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구조해석'이라는 말이 있다. 구조를 뒤집으면 해석이다. 구조론은 해석론이다. 지식은 곧 해석이다. 꼬인 것은 구조요, 푸는 것은 해석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꼬인 것을 풀어내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어떻게 꼬이는가에 따라 어떻게 푸는지가 결정된다.
꼬인 것은 차원이다. 점이 꼬이면 선, 선이 꼬이면 각, 각이 꼬이면 체, 체가 꼬이면 계다. 계를 풀면 체, 체를 풀면 각, 각을 풀면 선, 선을 풀면 점이다. 꼬이면 공유된다. 점 둘이 서로 공유하면 선이 된다. 공유의 효율성이 에너지다. 에너지를 풀면 압력이다.
공유하면 압박된다. 자연에서는 압력이고 사회에서는 권력이다. 남녀가 침대를 공유하면 부부다. 부부는 서로를 압박한다. 공유의 효율만큼 집세를 아끼고 자녀를 얻는다. 압박한다는 것은 구조에 갇힌다는 것이다. 공유의 효율을 얻는 만큼 무언가 잃는다.
해석
해석analysis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까지ana + 풀다lysis는 뜻이다. lysis는 느슨loose하다는 뜻이다. 풀릴때까지 완전히 풀어야 한다. analysis는 다 풀면 더 이상 풀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보면 알 수 있다. 구조를 풀면 0차원에 도달한다. 0차원 아래는 없다.
꼬인 것은 풀린다. 꼬임이 먼저이고 풀림이 나중이다. 꼬임은 2가 1이 되는 것이며 해석은 1이 2가 되는 것이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직 꼬인 것이 풀리는 것 뿐이며 반대로 풀린 것이 꼬이는 일은 없다. 우리가 목격하는 세상의 많은 꼬인 것들은 풀림의 반작용이다.
얽힌 실을 풀다보면 풀어놓은 것이 다시 꼬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마리를 잡지 않고 중간부터 풀면 그렇게 된다. 그것은 자발적 변화가 아니다. 꼬임은 외부 환경의 간섭에 의한 복잡이다. 꼬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섭에 의한 복잡과 자발적 꼬임은 다른 거다.
꼬인 것은 메타영역이요 풀린 것은 사적영역이다. 세상은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다. 주는 자는 접촉하므로 꼬인다. 받는 자는 풀린다. 자연의 변화는 메타영역에서 사적영역으로 갈 뿐 그 역은 없다. 그러므로 일원론이다. analysis는 다 풀릴때까지 푼다. 지식은 일원론이다.
창세기
존재
1. 세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다.
2. 사건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다.
3. 에너지는 강체가 아니라 유체다.
4. 유체는 객체가 아니라 메타영역이다.
5. 메타영역은 대칭이 아니라 비대칭이다.
인간
1. 에너지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다.
2. 메타영역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는 직결된다.
3.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직결되는 것이 다르마다.
4. 직결되면 즉각 반응하므로 직관할 수 있다.
5. 주는 자의 직관은 자존감으로 나타난다.
가르침
어둠 속의 빛은 있지만 빛 속의 어둠은 없다. 빛과 어둠은 대칭이나 대칭이 아니다. 세상은 대칭이면서 비대칭이다. 세상이 대칭인 것은 대칭될때까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태초에 움직임이 있었고 가로막는 것이 나타날때까지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모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충돌하여 가로막힌 것이며 그러므로 대칭된다. 그러나 대칭되지 않는다. 가로막혀 내부에 잠복할 뿐 움직임은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잠복하는 내부가 만들어진 것이 닫힌계다. 움직임이 계 내부에 잠복하여 만들어진 압력이 에너지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내부에 압력이 있다. 에너지가 있다. 압력의 형태는 차원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차원이 있다. 사회의 압력은 권력, 마음의 압력은 자존감, 압력을 판단하는 것은 직관, 압력을 따르는 것은 다르마다. 우주는 팽창압, 생물은 진화압, 문명은 진보압이 있다. 압력 하나로 모두 설명하면 일원론이다.
압력은 약한 고리를 뚫고 나온다. 약한 고리는 밸런스의 중심점이다. 압력은 닫힌계 안에서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데 중심점의 코어는 사방에서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계의 내부가 균일하므로 오히려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이다. 모순에 의해 계가 붕괴하는 것이 변화다.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계를 해체하고 압력을 해제하는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빛은 어둠을 찢어놓지만 어둠은 빛으로 침투하지 못한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다. 우주의 팽창, 생물의 진화, 문명의 진보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현실에서 그 반대의 경우를 무수히 목격하게 되지만 그것은 작용이 아닌 반작용이다. 에너지를 주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다. 안에서 조절되는 원인 측 작용과 밖에서 되돌아오는 결과 측 반작용을 헷갈리는 것이 모든 오류의 궁극적 원인이다. 반작용은 작용을 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법칙과 질서가 있고 우리는 객체를 통제할 수 있다.
