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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단한 오막살이 집 한 채
정해송 『응시』고요아침
박현덕 『1번 국도』고요아침
김동인 『작은 쉼표』동학사
정용국(시인)
1. 시인들의 상처
해마다 겪는 봄이고 꽃이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겨울의 한기와 옹이가 더욱 깊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만큼 봄의 걸음걸이는 더디고 갑갑하지만 햇살의 따사로움과 꽃의 여유는 모든 생명들을 달뜨게 한다. 사계절 중 겨울은 모든 목숨을 가진 것들에게는 큰 시련이고 절망일 수밖에 없다. 생명들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문명의 이기들로 무장한 인간들은 그나마 겨울의 고단함과 먹이 부족에서 자유롭지만 혹한이 가져오는 제한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입동 무렵의 기온 차에 대한 적응도가 낮아 고혈압이나 뇌출혈 등으로 생명을 잃고 있는 것도 그것에 연유한다. 그러나 겨울과 같은 난관들은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모든 목숨들의 겨우살이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지혜의 진수를 보는 것과 같이 빛나고 도드라지며 이 겨울나기들은 문명의 요체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올봄 다시 세 권의 시집을 읽으며 ‘겨우살이‘를 생각한 것은 인간에게 들이닥치는 수많은 시련과 즐거움과 상처와 물집들은 겨울 못지않게 그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시인들은 가슴에 난 상처를 부둥켜안고 지지고 볶고 뒹굴다가 그 흔적으로 시를 낳는 것이려니 시인들의 ’아득한 작업‘을 참으로 긍휼하게 돌보아 주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작은 마음의 발로였다. 살수록 신산한 인간의 삶은 따스하고 즐거운 모습보다는 훨씬 더 큰 고해의 바다이기 때문에 상처를 사랑한 모든 시인들의 작품은 못나고 뒤웅박 같아 보여도 다 그 시련의 묘약인 것이다.
한 사내가
할퀴고 간
흉터가 드러났다
영혼 속 깊이 찍힌
지울 수 없는 슬픔
수선화
맑은 향기가
물가에 어리는 날
- 정해송 「지문」전문 -
저기 저기
한 왕조의
슬픔이 쌓여있다
가슴끼리 포개진
아슬한 경계에서
오늘도
살얼음 깔린
무왕의
서늘한 가슴.
- 박현덕 「익산 왕궁리 5층 석탑」전문 -
세상길
돌부리에
넘어질까 저어하여
한발 더
그대보다
내가 앞서 걷습니다
등줄기
휘어지도록
펄럭여도 좋습니다
- 김동인「깃발」전문 -
세 시인은 연배도 상당한 차이가 있고 등단 시기도 시간적으로 많은 격차를 가지고 있다. 작품의 분위기나 소재의 폭 등을 비교해도 한눈에 겹쳐지는 부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굳이 단수 한 작품씩을 골라 적어본 것은 이 짧은 시 한 편 속에 문득 그들의 고민과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흉터’ ‘슬픔’ ‘돌부리’로 상징되는 상처들을 어떻게 갈무리 하고 벗어나는지 살펴볼 수 있다.
‘한 사내가/ 할퀴고 간/ 흉터’는 너무 깊어서 ‘영혼 속 깊이 찍힌/ 지울 수 없는’것이었지만 시인은 ‘수선화 맑은 향기’로 환치시켜 극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다. 결국 ‘수선화의 맑은 향기‘는 상처를 보듬고 피어난 흉터 자국이며 그래서 지울 수 없는 ’지문‘인 것이다. 더 나아가 ’한 왕조의 슬픔이 쌓여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틈새에서 멀리 당나라의 눈치까지 보며 한 나라를 지켜내야 했던 백제 무왕의 슬픔은 ’아슬한 경계‘를 넘어 엄청난 역사의 갈피에서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왕위를 이어받은 의자왕 대에서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나당 연합군 위세에 눌려 국가 패망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시련을 겪어야만 했으니 오죽했으면 ’무왕의 서늘한 가슴‘에 ’오늘도/ 살얼음 깔린‘지경이겠는가. 세상은 수많은 ’돌부리‘가 숨어 있어서 인간은 늘 그것을 경계하고 때로는 부딪혀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앞서 걷는 이는 보무도 당당하다. 군대의 척후병과도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앞서 나가야만 하지만 사랑의 힘은 더욱 위대하다. ’등줄기/ 휘어지도록‘ 바람이 거세고 총알이 빗발쳐 오더라도 앞서 나가는 것이 자랑스러운 삶은 위대하지 않은가. 흉터와 상처와 돌부리를 만나 이를 넘는 시인들의 발자국은 각기 달라도 나름대로의 철학과 지조와 깊이가 만만치 않다. 이렇게 인생의 도정에서 만난 상처들은 옹이와 상흔을 남기며 시인의 집 기둥이 되기도 하고 서까래가 되기도 하며 작은 오막살이 집 한 채를 얽어매는 재료와 방편이 되어 준다. 고단한 길 위의 작은 집인 ’시집‘은 이렇게 수없이 많은 깨달음과 실수와 상흔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예사롭지 않은 새봄에 만난 시인들의 오두막을 성긴 눈으로 더듬거려 본다.
