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주 오금고등학교 선생님의 책 [K-대학입시 2025] 가운데 일부입니다. 저자의 동의 없이 무단 전제 및 배포를 금합니다. 인용하실 경우에도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취임 초기에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해결책으로 국제바칼로레아(IB)를 언급했었다. 이 장관은 이미 경기도교육감 인수위 원장으로서 정책 제안을 담아 전달한 백서에도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 생의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해 국제 공인 교육과정인 IB 프로그램을 도입 해 공교육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에 경기도교육청은 IB 교육 예산을 편성하고, 일선 학교 에 IB 프로그램 추진 기본 계획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대구 에서 첫 IB 인증 학교가 생긴 이후 현재는 IB 본부의 인증을 받거나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인 학교가 대구와 제주에서 다수 운영되고 있다.
IB 고교와 K-대학 입시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인 IB 본부에서 개발 운영하 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창의 융합형 미래 글로벌 인재를 양 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 및 탐구 학습 활동을 통한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한다.
제주교육청의 안내문에 의하면, IB 고교에서도 1학년은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공통과목을 주로 이수한다. 하지만 2~3학년은 6개의 교과 군과 3개의 핵심 과정(Core)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학생들은 언어와 문 학(국어), 언어 습득(외국어), 개인과 사회 3개 교과군 중에서 3과목을 선 택해서 과목별로 150시간(주당 3시간) 이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과학, 수학, 예술 3개 교과군 중에서 3개 과목을 선택해서 과목별 240시간(주 당 4-5시간) 이수해야 된다.
IB 고교에서 학생들은 지식 이론, 소논문, 창의·활동·봉사 3개의 필 수 과정도 이수해야 한다. 지식 이론은 철학, 도덕, 논술, 종교 등을 통 합한 비판적 이성적 사고훈련 과정으로 2년간 100시간(주당 2시간)을 이 수해야 된다. 그리고 소논문은 학생 관심 주제에 대해서 4,000단어 이상 개인 연구 소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으로 2년간 약 40시간(주당 1시간)을 이수해야 된다. 창의·활동·봉사는 예술 및 창의 활동, 체육 활동, 지역 사회 참여 및 봉사활동으로 구성된 과정으로 18개월 이상 150시간(주당 3-4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문제는 IB 고교의 6개 교과군 중에서 4개 교과군만 한국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언어 습득(외국어)과 예술 교과군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는 것이다. 원래는 에세이도 학생들이 영어로 작성하는 것이니 영어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갖춘 학생이 아니면 IB 교육을 이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조기 유학이나 영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에게 유 리한 학교이므로 귀족 학교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IB 고교에서 평가는 우리의 교과 성적에 해당하는 내부 평가와 수능에 해당하는 외부 평가로 구분된다. 먼저, 내부 평가는 과목별로 1, 2개의 프레젠테이션, 프로젝트, 보고서, 실습, 탐구 활동을 대상으로 학교 교사 가 평가한다. 교과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IB 본부 에 평가 자료를 제출하면 채점 전문가가 무작위로 선별해서 심사하고 부 풀리기 여부에 따라 내부 평가 점수를 조정한다.
IB 고교에서 외부 평가는 서논술형 중심으로 평가된다. 우리의 수능처 럼 학생들이 지정된 날짜에 IB 본부에서 출제한 시험을 치르고, 이를 IB 본부 채점관이 중복 채점하여 평가한다. 내부 평가는 총점의 20~30% 정도만 반영되고, 외부 평가가 70~80%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다. IB 교육을 받은 후 시험을 통과하면 국제 학위인 ‘IB디플로마’를 취득 할 수 있다.
이혜정 소장의 공저 『IB를 말한다』라는 책에 의하면, IB 시험은 고급 수 준 3과목, 표준 수준 3과목 총 6개 과목 42점, 지식이론(TOK)과 소논문 (EE) 3점 총 45점 만점으로 평가된다. IB디플로마 획득 요건은 6개 교과 와 3개 핵심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IB 시험 45점 중에서 24점 이상을 획 득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한국어, 외국어,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 예술 6개 교과군 중에서 각각 한 과목씩 6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평가 방식은 7등급 절대 평가이며, 내부 평가와 외부 평가 점수를 합해서 과목별 최고점이 7점이 다. 필수 과정인 지식이론과 소논문은 외부 채점 센터에서 각각 5단계 로 채점되고, 두 점수를 합한 조합의 규정에 따라 1~3점이 결정된다. 지 식이론은 지식과 배움에 대한 6개의 문제 가운데 1개를 골라서 지식이론 수업 시간에 토론하고 1,600단어(영어 기준) 분량의 논술문을 작성하고 10분 정도 발표하는 필수 과정이다. 구두 발표는 내부 평가로, 논술문은 외부 평가로 채점된다.
소논문은 학생 각자가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고, 교내에서 지정된 지도 교사에게 40시간 이상 지도받으면서 4,000자(영어 기준) 이하의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필수 과정이다. 그리고 창의·활동·봉사는 정량적으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이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디플로마가 수여되지 않는 필수 과정이다. IB에서는 체육을 정규 과목이 아니라 이 과정 속에 편성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일정 시간 이상 운동하고 기록하게 한다.
