꽃 탐스런 봉오리들도 한철 시들어가는 기억의 헌 집
나의 나를 담을 수 없어 기억 밖 낙화의 그늘 속으로 부스러지는 것이다
이 땅 생명 하나 끄집어내기 위하여 지구는 지진 해일 태풍 화산 폭발로 기억의 껍데기를 부수고 가슴 깊은 곳 진앙의 붉은 생식기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리라
생의 끝에 선 질고(疾苦) 병마(病魔) 뼛속 깊이 새어드는 아픔도 나를 쪼아내고 털어내고 깨끗해지는 잠꼬대
나를 하나 더 건너가는
봄강 배따라기, 삐걱삐걱 따라붙는 기억함을 던져라
빗방울 둥근 가면을 떼어낸
빗방울 둥근 가면을 떼어낸
아침 햇빛
나의 서가 쌓인 헌책 지배(紙背)를 철(徹)하다
그의 독법은 기호를 기억하지 않는다 시니피에를 허물고 무너뜨리고 빛의 바다를 일렁인다
가라앉았던 청춘 차고 뜨거운 빙산, 단단한 쾌감을 팽창시켜 부스러뜨린다
진실과 진리와 고독한 성찰을 깨물어 낸 책 속의 금속 활자, 이제는 낡고 썩고 찌그러져 세상 쓴맛 단맛을 씹지 못하고 뱉어 버린
고(孤)
독(獨)
허(虛)
무(無)
분홍 꽃씨 꿈을 털어낸 흰 잠 바깥에서는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실핏줄 맥박에 잇대어 새 피를 수혈하는
나의 창가 황금 그늘 못
사유(思惟)의 미동이 개굴개굴 초록 눈꺼풀을 터트린다
죽순(竹筍)
나 안에 우는 대숲 탱탱한 울음을
끓고 끓여 붓고 부어 지구 깊이 붉은 생식기를 다 채우고 솟아오른 목숨
저도 이 땅의 생식기가 되어
불쑥불쑥 솟구치는 초록의 힘, 꼿꼿이 일어나 앉는 천애정좌(天涯靜坐) 푸른 결기가 가슴속까지 내리쳐 세상 잡소리 다 비워내고 마디마디 빈 젓대 소리로 너를 부르리라
맑은 힘은
휫, 청, 휫, 청 일어설 때에도 땅을 짚지 않는다
<선정 소감>
사계의 뜰을 거닐며 신의 음성을 경청하려 마음을 다스리고 고요의 늪에 빠져 보기도 하였다. 신의 미소는 나 안에 나의 심장 속에 자리하리라.
신과 나 사이에는 시간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나에게서 빠져나가면 나의 존재는 시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시간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이고 지상의 문제 아니든가.
늦가을 모과가 툭 떨어지는 소리, 하늘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인가. 지상의 현실 위에 무사히 도착한 것인가. 햇빛과 바람과 우주적 연료를 불태워 온전히 무르익었다. 하늘의 무게는 지상의 현실이 되어 구르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 나는, 존재는, 우주적 구원의 섭리와 삶의 치열한 성찰이 빚어낸 현존재의 행복감이었다. 지상의 현실이 구원의 절정이요, 생명의 무게 중심이 되어 우주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빛무리이다.
나의 시는 하늘의 시간이 내 삶의 실마리가 되어 나의 뜰에서 서정의 힘이 되는, 이 지점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소망한다. 서정시의 갱도를 곡괭이로 파 들어가는 굶주린 광부가 되리라.
서정시는 시대마다 격하게 도전을 받아 왔다. 그럼에도 그 맥은 힘차게 휘달렸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꿰뚫었기에 현대시의 중추가 되었다.
그러나 서로 부딪히고 깨지는 소용돌이 물결 속에서도 서정시는 리얼리즘이나 해체시의 특장을 수용하고 변용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깊고 높고 탄탄한 체질로 구현해 가고 있음을 보았다.
그래서 나의 시는 해체적 발상을 통하여 인간과 사물의 내면에 잠재하는 겹과 층 깊이에 심안(心眼)을 쿡 찔러 깊이 있게 성찰하고, 지상의 생존자(벌레, 풀 등)들과 우주의 관계 및 사후 미래 체험 등을 광폭으로 수용하여 통합적 경지를 추구해 나가고자 함이다.
시산맥 문 대표님 메일이 한밤중 함박눈 속을 뚫고 나의 심장에 닿았다. 감사의 함성이 나의 뜰을 넘친다. 시산맥의 일원이 되어, 시산맥으로 치달리는 시의 본류가 되리라.
두방리에서 장욱
■ 장욱 약력
1992년 『문학사상』 신인발굴대상 당선(시).
시집
『사랑살이』 『사랑엔 피해자뿐 가해자는 없다』 『겨울 십자가』
시조로 쓴 한량춤 『조선상사화』
『두방리에는 꽃꼬리새가 산다』
시조300수로쓰다 『민살풀이춤』
『분꽃 상처 한 잎』
디카시집 『맑음』.
논저 『고하 최승범 시조시 연구』.
풍남문학상, 한국예총회장상 수상.
제4회 시산맥 창작기금 수혜.
첫댓글 장욱 선생님,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