키스톤
석굴암 천정돌은 셋으로 갈라져 있다. 아치 건축의 이맛돌을 키스톤이라고 한다. 키스톤이 빠지면 아치가 무너진다. 아치의 이맛돌은 특별히 크고 튼튼한 돌을 사용해야 한다. 힘이 한 점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석굴암 천정돌이 깨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것은 압박이 있다는 것이다. 압박이 있다는 것은 힘을 가두는 계가 있다는 것이다. 압박은 닫힌계 내부의 약한 고리에 집중된다. 밸런스의 균형점이 가장 취약하다. 사방에서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코어 근육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압박을 받으므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다. 가장 약한 곳으로 간다. 법칙대로 가는 것이다. 압박은 계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이 점을 간과하므로 실수하게 된다. 작용은 압박이 있지만 반작용은 압박이 없다. 압박을 받는 작용 측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다. 주는 사람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주는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이 있다. 주는 사람의 행동을 추적할 수 있다.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실패는 주는 자와 받는 자, 작용과 반작용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불이문
빛과 어둠은 둘이 아니다. 빛은 입자가 있으나 어둠은 입자가 없다. 어둠은 빛의 조절이다. 선과 악은 둘이 아니다. 인간의 사회성을 반영한 선이 있을 뿐이며 악은 선의 실패다. 진보와 보수는 둘이 아니다. 보수는 문명이 진보하는 속도를 조절한다. 대칭된 둘을 하나의 밸런스로 풀어내는 것이 깨달음이다. 모든 마주보고 대칭된 둘은 축을 공유한다. 축을 움직여 밸런스를 복원한다. 존재의 조절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이 하나라는 사실을 모른다. 우주에 척력이 있을 뿐이며 인력은 없다. 힘의 반대는 도움이다. 척력은 힘이고 인력은 도움이다. 힘은 내부에서 작용하고 도움은 외부에서 받쳐준다. 내부는 조절되고 외부는 조절되지 않는다. 칼은 도마가 돕고 망치는 모루가 돕는다. 권력은 칼에 있고 도마에 없다. 망치에 있고 모루에 없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권력이다. 권력은 자체엔진과 조절하는 구조가 있다.
힘의 세계 : 무한, 공空. 유체, 내부.. 메커니즘 내부의 순수한 세계상
도움 세계 : 유한, 색色, 강체, 외부.. 관측되며 간섭된 외부의 복잡성
무한은 칼이고 유한은 도마다. 공은 칼이고 색은 도마다. 유체는 칼이고 강체는 도마다. 내부는 칼이고 외부는 도마다. 마이너스는 칼이고 플러스는 도마다. 척력은 칼이고 인력은 도마다. 도마는 돕는다. 모루는 돕는다. 받침대는 돕는다. 진보가 칼이면 보수는 도마다. 모든 잘못된 것은 도마를 칼로 착각하는 것이다. 화살이 과녁을 맞춰야 하는데 과녁으로 화살을 맞추려고 한다. 칼과 도마는 한 세트이며 칼이 주인공이다.
동력원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는 다르다. 운동에너지는 조절되지 않는다. 무한동력 아저씨가 삽질하는 이유는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운동에너지는 에너지가 아니다. 위치에너지가 칼이라면 운동에너지는 도마다. 칼은 힘을 조절하지만 도마는 조절하지 못한다. 전달된 힘을 받아낼 뿐이다.
계의 에너지의 생성은 차원의 감소로만 일어난다. 같은 차원에서 에너지는 전달될 뿐 생성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힘의 방향을 교착시켜 밸런스를 도출하는 방법으로 유체를 강체로 바꾼다. 계가 위치를 만드는 것이 위치에너지다. 위치에너지는 밸런스를 복원한다. 중력에 의해 가까워진 것은 밸런스의 복원이다.
계가 깨져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차원을 감소시키는 형태로만 변화가 일어난다. 무한동력 아저씨들은 운동에 어떤 조작을 가한다. 운동을 간섭하면 량으로 변한다. 량은 멈춤이다. 운동에 간섭하여 멈추게 할 수 있을 뿐 다른 결과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계를 깨지 않은 변화는 질량보존과 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