IB 고교에서 에세이, 보고서,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등을 중시하는 것은 창의성 등 미래 역량을 기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은 현재 한국의 교육과정에서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물론 이고 고등학교에서도 수행평가 등으로 이미 실시되고 있다.
수시 학생부전형이 K-대학 입시의 대세가 된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학 교도 과거의 주입식 암기 교육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활동 중심으로 변화 해 왔다. 현재 기본 지식과 다양한 교육 활동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교육과정과 비교해 보면, IB 교육과정은 오히려 학생들의 활동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폭넓은 기본 지식 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IB 고교에서 2년간 이수 과목이 6개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학교의 교과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는 수시 학생부전형이 주요 대학 입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수행평가나 서논술형 문제 만 출제된다면, 채점 시비와 분쟁으로 인해 성적을 확정하기조차 어려워 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도 교과 성적 등급 경쟁이 치열하므로 수행평가나 서논술형 채점과 관련해서 갈등이 적지 않다. 학부모들이 감 점 요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겠다며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 공개를 요구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원 강사들을 동원해서 이의 제기를 하고 부분 점 수를 요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IB 고교가 확산되어 출신 학 생들이 대거 국내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면, 정기고사 때마다 채점에 대 한 이의 제기와 소송으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IB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논문은 학원에서 대리 작성해 주 는 등 입시 부정을 이유로 한국에서 폐지된 지 오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종과 유사한 IB 교육과정을 다시 국가적 차원에서 전체 고등학교에 도 입한다면 불공정성 문제로 국민적인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IB 고교가 외국 대학으로 진학하는 소수 기득권층 자녀만을 위한 고등 학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이다. 사실 IB 고교에서 학생 들이 수능을 준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수시 학생부전형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능 최저를 적용하고 있으므로 정 시든 수시든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IB 고교는 주로 외국 대학으로 유학을 원하는 기득권층 자녀들을 위한 유학 준비 학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IB 고교가 암기식 교육, 수능 위주의 수 업에서 벗어나자는 명분을 내세워 소수 기득권층 자녀의 외국 유학을 국 가적 차원에서 지원해 주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IB 논술 평가와 수능 시험
『IB를 말한다』라는 책에 의하면, IB 시험의 핵심인 외부 평가는 논술형 시험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IB 고등학교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국내의 대학 입시에서 진학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수능을 자격고사 수준으로 약 화시키고 IB 논술 평가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IB 논술은 6개 과목을 약 3주에 걸쳐 실시한다. 전 세계에서 차출된 외 부 채점관들이 블라인드로 채점한다. 평가 방식은 7등급 절대평가이고, 등급 점수뿐 아니라 원점수도 제공하며, 재채점 신청도 가능하다. 대부 분의 채점은 교차 채점을 하는데, 두 채점관의 채점 결과와 점수가 일정 기준 이상 차이가 나면 재채점을 하는 시스템이다.
IB 논술은 채점관 선발, 채점관의 질과 채점 결과 등 모든 부분을 기본 적으로 IB 본부가 책임진다. 채점관은 주로 현직 교사들 중에서 심사를 거쳐 차출한다. IB를 가르치는 현직 교사들 중에서 신청을 받은 뒤 채점 테스트를 통과하면 훈련을 거쳐 채점관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한다.
IB 논술은 조국 가족 입시 부정 사건 이후 높아진 국민들의 공정성 요 구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교차 채점을 한다고 해 도 국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공정성을 확보하기는 어 려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현행 수시 논술고사 정도의 규모라면 몰라도 정시 수능을 대체하는 수준으로 IB 논술을 확대 실시한다면, 수시 학종 논란과 마찬가지로 공정성을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IB 논술 도입으로 인해 논술 사교육이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IB 논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입시 경쟁이 완화되 는 것이 아니다. 입시 경쟁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IB 논술이 도입되면 여 기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학생부든 수능 이든 IB 논술이든 한국 입시에서 핵심적인 선발 도구가 되면 변별력이 가장 중요해지므로 고난도 킬러 문항들이 출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서울 주요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논술전형에서 출제되 는 문제들은 수능 킬러 문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난도이다. 만약 IB 논술이 K-대학 입시의 핵심으로 확대된다면, ‘과외망국론’이 나 올 정도로 사교육이 극심했던 본고사처럼 IB 논술 사교육이 폭발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다. IB 논술 채점관들이 새로운 일타 강사로 이름을 떨 치게 될지도 모른다.
논술고사는 창의성과 사고력 등 미래 역량을 기르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채점의 공정성이나 사교육 문제 등 너무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 한다는 것을 우리의 입시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 IB 논술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 현실에서 IB 논술은 고사하고 수능을 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조차도 공정성 문제로 쉽지 않다. 일본도 2020년부터 국어와 수학에 서술식 문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이를 무기한 연기했다. 50만 명에 이르는 수험생 답안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채점할 수 있느냐 하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정부는 애초 민간 회사에 채점을 위탁할 예정이었으나, 모의고사 채점 때 학생 아르바이트까지 동원된 것으로 나타나 반대 여론이 높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이 세계 교육을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결 과로 입증된다. 우리 교육의 과제는 앞으로도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도록 K-교육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제는 과도하게 이상화된 서양 교육만 따라가지 말고,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교육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가면 길이 된다.
[출처] IB 논술로 수능을 대체할 수 있을까?|작성자 이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