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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승옥이 23세 때 썼다는 단편소설, 소설을 쓴 나이와 플로트(float)가 놀라운 유명한 무진기행(霧津記行)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이 소설에 대해 잘 몰랐다면 지금이라도 읽고가는 것이 좋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설과 같은 내용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접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소설의 내용을 일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진이라면 그것은 항상 나의 청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전쟁터(한국전쟁)에 징집되어갈 때 나는 내 어머니에 의해 골방 속에 숨어서 수음을 하고 있었다.” 라는 일기같은 구절은 유명하다. 주인공( 윤기준 : 소설 속에서 33세, 제약회사 간사, 남자)이 무진으로 떠나는 역에서 미친 여자를 보는데 그 여자가 주인공 자신이 스스로를 모멸하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완전한 소설(시작과 끝맺음, 감동)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토록 유명한 것은 이 소설의 어느 단락이던 한 두 단락을 끄집어내어 읽어보면, 혹은 라디오나 T.V.의 문학을 다룬 프로를 통해 소개되면 정말 이보다 읽는 이들로 하여금 더이상 감동을 받을 소설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간략한 문체로 써내려간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와 같다 . 또한 가장 큰 이유인 이 소설이 시험을 위해 쓰였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시험출제용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 주인공에게 무진으로의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 - 무진의 안개는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등등 끝도 없다.
그래서 대입을 앞둔 수험생들은 모두 이 소설을 읽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만 졸업하면 소설을 안 읽으려 든다. 나는 그 세대가 아닌데도 이 소설을 고등하교 1년때 몇 번씩이나 읽었다. 그 이유는 그 짤막짤막한 문체고 세련되게 쓴 글이 마음에 들어서 그 문체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앞부분(무진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부분과 도착)과 ‘친구 조’(세무서장)와의 회우 그리고 ‘인숙’(여자이름)을 만나고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인숙’이 무진으로 발령을 받고 내려와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위해 밤이면 동네 남성들과 어울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유행가(목포의 눈물)를 부르는 전개는 참으로 감탄할만 하다.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자면 필자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기획조정실에서 비쥬얼에 관한 업무를 했었다. 그때 김자경오페라단과 만나 포스터를 해주고 그들의 공연을 특별석에서 관람한후 그들의 뒷풀이에 함께 어울렸던 적이 있다. 그때 '이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어떤 노래를 부르며 놀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도 술을 마시며 놀때는 크래식이 아닌 <목포의 눈물>이나 <전선야곡>등 대중가요를 부르며 논다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 소설의 결론은 ‘인숙’은 무진을 떠나고 싶어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윤기준에게 정조를 댓가로 준다. 토요일, 윤기준은 자신이 잉여로 살던 시절의 이모집을 찾아가 대낮에 정사를 벌린다. 그러나 갑자기 아내의 전보를 받고 ‘인숙’에게 쪽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마치 도망을 치듯 무진을 떠난다. 시대상으로 봐서 1960년 후반의 이야기. 기성세대라면 옛추억을 떠올리지 말라해도 떠올릴 것이고 새로 읽는 신세대들이라면 아버지세대의 풍속도 상상해보면서 읽기 바란다. 가령 윤기준이 하숙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 쫓기듯 담배를 피울때 통금시간을 알리는 싸이렌소리,... 등. 그 당시에는 통금위반을 하지 않으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나와서 합승택시를 따불요금으로 준다고 외치며 불러 세워서 모르는 타인들과 함께 끼어앉아 숨 가쁘게 귀가하는 풍속도가 있었다
이 소설, 무진기행(霧津記行)은 1967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서 모든 영화에 독식을 하던 신성일과 갓 데뷰한 윤정희를 캐스팅하여 <안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 주제곡, 즉 요즘말로 O.S.T.는 이봉조의 섹스폰 연주 안개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그후 이봉조의 <안개>는 제1회 동경 국제 가요제에 정훈희를 데리고 나가서 일약 그랑프리를 안고 돌아오게 만들었다.
다음은 영화 <안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한때 폐병환자이며 병역기피자였던 윤기준은 제약회사 회장 딸과 결혼하여 장인 회사에서 일하다가, 회사문제로 당분간 도피하게 되어 고향 霧津(무진)을 찾는다. 霧津 -. 그 곳은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안개만 자욱한 곳이다. 한때 대학시절에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던 하인숙은,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시골 학교의 음악교사로 근무하며 저녁이면 동네 남성들과 술좌석에나 어울리며 유행가나 부르는 따위로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처지를 무척 답답해 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만난 윤기준이야말로 자신을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고 윤기준 또한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하인숙은 윤기준에게 서울로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기준도 역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윤기준은 새삼스럽게 하인숙과의 만남을 되돌아본다. 하인숙과 계속 관계를 갖게되면 어렵게 붙잡은 현재의 위치에서 답답한 현실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한다. 윤기준은 무진에서 겪었던 하인숙과의 만남을 잠깐의 추억으로 여기며 서울의 아내곁으로 도망간다.
이상은 김승옥의 단편 '霧津記行'의 줄거리다. 나는 이 단편을 조금 일찍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 그때는 그저 그런 단편으로 여기며 스토리에 치중하여 읽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읽으며 김승옥의 천재성을 발견했다. 그 간결한 문체, 빠져 나갈 수없는 늪같은 현실에서 뒤척이던 상실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 허탈한 상태로 돌아와 누우면 가까이 들려오던 통금 사이렌 소리 등, 그 암울했던 시대의 묘사...
