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용택 시인이 지난 21일 자신의 고향인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자신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상준 기자 |
- 초등학교 다닐때와 모교 교사 시절
- 수십년간 걸어서 3,4시간씩 등하교
- 자연의 변화 관찰한 것이 자양분돼
- 내년 고향 임실에 '시인 학교' 마련
- 독자와 함께 글·생태 등 대화 계획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64) 시인은 지난 21일 청바지 차림에 해맑은 웃음과 장난기 어린 눈망울을 간직한 둥글둥글한 얼굴로 문학기행팀을 반겼다. 4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영향인지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여전히 소년티가 남아 있었다. 김 시인의 인기를 반영하듯 부산에서 한 대, 서울에서 두 대 등 모두 세 대의 버스가 이번 문학기행에 동원됐다. 시인은 자신의 고향인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 아름드리나무 밑과 생가, 자신이 다녔고 제자를 가르쳤던 덕치초등학교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사투리를 섞어가며 구수하게 들려줬다. 시인은 "시를 이해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 자연이 말해 주는 것 받아쓰기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튀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김 시인이 쓴 동시 '콩, 너는 죽었다'의 전문이다.
시인은 "시란 자연이 말해 주는 것을 받아쓰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학창시절 가난해서 교과서 말고는 읽어본 책이 거의 없어요. 대신 순창농림고(현 순창제일고)를 다닐 때 상영된 지 20분 지난 영화는 영화관 관리인의 도움으로 공짜로 무수히 봤어요.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닮은 어머니가 말씀해주시는 걸 받아적어서죠." 참고로 시인의 어머니는 한글을 모른다. 시인은 교사생활을 하면서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시인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소쩍새가 우는 소리는? 소쩍 소쩍…. 우리 마을에 소쩍새가 '솥 텅…'이라고 울면 그해는 흉년이 들어요. 솥이 텅 비게 될 거라고 소쩍새가 예견한 거죠. 반면 '솥 꽉…'이라고 울면 그해는 풍년이에요. 가을이 되면 솥이 꽉 차죠. 우리 마을 인근 잘 사는 덕지마을 꾀꼬리는 어떻게 울까요. 잘 들어보면 '덕지 조 서방 삼 년 묵은 술값 내놔'하는 소리로 들려요. 이 같은 어머니의 말씀을 옮기면 시가 되고 소설이 됩니다."
바람결, 햇살, 나뭇잎을 보고 자연의 변화를 읽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에 시심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자연이 시인에게 최고의 시 교과서인 셈이다.
'시를 잘 읽는 법을 알려 달라'는 질문을 받고 시인은 "그냥 읽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내가 쓴 시에 관한 대학입시 문제를 나도 못 푼다"고 덧붙였다. 순간 문학기행팀 참가자들의 웃음이 터졌다.
■자세히 보고 감동하라
|
|
|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지난 21일 김용택 시인이 졸업했고 제자를 가르쳤던 임실군 덕치초등학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
시인은 "현대인은 감동할 줄 모르고, 산과 나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감동하지 않으면 시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시인은 "초등학교 6년과 교사생활을 포함해 수십 년간 집에서 덕치초등학교까지 등교할 때 40분, 하교할 때 3, 4시간씩 걸으며 자연의 변화를 관찰한 게 지금까지 시를 쓰는 자양분이 됐다"고 설명했다. 임실군은 김 시인이 걸었던 길을 '시인의 길'로 이름을 붙여 관광상품화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세상에 새롭고 신비로운 것이 없다고 여겨요. 다만 신기해할 뿐이죠. 자세히 봐야 지식이 내 것이 되고 인격이 됩니다. 그때 관계가 맺어지고 감동이 생기죠. 감동은 생명력 있고 살아 있는 것에서 나와요. 나무를 보세요. 꽃이 피고 잎이 지고 언제 봐도 새롭죠. 나무가 새로운 것은 눈, 비, 바람, 새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포용성이 핵심이죠."
시인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말이 맞다 싶으면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쳐야 한다"며 "그러면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생각이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얘기다.
■인생은 버릴 게 없어야 한다
시인은 "시는 내 삶의 이야기다. 인생은 버릴 게 없어야 한다"는 인생론을 폈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야 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제가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어요. 교육은 가르치면서 배우는 겁니다. 자기교육이죠. 자녀교육도 가르치면서 자녀에게서 배우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시인으로 출연한 데 대해 설명했다. "학창시절 영화를 자주 봤던 게 영화를 찍는 데 도움이 됐어요. 뭐든지 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인생은 버릴 게 없죠."
시인은 내년 고향에 '김용택의 작은 시인학교'를 마련해서 한 달에 2, 3번 자신을 찾아오는 독자를 모아 놓고 글이나 그림, 자연, 생태에 관해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문학기행에는 '남양 홍씨 부산종친회 부인회(회장 이순화)' 회원 15명도 참가했다.
# "신문 속엔 삶의 지혜 있어"
- 거의 모든 신문 탐독…자녀 교육에 활용도 김용택 시인은 신문 광이다. 고향에서 지역 신문(전북일보) 한 종과 중앙지 두 종을 구독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신문, 오마이뉴스를 포함해 구독하지 않는 전국의 거의 모든 신문 홈페이지에 접속해 머리기사를 검색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 까닭은 뭘까. "오늘날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독서가 중요해요. 특히 신문 사설이나 칼럼, 시론을 읽으면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어요."
시인은 "신문 칼럼, 사설, 시론 중에서 좋은 것이 있으면 골라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는 아들과 딸에게 e메일로 보낸다"고 말했다. 그 나름의 자녀 교육법이다. 그렇게 보낸 e메일이 700~800통 가까이 된다고 한다. 시인은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신문을 많이 읽어라. 그러면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시인이 전국의 수많은 독자와 눈높이를 맞추며 공감의 시를 쓰고, 최고의 문학강사가 될 수 있었던 밑천이 신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기 문학강연 시인 4인방으로 꼽히는 도종환, 안도현 시인이 국회의원 활동 같은 정치적 사정으로 강연하지 못하면서 김용택, 정호승 시인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문학강연에 모시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순창농림고를 졸업하고 40년 가까이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연작 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박하고 진실한 울림이 있는 시적 언어는 농촌이 지닌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현대적 변화를 연결해주는 정서적 감응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 '섬진강' '그리운 꽃편지' '그 여자네 집' '나무' '그래서 당신',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산문집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등이 있다. 소월 시문학상,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받았으며, 2008년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를 정년퇴임했다.
****************************************************************************
현장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