2. 바람과 그늘에 말려가며 지은 세 칸 굴피집
글을 시작하며 시작(詩作)을 집 짓는 일로 비유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집을 짓는 일도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다. 집을 짓는 재료에서부터 외양의 차이는 물론이고 쓰임새와 규모에 따라 그 공정과 재료와 일손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정해송 시인이 십 년이 넘게 뜸을 들이다 낸 이번 시집은 어떤 집일까. 시인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그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시인의 말’을 통해 짧고 굵게 일성을 토했는데 ‘게을렀다’ 한 마디였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굳이 둘러대지 않았다. 교장으로서 학교를 책임져야 했건, 가장으로서 집안의 문제가 많았건, 몸이 아팠든 변수야 있겠지만 자책 한 마디로 끝을 냈다.
하지만 이번 시집을 이리저리 궁굴려 보면 그가 오랜 시간을 그냥 놀며 지낸 것은 아니라는 계산은 충분하게 나오고도 남는다. 집을 짓는 재료로 나무를 잘라 그늘에 말려 두었고, 소소한 서까래도 틈틈이 베어다가 껍질을 벗기고 추려 두었다. 그것들이 잘 마르게 계절과 습기와 바람의 흐름에 따라 갈무리 하는 일은 집을 잘 짓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다. 지붕으로 쓰는 참나무 껍질은 두껍고 갈라지기 쉬워 조심스레 다루어야 한다. 너무 넓은 조각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작은 것은 쓸모가 낮아지기 일쑤여서 까뀌와 나무망치와 끌을 잘 다루는 일이 중요하다. 이렇게 긴 시간들을 통해 세 칸 굴피집이 지붕을 얹었으니 시인의 공도 공이려니와 바람과 그늘과 햇빛 등 모든 집 재료를 자연에서 빌려다 쓴 오랜 계산과 궁행은 부가가치였으리라.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내려는데 시인은 투박하게 나의 한 손을 잡아챈다.
