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시집 『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
무상을 묻는 깨달음의 미학
張 伯 逸
(문학평론가. 전 국민대학교 교수)
시는 시대정신을 캐는 시인의 마음의 표현이다. 시에서 참된 모습을 그린다. 시집은 그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이다. 마음을 언어로 색칠하는 색채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이해는 곧 시인이 무엇을 구하고 호소하는가를 듣는 일이다. 이 글에서 필자도 김송배의 시집 『시간의 빛깔, 시간의 향기』를 통찰해 내는 심리학자이고 싶다.
그렇다. 세상은 역려(逆旅)요 사람은 거기서 지새고 가는 나그네다. 석화같이 왔다 전광같이 가는 인 간이련만 그 사이를 못참아 서로 찧고 헐고 새암하다가 끝내는 일장춘몽으로 가는 무상한 생존이 다. 그래서 인생은 시간의 변화 속에서 삶의 빛깔과 항기를 캐다 가는 무상의 존재이다.
시인은 시집을 통해 무상의 조화를 진지하게 묻는 인간학이고자 한다. 즉 인생의 빛깔과 향기 를 캐는 무상의 미학이고자 한다. 그래서 외롭고 괴로운 고독의 자아 성찰을 통해 시심(詩心)에 젖는 자기실현을 진통하고 고뇌한다. 시는 그것을 표현하는 형상화의 작업이다. 서두 “시간에 대한 화두”에서부터 그 자각의 단초를 보여주거니와 연작시 「시간에 대하여(1-20)」는 ‘쫓기면서 살아가는 시간의 마력 앞에(2)’ 펼쳐지는 인생의 적나라함과 적쇄쇄(赤灑灑)함을 증언한다.
살아 있음과 죽음이 / 고향 싸늘한 들길 빗물 속에 적셔지고 / 상두꾼들 구성진 회심곡 가락은 / 나의 내장도 절절하게 적신다, / ---(중략)--- / 이제 흙으로 묻어버린 형 / --- (중략)-- / 실타래로 담긴 혼 백과의 마지막 대화 /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굴레를 벗어남이여 /
--「시간에 대하여 · 5」에서
인생은 사고팔고로 얽힌 고해화택(告解火宅)이다. 그 고해화택은 한 방울 이슬이요, 바람이요, 허무요, 무상이다. 사람은 인연 따라 태어나 고생하다 죽는다. 이는 인류의 공통분모다. 죽음이 이승의 마지 막 빛깔이라면 바람과 허무와 무상은 그 향기이다. 그 점에서 ‘시간에 대하여’는 시간이 유전하며 얽히는 삶의 모습을 연작시의 형상화로 그린다. 그로부터 시인은 진정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바라야 하는가를 진솔하게 묻는 시작업 으로서의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 시간으로부터 깨쳐지는 깨달음에의 시학이고자 한다.
제2부 ‘겨울 詩 몇 편’은 인연 따라 진행되는 시간과의 만남의 공간을 시화한다. 그 공간은 시 간의 조화가 빚는 현장이요, 시집에서의 "겨울"은 그 실재성을 증언해 주는 공간이다.
이런 날 어김없이 다가온 포장술집
심지 돋운 불빛만큼 눈이 쌓이고
술잔에 채워진 사랑
---(중략)---
한 잔 두 잔 그렇게
퇴색된 아픔으로 마냥 비워 내고 있었다.
위는 시 「겨울 詩 몇 편(1)-첫눈」의 일부다. 눈 오는 겨울의 고독과 허무를 포장술집에서 음미 하며 씹는다. 그로부터의 자아 정찰이요, 포장술집은 성찰의 장소로서 시간과 만나는 공간이다. 그 공간은 포장술집을 비롯해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도 / 떠나보내는 그대의 그림자도 없는’ 간이역 이기도 하고, ‘뜨겁게 흑은 차겁게 / 시간을 메우고 / 때로는 공간을 채웠던 밀어(密語)’가 묻힌 엄동의 땅이기도 하고, ‘레인코트 깃 추겨 세우고 / 젖은 대학로’를 걷는 겨울길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에서 시인은 ‘펑 뚫린 가슴팍에 / 독주 한 모금 뿌리’면서 허공을 헤매는 무상을 씹는다. 그 허무가 깊어질수록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不化衆生)’을 찾으며 ‘언 가슴 녹일 따수운 봄은 정녕 / 오고 있는가. 오고 있는 것인가’며 삶의 봄을 고독과 허무 속에서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 점에서 시인의 공간은 자아를 깨치는 장소이다. 나를 깨달음으로 탄생시키는 시적 현장으로서의 의미가 깊다.
제3부 ‘낮달을 보며’는 어둠에서 밝음을 찾는 목소리로 특징 지워진다. 분명 봄은 겨울 속에서
자란다. 그리고 생명의 탄생에는 반드시 진통과 고뇌가 따른다. 그 점에서 제3부는 진통과 고뇌로부터 창조를 지향하는 아픔의 목소리다. 그래서 삶의 환희는 진통과 고리로부터 피어난 꽃이다.
