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장거리자동전화 – 전국 전화망의 자동화를 향하여
시외전화의 불편과 도청 우려
전화는 태생적으로 ‘거리’ 개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같은 지역 간의 통화는 시내전화, 지역을 달리하는 통화는 시외전화로 구분되었고, 시외전화는 별도의 회선과 교환원의 수동 중계를 통해 연결되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외전화를 걸기 위해선 ‘0’을 누른 후 교환원에게 지역명과 상대방 전화번호를 말해야 했다. 교환원은 수동 교환기를 통해 회선을 연결했는데, 통화 대기 시간이 길고 회선이 부족하면 다른 사용자의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특히 시외 교환대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통화 연결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통화 사생활 보호였다. 교환원의 중계를 거쳐야 하는 구조상 도청 가능성이 상존했고, 정치인이나 기업인, 언론인 등 민감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늘 불안 속에서 통화해야 했다.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안고 전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경부고속도로와 통신 인프라의 괴리
1970년 7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전국을 하루 만에 오갈 수 있는 교통망의 혁신은 국민의 큰 환영을 받았지만, 통신망은 여전히 수동 중계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선 교환원을 거쳐야 했고, 수 분에서 수십 분을 기다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당시 체신부는 ‘통신은 제일 먼저’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현실에서 통신 서비스의 체감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고속도로가 국가 교통망의 도약을 상징했다면, 통신망 또한 이에 걸맞은 변혁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체신부는 ‘장거리전화 자동화’—즉, 교환원의 개입 없이 발신자가 상대 지역번호와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연결되는 장거리자동전화(DDD: Direct Distance Dialing) 도입을 국가적 시급 과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였다.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의 개통
장거리자동전화는 유럽과 북미에서 이미 1960년대 초부터 일반화된 기술이었다. 한국도 이를 도입하기 위해 1970년 독일 지멘스(Siemens)사의 전자기계식 교환기(EMD 방식) 205회선을 도입하며 서울과 부산 간 자동 연결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단순한 장비 설치를 넘어, 회선 용량 확대, 신호 체계 정비, 과금 시스템 개선 등 통신 인프라 전반을 재구성하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마침내 1971년 3월 31일,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 서비스가 공식 개통되었다. 이제 ‘0’을 누르거나 교환원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지역번호와 전화번호만 누르면 바로 통화가 연결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도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전화는 ‘공공적 통신’에서 ‘개인적 소통’으로 확장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날 첫 공식 통화는 백두진 국무총리와 부산시장 간에 이루어졌고, 사업의 실무 책임자는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장거리자동전화 개통은 정부 차원의 큰 성과로 인정받았다.
‘장거리자동전화’라는 정책 명칭의 탄생
애초 이 사업의 명칭은 ‘시외전화 자동화’였다. 그러나 1971년, 주월남 대사에서 귀국해 체신부 장관으로 취임한 신상철 장관은 이 명칭이 기술적으로는 정확하나 국민적 관심을 끌고 정책 방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시외전화 자동화’ 대신 ‘장거리자동전화(長距離自動電話)’라는 새로운 명칭을 직접 고안하여 채택하였다.
이 용어는 즉시 관보, 신문, 라디오 등 공공 홍보매체를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곧 국민들 사이에도 익숙한 표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용어의 변경을 넘어, 정책적 상징성과 국민 소통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작명이었다.
지역번호 도입과 전국망 확대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 개통은 전국망 구축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전화번호 체계를 먼저 정비해야 했다. 발신자가 상대 지역의 번호를 올바르게 누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역번호 구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체신부는 1971년 ‘전국 전화번호계획’을 수립하고, 전국을 9개 시외통화권으로 나누어 ‘0XX’ 형식의 지역번호를 도입하였다. 서울은 02, 부산은 051, 대전은 042, 광주는 062 등이었고, 이 지역번호 체계는 이후 수십 년간 전화문화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체신부는 수도권과 주요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DDD 회선을 우선 확대하였고, 시외 교환국 건설, 교환기 교체, 전송 회선 확보, 인력 재교육 등 전국적 통신 인프라 개편을 병행하였다. 그 결과 1977년까지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자동화가 완료되었고, 1986년까지 평창, 봉화 등 일부 산간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시외전화 자동화가 실현되었다. 이어 1990년 3월, 전국 어디서든지 자동으로 시외전화를 걸 수 있는 체계가 완성되었다.
자동화의 기술 기반과 행정적 뒷받침
장거리자동전화 사업은 단순히 장비를 교체하는 수준을 넘는, 통신체계 전체를 전환시키는 기술적·행정적 혁신이었다. 전자식 자동교환기의 본격 도입, 전송 회선의 대용량화, 과금 체계의 전산화, 지역번호 계획, 사용자 교육과 홍보 등, 기술과 행정, 정책과 국민 인식이 총체적으로 맞물려야 성공할 수 있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였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이 체감한 인프라 혁신이라는 점에서 이 사업은 이후 데이터통신, 인터넷, 이동전화 시대로 향하는 튼튼한 발판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보화 사회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전화자동화의 사회적 의미
장거리자동전화와 지역번호 체계 도입은 단순한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소통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통화 연결 속도의 비약적 향상은 기업의 업무 효율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고, 가족 간 정서적 교류도 더 빈번하고 편리해졌다. 무엇보다도 자율성과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통신 환경은 전화가 보다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잡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역번호 체계는 통화요금 산정, 전화번호부 제작, 114 안내 체계 운영 등 전화문화 전반의 기준으로 작동하며, 한국 전화망의 효율적 운용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전국 단일요금제와 스마트폰, 인터넷 전화의 보편화로 인해 시외전화와 지역번호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1970~80년대 장거리자동전화 사업은 대한민국 정보통신사에 있어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물리적 거리를 좁혔다면, 장거리자동전화는 심리적 거리와 통신 장벽을 허문 **‘연결의 혁명’**이었다.
■ 장거리자동전화 도입 연표
1971년 3월 31일: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DDD) 개통
1971년: 전국 전화번호계획 수립 (지역번호 제정)
1977년: 전국 주요 대도시 DDD망 구축
1986년: 전국 대부분 지역 시외전화 완전 자동화
1990년 3월: 전국 시외전화망 자동화 체계 완성
■ 요약
장거리자동전화(DDD)는 교환원의 개입 없이 지역번호와 전화번호만으로 시외통화를 연결할 수 있게 한 자동화 통신 체계였다.
1971년 서울–부산 간 개통을 시작으로 전국에 걸친 자동화와 지역번호 체계가 구축되면서, 전화는 빠르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필수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업은 대한민국이 현대적 통신체계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는 기반을 제공하였다.