어느 때 시의 말문이 화알짝 트일 건가
언어의 색실로 뜬 지면들은 현란한데
손녀딸 입에 든 말처럼 안 풀리는 내 시는
때로는 꿈에서도 시의 광맥 캐다가도
깨고 나면 먹물 같은 허공만이 둘렸을 뿐
날이 선 빛살로 깨어 어둠 찢고 나를 새여
- 「새」전문 -
등단 40년 연조를 무색하게 하며 시인은 손사래를 친다. 말을 엮을 줄 몰라 나오는 대로 들이미는 ‘손녀딸 입에 든 말’이라니 등에 식은땀 흐르고 얼굴이 송연해진다. 십 년 넘게 공을 들인 세 칸 굴피집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지을 요량이었을까. ‘날이 선 빛살로 깨어 어둠 찢고 나를 새’를 꿈꾸는 노시인의 모습에서 늘 목이 타는 예술가의 넓은 등을 발견하게 된다. 늘 작품의 핵심 짚는 안목으로 해설의 수준 높은 경지를 구가하고 있는 유성호 교수의 글에도 정해송 시조의 첫 미덕으로 ‘강직의 표상’을 두었으니 그 많은 건축 재료를 선별해 다듬어 낸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한지로 창을 가려 문명사를 봉합니다
하늘은 단풍물 든 봉서를 내리시니
한 생애 남루를 벗고 빈손 들어 받듭니다
솔씨만큼 초점을 모아 밀지를 묵상하면
물소리 층층 높고 서릿발 서는 말씀
바람은 돌종을 울려 가을 인장 찍습니다
머루주 익어 가는 가을밤이 무거워
누군가 끈을 당겨 별자리를 고르나니
산열매 무한이 실려 가지 가만 휩니다
- 「다시 가을 초막에서」전문 -
묵직하다. 삶의 무게와 연륜의 깊이가 느껴지는 구절들이 맛깔스런 서정에 고루 뭉개져 한 입 베어 물면 그만 입 안 가득 향기로운 육즙이 뚝뚝 떨러질 듯하다. 반듯하게 살아 온 칠순의 나이에도 자신을 낮추고 낮춰 ‘빈손 들어 받드’는 자세를 접하고 나니 허투루 나댄 발걸음을 뒤돌아보며 섬뜩해진다. 시집 전체에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며 제목에 붙인 계절의 느낌이 상서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어디에 있건 자신을 성찰하며 변화와 결실, 그리고 늙어가는 것에 대한 오롯한 감수, 부족함에 대한 끝없는 채찍의 자국들은 아무나 쉽게 견지할 수 있는 삶의 자세는 아니다. ‘하늘’ ‘봉서’ ‘말씀’ 등은 시인의 종교를 추측할 수 있는 말들이다. 비록 동일 종교를 갖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그의 신성한 경배에 고개 숙일 것 같이 숙연하고 경이롭다. ‘산열매 무한이 실려 가지 가만 휩니다’ 조용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세 수를 닫는데 그 무게에 두 손이 모아지려 한다. 무슨 ‘산열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열매 속에 ‘무한(無限)’을 넣은 시인의 소박함에 종교와 신성을 넘어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된다. 아, ‘무한이 실려’ 가지가 가만히 휘는 장면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벼와 조나 수수가 우주의 기운을 받아 알곡을 익혀 가만가만 고개 숙이는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1.
누가 하얀 대낮에 저 쑥을 달이는가!
내게 안긴 쓴맛을 고이 받아 삭이노니
풀물 든 유성음들이
애증 너머 울려오다
2.
풀벌레 울음 속에 뼈가 선 논쟁들도
사금 씻는 소릴 내는 쟁쟁한 하늘능선
환부를 도린 마음에도
새살 같은 달빛 한 채
- 「쓴맛 이후」전문 -
참 신선하고 개운한 이미지들이 모여 ‘달빛 한 채’를 빚어 놓았다. ‘쓴맛‘을 알지 못하면서 그 이후를 알 수 있을까. 굳이 ’단맛‘이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았지만 이만큼 ’단맛‘의 실체를 밝혀주기는 쉽지 않겠다. ’고이 받아 삭이고‘ ’애증‘을 넘은 후에 ’환부를 도린 마음‘까지 버려야 ’단맛‘은 나타날 것이다. ’뼈가 선 논쟁‘과 ’쟁쟁한 하늘능선‘도 ’쓴맛 이후‘에만 꿈꿀 수 있는 것들이리라. ’쓴맛‘이라는 미각적 이미지는 다양한 청각적 이미지를 거쳐 환하디 환한 시각적 이미지로 환유되며 그 환한 절정을 피워내고 있다. ’달집 한 채‘도 덩그런데 ’새살 같은‘ 이 꾸며내는 달빛은 미증유의 개념처럼 확대되고 빛난다. 미각의 독특함을 인생살이의 고단함과 들끓는 도정의 불확실 뒤에 선명하고 확장된 개념으로 피워낸 아주 선험적인 작법의 결과물이 빛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집에는 드물게 제5부에 구작 16편을 얹어 두었다. 시인은 모두에 ‘낯선 독자들과의 온전한 교감을 위하여······’라고 표시해 두었다. 첫마디 ‘게을렀다’와 일맥상통하는 의미의 표시이다. 십 년이나 넘게 시작에 몰두하지 못한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심사를 시인의 말 앞뒤에 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역작을 고르고 골라 뒤에 보탠 것이다. 제5부의 구작에는 제3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작인「검」과「제철공장에 핀 장미는」이 들어 있다. 이 두 편은 강직한 그의 시정신이 서정과 잘 어우러져 그의 시 근간을 구축하고 있는 명편들이다. 별도의 각설을 붙이지 않아도 여러 평자들의 많은 조명을 받은 작품들이니 더 이상의 거론이 필요하지 않다. 그중 단수 하나를 골라 읽어보자.