저기 막 솟으려는 태양. 그 환희의 신비 / 그 뜨거운 사랑으로 옹찬 / 어제의 피멍을 모두 풀어 내고 있었다 / --- (중략)--- / 오늘을 예비하는 장공(長空)의 황홀한 / 그 새벽 가득 찬 그 사 랑이리
시 「새벽산을 오르며」이다. 새벽은 어둠을 살라먹은 시간의 빛깔이요, 여명의 공기는 그 향기 이다. 생명의 숨결은 바로 그로부터의 창조이다, 시인은 어둠 속에서 생명의 약동에 귀를 기울린 다. 생명의 욕구와 추구는 시인의 생활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그로부터의 현실 참여이고자 한 다. 현실적 정세가 위기일수록 자기 발견이 요구되고 현실의 자기비판과 반성을 매개로 하여 살 을 개척하게 된다. 그래서 시는 삶의 준령을 기어오름이요 삶의 심연을 뚫고 내려감이니 그로써 적나라한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시는 어둠을 박차는 자기 부정의 탈피이다. 그 밝음의 동 경과 염원은 시인의 ‘봄’ 소재의 시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풀꽃은 풀꽃으로 피어나는 / 벌레는 벌레로 태어나는 / 따수움 / 저 넓은 대지 위 / 넘치는 산들 바람 / 눈 뜨라 / 푸르게 하늘을 보아라 / ---(중략)--- / 색색의 소망 뜨겁다 / 봄볕 한 자락 / 나와 함께,
「봄 詩-봄볕 뜨락에 내려」이다, 봄기운에 넘친 생명의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시는 거세된 회색의 언어가 아니라 작열하는 생의 약동을 그리워한다. 거기에 삶의 생기가 있어서이다. 그점에 서 시인의 목소리는 삶의 진통과 고뇌를 시로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일련의 "봄"의 시는 그로 피 어나는 빛깔과 향기의 만남이다. 그러면서 「봄 詩-창밖에 봄비 내리고」에서 증언하듯 부정을 폭로 고발하는 참여의식을 갖는다. 그로 무상을 희구하고 무상의 참(眞)을 깨닫는 시이고자 한다,제4부 ‘억새꽃 따라’는 연작시 「응시(凝視)」를 통한 현실 인식이요 구체화이다. ‘응시’란 한참 동안 뚫어지도록 자세하게 꿰뚫는 작업이다. 시인은 세상사를 응시의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
화려한 울음 하나씩을 위하여 항상 되뇌는 그 처절한 모습 / 어느날 그대여 / 과연 그것이 나에 게서 무엇일까.
--「응시(凝視) . 2」에서
응시는 곧 자기 확인의 철학적 태도이다. 응시로써 속속들이 진실성을 찾아냄이다. 진실을 캐기 위해 "부정의 부정"의 길을 걸음으로써 시적 태도로 일관하려는 근원적인 정신, 거기엔 오직 시의 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참되기를 갈망하면서도 항시 어둠에 사로잡힌 채 참된 나를 배반하며 있다. 그것이 속임 없는 인간의 진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삶을 응시하며 고뇌로 해답을 찾 는 불침번이고자 한다. 그점에서 연작시 「응시」는 자기 물음으로부터 존재 해명을 진통하는 시적 증언이다. 그로써 시간(인생)을 응시하며 실존을 추구한다.
제5부 ‘떠돌이 詩, 기타’는 여행으로부터의 자기 형성이다. 제4부까지의 시세계가 자기를 안으 로부터 꿰뚫는 향내적인 탐구라면 제5부는 밖으로부터 꿰뚫는 향외적인 탐구이다. 이는 결국 하 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인간 본질의 지향이요, 탐구이다.
놀랍다 / 멀게 그들의 숨소리 우리와 닳아 있다 / 해마다 거리를 누비는 '아리랑 축제' 속 조선 통신사 행렬의 재현이 놀랍다 / 그들은 왜 한국의 역사를 기리고 우리 역사의 발자취를 비석으 로 세웠을까 / ---(중략)--- / 아마도 그들의 체온은 우리 것인가 보다.
위는 「떠돌이 詩 4-쓰시마 섬(對馬島)에 가서」이다. 대마도에서 나와 닳은 자화상을 발견한 다. 나를 여창(旅窓)에서 화인하는 시적 형상화이다. 그래서 여창은 나를 밖으로부터 확인하는 또 하나의 길이다. 세계라는 외부 통로를 경유하지 않는 사상이나 상상은 결국 부질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련의 떠돌이 시는 밖으로부터의 나의 형성과 실현의 시적 형상화이다
이상에서 김송배의 시세계를 살폈다. 그의 시세계는 한 테마를 연작시로 집약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특징 지워진다. 그 점에서 시인의 연작시는 테마에 대한 애착이요 그 애착을 통해 집요하게 사물의 안팎을 꿰뚫으려 함은 시인만이 갖는 시정신의 발로이다. 진리를 안팎에서 구하되 그것의융합으로부터 증언하는 체득의 시작을 즐긴다. 그로부터 생명의 꿰뚫음을 지향한다. 그래서 이 시 집을 일러 삶의 의미를 깨치는 깨달음의 미학이요, 인간학이라 함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다. 그래 서 인생은 궁극적으로 깨달음에의 빛깔이요, 향기가 아닌가.(’99. 5. 『예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