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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어머니와 아들 (5)
- 주공께서 낙양에 입조하신다.
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 소식은 내궁의 무강(武姜)에게도 전해졌다.
무강은 입이 찢어질 듯 기뻤다.
'이제야 단(段)이 군위에 오를 수 있겠구나.'
무강(武姜)은 태숙 단에게 편지를 썼다.
정장공(鄭莊公)이 신정을 떠나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신정을 급습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태숙에게 직접 전하여라."
밀서를 지닌 무강의 심복은 그 날로 신정을 떠나 경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공자 여(呂)의 부하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를 줄.
신정에서 경성으로 가는 길목에 매산(梅山)이라는 험한 산이 있다.
그 매산 깊은 골짜기에서 공자 여(呂)의 부하는 무강의 심복을 살해하고 밀서를 빼앗았다.
그것은 이내 공자 여(呂)를 통해 정장공에게로 전해졌다.
"모든 것이 헤아린 바대로구나."
정장공(鄭莊公)은 그 밀서를 다시 전처럼 봉해 가장 믿을 만한 부하를 불러 명했다.
"본색이 탄로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이 밀서를 태숙에게 전하라. 반드시 친필 답신을 받아와야 한다."
무강(武姜)의 밀사로 가장한 정장공의 심복 부하는 나는 듯이 경성으로 달려갔다.
모든 일이 원만히 처리되었다.
그는 태숙 단(段)의 친필 답신을 받아와 정장공에게 바쳤다.
5월 초닷새에 정성(鄭城, 신정)을 공격하겠습니다.
성루에 흰색 기를 세워 내응하는 장소를 알려주십시오.
5월 초닷새라면 약 한 달 후였다.
정장공(鄭莊公)은 편지를 읽고 나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궁으로 들어갔다.
무강(武姜)은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라 지레 긴장했다.
억지 미소를 띠우며 정장공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오?"
"하직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하직 인사라니?"
정장공(鄭莊公)도 무강도 모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 두 모자의 대화는 오래 전부터 늘 그랬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오히려 그편이 더 자연스러웠다.
정장공(鄭莊公)은 잠시 잠깐 어렸을 적의 일을 떠올렸다.
어머니 무강(武姜)은 한 번도 장남인 오생 - 정장공에게 따뜻한 미소를 던진 적이 없었다.
늘 차갑거나 아니면 의례적인 태도만을 보였다.
정장공(鄭莊公)은 어머니로부터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를 위해 신발을 가슴속에 품었다가 내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정장공에게 날아온 것은 겨울바람보다도 더 매서운 질타였다.
- 내 신발을 훔치려 한 까닭이 무엇이냐?
그때의 심정을 어느 누가 알까?
정장공(鄭莊公)은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얼굴에 잔주름이 생겼다.
그러나 표정만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지금은 웃고 있다.
어색한 웃음 - 속에 독침을 숨겨둔 무서운 웃음을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장공(鄭莊公)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인가.
그는 어머니의 그 가시 돋친 웃음에서 짙은 서글픔을 느꼈다.
"그동안 왕실에 너무 소홀했습니다. 낙양(洛陽)에 입조하여 천자를 보좌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번에 가면 오래 머물 것 같아 이렇게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내궁에서 오래 앉아 있지는 않았다.
잠깐 동안이지만 정장공(鄭莊公)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마지막이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대면이었다.
하직 인사라고 말한 의미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닷새 후, 정장공(鄭莊公)은 신정을 떠나 주(周)나라로 향했다.
겉보기에 모든 것은 평온해 보였다.
신정(新鄭)도, 경성(京城)도 이렇다 할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황하의 물결이 잔잔하다고 해서 물 속 깊은 곳까지 잔잔한 것은 아니다.
신정에서도, 경성에서도 바빠지기 시작한 무리가 있었다.
그 무리는 은밀한 가운데 부지런히 움직였다.
너무나 은밀하여 종적을 쉽게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정장공(鄭莊公)이 신정을 출발한 그 날 밤, 한 무리의 상인들이 신정 북문을 빠져나갔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공자 여(呂)의 별동대였다.
병력은 병차 1백승. 행선지는 경성.
삼대(三隊)로 나누어 북쪽 가도로 접어들었다.
경성의 태숙 단(段)도 바삐 움직였다.
그는 먼저 아들 공손(公孫) 활(滑)을 불러 지시했다.
"수레에 황금과 비단을 싣고 위나라로 가 병력을 빌려 오너라."
공자가 군후의 아들이듯, 공손(公孫)은 군후의 손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테면 제후의 3세(世)를 지칭하는 공족 칭호인데, 나중에는 아예 성(姓)이 되었다.
이 시대만 하더라도 공손을 성처럼 표기한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아예 이름과 함께 붙여 부르도록 하겠다.
공손활이 위나라로 떠나가자 태숙 단(段)은 이어 경성에 소속된 봉토의 관장들을 소집했다.
"주공께서 낙양(洛陽)에 입조하기 전 나에게 나라를 보살피라는 영을 내리셨다. 이제부터 모든 병사를 거느리고 신정으로 들어갈 것이다."
마침내 그는 소와 돼지를 잡아 병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기치창검을 번뜩이며 호호탕탕(浩浩蕩蕩) 경성을 출발했다.
공자 여(呂)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장사꾼으로 가장해 경성 근처의 산골짜기에 숨어 태숙 단(段)이 출정하는 것을 지켜본 그는 곧장 경성을 향해 쳐들어가지 않았다.
"성안의 동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병차 10승(乘)을 풀어 그에 딸린 군사들을 장사꾼으로 가장시켜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경성 안으로 잠입한 병사들은 태숙 단(段)의 군대가 모두 떠나고 없음을 확인한 후에 성루에다 불을 질렀다.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것이 신호였다.
공자 여(呂)는 전투 대열을 갖추고 달려나가 경성을 공격했다.
성안에 미리 잠복해 있던 병사들이 때맞추어 성문 수비병들을 해치웠다.
성문은 쉽게 열렸다.
공자 여(呂)는 이번 싸움이 백성의 민심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
그는 선무대를 조직하여 민심 수습에 나섰다.
공자 여(呂)의 병사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거리 곳곳에 방문을 붙여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히 밝힘으로써 백성의 안정을 꾀했다.
...............우리 주공께서는 형제의 정을 생각하여 동생 단(段)을 경성에 봉했으나, 단은 배은망덕하여 오히려 주공이 나라를 비운 틈을 타. ..........
공자 여(呂)의 선무효과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경성 안 백성들은 태숙 단(段)이 반역을 꾀하기 위해 신정으로 출정한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가 ...........!"
"오래 전부터 무강(武姜)과 짰다고 하더구만."
아무도 정장공(鄭莊公)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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