방에 앉아
시 쓰는 일이
부끄러운 시절이다
은유며 상징이며
분칠 같은 기교들이
이 유월
녹색 깃발 아래
가화처럼 여겨진다.
- 「고백」전문 -
이 작품 외에도「6월 스케치」「혈」「침」등 시사성이 짙은 현실참여시들이 눈에 띤다. 6월항쟁이 한창이던 1987년쯤에 시인은 40대 초반의 공립학교 중등교원이었을 터, 옴치고 뛸 수없는 올가미 속에서 불안과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심사로 집과 학교를 오갔을 것이다. 그 심사가 오롯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대다수 공직자들의 고백이요, 항거였다. 거리로 나선 사람이건 직장에 붙들린 사람이건 자리를 떠나 자신의 양심에 귀 기울이는 지식인의 모습이라 하겠다. 신작을 엮으면서 구작을 골라 붙여놓고 보니 한결 시인의 모습이 정겹다. 게으름의 도정 위에 오랫동안 슬금슬금 지은 시인의 세 칸 굴피집이 새삼 돋보이며 정겹기 그지없다. 이순의 내리막길에 또 하나의 오두막을 올린 시인의 느린 발걸음이 오늘따라 상큼하고 가볍다. 그만 게으름의 자책감을 벗어두셔도 되지 않을까 싶다.
3. 나무는 자라 튼실한 들보가 되고
2010년 봄. 박현덕 시인은 ‘비탈진 언덕에 올라 다시 한 그루의 유실수를 심는다’는 말과 함께 『스쿠터 언니』를 세상에 내놓았다. 섣부른 진단이었을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청탁도 없는 서평을 써서 시조세계 2010년 여름호에 발표하였다. ‘난장의 한 복판에 내려서다’라는 자못 유장한 제목의 글이었다. 시조단의 평온함이 1970년대 참여문학론으로 들끓었던 문학판의 열정에 비하면 자랑할 일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혹자는 이 작은 시집에 과한 이론과 편파적 응원을 보냈다고 탓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조 백년이 모두에 기술한 바와 같이 ‘평온’ 하였다면 『스쿠터 언니』로 인하여 난장의 한복판에 따듯하게 내려와 진정한 시절가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필자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박현덕 시인이 심은 유실수가 ‘떨어지는 꽃의 쓰라림과/ 폭풍을 껴안고’ 험한 세파를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시집에 점철된 험하고 힘든 고난의 행간들이 아름답고 박진감 넘치는 박현덕의 새 시들로 가득해지기를 희망한다.
돌아보니 『스쿠터 언니』를 읽던 감흥이 아직 다 지워지지 않은 듯 가슴이 뿌듯하다. 필자는 박현덕의 새 시집에는 구질구질한 변두리의 이야기와 가슴 아린 슬픔의 상처들이 조금이라도 지워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시들은 많이 아프고 길거리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필자의 희망이 섣불렀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론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고 변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몰랐다. 그러나 그가 언덕에 심은 나무는 자라 언젠가 튼실한 집의 들보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새 시집을 읽는다.