세계 느와르 영화제에 견줄만한 김수용감독의 67년 작 <안개> 다만 이영화에는 <갱>이 빠졌을 뿐, 아니... 어쩌면 갱보다 더한 속물적 인간들이 안개의 포말 속에서 스멀거리며 기생하고 있는 익명의 섬을 포진하고 있으니, 느와르의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팜므파탈도 있다. 정체불명의 시골 중학교 음악선생, 윤정희는 당시로서는 탈출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파는 파격적인 비정조관념의 여성으로 등장한다. 또한 음악은 시종일관 이봉조의 섹소폰 연주와 함께 암울한 인간의 내면세계가 엎치락 뒤치락 펼쳐진다. 특히 霧津의 나태하고 권태가 줄줄 흐르는 거리 풍경.- 흑백영화에 비치던 그 상황묘사는 잊을 수가 없다. 조악하게 그린 간판이 나붙은 극장, 그 곳의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던 유행가 소리 (나른하고 권태로운 느낌을 강조하려고 음악속도를 아주 빨리하여 우수꽝스럽게 녹음해 넣었다), 좁은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느릿느릿 걷던 사람들, 가로수의 매미가 울어대는 오후의 거리,... 마치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Michelangelo Antonioni)감독의 태양은 외로워 (日蝕, L'Eclisse, 1962 / 출연 모니카 비티(Monica Vitti), 알랑 드롱 (Alain Delon),의 감동을 방불케 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어떠했을까? 서울에서 돈많은 과부를 만나 금의환양한 주인공을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자욱하게 흐르는 안개와 갯벌에서 올라오는 숨막힐 듯한 습기, 물에 빠져 익사해 죽은 술집여자, 아무렇지도 않게 수사처리를 하는 동네경찰들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전쟁을 피해 비굴하게 숨죽이며 살아가던 청춘의 한때를 회상하게 된다. 김수용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능한 모든 카메라의 기술과 편집을 동원해서 문학이 영상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에 관한 거나한 실험을 시도한듯 하다. 숨막힐듯 주인공의 미세한 속눈썹의 떨림까지도 포착해내던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듯 광활한 갯벌 위로 피빛처럼 번져나가는 낙조의 흐름을 역시 익스트림 롱숏으로 거침없이 잡아낸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낙훈씨의 세무서 안에서의 거들먹거리는 연기는 답답하고 암울한 안개와 함께 현재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윤정희를 더욱 더 벼랑끝으로 내어몬다. 성공한 삶이라고 착각했던 기준은 하인숙을 통해서 그토록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자신의 한 때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대목이 바로 김승옥의 원작이 말하려고 한 <霧津記行>의 주된 테마가 아니었을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섬니아>가 김수용의 <안개>를 보았는지 몰라도, 상당부분 모방했다 싶을 만큼의 유사성 쇼트가 발견된다. 백야의 알래스카에 도착한 알 파치노가 불면증으로 잠을 못이루고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은 이미 신성일이 연기해낸 <안개>와 흡사하다. 주인공이 불면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에서 김수용은 고다르의 점프 컷을 빌려와서 시간의 무상함과 초급함을 그시대에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군부대에서 공수해온 연막탄으로 만들어 낸 스모그는 흑백의 안개를 창출해냈으며 그 따가운 연기 속에서 가끔씩 미간을 찌푸리는 신성일과 윤정희의 대사들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김수용 감독은 이 영화를 찍고 폐병환자처럼 기침에 시달렸다고 한다). "전 선생님과 앞으로 딱 1주일간만 눈부신 연애를 하겠어요" 하지만 윤기준은 그 1주일의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하인숙을 버려두고 무진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그녀의 절박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윤기준은 그녀를 그 무서운 고독속에 방치해둠으로써 자신의 비굴했던 삶의 동참자를 하나 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역사상 이토록 비열하고, 저급한 주인공이 존재했었던가? 그래서 <霧津記行>은 아직도 대학 교양과목의 <동서문학의 이해>에서 빠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외국어대의 불어과 앙드레 파브로 교수는 <안개>를 보고나서의 충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실로 놀라운 영화다. 마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나 <태양은 외로워>에서의 무드와 <부베의 연인>의 감동, 또는 알랭 레네가 <지난해 마리앤버드>에서 창조했던 미지의 시간을 김수용의 <안개>는 느끼게 만든다"고 극찬에 극찬을 마지 않았다 한다.
평론가 이효인이 안개가 한국영화의 근대화를 70년 앞당겼다고 한 것처럼, 안개는 너무 일찍 만들어진 우리 영화 역사의 불운한 걸작이다. 안개를 통해 밝혀지는 한국인의 심성 속에 드리운 악마성의 예언은 실로 섬뜩함 그 자체이다. 살아가면 갈수록 내 자신이 주인공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철저한 이기주의에 물들어 가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명의 이기가 급박해질수록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과도 같이 우리가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혼탁해진 심성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해답이 바로 <안개> 같은 클래식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아시아 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심사를 맡은 호세 키리노 위원장은 김수용을 잉그마르 베르히만에 비하기도 했다. 정말 4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너무나 세련된 음악과, 롤랑 바르트가 울고 갈 탐미적 촬영기법으로 무장한 이 놀라운 수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제작자 김동수와 황혜미 부부가 당시 흔치 않게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한 정통파 라는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윤정희는 두 곡의 노래를 립 싱크로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데 <목포의 눈물>과 정훈희의 <안개>가 그것이다. 노래 장면에서 윤정희의 음악 실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주 깨끗한 화질로 변모해 D.V.D.로 출시됐다
한국 | 드라마 , 문예 | 76 분 | 개봉 1967
윗 문안들은 모두 본인의 블로그에서 옮겨온 것으로 김승옥의「霧津記行」과 그 문학을 김수용 감독이 만든 영화 「안개」입니다. 두 작품을 동시에 올리다 보니 내용에 있어 중복되는 부분이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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