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가 만난 문인들 28
권용태 시인
어느 날 권용태(權龍太) 시인이 강남문화원 시낭송회에 나를 초청했다. 그가 강남문화원장에 재임 중일 때이다. 내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문단에 관한 이야기와 문학에 대해서 많은 담론을 들려주었다.
특히 그는 내가 집필한 시창작법『시가 보인다, 시인이 보인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초보 시인 지망생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되어 있다는 서평까지 해 주었다. 이러한 인연은 그가 한국예총(당시 이성림 회장)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내가 편집주간으로 있었던 예총에서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었으며 문단의 대선배님을 가까이할 수 있었던 행운이 왔다.
그는 1937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이미 1958년『자유문학』에 「바람에게」 「기(旗)」「산」이 3회 추천을 완료하여 등단하였다.
나는 문단생활 50여 년 동안 많은 제재(題材)를 다루어 왔지만 ‘바람’에 대해서먼큼 깊게 사고하고 투시하고 몰두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1958년『자유문학』에 첫 추천작품이「바람에게」이고 시집마저『남풍에게』와『북풍에게』로 이어진 것을 보면 어지간히 바람에 빠져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평론가들은 나를 ‘바람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의 아들’이라고 불렀을 때도 그렇게 싫지 않았다.
그가 어느 글에서 ‘나의 삶, 나의 문학’을 말하면서 이와 같이 피력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바람’과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나는 죽는 날까지 바람에 대한 시적 소재로서의 탐구와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 묘비명(墓碑銘)에 -바람같이 살다 간 시인-으로 기록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고나 할까.’라는 자신의 심중에 각인된 바람과 동행하는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와의 인연은 그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내고 한국간행물위원회 위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전국문화원연합회 회장 재임시 국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국민의 시 낭송회의 밤’에 초청되어 국회의원회관에서 국회의원들과 함께 낭송을 하고 식사를 한 적이 있으며 작년에는 문화원연합회 전국백일장 심사를 하엿고 올해도 철도문화재단 문학상 심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조태일, 강태열, 윤삼하 등과 함께 <영도(零度)>동인활동에 참여하는가 하면 국제펜한국본부와 한국문협 그리고 현대시협 이사와 강남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국내 최초의 주간 예술지인『주간예술』편집인과 월간『시인』발행인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한편 제1시집『아침의 반가(反歌)』를 비롯하여『남풍에게』『북풍에게』시선집『바람에게』를 상재하여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1965년 6월 한국일보 합평에서는 ‘「남풍에게」에서 느껴지는 언어의 조화는 이 시인이 새로운 서정시의 시도를 착실히만 해나간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지녔다고 하겠다(문덕수, 이형기, 장백일 등)’는 언술로 보아서 당시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KBS방송위원으로서 서라벌예대, 중앙대, 서울여대, 경주대 강사 혹은 초빙교수로서 문학을 강의하기도 하여 그동안의 문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중앙문학상, 노산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사회적인 공로로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공로장, 자랑스런 중앙인상을 비롯하여 녹조근정훈장과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였다.
인우회의 모임이 명동시대만큼은 아니라 해도 유사점이 많은 것 같다. 우선 모임의 순수성이 그렇다. 장르가 다르고 생각이나 이념의 차이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랄까 인우회 회원들 거개가 명동시대 전후에 『현대문학』과『자유문학』지를 통해서 문단에 등단한 분들이다.
--『계간문예』2008. 여름호(강호삼-문학에 산다)중에서
그는 문학동우 인우회(仁友會) 창립 발기인이다. 지금까지 강민 구인환 권용태 김승환 김여정 남구봉 남정현 박순녀 박정희 송병수 신동한 심봉승 이국자 이성교 이준영 이정호 유금호 정명숙 정인영 최미나 등 원로문인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때로는 술을 마시면서 문학과 인생을 애기하고 있다. 이 모임은 약 10년 전 강민 시인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한 자리에 모인 문인들이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종로 인사동 주점 <양반댁>에서 다시 술자리가 있었다. 여기에서 ‘이럴게 아니라 한 달에 한번씩 만나서 문학 이야기와 정담도 나누자’는 그의 제의로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화기애애하게 그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인우회는 인사동에서 만난 벗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와 나는 서로 행보가 다른 운명적인 만남으로 문단에 서게 된다. 제24대 문협 임원 선거가 있던 2006년 12월, 우리는 지지를 달리하는 개체에서 그는 이사장으로 나는 시분과회장으로 입후보하여 그동안 쌓아온 존경과 우정이 상치(相馳)되는 여건에서 괴로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단선거가 교훈으로 남겨준 과거를 상기하면서 이젠 한 줄의 추억으로 간직한 채 그는 나에게 배전의 우의로 대해 주었고 또한 나도 그를 진정한 존경심으로 예를 갖추어 평소와 동일하게 지내고 있다. 이는 그의 후덕한 인격과 지적인 문학정신의 소산(所産)으로 못난 후학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일이면 홀연히 맞이하는 바람, 서성거리고 싶은 가두(街頭)에서, 다 찢기어 가는 기폭(旗幅)을 펄럭이며 한 해, 두 해 꽃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불꽃, 바다의 노을처럼 서러운 것이 아닌가.
그의 초회 추천 작품「바람에게」의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바람과 시간성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 인간들의 고뇌가 잠재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작품「남풍에게」에서 ‘남풍은 / 전쟁이 스쳐간 / 성벽 속에 파랗게 돋아난 / 생명의 잎새를 따라 / 울고 섰는 / 감미로운 그런 음악이 아닌가(작품 끝 부분)’ 그리고 「북풍에게」에서도 ‘북풍은 / 기를 흔들며 / 다 찢기운 지도 위를 / 전령(傳令)을 품고 달려가는 / 병사처럼 / 숨차게 질주하는 아우성이 아닌가(끝 부분)’라고 의문형으로 종결하는 특이한 시법으로 ‘전쟁’이나 ‘전령’ 등의 어휘가 자유로운 ‘바람’과 ‘생명’ 과의 대칭적으로 묘사하여 현실적 갈등이 화해를 시도하는 철학을 읽게 한다.
올해 여름은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려서 그와의 만남이 며칠간 연기되기도 했다. 시간을 예약하고 그를 만나려 지하철 선릉역 부근에 있는 중앙대 동창회 사무실로 방문했다. 오늘은 다른 약속이 없어서 사무실에 나와서 책을 읽거나 밀려있는 원고를 정리한다고 했다.
‘나는 필생의 사업으로 문학의 길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이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다’는 그의 유유자적하면서도 온화한 인품을 느끼는 나에게 언제 시간 날 때 한 번 만나서 옛날처럼 생맥주라도 한 잔 마시면서 그동안 못다한 회포를 풀자고 했다. 부디 건강하세요.
*2010. 10. [문학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