1번 국도는 목포를 출발하여 서울을 지나 중국의 접경지대인 신의주에 닿는 길이다. 국도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에 일제가 붙여놓은 번호임을 볼 때 ‘1번‘이라는 번호는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모든 교통행정 개념은 서울-부산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서 철도나 고속국도의 개념에서 그 건설 시기나 통행량 등을 분석해 보면 목포나 광주 등 호남지역에 비해 영남지역의 우세가 단연 돋보인다. 그런데 국도 1번을 ’목포-신의주‘라 정한 일제의 기본구도는 그 시각부터 달랐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한반도에서 수탈해 가야할 물자의 운송에 더 큰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부산보다는 서울-목포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1번국도‘는 일제 수탈의 상징이며 더 나아가 영남 정권들에 의해 역차별 받고 있는 지역차별의 근거라 할 수도 있다. 시인은 상징성 있는 1번 국도를 통하여 아직도 시대의 변방에서, 글로벌 시대의 언저리에서, G20 의장국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서민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박현덕의 새 시집에 대한 기대를 미리 주문했던 필자에게 이번 시집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먼저『스쿠터 언니』에서 사회의 한 단면이 깊게 집중 투사되었던 시인의 시각에 대한 변화이다. 가령 전 시집에서 볼 수 있었던 연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우린 풀꽃이다」다섯 편과「송정리 시편」열 두 편 등의 연작은 대부분 같은 소재와 시각, 그리고 신열에 가까운 집중력과 처연한 전투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상징적인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시집의 전체적은 흐름은 다양해진 소재를 통하여 주제에 접근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부모의 생애와 기억들을 통하여 시대를 투사해 보며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얻은 소재를 통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발생한 소외계층의 신산함과 더 나아가 큰 재앙으로 다가올 환경을 걱정하고 있다.
아버지 해안에 앉아
길게 눈 떴다
감는다
뻘밭 위로 하나 둘씩
드러난 김말뚝
허기진
가난이 말라 붙어
얇은 꿈을
꿰맨다
바다 한 장 들추면
어선들이
코를 곤다
여린 바람에, 햇살에
수척한 몸 이끌고
어스름
김양식장으로
걸어간다
아버지
- 「초분(草墳)」전문 -
중계본동 산 104번지
고요를 쓸어내는
공터의 은행나무엔
새들만 날아다닐 뿐
허리 휜 노인 한 분이
폐지 바짝 말린다
아침이면 숲 가득
퀴퀴한 냄새와
공기 속 떠다니는
긴 유배의 노래가
어느 집 빨래줄에 걸려
햇볕에 쫙 펴진다
어둠이 성큼성큼
쪽문 밀치고 들어오면
서둘러 집집마다
슬픔을 뭉개고 갈아
하늘과 맞닿는 길목
꽃등 켠다. 환해지게
- 「하늘궁전」전문 -
시의 배경을 살펴보면 두 편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는 작품이다. 적어도 30년 정도의 시차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늘 허기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피할 수 없는 ‘가난’과 ‘수척한 몸’으로 살다가 죽어서야 편안히 초분에 누운 아버지는 현세에 폐지를 줍는 ‘허리 휜 노인 한 분’으로 대표된다.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 국가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경제수치들은 세계 10위권을 맴돌지만 재벌 위주로 편성된 경제논리는 서민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이 꾸는 ‘얇은 꿈’은 겨우 가족들이 배곯지 않고 작은 내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소박한 것들이지만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조차 그 꿈은 이루어지기 요원하다. 산동네를 떠날 수 없고 제 코가 석자인 자식들은 부모를 돌볼 여유가 없다. 실업자로 비정규직으로 떠밀려 나는 서민들은 ‘긴 유배’지를 떠도는 막연한 삶을 고단하게 견디고 있을 뿐이다. 시 제목이 암시하는 ‘초분’이나 ‘하늘궁전’은 정말 원망스럽게도 그들이 죽어서야나 다다를 수 있는 천국일지도 모른다.
