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침대 밑에는 외계인이 살았다. 딱히 그걸 키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건 제 침대맡에서, 아래에서 종종 크기를 키웠다. 아이의 머리가 자라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그 이상으로 사리 분별에 능통해졌을 즈음 그 외계인은 제게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린아이의 감각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들은 배우지 못했음에도 누가 제게 호의와 적의를 가졌는지 구별해낸다. 그 감각이 축적되어, 외계인에 대한 신뢰는 굳건해졌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아이가 사는 방은 그다지 좁지는 않았으나 한 사람의 생활반경이라 치기엔 턱없이 작은 공간이었다. 지구를 떠난 이들을 싣고 있는 이 우주선에서, 어린아이에게 줄 수 있던 면적이 얼마나 되었을까에 대한 숙고가 필요할 시점은 이미 지나버렸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그것이 말했다. 그들은 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을 나눌 때면 불을 껐다. 우주선에서 경고등이 반짝거리고 창문 밖에서는 성운이 웅웅거리는 것을 제하고. 그는 주로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꺼풀을 닫아버리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면 담요 따위를 통해 경고등을 덮어버렸다. 그러면 그 멜라닌 색소마저 부족한 여린 눈에 보이는 것은 새카만 어둠과 둥그런 창문으로 보이는 성운.
어둠 속에서 아이는 발화한다.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우주가 제 전부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서. 그들은 스스로 만든 밤 속에서 살았다.
“그럼 언젠가 지구로 가 줘.”
아이는 종종 지구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지구에서보다는 우주선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길었으면서 그 별을 꼭 고향이라고 불렀다. 기억하지 못하는 향수, 돌아갈 곳 없는 이의 고향. 그 애가 묘사하는 고향은 주로 우주선에 실린 책과 사진, 어른들의 향수 섞인 문장들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미화가 섞인 것들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외계인은 아이의 문장을 답습한다. 문장 사이에 섞인 산들바람, 혓바닥 아래에 굴러다니는 모래 알갱이, 이 우주 위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약속은 클리셰다. 그렇다면 함께 가자 약속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함께 지구로 갈 수 없으리라. 아이의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가기에는 연료가 턱없이 부족했고, 아무도 그 사실을 구태여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절망은 전염성을 지닌다. 생의 절망이 우주선 위를 수소처럼 채웠다.
그 절망이 아이의 방문을 두드릴 때쯤이다. 아이는 점심이나 되었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을 껐다. 이불을 끌고 와 경고등을 모두 가려버렸다. 침대에 걸터앉아 제 아래의 무언가에게 인간의 언어로 속삭였다.
바로 지금이 약속을 지킬 시간이야.
더 이상 외계인이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모르는 척 넘어가 주던 마음의 여유는 사람들에게 없다. 그들은 마지막 도망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우주 한가운데를 유영하던 우주선 안으로 흘러들어올 수도 있었으니 지구로 가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어째서 저들의 우주선을 지구로 옮겨달라 부탁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외계인은 지구로 향했다. 네 이야기를 직접 보고 싶어. 답습한 마음은 이정표가 된다.
허나 어딜 가도 그 애의 잔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래 알갱이로 잔뜩 쌓인 사막은 조각조각 나서 하늘에 모래가 날아다니고, 창공을 가르던 산들바람은 형체를 잃고 바람 하나 없는 정적으로 대체된다. 푸른 하늘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잠시 인간의 절망을 닮은 형태를 취한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새파란 하늘의 사진이라면. 생명을 가진 것은 필연적으로 그것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
그건 어느 박물관을 도색한 것이었다. 조금 변색되기는 했어도 근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푸른색은 그거 하나였다. 외계인은 박물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 입장권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그것은 인류 문명이 고작 글자 몇 줄과 전시품 몇 개로 농축된 장소를 한없이 거닐었다.
이게 뭐야, 네가 알려줬던 건 하나도 쓸모가 없잖아…
그 애는 종종 제 행성의 이야기를 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햇빛을 반사하는 해수면, 눈이 덮인 산봉우리,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초원… 네가 알려준 풍경들은 전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고. 당신은 그리 말 할 자신이 있는가?
외계인은 천천히 박물관을 걸었다. 느적느적 걷는 걸음 뒤로 이름 모를 감정을 흘리고 다닌다. 너도 여기 묻혔을까.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면, 혹은 떠나지 않았다면. 죽은 것들을 전부 그러모아 각주를 달아둔 이 거대한 무덤에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어둠은 종종 기억을 왜곡시킨다. 그 색은 없던 것을 채워 넣는다거나, 존재하던 것을 지워버린다거나 하는 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또한 변형을 가해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한밤중 어둠의 커튼 자락에 숨어 손가락을 걸었던 일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치부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거다, 우리는.
외계인은 무덤의 한구석에서 어둠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조금 전 발견했던 우주로 떠난 여행자들의 명단을 끝없이 곱씹으며 둥그런 창문만 한 우주를 기다린다.
그리타. 외계인은 그 아이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야 알게 된다.
이곳은 시체도 없는 네 무덤이다.
주제 : 밤, 약속, 클리셰,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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