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무더운 여름 한 날 뚱뚱하고 늙은 어느 한 여인의 머리를 빗어준다. 남자는 호리하고 젊어보여서, 허연머리를 한 여인은 아마 누님 쯤 돼 보인다. 아니 어쩜 그 노인분의 아들이런가.
그분들을 지나쳐 세워 둔 내차를 타려다 궁금증 발동함 잠도 못자는 성격인지라 결국 차문을 닫고
그분들께 다가갔다. 지인 집에 갔다 오다 보면 늘상 1층 주차장 한쪽 편에 테이블 1개와 책걸상을 설치하고 앉아있었다. 모이는 사람들 중 오늘은 남녀 단 둘이 있는데 남자가 여자 머리를 빗겨주면서 서로 웃고있다. 나는 다가서며
"와 요즘 세상에 부모 모시기는커녕 같이 사는 것도 싫어하는 마당에 머리 빗질까지 해주시니 참 자상하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정네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마누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하시는 얼굴이 힘들어서 화가 나 있는게 아니고 웃음까지 지으시니 다행스러웠다. 알고보니 치매 4급이여서 약을 먹고있는데 가끔씩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는 왔다갔다 단계란다. 비가 오면 더하다 라고 말해서, 치매 노인들에 대하여 아는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내라고 머리 빗질까지 해주며 이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돌보는 사람 몇이나 될까. 나이를 물어보니 둘다 73세란다 . 여자분은 겉으로 팔십 중반 돼 보이고 남자는 육십 후반쯤 돼 보이니 외모상 부부로 안 보였던 것이다.
지인집 1층이 주차장인데 늘 그 테이블 주위에 몇 사람이 모여있어서, 평소 나는 그 건물 사람들 마음도 넒다고 생각해 오던 참이다. 요즘 누가 주차장을 내주려 하겠는가? 갈때마다 그곳에 서너명씩 앉아 막걸리도 마시고 무언가를 먹기에 아는 사람들이 더우니 나와서 서로 잡담하고 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치매 마누라 지키기위해 옆에 남정네가 지키려고 같이 앉아있으면, 같은 건물 내의 아는 사람들이 무언가 먹을 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정담을 나누며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돌보는 남자의 외모는 날씬하고 젊어보여 외견상으로 참고 인내하며 마누라 돌볼 사람 같지 않아 놀란 건 사실이다. 사람의 겉모습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려는 세상 이치는 잘못된 점이 많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건물은 소위 기초수급자들을 위해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방 한칸짜리 오피스텔이었다. 그런데도 그들 부부가 그리 정다워 보여 좋았고, 이웃도 이해하고 격려해주니 사라져가는 한국의 정이 남아있어 보여 마음이 뿌듯했다.
요즘 마누라 아픔 살뜰히 돌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치매라면 요양시설에 보내기 일쑤인데 아님 집안에 가둬놓고 막말로 최악의 경우는 나가 바람피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난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렇게 치매 아내 돌보시고 생업도 포기하시는 지경인데 국가보조 있나요?"
"없습니다. 치매 4기라 약만 보조받아요. 3급 이상되야지만 제대로 보상있지요." 멀쩡하다가도 돌발상황이 발생하기에 많이 힘들다고 한다. 당연히 힘드시겠지. 그 분 말씀이 전적으로 맞는지는 모르나 한국은 요즘 장기요양부담금까지 국민에게 받으며 노인복지에 힘을 쓰고 있는 건 사실이다.
2006년 쯤 어느 TV프로에서 치매걸린 아내를 대형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수발드는 아저씨를 보았다. 물론 집에서 돌볼 사람이 없어서다. 대형트럭안에 아내가 누울자리 한 곳 정도 만들어 아내를 돌보고, 생계를 위해 트럭도 운전해야 했다. 아내가 몸도 불편해서 앉아 있는 수준이고 잘 걷지도 못해서, 아내를 저녁에 오면 목욕시키고 먹이고 재우고 또 아기처럼 다루는데 보는 사람도 눈물겨웠다. 놀라운 건 그래서 점차 나아져 나중에는 식사를 제손으로 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움직임을 자유로 한 건 아니지만. 진행자가 즐거워하며 마누라 돌보는 그를 보고 안 힘드냐고 물으니, 아내가 비록 치매라 잘 모르고 돌봐야 하지만 아내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했다. 오래 오래 살았으면 한다고 아주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남편 보고 어찌나 그날 밤 울었는지 모른다.
가난한 트럭끄는 어느 운전사 이야기지만 사랑만큼은 명품 사랑이기에 감동적 이야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아내는 자식도 이웃도 아무도 기억 못하는 중증 치매에도 오직 한사람 기억하는데 남편만은 기억한단다. 병중에도 그 사랑하는 마음은 둘다 지극했다. 서로 부르는 호칭도 사랑이 뚝뚝 묻어나게 불러주며 남편이 위하는 걸 보았다. 비록 아픔 속 극한 환경에서도 일하면서 아내를 돌보는 그 사랑이지만, 한없이 부러웠다. 오늘 주차장 부부를 보니 눈물을 흘렸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요즘 부쩍 의지하고 사는 아픈 부부 모습들이 눈에띠기도 하지만, 아파도 언제나 꾸준히 정성껏 지켜주는 남자나 여자가 솔직히 얼마나 될런지 의문이다. 자식, 부부, 부모가 아파도 돌보거나 모실사람 드물다. 사실 잉꼬부부처럼 살았던 친정 아버지도 엄마 아파서 병원간 뒤로 냉담해지셨다. 이해될 듯 말 듯 그 당시는 놀라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냉담해 지신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는 입원하여 나으러 가셨다가 병원생활 3개월 만에 운명을 달리하셨다. 마지막으로 세상한번 구경하자고 그리 애원하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엄마 청을 거절하셨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그때 연세 84로 다리아파 나와도 돌볼 수 없고 자식들은 생업이있어 힘들어 안타까웠지만 의사가 마음준비하라고 하셨단다. 난 그 당시는 이해가 잘 안됬다. 생전 그리잘하시던 아버지의 냉정한 모습이 사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란 것을 지금은 이해한다.
치매나 중병에서 돌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의 한계는 5년 이하란 말도있다. 아까 예로 들은 5년이나 트럭아저씨 10년째 이런 분들은 특별한 인내심, 책임감, 사랑의 마음을 타고난 인성 상위 10프로안에 드는 사람이지, 우리 보통사람은 지위고하 재산을 불문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머리로는 다 아나 막상 닥침 못하는 이유다.
그나마 요즘 사회시설이 다 되있어 보통사람이나 보통이하의 사람도 모두 국가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있어 다행이다. 그러니 아플때 자식이 못 모신다고 욕하지마라. 부인이 아파 병원에 보낸다고 욕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니까. 결국 잠시야 간호의 일을 할 수 있을지언정 길게 하기는 어려운거다. 하지만 몸소 실천하는 지극한 순애보나 효성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할 수 없기에 고개가 숙여지고 인성이 부러워진다.
이와같이 극한상황 어려움 속에서 배우자나 부모를 잘 돌보는 것은 아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최고 난이도의 심성을 필요로한다. 세상엔 착하고 책임있는 남자도 존재하고, 그냥 내몸이 우선이야 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더 충실한 사람도 있는것이다. 치매인데 일하는 가운데서도 제 몸처럼 실천하는 이런 사람들은 보통이상의 심성을 가진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지상에 살면서 두배의 축복을 받고 만사 형통 일이 잘 풀리기를 오늘도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