이번 새 시집 속의 시편들에도 수없이 생략된 조사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완도를 가다」「미시령 옛길」등의 시편들에서는 마치 동영상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슬라이드 영상처럼 화면은 천천히 한 장씩만 넘어가며 사이사이 독자들의 상상력과 정리 작업을 유도한다. 이러한 전개는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지지만 가만가만 느리게 넘어가는 슬라이드 사이사이에는 더 많은 행간의 의미가 응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각사각 달빛이 파도를 갉아 먹는다
물길 저편 버스 종점지 불 꺼진 반지하방
유리창 통과한 달빛이 물고기로 튀어 오른다
스티로폼처럼 바다에 든 중년의 마음이여
두꺼운 실직의 아픔 한 겹씩 벗겨내고
술 취해 휘청거린 사내, 초승달을 안고 간다
-「제부도에서」전문 -
묵호항 배가 한 척 몸이 반쯤 잠겼다
잃어버린 바닷길을 쪽잠에 다녀와도
바람에 좌판 굴비들은 꼬들꼬들 말랐다
동해를 품었던가, 그 마음 다 보타져
종일토록 닫힌 귀가 환청에 시달리더니
혼자서 흔드는 지느러미 물살만 희게 인다
선착장에 쪼그려 그물을 깁는 여자
꽃도 잎도 져버린 폐경기의 시간 속을
상처를 드러내 놓고 비스듬히 누웠다
-「폐선」전문 -
두 장면 모두 바닷가의 쓸쓸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제부도는 화성시에 편입되어 있고 자동차길이 열리며 섬 아닌 섬이 되어 수도권의 유원지 역할을 하는 곳이며 묵호 또한 북평과 합쳐져서 동해시로 확장된 옛 지명이다. 제부도는 이제 버스가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면서 서울처럼 반지하방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두꺼운 실직의 아픔’을 지닌 사내는 변두리 값이 헐한 셋방에 살면서 안산 공업단지나 어시장에서 날품을 팔았을 것이다. 이제 세상은 확연하게 빈익빈 부익부의 구도가 드러나고 있다. 사는 집에서부터 그들이 입는 의류며 먹고 사는 식품에까지 그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차이가 뚜렷하다. 일몰 풍광이 좋은 명소였던 제부도는 이제 더 이상 아름답지 못한 변두리 싸구려 주거지역으로 변하고 말았다.
동해항은 이제 어획량의 급감으로 명태나 청어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겨우 원양어선이 잡아오는 러시아산 명태와 포클랜드산 오징어가 그 주류를 이루며 힘겹게 나날을 버티고 있다고 한다. 한 때 동해안 오징어가 넘쳐나서 제철이면 돈이 남부럽지 않았다던 항구는 늙은 어부와 할머니들만이 ‘꼬들꼬들 마른’ 수입 굴비 좌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폐선은 ‘꽃도 잎도 져버린 폐경기의 시간 속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된 채 쓸쓸한 어판장과 항구의 구석진 자리에 처박혀 있다. 이제 사람들이 만든 환경의 재해가 사람을 옥죄는 살벌한 세태에 이르는 모습은 더 이상 지구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지구 전체의 재앙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스쿠터 언니』에서 우리가 읽었던 사회적 제반 문제들은 더욱 확대되고 그 권역을 넓혀서 한반도와 지구 전체의 오염으로 심화되고 있다. 인간은 빤히 보이는 재앙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가 어느 날 새삼스럽게 안달방아를 찧을 것이 분명하다. 시집 구석구석에서 병든 지구별의 처연한 모습들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못 중대차하다.
『1번 국도』가 상징하는 수탈의 역사는 이제 인간이 지구를 학대하고 망가트리는 엄청난 확대 재생산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서민의 삶이 흔들리면 환경이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고 경제원칙에만 몰입된 짧은 안목들은 더 이상 지구를 지켜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새 시집 속에는 인간의 재앙을 넘어 대 자연이 화목하고자 하는 큰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4. 다세대 구석방에서도 푸른 넝쿨은 자라고
시인들은 제 각각 즐겨 쓰는 소재와 시어를 나름대로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은 조금만 눈여겨보아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가령 남녀에 따라 즐겨 쓰는 시어가 있는가 하면 시인의 연치에 따라서도 많은 어휘들이 숙성되어 가는 변화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또는 시인의 직업, 취미, 고향이나 거주지역 등도 시어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다. 이 지면에서 다루고 있는 세 시인들도 고향, 직업, 연치가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정해송 시인의 경우 ‘부산, 교직, 교훈적‘ 이라는 특징이 있다면 박현덕 시인의 경우는 ’섬, 바다, 요양원, 서민적‘ 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고 이제 살펴 볼 김동인 시인의 경우에도 ’강원도, 기술직 회사원, 청장년층‘ 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섭렵하는 시어와 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있음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정 지역과 직업이나 사상적 근거 등은 결국 시인이 극복해 내야 할 마지노선일지도 모른다. 만약 시인에게 놓여 진 여러 인위적 계층과 소속이나 지역의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교류한다면 시인 스스로의 영역과 깊이는 얼마나 궁핍하겠는가.
그런 면에서 김동인 시인은 고향 강원도를 떠나 안산이라는 수도권 도시에 생활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어서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의 삶과 서민의 애환을 체득하고 정제된 언어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안산은 공업지역이 발달한 수도권의 중소도시이다. 그래서 젊은 층의 유입이 빠르고 외국인들의 주거비율도 타도시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시장과 유흥업소가 활기차게 운영되고 그만큼 소비적 성향도 발달한 곳이다. 서울과는 많은 교류가 끝없이 이어지고 전철로 연결된 교통망은 분 단위의 운행량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김동인 시인도 50대 초반의 장년층이어서 활발한 활동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집의 많은 소재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등단 5년차로 첫 시집을 상재한 펄펄 살아 뛰는 그의 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경매에 넘어간 공장 먼지 쌓인 사무실
뜯겨진 달력 몇 장 시간을 멈춰 놓고
푸르른 오월 달력이 막 달처럼 걸려 있다
소중했던 그 하루 붉은 테의 동그라미
손꼽아도 알 수 있을 많지 않은 날짜가
자장면 배달 횟수와 뒤섞여 불어 있다
컨테이너 하우스 반문 열고 손 내미는
동남아인 부부의 손때 묻은 달력에는
날수를 짚어 간 세월 석장 봄이 피고 진다
-「두 개의 달력」전문 -
봄날 멈춰 버린 두 개의 달력 안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숨 쉬고 있다. 왜 하필 공장은 5월에 멈췄을까. 5월은 가정의 달인지라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이 모두 들어 있어서 현실은 더 팍팍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시인은 ‘푸르른 오월 달력’이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붉은 테의 동그라미’에는 무슨 약속이 담겨 있었을까. 사장에게는 애가 타는 날이지만 직원은 손꼽아 기다리던 월급날이었을까. 어음을 막아야 하는 마감일이었을까. 외상 자재 값을 치루는 날이었을까. 아니면 자금마련에 시달렸을 공장 사장님의 어머니 팔순 생신이었거나 지지리 궁상 남편이 지켜줄 결혼기념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경매를 막기 위해 사장은 동분서주 했을 것이다. 자장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기름 절은 공장 언저리에서 죽음과 고3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애꿎은 담배를 여러 개 태웠을 것이다. 그 곁 컨테이너 살림집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불법체류의 도피생활에 피가 말랐을 검은 피부에 눈이 퀭한 부부의 심사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끼고 아낀 월급으로 고향집에 다달이 보내는 돈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비해 그들이 겪어야 하는 부대낌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나마 보금자리가 없어진 부부는 강제출국이라도 당한 것인지 아니면 고만고만한 다른 공장에 자리를 마련했는지 경매로 넘어간 5월 달력은 말이 없다. 달력처럼 넘겨지지 않은 그들의 삶은 막혀버린 것일까. 시인의 눈이 잡아 챈 달력 언저리에 깻빡쳐진 겨운 삶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붕 낮은 창가에서 상처가 아무는지
바람이 길을 내자 하늘길 열린다
산역도 끝내기 전에 다시 젖는 사람들
쌀가마 둟고 나온 흰쌀밥 유혹들이
갱 속의 의문사에 입소문 달고 와도
일탈을 꿈꾸던 하루 모르핀을 맞는 밤
수런대는 저녁 답 산그늘 꽁무니를
달빛을 등에 지고 우향우만 외치다
부삽만 달궈놓은 채 검게 식는 사북행
- 「슬픈 각운」전문 -
탄광사고가 난 모양이다. 그런데 그 죽음보다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관계에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그 죽음의 이유와 책임 때문이다. 죽은 자의 실수인지 관리자의 잘못인지 그 이유에 따라 엄청난 책임이 뒤따른다. ‘갱 속의 의문사’ 는 그 이유를 밝혀줄 당사자가 없다는 것에 늘 ‘입소문’을 달고 다니게 마련이다. 이미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 가족들은 고된 삶을 더 살아가야 하는 엄중한 현실에서 ‘의문사’는 봉합된다. ‘일탈을 꿈꾸던 하루’는 아예 싹이 잘린 채 두루뭉수리 사고는 문을 닫는 것이 통례이다. 그래 차라리 눈을 꾹 감고 ‘모르핀’ 한 대 맞은 셈 치면 손에 쥐기 어려운 그놈의 돈이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마무리 되는 산역이 끝나면 ‘수런대는 저녁 답’도 잠잠해지고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많은 이들의 암묵 속에 막을 내린다.
1970년대 사북은 한국 최대의 석탄 탄광이 잇던 곳이다. 증산과 고한을 양 옆에 거느리고 사북은 불야성의 도시였다. 전국에서 막장의 슬픈 꿈을 가슴에 품고 마지막 거친 삶을 비비던 젊음들의 숨소리가 드높던 곳이었다. 1980년에는 동원탄좌에서 어용노조와 조합원 간의 극한 대립으로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악명 높은 군법재판의 회오리 속으로 휩쓸려 가기도 했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부삽만 달궈놓은 채 검게 식는 사북행’이라 마무리한 셋째 수의 종장은 엄청나게 무거운 여운을 담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그 시절은 10.26사태이후 군사정권이 권좌를 탐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전국이 크나 큰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릴 때였으니 얼마나 많은 진실과 정의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덮였을 것인가. ‘우향우만 외치다/ 부삽만 달궈 놓은 채’ 한 사람의 죽음은 검은 탈을 쓰고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하릴없이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脚韻’은 그래서 더 쓸쓸하고 슬프기만 한 제목이다.
제대로 적혀있는 다세대 번지수에
낯모를 이름들이 오늘도 꽃혀있다
삼년 째 머물고 있는 내 주소를 불신하듯
- 「안부」중 첫째 수 -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 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 밤
- 「구석집」중 첫째 수 -
한눈에 보기에도 고만고만한 집들이 엉켜 있는 다세대 주택들이 눈에 선하다. 들고 나는 사람들이 번번이 바뀌어서 우편물은 늘 뒤따르지 못하고 우편함에 잠들어 있기 일쑤이다. 카드 연체료나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독촉장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비좁은 우편함’에 세들어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할머니 혼자 사시는 구석집에는 삼십 촉 등이 켜져서 노인의 안위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래도 정겹다. 시인의 따듯한 눈에는 별의 별 사연들이 차고 넘쳐서 언제나 울렁울렁 눈물이 고인다. 김동인의 새 시집에는 이러한 작은 삶들이 꿈꾸듯 들앉아 있기 일쑤이다. 때론 강원도 도계나 오십천과 석탄박물관을 다녀오지만 안산의 변두리나 공업단지가 들어 있는 공단지역을 수없이 종종걸음으로 누비고 다닌다. 매일 보이는 것이라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데면데면 지나치게 마련이지만 마음이 내키는 것들은 한눈에 마음을 차지하고 들어오는 것이니 다세대 구석방에도 시인의 순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푸른 넝쿨이 자라 외진 마음과 허물들을 잘 덮어줄 것이다. 고된 발품을 팔고 마음을 다스려 초여름 싱그러운 잎들을 일군 시인의 품삯을 세상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5. 시인의 집
세 시인의 고단한 오막살이집들을 둘러본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볍다. 상처가 아물고 그 자리에 오붓이 올라 앉아 있는 시들의 모습은 제 각각 시인의 마음과 연륜을 닮아 있었다. 게을렀다고 자책한 노시인의 세 칸 굴피집은 따듯하고 아늑했으며 바람 부는 언덕에 심은 시인의 나무는 실하게 자라 들보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고만고만한 다세대와 구석집, 강원도 오지를 넘나들며 애를 태운 시인의 첫 시집은 더없이 튼실하고 믿음직하였다. 노심초사로 상처를 돌보고 마음을 다잡기에 앙가슴을 태운 세 시인들께 박수를 보낸다. 태풍과 장마와 폭염으로 들끓을 우리의 올 여름도 세 시인과 더불어 내내 강녕할 것이다.
발췌: 계간 <시조시학> 2012년 여름호
정용국: 시인, 경기 양주 출생. 2001 《시조세계》로 등단.
이호우,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시집 『명왕성은 있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